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90년에 한 번 9일간 열리는 스웨덴의 한 공동체 축제, 해가 지지 않는 백야(白夜)는 6월 중순에서 7월 초 절정을 이룬다. 백야는 위도 48도 이상 지방에서 한여름에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내려가지 않아 밤이 쉽게 오지 않는 현상이다. 북극권에서는 하지 무렵 백야가 계속된다.

인간은 낮이 계속되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실제로 백야 동안 범죄나 우울증이 증가한 통계를 보면 생각보다 지구의 일부, 우주의 티끌에 해당하는 인간의 연약함을 실감한다.

아홉은 완벽한 열이 되기 위한 준비과정
 
 영화 <미드소마> 스틸컷

영화 <미드소마> 스틸컷 ⓒ (주)팝엔터테인먼트

 
'미드소마(Midsomma)'란 영어로는 'Mid Summer', 한여름이란 뜻이다. 태양의 생명력을 고스란히 담은 크리스마스 행사와 더불어 중요한 하지 축제를 말한다. 영화 <미드소마>는 스웨덴의 한 공동체 여름축제에 초대된 외부인의 공포와 집단의 광기를 다룬다. 초반 대니의 집에 걸린 그림을 자세히 보면 영화의 결말을 예감할 수 있다. 곳곳에 배치된 작은 이스터에그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들은 오래된 풍습을 가지고 있다. 죽음은 생명으로 순환되는 원형의 하나라고 믿는다. 영화에서 '9'는 중요한 숫자다. 9의 짝수 배수로 생의 주기를 결정한다. 태어나서 18세까지는 봄(9의 2배수), 18세부터 36세(9의 4배수)는 여름으로 외부로 떠나는 순례자를 말한다. 36세부터 54세(9의 6배수)는 가장 일을 많이 하는 일꾼 가을이다. 54세부터 72세(9의 8배수)까지는 겨울로 멘토가 되고 비로소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음악(music)은 신에게 닿을 수 있는 매개 중 하나이자 통치자의 필수 요소였다. 영감의 원천을 뮤즈(Muse)라고 부르고, 9명의 뮤즈를 모시는 신전을 오늘날 뮤지엄(museum)이라 부르는 이유다.

삶, 어미를 뚫고 나오는 잔인한 욕망
 
 영화 <미드소마> 스틸컷

영화 <미드소마> 스틸컷 ⓒ (주)팝엔터테인먼트

 
대니는 축제 기간에 생일을 맞는다. 마침 그날은 절벽에서 떨어지는 중요한 의식이 거행되는 날이다. 양로원에서 필연적인 죽음을 맞이하기보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순결성을 얻는다고 믿는다. 노인은 죽음을 큰 기쁨으로 여기며 태어날 아이가 망자의 이름을 이어 받는다. 죽음과 삶은 순환하는 자연의 일부임을 보여주는 의식이다.

농경문화에서 자식은 일할 수 있는 일꾼을 의미했고, 다산은 곧 풍요를 상징했다. 젊음은 그야말로 축복이지만 나이듦은 더 이상 쓸모 없어진 것에 불과했다. 우리나라에 고려장이 유행했던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때로는 십이 되기 위해 아홉의 희생, 다수의 이익을 위한 소수의 피해는 아무렇지 않게 묵인되기도 한다.

​이 영화는 가족영화이자 러브스토리다
 
 영화 <미드소마> 스틸컷

영화 <미드소마> 스틸컷 ⓒ (주)팝엔터테인먼트

 
최근 '대니(플로렌스 퓨)'는 부모님과 동생을 잃었다. 남자친구와의 관계도 소원할뿐더러 불안한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다. 밑져야 본전으로 문화인류학을 전공하는 남자친구 '크리스티안(잭 라이너)'과 스웨덴 하지 축제에 따라간다.

대니는 철저히 소외된 자였다. 가족의 죽음도 함께하지 못하고, 친구들 모임에서도 은근한 따돌림에 몹시 불편하다. 가족의 죽음을 경험한 트라우마가 채 치유되기도 전에 낯선 문화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처지다. 세상이 나를 비웃는 것 같고 어디 하나 마음 둘 곳 없이 공허한 상태다.

따스한 안정과 위로가 절실할 때 대니를 도와줄 사람은 없다. 자연스럽게 모든 것을 함께하는 공동체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은 어쩌면 예정된 수순일지도 모른다. 이때 카메라 워킹은 노골적으로 말한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를 부감 쇼트로 찍다가 어느 순간 전복된다. 상하반전의 프레임은 '이곳에서 무슨 일이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는 인장을 찍는다.
 
 영화 <미드소마> 스틸컷

영화 <미드소마> 스틸컷 ⓒ (주)팝엔터테인먼트


영화 <미드소마>는 전작 <유전>의 '아리 애스터'감독의 신작이다. <유전>과 DNA는 같지만 다른 옷을 입은 쌍둥이 같다. <유전>에서 대물림되는 가족 비극과 후계자 계승을 이야기 했다면 <미드소마>에서는 배경이 한 밤에서 한낮으로 바뀌었고, 주인공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전환되었다. 무엇보다 주인공의 마지막의 표정도 확연히 다르다. 하지만 또다시 가족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영화는 어떤 집단에도 속하지 못하고 떠다니던 주인공이 절실히 바라던 가족을 만드는 가족 드라마일지도 모른다. 가족과 연인이 있지만 외롭던 대니는 공동체의 진정한 가족이 된다. 어릴 적 불에 타 부모님을 잃고 공동체에 들어왔다는 펠레는 안식처가 되지 못하는 가족은 필요 없다며 우리가 너의 가족이 되어주겠다고 한다.

그렇게 5월의 여왕을 가리는 춤을 시작한다. 둥그렇게 손을 잡고 강강술래하듯 빙빙 돌며 지쳐 쓰러지지 않는 자가 이기는 게임이다. 대니는 게임에서 우승하고 5월의 여왕이 된다. 드디어 가족이 된 그들은 슬픔에는 곡소리로 함께하고 생명을 잉태하는 순간에 함께 힘을 내어 준다.
 
 영화 <미드소마> 스틸컷

영화 <미드소마> 스틸컷 ⓒ (주)팝엔터테인먼트

 
<미드소마>는 낯선 문화를 마주할 때의 당혹감과 존중성이 상충하며 기괴하고 섬뜩한 공포를 만든다. 해가 지지 않는 백야는 한낮에도 충분히 공포스러울 수 있음을 증명한다. 스트레스와 트라우마가 서서히 잠식하며 경계심을 좀먹는다. 목가적인 분위기와 자수가 새겨진 린넨 의상, 전형적인 아름다움이 비틀어진 비웃음이다.

어쩌면 한 연인, 대니와 크리스티안의 이별에 관한 이야기다. 사랑의 유통기한은 대략 3년이라고 한다. 사랑에 빠져 두근거리는 설렘이 사라지고 익숙해지는 권태기가 온 순간 치고 들어오는 이별의 서늘한 공포는 집요하게 147분 동안 흐른다. 누가 먼저 관계를 끝내느냐에 따라 마지막에 웃는 자가 결정된다. 마치 대니의 마지막 미소처럼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장혜령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미드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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