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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요리를 유난히 좋아하는 이가 있습니다. 그 사람은 국수 종류면 뭐든지 다 좋아해서 '뭐 먹고 싶은 것 없느냐'고 물으면 매번 같은 소리를 합니다.

"저는 면 요리면 다 좋습니다."

그 사람이 들으면 좋을 소식이 하나 생겼습니다. '감자국수'를 누가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감자국수라니,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음식 이름입니다. 그것도 북한 음식입니다. 그래서 그 친구에게 알렸더니 한달음에 달려왔습니다. 본인이 좋아하는 면 요리인데다 북한 음식이기까지 하니 궁금해서 왔을 것입니다.

감자로 만든 국수, 그 맛은?

'감자국수'는 이름 그대로 감자로 만든 국수입니다. 국수라면 밀가루로 만들거나 아니면 메밀국수 정도만 생각했는데, 감자로도 국수를 만들 수 있다니 신기합니다. 과연 감자국수의 맛은 어떨까요? 
 
북한 양강도 음식인 감자국수. 감자 녹말로 만든 국수입니다.
 북한 양강도 음식인 감자국수. 감자 녹말로 만든 국수입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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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지내는 새터민 부부가 있습니다. 양강도가 고향인 그 부부가 우리에게 감자국수를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언젠가 북한 음식인 '두부밥'을 해서 맛보여 준적도 있는 부부입니다. 두부밥은 기름에 튀긴 두부 속에 찹쌀밥을 채운 뒤 양념장을 발라서 먹는 음식입니다.

감자국수도 북한에서 인기 있는 음식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장마당에서 흔히 먹는 두부밥과 달리 감자국수는 명절 때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음식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귀한 음식을 직접 만들어서 맛보여주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람도서관으로 모였습니다.

북한의 특별한 음식인 감자국수

자람도서관은 강화군 양도면에 있는 작은 도서관입니다. 뜻이 있는 사람들이 힘을 모아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는데 하는 일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중에 가장 역점을 두는 것은 인근 학교에 다니고 있는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의 방과후돌봄과 교육입니다.

학생들은 학교 공부가 끝나면 도서관으로 옵니다. 그런 아이들을 위해 간식을 준비해 둡니다. 요즘은 감자를 이용한 간식이 자주 나옵니다. 찐 감자와 우유를 준비해 두기도 하고 감자 샌드위치를 만들어 줄 때도 있습니다.
 
양강도가 고향인 영희 씨와 한철 씨 부부.
 양강도가 고향인 영희 씨와 한철 씨 부부.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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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녹말에 뜨거운 물을 조금 붓고 반죽합니다.
 감자 녹말에 뜨거운 물을 조금 붓고 반죽합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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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무렵이면 감자를 캡니다. 그래서 이맘때면 감자를 이용한 요리가 많이 등장합니다. 주로 반찬으로 만들어 먹지만 때로는 끼니 대신으로 먹기도 합니다. 어른 주먹만 한 감자 한 알이면 한 끼 식사로 충분합니다. 찐 감자를 으깨서 마요네즈와 섞어 빵에 발라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어도 좋습니다. 이래저래 다양하게 이용되는 감자를 북한에서는 국수로도 만들어 먹는다고 합니다.

북한의 양강도와 자강도는 한반도에서 가장 최북단에 위치한 지역입니다. 척박한 산악지대인 데다가 추위가 일찍 찾아오고 또 봄이 늦게 오는 지역이라 채소 농사가 잘 되지 않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까닭에 밭작물인 감자가 특산물로 유명하며 감자를 이용한 음식이 다양하게 발달했다고 합니다.

감자로 만든 요리가 80가지나 되는 북한

양강도와 자강도에서는 감자농마국수, 감자농마지짐, 언감자국수, 감자엿, 언감자송편 등등 감자를 이용해 만드는 요리가 많습니다. '농마'는 북한말로 녹말을 뜻합니다. 1999년에 출간된 <감자료리>라는 북한 책에는 감자요리가 무려 80여 가지나 수록돼 있습니다.

면발을 뽑는 기계를 챙겨 들고 영희(가명)씨가 왔습니다. 양강도가 고향인 영희씨는 국수 위에 끼얹을 양념장과 북한식 콩나물 무침까지 만들어서 왔습니다. 감자국수가 남한 사람들의 입맛에도 맞을지 자못 긴장되는지 콧등에는 송골송골 땀이 배어 있었습니다. 
 
국수 틀에 반죽을 넣고 누르면 하얀 면발이 내려 옵니다.
 국수 틀에 반죽을 넣고 누르면 하얀 면발이 내려 옵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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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감자를 강판에 갈아 웃물은 따라서 버리고 밑에 가라앉은 전분을 모아 감자국수를 만들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나 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시대이니 가게에서 파는 감자 전분으로 대신했습니다. 육수도 꿩고기를 삶아 그 물로 한다는데 꿩고기를 구하기가 쉽지 않아 다른 고기로 대체했습니다.

감자 전분에 뜨거운 물을 붓고 살살 저어가며 반죽을 합니다. 전을 부치는 경우에는 반죽이 질어야 하지만 면 반죽은 질면 안 됩니다. 반죽을 하는 한편으로 육수도 끓입니다. 기름을 두른 냄비에 양파와 고기를 넣고 조금 볶다가 물을 붓고 한소끔 더 끓입니다.

꿩고기를 삶아서 육수를 만든다는데...

영희씨의 남편인 한철(가명) 씨도 왔습니다. 한철씨도 양강도 사람입니다. 그의 어머니는 감자국수 장사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 어머니를 보고 자랐으니 한철씨 솜씨는 남다를 것 같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한철 씨가 오자 비로소 감자국수 만들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감자녹말 가루는 쌀가루 같이 하얗고 뽀송뽀송합니다. 겨울 한밤중에 소리 없이 내린 새하얀 눈 같습니다. 밟으면 뽀드득 뽀드득 소리가 나던 눈, 감자녹말 가루에서 허리께 까지 눈이 쌓이곤 한다는 북녘 땅 양강도가 그려졌습니다.
 
새터민과 남한 사람이 함께 감자국수를 만들고 있습니다.
 새터민과 남한 사람이 함께 감자국수를 만들고 있습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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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죽을 국수틀에 넣고 힘껏 눌렀습니다. 그러자 면발이 뽑혀 나왔습니다. 하얗고 가는 면발을 뜨거운 물에 넣고 얼른 익혀냅니다. 그런 다음 찬물로 헹굽니다. 재빨리 하지 않으면 면이 불어버리니 재빠르게 손을 놀립니다. 

감자국수의 면발은 잡채를 할 때 쓰는 당면 같았습니다. 당면은 주로 고구마 전분을 이용해서 만듭니다. 감자국수도 전분으로 만드니 면발이 당면이랑 비슷한 건 당연하겠지요. 하지만 당면보다 훨씬 더 하얗고 쫀득쫀득했습니다.   

우리에겐 낯선 음식, 새터민에겐 반가운 고향 음식

국수맛이 어떠냐고 영희씨와 한철씨가 물었습니다. 다들 맛있다고 말은 했지만 입에 착착 달라붙는 맛은 아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난생처음 맛보는 음식이었으니까요. 그런 우리와 달리 새터민들은 국수 그릇에 코를 박고 먹기에 바빴습니다. 오랜만에 맛보는 고향 음식이 반가웠는지 대접에 수북이 담긴 국수를 맛있게 다 비웠습니다. 
   
감자국수는 쫀득쫀득하고 매끌매끌합니다.
 감자국수는 쫀득쫀득하고 매끌매끌합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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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끈한 온면과 차가운 냉면, 이렇게 두 가지 맛의 감자국수를 맛봤습니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날에는 온면을 먹으면 좋을 것 같고, 찜통 같은 삼복더위에는 차가운 감자국수 한 그릇으로 더위를 잠시 잊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희씨 부부에게 남한은 모든 게 낯설기만 했을 겁니다. 그래도 이제는 잘 적응해서 삽니다. 가끔씩 북한 음식을 해서 이웃들에게 대접하기도 합니다. 남한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염려하면서 조심스럽게 한 발씩 내딛습니다.

그런 영희씨 부부의 새로 딛는 발자국을 응원합니다. 서로 낯설고 어색할 때도 있지만 우리는 하나라는 마음으로 서로를 본다면 이해 못할 것도 없습니다. 가끔씩 소통이 잘 안 될 때도 있지만 그 역시 큰 문제는 아닙니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자리가 있는 이상 우리는 한 민족 한 형제자매이니까요.

태그:#북한음식, #감자국수, #새터민, #양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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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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