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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교직 16년차에 시골의 작은 혁신 중학교로 전근을 갔다. 개구리 해부하듯 분석하여 조각으로 배우는 시 수업, 작가조차 맞추지 못한다는 5지 선다형 문제를 푸는 소설 수업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삶의 질을 풍성하게 하고 타인을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문학 수업을 꿈꿨다. 입시만을 위해 달리는 공부가 아니라 앎과 삶이 일치하는 진짜 공부를 돕는 교사이고 싶었다. 혁신학교에 가면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었다.

지난 3월, 1년 계획을 세우는 직원 총회가 있다고 해서 기대감을 갖고 회의실로 갔다. 보통의 학교는 보직을 맡은 부장 교사들이 1년 계획을 설정하고 나머지 교사는 취합한 자료를 전달받아 시행하는 구조 속에 돌아간다. 회의라는 단어가 무색하다. 의견을 말해도 묵살 당하기 일쑤여서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며 입 다물고 앉아 있는 게 직원회의 자리였다. 그러니 모든 교사가 모여 의견을 내고 조율하는 시간이 있다는 건 소식만으로도 신선하여 설레기까지 했다. 곧 신선함과 설렘이 혼란으로 바뀌었는데 질문 하나 때문이다.

"학생이 왜 교무실 청소를 해야 합니까?"

교실은 물론 교무실, 교장실, 행정실, 체육관, 과학실, 복도, 화장실, 계단 등 일명 '특별구역' 청소에 일정 인원의 학생을 배정하는 것을 당연한 일로 생각해온 나에게 '학생이 왜 교무실 청소를 해야 하느냐'는 질문은 어떤 심오한 철학적 질문보다 강렬했다. 처음엔 혼란스러웠다. 철떡 같이 믿고 성실하게 수행한 세월의 길이가 혼란의 크기와 비례했다. 잘 수행할 방법만 생각했지 왜냐고 묻지 않고 살았다. 청소는 일상적인 일이라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았다. 선생님들은 청소의 교육적 의미와 봉사활동 점수 부여 기회, 자기가 생활하지 않는 공간에 대한 청소 의무 등을 키워드로 반론의 반론을 거듭하다가 한참 만에 합의에 이르렀다. 특별실에 학생의 배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선생님이 필요 인원을 제시하면 신청한 학생들을 데리고 청소하기로 결정했다. 교무실을 쓰지 않는 학생에게 청소를 맡겨 생기는 불편한 마음이 없어졌고 교사가 혼자 청소하기 너무 넓은 특별실엔 학생의 도움을 받고(시키는 것이 아니라) 봉사활동으로 인정했다. 담임교사는 아이들에게 교실에서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듣기도 하고 청소 태도로 아이들 성향이나 관계를 관찰하기도 하면서 청소 시간을 유용하게 보냈다. 원래 그렇다는 생각은 편견이 되고, 편견은 고집스럽다. 편견이 많으면 사람이 보이지 않고 그러면 곁에 가기 싫은 사람이 된다.

원래 그렇다는 생각은 편견이 된다

이제 화장실, 복도, 계단은 청소 용역의 손을 빌리고 학생들이 청소하지 않는 곳이 많다. 5년 전만해도 학생들이 했다. 범위가 워낙 넓어 교칙을 어긴 학생들을 모아 벌칙으로 청소를 시키곤 했다. 용역의 손에 청소를 맡기는 일에 반대하는 의견도 있다. 예전에 나도 '대체 노동이 아니라 그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자발적 손길로 공간이 정돈될 때 공간은 더 빛나고 애착도 커지는 게 아니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작년 SNS에 올라온 서울교원노조의 성명서를 읽고 내 생각은 부서졌다.
 
-일반 관공서(교육청, 구청, 공립도서관 등)에 비해 1/20~1/40도 안 되는 학교 청소예산. 학생들이 교실을 청소하는 것은 교육적 목적에 부합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학교 건물 연 면적 중 교실이 차지하는 비중은 15%에 불과합니다. 현재 화장실을 제외한 거의 모든 공간을 '특별구역'이라는 명목으로 학생들이 청소하고 있습니다. (중략) 이용인원은 서울시 교육청의 6배,  서울지역 중등학교 실내 청소예산은 1/16.
- 2018년 2월 21일, 서울교사노동조합 아이 건강 지키기 프로젝트 '합리적인 학교 청소 예산 확보를 위한 서명서' 중에서 


자료를 보고 놀랐다. 청소도구는 어떠한가. 가정에서는 청소기를 쓰는데 학교는 아직도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사용한다. 질 나쁜 빗자루에 먼지는 잘 엉켜 붙고 내가 직접 쓸어 봐도 깨끗하게 먼지가 제거되지 않는다. 학생들은 집에서 비를 들고 청소한 일이 없는데 학교에 와서 청소기 없이 깨끗이 청소할 수 있을까. 게다가 구역이 너무 많아 청소가 제대로 될 수가 없다. 결국 먼지 속에서 수업활동을 하게 되는 셈. 최근엔 미세먼지 때문에 창문을 닫는 시간이 길어 교실의 쾌적한 환경을 위한 대책 마련이 더욱 필요하다. 야외 체육이 불가능한 날이 많아 체육관을 사용하는 빈도가 잦은데 가만히 앉아 있지 않고 뛰고 구르며 해야 하는 체육관의 청소는 교실보다 문제가 더 심각하다. 사용 인원은 많은데 청소 인원은 턱 없이 적다. 교육적 목적이라고 학생에게 시키기엔 과도한 면적이다. 학생 수도 과거에 비해 많이 줄었다. 먼지에 아이들 건강이 위협받는 상황이다. 학교 청소예산 증액을 요구하는 서울교사노조의 서명지에 서명을 했다. 학교에서 공간을 직접 이용하는 학생과 교사의 손으로만 청소하기엔 무리가 많다는 생각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교육이 필요하다면 '내가 만든 쓰레기는 내가 버린다. 자기 주변 정리 정돈을 깨끗이 한다'를 아는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원래 그래, 당연하지.' 여기다 질문을 받고 생각이 바뀐 일은 내가 혁신학교에 있을 때 특히 많이 겪었다. 할 말이 있어서 학생에게 교무실로 오라고 했더니 "볼 일 있으면 선생님이 오세요"라는 말로 받은 충격은 5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충격은 무엇으로부터 온 것일까. 같은 어른끼리라면 내가 할 말이 있을 때 상대를 오라 가라 하지는 않는다. '선생님이 부르면 학생은 온다' 어른의 권위에 지나치게 힘 실린 말은 아닐까.

당연하다는 생각이 상상도 못했던 구석에서 삐져나온 걸 마주하게 될 때마다 깜짝 놀란다. 한번 의문이 들고 나니 같은 사례가 꼬리를 물고 떠오른다. '왜 학생부장은 주로 남자 선생님에게 맡길까?' 남자 애들을 잡아야 하는데 여자 선생님은 힘에 부친다는 논리인데 '왜 애들을 잡아야 하는 거지?' '체육대회에 반별 등수를 매겨 상품 주는 게 공정한 걸까?'

"체육대회에서 아이들은 다들 열심히 해요. 근데 이미 학기 초 반 편성 때 잘 하는 애가 많으면 그 반이 이기잖아요. 어차피 1등이 정해져 있어요. 불공평해요."

체육을 사랑하는 학생에게서 들은 말이다. 틀린 말이 아니다. 사소해 보이는 일에도 질문을 던져 편견으로 굳어지기 전에 살피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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