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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7월 27일 오후 9시 26분]

올해 처음 직업계고 현장실습 학교전담노무사를 신청해서 일정에 참가하고 있다. 교육부는 "직업계고 학생의 인권과 안전을 위해 2018년부터 기존 '근로 중심'의 현장실습을 '학습중심' 현장실습으로 전환"하였고 "공인노무사회를 '2018년도 직업계고 산업체 현장실습 지도·점검 지원 기관'으로 선정하여 기업의 현장실습 운영 점검 및 개선을 지원"한 바 있다고 한다. 또 "2019년에는 직업계고 산업체 현장실습 컨설팅 및 지원 사업이 더욱 확대되어, 기업의 현장실습 운영 점검 및 개선을 지원하는 활동 외에도 일상적으로 직업계고 현장실습을 지원하는 '학교전담 노무사제도'가 도입"되었다고 한다. 학교전담노무사는 현장실습 운영과정에서 학교현장실습운영위원회 운영위원 활동, 현장실습 참여 학생 사전교육, 현장실습 중 기업방문 및 학생 면담 등에 참여한다.
 
교육부에서 지난 6월 17일에 발표한 '서울신문 <직업계高, 학교라는 이름의 용역업체> 등에 대한' 해명 자료 중 일부
 교육부에서 지난 6월 17일에 발표한 "서울신문 <직업계高, 학교라는 이름의 용역업체> 등에 대한" 해명 자료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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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전담노무사에게 비밀유지서약서 작성 요구한 공인노무사회

현장실습 중에 산재를 당하여 다치거나 죽는 일, 인권침해를 당하는 일을 언론을 통해서 알고 있었다. 그런 문제점들을 개선하기 위해 학교전담노무사를 배치한다고 생각했고 그 취지에 동감하여 이 사업에 참여했다. 그런데 참가 신청을 했을 때 공인노무사회 측은 나에게 '비밀유지서약서' 작성을 요구했다. 서약서 내용 중에는 '불가피한 상황 등으로 인해 타인에게 본 사업에서 습득한 정보를 제공하여야 하는 경우 사전에 그 사실을 통보하고 협의할 것을 서약'하라는 문구가 포함되어 있었다.

사업에 참여하면서 알게 된 개인정보를 목적과 달리 사용한다거나 영업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에는 이해가 되었지만 왜 불가피한 상황이 발생할 때 사전에 공인노무사회에 그 사실을 알려야 하는지, 왜 제삼자에게 누설하면 안 되는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특히 현장실습 중에 많은 사건·사고들이 있었던 것을 고려했을 때 문제가 있으면 공론화되어야 할 일이지 쉬쉬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공인노무사회에 서약서 작성을 거부하겠다고 알렸고, 공인노무사회에서는 '기업발굴과 관련하여 학교에서 걱정하는 부분들이 있어서 서약서 작성을 요구한 것일 뿐'이며 '서약서 양식은 앞으로 제외하거나 보완해나가겠다'고 개선을 약속하였다.

'현실화된 수당'에 발끈한 기업체 임원 

나의 경우엔 부산교육청 소속 학교 2곳, 경남교육청 소속 학교 1곳, 총 3개의 학교를 배정받았다. 담당 선생님들은 '어디 물어볼 데가 없었는데 전담노무사가 배정되어 물어보기가 쉬워졌다'며 나를 반갑게 맞아줬다. 그러나 학교전담노무사가 배정받는 학교 수가 좀 더 적거나, 적어도 동일한 교육청 관할이었으면 좋을 것 같았다. 부산에 사무실이 있는데 경남교육청 관할 학교까지 가는 것은 무리이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도 멀리 있는 노무사보다 가까이 있는 노무사들에게 좀 더 편하게 문의할 수 있지 않을까.

현장실습운영위원회는 학교별로 열리는데 담당 선생님들과 학부모대표, 학교전담노무사가 기본적으로 참여한다. 부산은 기업체 임원들도 참여했다. 첫 번째 참여한 현장실습운영위원회에서는 학교별 현장실습 운영 규정을 만들었다. 올해 부산교육청의 운영지침에는 '최소 30% 이상 교육 중심의 프로그램이 있어야' 하고 '실무 중심의 현장실습에는 현실화된 수당을 지급하라'는 문구가 있었다.
 
잇따른 사고로 현장 중심에서 '학습 중심'으로 특성화고 현장실습을 개편하겠다고 한 교육부는 1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조기 취업 중심의 현장실습으로 돌아섰다. 지난 1월 25일 시민사회단체,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피켓팅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잇따른 사고로 현장 중심에서 "학습 중심"으로 특성화고 현장실습을 개편하겠다고 한 교육부는 1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조기 취업 중심의 현장실습으로 돌아섰다. 지난 1월 25일 시민사회단체,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피켓팅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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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기업체 임원들은 '현실화된 수당'에 발끈했다. "일 시켰다고 최저임금 달라고 하면 어떡하나?" "최저임금 받으려면 일을 힘들게 해야 한다" "학부모들이 문제다. 학생들이 일 시켰다고 하면 학부모들이 따지지 않느냐"며 훈계 아닌 훈계를 했다. 일했으니 임금을 달라고 하는 것은 정당한 요구인데, 이것을 나무라는 기업체에 가서 학생들이 배울 것은 무얼까? '정당한 요구를 하지 말고 참으라고 하는 것은 오히려 비교육적이다, 현장실습운영위원회에 참석했었던 교육청 장학사도 취업률 가지고 뭐라 안 하니 조건이 안 되면 실습을 보내지 말라'고 하였다.

다음날 부산시교육청에서는 워크숍을 진행했다. 현장실습운영위원회가 열리기 전에 진행했어야 할 자리가 아니었나 싶다. 현장실습 운영 규정을 검토하기 위해서는 교육청의 지침과 계획이 먼저 노무사들에게 제공되었어야 할 텐데 교육청의 지침과 계획은 사전에 제공되지 않았다. 그래도 부산시교육청의 경우에는 전체 워크숍이라도 진행하였지만, 경남교육청은 어떤 교육도 진행하지 않았다.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고 하는 교육부

워크숍에서는 교육부 공무원이 노동시장 양분화, 경직된 노동시장, 4차 산업혁명 등의 얘기를 하면서 학벌주의가 문제라고 했다. 학벌주의를 타파하고 고졸 취업률을 올리기 위해 고졸 교육과정에 현장실습이 많이 들어가야 한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노동시장이 양분화되어 있는 것을 현장실습으로 개선할 순 없지 않은가? 노동시장을 개선해야 하는 것 아닐까?

이어 유은혜 장관이 고졸 취업률을 60%까지 올린다고 발표하는 동영상을 시청하였다. 전날 부산교육청의 장학사는 분명 취업률로 학교를 압박하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말이 다르다. 교육부 장관은 취업지원관을 학교마다 1명씩 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부산교육청은 발로 뛰어 20명분(부산엔 40명 필요)을 만들었다고 한다. 다음날 간 학교의 현장실습운영위원회에서는 교육청의 각종 지원이 취업률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취업률을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다고 했다.

3개 학교의 현장실습운영위원회에 참가하고 보니 문득 '국정교과서 논쟁'이 떠올랐다. 교과서를 국정으로 할 거냐, 검인정으로 할 거냐를 가지고도 한국의 교육계는 긴 논쟁을 한 적이 있었다. 어째서 고등학교 교육과정 하나를 학교와 교사의 책임으로만 맡겨두고, 그 교육내용과 운영을 사기업체에 온전히 맡기는데도 이것이 그대로 용인되는 것일까? 교육과정을 수립하고 운영하는 데 있어서 그 질적 수준을 관리할 책임은 교육부에 있는 게 아닌가?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유선경 님은 노무사이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입니다.


태그:#현장실습, #특성화고, #청소년노동인권, #교육부, #직업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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