메뉴 건너뛰기

close

2018년 말 교육부에서 현장실습의 기간 확대를 꽤하는 한편, 고용노동부는 도제교육을 공고히 하고자 '산업현장 일·학습 병행 지원에 관한 법률안'(이하 법률안)의 통과를 서둘렀다. 일반인들에게 낯선 도제식 교육은 직업계고 학생들에게는 이미 익숙한 이름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스위스를 다녀온 후 도제교육을 언급하자 교육부와 고용노동부는 근거법률을 마련할 새도 없이 '직업교육훈련촉진법'에 따라 도제교육을 급하게 시행하였다. 
 
교육부는 '산학일체형 도제교육'을 통해 학생, 기업, 국가에 모두 혜택이 돌아간다고 안내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교육부는 "산학일체형 도제교육"을 통해 학생, 기업, 국가에 모두 혜택이 돌아간다고 안내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 교육부

관련사진보기

 
도제교육은 2017년도 기준 총 198개 학교에서 운영되고 있으나 자세한 실태 조사는 이뤄진 바 없다. 다만 2018년 전라남도교육청에 의한 지역 도제교육 전면 실태조사¹⁾가 진행돼 결과가 발표되었을 뿐이다. 해당 실태조사에 따르면 도제교육을 통해 직업계고 학생들은 2학년부터 현장에 나가서 일을 하지만, 전문적인 기술을 배운다는 애초의 목표는 온데간데 없고 현장실습과 마찬가지로 온갖 잡무와 허드렛일, 위험한 업무에 별다른 보호장치도 없이 노출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도제학교를 직접 경험하고 있는 학생들의 목소리
 도제학교를 직접 경험하고 있는 학생들의 목소리
ⓒ 김현주

관련사진보기

 
사정이 이러한데도 2019년 상반기, 도제학교를 확대하고 그 근거를 공고히 하기 위하여 2016년(정부안)과 2017년(한정애안)에 발표된 '산업현장 일·학습 병행의 지원에 관한 법률안'이 재논의되어 대안²⁾이 마련되었고, 국회에서 통과되어 시행되기를 기다리는 상태이다. 해당 법률안을 살펴보고 어떠한 문제점이 있는지 확인하고자 한다. 

산업수요를 적극 반영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학습병행지원법

산업 현장의 일·학습병행 지원이라는 것은 애초에 직업계고 또는 전문계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법률은 아니었다. 이미 사회에 진출한 노동자를 대상으로 일의 지속 및 능력의 신장을 위하여 일하면서 학습할 기회를 확대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러나 애초의 목적과는 관계없이 법률은 신규입직자, 구직자, 일자리 매칭을 언급하며 법률의 적용대상을 직업계고 또는 전문계 대학 진학 학생들로 대상으로 전환했다.

그러나 이러한 법 적용 대상의 전환은 도제교육을 확대하는데 중대한 문제를 가져온다. 도제교육은 독일 및 스위스의 마이스터 양성과정을 말한다. 다년간의 교육과 훈련을 통해서만 일정 정도의 업무수행이 가능한 고숙련 업무에 대하여 교육과정부터 시작해 전문가를 양성한다는 것이다. 교육부와 고용노동부 등을 비롯한 정부 관계자들은 이러한 전제하에 도제교육이 고등학교 3학년 2학기 또는 단기에 가능한 것이 아님을 피력하며, 고등학교 2학년부터 현장(사업장) 파견을 가능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정부가 고숙련 업무가 어떠한 업무인지 선별한 자료는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도제라는 허울로 여전히 값싼 노동력을 산업체에 파견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일·학습 병행법 제3조 기본원칙³⁾을 보면 '산업 수요를 적극' 반영하여 실시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도제라는 기본적인 취지에 따르면 도제교육은 수요와 무관하게 교육이 불가피한 업무, 발전과 승계가 필요한 업무들이 선별돼야만 한다. 이처럼 이미 법률안은 제3조 기본원칙을 통해 해당 법률이 독일이나 스위스의 도제교육과는 무관함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으며, 산업 수요에 따라 직업계고 학생들을 값싼 노동력으로 제공하고자 하는 현장실습의 또 다른 이름에 불과함을 증빙하고 있다.

현실과 맞지 않는 법률안의 문제점
 

이처럼 제도 본래의 취지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의 불일치라는 매우 근본적이면서도 중대한 문제점으로 인해 법률 내용의 문제점은 산적한 상태이다. 도제교육을 행할 장인은 산업 현장에서 극소수일 수밖에 없다. 장인이라고 해서 무조건 교육이 가능한 상태도 아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의 장인은 해당 기술의 숙련자인 기술자일 뿐이지 교육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도제교육을 위해서는 먼저 산업기술 분야의 선정→장인의 발굴→장인의 기술에 대한 교육 체계화 및 교육법 개발 등을 통해 도제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 마련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법률안은 이러한 전제를 모두 무시하고 시작한다. 도제교육을 위해 직업계고 학생을 받고자 하는 학습기업은 선임노동자 중 (경력이 된다면) 아무나 '현장 교사'를 정할 수 있으며, 교육안은 현장에서 마련하게 되어 있다. 이런 주먹구구식 운영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학습기업의 선별기준도 문제다. 학습기업으로 선별되기 위해서 기업의 고유기술이나 장인의 수, 장인의 교육내용, 교육기술에 필요한 기간, 교육 기간 및 이수 후 교육자의 고용 및 노동조건에 대해 어떠한 기준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물론 도제교육을 위한 기업의 규모가 작을 수도 있다. 따라서 학습기업의 규모가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겠지만, 최소한 상당 기간 교육과 훈련이 필요한 정도의 기술기업이라고 한다면 지나치게 영세해서는 교육 자체가 이루어지기 어렵다. 최소한의 규모 제한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법률안에서는 어떠한 기준이나 제한을 찾아보기 어려우며, 모든 기준을 대통령령으로 위임하고 있다.⁴⁾ 이는 해당 법률안이 도제교육에 대한 고민이 부족함을 증빙하고 있는 것일 뿐만 아니라 손쉬운 개정을 염두에 두고 도제교육의 부실을 방치하는 것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해당 법률안은 현재의 현장실습과 마찬가지로 교육을 받으며 노동을 제공하는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규정이 전무하다. 유일하게 학습 근로시간 및 휴식에 관한 규정과 차별적 처우의 금지에 관한 규정을 두고, 나머지는 근로기준법에 따르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기본적인 사항 외에 오히려 가장 필요한 것은 도제교육 및 도제 노동의 도중에 학교로의 복교 및 다른 경로로의 이동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아직은 직업을 탐색하는 단계인 직업계고 학생으로서는 해당 교육이나 노동이 자신이 생각한 것과 다르거나, 진로에 변경이 발생하거나 부당한 처우 및 위험한 업무로 인하여 교육을 중단하길 요청할 때 언제든지 학교로 복교하거나 전공을 전환할 수 있도록 적절한 통로와 방안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해당 법률에서는 이러한 방안에 대하여 전혀 고민하고 있지 않다.

또 다른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의 이름 '도제학교'

이미 시행된 도제교육의 현실 앞에서 향후 해당 법률안의 본격적인 시행은 현행의 모습을 크게 벗어나기 어렵겠지만, 향후 마련될 대통령령의 구체적인 내용은 물론 더욱 건설적인 방향으로 마련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현재 법률안의 기본적인 줄기는 도제교육을 통해 전문기술인력을 마련하기보다 조기에 직업계고 학생들을 산업 현장, 노동 현장에 파견하는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현재의 도제교육은 기간이 연장된 또 다른 이름의 현장실습이다.
 
지난 7월 17일 국회 앞에서 현장실습 유가족과 시민사회단체, 노동조합이 '일학습병행지원법'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 7월 17일 국회 앞에서 현장실습 유가족과 시민사회단체, 노동조합이 "일학습병행지원법"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관련사진보기

 
전남교육청의 실태조사를 통해서도 도제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현장에 나간 학생들 대부분은 전문기술을 배우기는커녕 잡일이나 허드렛일을 수행하거나 별다른 교육 없이 다른 노동자들이 수행하는 업무를 동일하게 수행하고 있다. 오히려 현장 교사 측에서 고용이 전제되어 있지도 않은 학생/노동자에게 어떻게 핵심기술을 가르치거나 알려줄 수 있는지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였다. 이러한 현장의 질문은 도제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노동 현장에 값싼 노동력으로 직업계고 학생들을 파견하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한다.

직업계고 3년 동안, 직업계고 학생들도 배우고 익혀야 할 사항들이 많이 있다. 정부는 직업계고 학생들을 값싼 노동력으로 산업 현장에 내모는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 도제라는 허울만을 씌운 현장실습 파견행위를 중단해야 하며 일하는 노동자의 일·학습 병행 지원이 아닌 도제교육을 확대하고 공고히 하는 산업 현장 일·학습병행 지원에 관한 법률안의 통과 시도를 멈춰야 한다.

[더 나쁜 현장실습, 도제학교]
①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도제학교, 무엇이 다른가 http://omn.kr/1k4bg
② 3학년 학생이 답했다 "나에게 도제교육은 실수였다" http://omn.kr/1k4un

※ 주석
1) 산학일체형 도제학교 운영 전면 실태조사 결과 보고서, 전라남도교육청 산학일체형 도제학교 운영 전면 실태조사 TF, 2018. 12.
2) 산업현장 일학습병행 지원에 관한 법률안(대안), 제안연월일 : 19. 3. 제안자 : 환경노동위원장
3) 제3조(기본 원칙)
① 일학습병행은 산업수요를 적극 반영하고, 학습근로자의 적성·능력에 맞게 체계적으로 실시되어야 한다.
4) 제13조(학습기업의 지정)
① 고용노동부장관은 일학습병행을 운영하기 위하여 학습기업을 지정할 수 있다.
② 제1항에 따라 학습기업으로 지정을 받으려는 자는 다음 각 호의 요건을 모두 갖추어 고용노동부장관에게 신청하여야 한다.
1. 해당 직종의 일학습병행을 안정적으로 실시할 수 있도록 대통령령이 정하는 경영 기준을 갖출 것
2. 도제식 현장 교육훈련 및 사업장 외 교육훈련을 함께 실시할 수 있는 인력·시설·장비를 갖추고 있을 것
③ 제1항 및 제2항에 따른 학습기업 지정의 기준․방법ㆍ절차 등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최은실 님은 노무사이며,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법률위원장입니다.


태그:#도제학교, #일학습병행지원법, #현장실습, #직업교육, #교육부
댓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모든 노동자의 건강하게 일할 권리와 안녕한 삶을 쟁취하기 위해 활동하는 단체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