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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넘어 읽는 고전'은 30대를 통과하고 있는 한 독서인이 뒤늦게 문학 고전을 접하며 느낀 재미와 사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고전'이라는 것은 나에게는 늘 골칫거리다. 수백 년 동안 사라지지 않고 전해져 오는 것을 보면 거기엔 뭔가 이유가 있을 테니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쉽사리 손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고전 말고도 읽을 것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쌓여가는데, 케케묵은 옛날 책들까지 챙겨 읽을 시간이 어디 있는가.

그러던 내가 서른 넘어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처음 읽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고전은 어느 정도 나이가 든 후에 읽어야 더 재미있다는 것을. 사람과 세상일에 경험이 쌓인 뒤에 읽어야 책에 나오는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사유들을 이해할 수 있다. 나아가 고전이 쓰였을 당시의 시대상과 현재를 비교해 보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그러니 공부하느라 바쁜 10대, 취업하느라 힘든 20대들에게 필독서니 뭐니 하면서 자꾸 본인도 읽지 않은 고전들을 권하지 말라. 그들의 정원은 그들이 알아서 가꿀 테니, 괜한 오지랖은 접어 두고 우리는 우리의 정원을 가꾸면 될 일이다.

갑자기 정원 타령을 하는 이유는 며칠 전 읽은 볼테르의 <미크로메가스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때문이다. 고전을 읽는 재미 중 하나가 이런 것 아니겠는가. 그럴 듯한 명문장을 야금야금 주워다가 주머니에 넣어두고 '이때다!' 싶을 때 '짜잔!' 하고 내보여 제법 책 좀 읽은 티를 내는 것.
 
 <미크로메가스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볼테르 지음, 이병애 옮김, 문학동네(2010)
 <미크로메가스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볼테르 지음, 이병애 옮김, 문학동네(2010)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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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미크로메가스>와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이 두 짧은 콩트를 묶은 책이다. <미크로메가스>는 1752년에 출판됐고,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는 1759년에 출판됐다. 오늘은 두 작품 중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 한다.

이게 정말 신이 만든 최선인가

이 책을 쓴 볼테르는 1694년 파리에서 유복한 공증인의 아들로 태어나 예수회 학교에서 수학했다. 볼테르가 태어난 시기는 절대군주 루이 14세가 통치하던 시절이었고, 신앙의 자유를 허락했던 낭트칙령이 폐지돼 오직 하나의 종교만이 허용되던 시대였다.

이러한 시대에 볼테르는 뛰어난 지성과 특유의 독설로 모든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고 권력을 비웃으며 기존의 관념들을 풍자하고 조롱했다. 그때까지 절대적인 종교와 권력을 그처럼 노골적으로 비아냥댄 사람은 없었다. 볼테르는 평생 교회와 성직자들의 그릇된 권위와 광신을 공격했다.

소설의 주인공 캉디드는 베스트팔렌 지방의 고귀한 남작의 하인이다. 그는 제법 판단력이 올곧고 순박한 청년이다. 어린 캉디드는 남작 집안의 예언자이자 가정교사인 팡글로스에게 형이상학적, 신학적 우주론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다. 순진한 캉디드는 스승의 이론을 아무런 의심 없이 온전히 받아들인다.
 
"사물들이란 달리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됐습니다. 모든 것은 한 가지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으며 반드시 최선의 목적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지요. 코는 안경을 걸치기 위해 만들어졌고 그래서 우리는 안경을 쓰는 겁니다. 두 다리는 바지를 입기 위해 만들어졌고 그래서 우리는 바지를 입는 것이지요.

돌멩이는 다듬어져서 성을 쌓기 위해 그런 모양이 되었고, 그렇기에 영주님은 너무나 아름다운 성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 지방에서 가장 훌륭한 남작은 가장 훌륭한 곳에서 사셔야 하니까요. 돼지는 잡아먹히기 위해 태어났으니 우리는 일 년 내내 돼지고기를 먹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이 최선이라고 말해야 하는 거죠." (48~49쪽)

캉디드는 남작의 딸 퀴네공드를 사랑했다. 어느 날, 캉디드와 퀴네공드의 부적절한 관계를 목격한 남작이 분노해, 그 자리에서 바로 캉디드를 성 밖으로 쫓아낸다. 캉디드는 세계 곳곳을 떠돌아다니며 몇 번의 죽을 고비와 갖가지 불행을 겪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불행 속에 떠돌아다니면서도 캉디드는 팡글로스 선생에게 배웠던 낙관주의를 생각하며, 자기가 겪는 이 고통도 신의 큰 뜻이 있는 것이겠지, 생각한다. 하지만 끊임없이 자신에게 닥치는 불행과 세계의 부조리를 직접 보고 듣고 겪으며 점점 스승의 가르침에 의심을 품게 된다.

즉, 불행과 여행 그리고 사람들과의 만남이 캉디드를 변화시킨다. 이런 설정을 통해 볼테르가 라이프니츠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런 게 아니었을까. 가만히 앉아서 맹목적으로 신을 찬양하며 세상 모든 것이 신의 뜻이라는 헛소리를 집어치우고, 다른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세상 돌아가는 꼴을 좀 봐라. 얼마나 많은 불행들이 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유 없이 박해를 받고 죽어가는지. 그 꼴을 보고도 이 모든 게 다 신이 만들어 낸 최선의 상태라고 말할 수 있는가.
 
흑인이 말했다. "다들 그렇게 합니다. 그분들은 옷이라고는 일 년에 두 번, 거칠게 짠 속바지 하나를 줄 뿐입니다. 우리가 설탕 공장에서 일하다 절구에 손가락이 끼면 손을 잘라버리고, 우리가 달아나려고 하면 다리를 잘라버리지요. 저는 이 두 경우를 다 겪었답니다. 그 대가로 유럽 사람들이 설탕을 먹는 것입니다. (중략) 개나 원숭이, 앵무새도 우리보다 백배는 덜 불행합니다."

"오! 팡글로스!" 캉디드가 소리쳤다. "이런 끔찍한 일을 당신은 예측하지 못하셨습니다. 이렇게 되었으니 결국 나는 당신이 말씀하셨던 낙관주의를 포기할 수밖에 없군요."

"낙관주의가 뭔데요?" 카캄보가 말했다.
"아아! 그건 나쁠 때도 모든 것이 최선이라고 우기는 광기야." 캉디드가 말했다. (134~135쪽)

무엇이 우리를 구원해줄까

소설의 결말에서 캉디드와 퀴네공드는 다시 만난다. 그리고 캉디드는 퀴네공드와 여행에서 만난 동료들과 함께 작은 농가에서 함께 살게 된다. 캉디드는 이미 팡글로스의 낙관주의를 믿지 않게 됐고, 팡글로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관주의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캉디드와 팡글로스, 그리고 동료들은 특별히 할 일도 없이 메일 끝도 없는 철학 토론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이런 의미 없는 토론마저 하지 않으면 지루해서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에 이웃에 사는 터키 노인의 말에 깊은 감명을 받은 캉디드는 노인에게 들은 말을 동료들에게 전해준다. "노동을 하면 우리는 세 가지 악에서 멀어질 수 있으니, 그 세 가지 악이란 바로 권태, 방탕, 궁핍이라오."
 
캉디드가 말했다. "우리는 우리의 정원을 가꾸어야 해요."
"자네 말이 맞네." 팡글로스가 말했다. "신이 인간을 에덴동산에 살도록 한 것은 그곳을 가꿀 관리자로서 있으라는 뜻이었지. 그것이 바로 인간이 휴식을 위해 태어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것일세."
"이러쿵저러쿵 따지지 말고 일합시다. 그것이 인생을 견딜 만하게 해주는 유일한 방법이에요." 마르틴이 말했다. (207쪽)
 
 지금 우리는 매일같이 일을 하면서도 궁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허무감에 고통받고 있다. 지금 볼테르가 살아있다면 이런 상황을 보고 과연 뭐라고 말할까.
 지금 우리는 매일같이 일을 하면서도 궁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허무감에 고통받고 있다. 지금 볼테르가 살아있다면 이런 상황을 보고 과연 뭐라고 말할까.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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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에 대한 신랄한 풍자와 조롱이 난무하는 이 소설은 300여 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여전히 통쾌하고 재미있다. 하지만 21세기를 살고 있는 나는 '노동'이 인간을 구원한다는 소설의 결말이 조금 불편하다. 노동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사실 또 다른 불행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노동은 권태와 방탕, 궁핍으로부터 우리를 구해주는가? 지금 우리는 매일같이 일을 하면서도 궁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허무감에 고통받고 있다. 지금 볼테르가 살아있다면 이런 상황을 보고 과연 뭐라고 말할까. 볼테르가 살았던 그 시대는 분명 노동이 최선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이 우리를 가난과 허무와 절망에서 구해줄 수 있을까.

미크로메가스.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반양장)

볼테르 (지은이), 이병애 (옮긴이), 문학동네(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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