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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란을 부를 가능성이 다분한 책 <한식을 위한 변명>
 논란을 부를 가능성이 다분한 책 <한식을 위한 변명>
ⓒ 하빌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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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황광해는 음식과 요리 관련 글에서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수운잡방>, <규합총서> 등의 각종 고문헌을 자유자재로 인용하는 드물고 돌올한 필자다. 그의 문장은 짧고 군더더기가 없어 쉽고 편하게 읽힌다.

황광해와 함께 밥을 먹어본 사람은 안다. 그는 누구보다 음식과 식재료에 대해 많이 알지만 '지식'을 무기로 식탁에서 허세를 부리지 않는다. '과장이 없고 명료한 사람'. 기자가 본 황광해는 그랬다.

최근 논란을 부를 가능성이 다분한 책 한 권이 세상에 나왔다. <한식을 위한 변명>(하빌리스). 앞서 언급한 음식평론가 황광해가 썼다. 첫 장을 펴면 열거된 소제목부터가 심상찮다. 이런 것이다.

'보양식은 없다'
'조선의 왕들은 사치스럽게 먹었다?'
'먹음직스러운 사찰 음식은 없다'
'우리는 가난해서 산나물을 먹었다?'
'궁중의 음식, 나라의 치욕이자 수치'
'전통, 정통, 최고는 꼭 지켜야 하는 것일까?'

호기심을 자극하는 동시에 우리가 평소 가지고 있던 한식에 대한 고정관념을 전복(顚覆)시키는 제목들. 내용으로 진입하면 이 제목들이 황광해의 딱딱 끊어 쓰는 단문에 의해 친절하게 부연된다.

동서(東西)와 고금(古今)의 여러 자료를 검토·인용해 설득력을 높이고, 의구심을 가질 독자를 위해 다양한 역사적 사실과 실제적 사례를 들려주고 있다. 이중 많은 독자들이 관심과 의심의 눈길을 동시에 보낼 주제는 '궁중요리(음식)'와 '보양식'일 듯하다.

다양한 문헌과 역사적 사실을 검토·인용해 설득력 높여

먼저 보양식에 대한 이야기부터. <한식을 위한 변명>에서 황광해는 잘라 말한다. "보양식은 없다." 이러한 단언에는 반드시 다음과 같은 물음이 뒤따른다.

"아니, 보양식이 없다니요? 우리 조상들이 먹던 삼계탕, 장어, 민어, 개고기 등이 무더운 여름철을 이기는 힘을 준 게 아닌가요?"

이 질문에 황광해가 답한다. "보양식에 관한 한 우리는 발전이 아닌 퇴보의 시대를 살고 있다. 있지도 않았던 보양식을 억지로 만들어 먹고 있다"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보양식으로 가장 즐겨 먹는 음식 중 하나인 삼계탕이 원래는 지금의 모습이 아니었음이 기록된 <일성록>, <몽경당일사> 등을 인용한다. 또한 오늘날 삼계탕을 만들 때 사용되는 '영계(20여일 키운 어린 닭)'가 과거에는 사용된 적이 없음도 증명해낸다.

비싼 가격임에도 각광받는 민어회와 장어 요리 역시 조선시대엔 '보양식'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게 황광해의 주장. 
 
"양반은 민어로, 상민은 개고기로 보신했다는 말은 근거가 없다. 양반의 민어 보신은 불가능했다. 양반들은 대부분 한양 도성이나 대도시에 살았다. 바닷가에서 민어를 옮기는 일은 불가능했다. 궁궐에서도 민어회를 먹거나 생민어로 탕을 끓였다는 기록은 없다."

여기에 덧붙여 장어를 귀한 보양식으로 대접하는 세태는 '일본의 영향 탓'이라고 말한다. "조선시대에는 장어를 좋게 여기지 않았다. 그때 장어는 정체가 불분명한 녀석"이었다는 것이 황광해의 설명이다.

명월관이 궁중요리를 계승한 곳이라고?
 
"왕의 밥상과 국가 조선의 음식을 혼동하면 안 된다. 왕의 일상적인 음식과 국가가 다른 국가에, 혹은 종묘 등 제사에 올리는 음식을 혼동하고 있다. 김영삼 대통령의 칼국수는 대통령의 음식이다. 하지만 칼국수가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은 아니다. 외국 수반들이 한국을 찾았다. 칼국수를 냈을까? 그러진 않았다."

'궁중요리'에 관한 황광해의 태도도 명확하다. "왕의 밥상, 궁중의 음식은 허구다. 왕의 밥상은 없었다. 우리 시대 사람들이 만들어낸 허구의 음식"이라는 것. 조선시대의 여러 문헌에 근거해 '왕의 밥상은 결코 화려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펼친다.

궁중요리를 후대에 전한 인물로 평가받는 안순환(1871~1942)에 이르면 황광해는 더욱 단호해진다. 황광해는 안순환을 '철저한 친일파이자 간교한 술집 주인'이었다고 혹평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읽어보자.
 
"안순환은 조리사도, 음식점 경영자도 아니었다. 철저한 친일파이자 친일파와 일본을 등에 업고 호화 술집(명월관)을 운영한 난세의 간교한 술집 주인이었을 뿐이다. 궁중을 자신의 장사에 이용했다. 명월관은 왕의 밥상, 왕의 여자와 더불어 흥청망청 노는 곳이었다."

뜨거운 논란이 예상되는 '안순환에 관한 재평가'에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해 황광해는 일제강점기 신문 기사와 웹사이트에 게재된 '안순환 평전',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에 등장하는 '안순환'이라는 이름을 꼼꼼하게 살핀다.

'궁중음식을 전승한 기능보유자' 또는 '조선왕조의 마지막 상궁'으로 불리는 한희순에 대한 황광해의 인물평은 가혹하게 보일 정도다. 요약하면 이렇다.

'한희순이 고종과 순종, 계비 순정효황후 윤씨의 밥상을 책임졌다는 건 엉터리 소설이다. 무너진 왕조라도 왕실의 식사는 남자, 숙수의 몫이었다. 어린 여자 나인이 밥상을 책임졌다는 것은 유교적 사회 질서 구조와 조선의 궁궐을 모르니 하는 소리다. 한희순은 고종 시대엔 제대로 일을 할 연차도 되지 않았다. 백번 양보해서 부엌일을 했다 치더라도, 물을 길어오는 정도였을 것이다.'

논란을 부를 황광해의 주장, 판단은 독자들의 몫
 
"병아리라 하기에도 부끄러운 생명체에 조미료를 쳐서 제 몸을 보양하겠다는 건 잔망스런 짓이다."

"조선의 음식을 이야기하면서 왕조의 끄트머리 몇 년 동안 일한 10대 궁녀의 기억에 의존한다면 한식이 너무 불쌍하지 않은가?"

"한식은 시쳇말로 폭망이다. 길을 잃었다. 음식 만드는 이들이 죄다 원본 없이 복사본을 그리고 있다. 한식, 한식의 정신도 모른 채 퓨전 한식만 그리고 있다."
 
 <한식을 위한 변명>의 저자 황광해.
 <한식을 위한 변명>의 저자 황광해.
ⓒ 하빌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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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은 황광해의 문장은 열광과 더불어 비난 또한 불러올 것이 분명하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판단해 '한식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만들어갈 것인지는 <한식을 위한 변명>을 읽은 독자들의 몫으로 온전히 남겨졌다.

책을 접한 박찬일 셰프는 "그는 성역 없이 쓴다. 근거를 대고 비판한다. 한식과 음식 세계에서 그는 자기만의 시각을 구축해냈다"는 말로 황광해를 지지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박찬일과 동일한 생각은 아닐 터.

<한식을 위한 변명>을 쓴 황광해는 대학에서 역사를 공부했고, 신문사 기자와 출판사 편집장 등으로 일했다. 여러 일간지와 주간지에 음식 칼럼을 기고하는 그는 공중파와 종합편성채널 방송에도 수차례 출연해 인지도가 낮지 않다.

한식을 위한 변명 - 어떻게 지금의 한식이 되었는가

황광해 (지은이), 하빌리스(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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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등의 저자. 경북매일 기자.

라이프+ 여행·문화 담당 기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기 위해선 이야기의 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