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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나를 붙잡은 말들'은 프리랜스 아나운서 임희정씨가 쓰는 '노동으로 나를 길러내신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엄마는 어린 나를 데리고 일주일에 한 번 목욕탕에 가는 시간을 살뜰히 챙겼다. 내가 가슴이 나오고 브래지어를 하고 키가 자라고 엉덩이가 커진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어린 나는 열쇠가 주렁주렁 매달린 탈의실 사물함 앞에서 엄마가 옷을 벗겨주면 뭣도 모르고 춥다며 징징댔고, 사춘기가 지난 후에는 나 스스로 옷을 벗고는 이상하게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툴툴댔다. 그곳에서는 누구나 다 발가벗고 있었는데 왜 나만 수줍었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38도와 43도의 탕 중 항상 43도의 뜨거운 열탕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들어가기 전 오른손으로 물을 한두 번 퍼서 가슴에 적셔 보고는 '아이고 뜨거워라!' 하면서도 바로 목까지 몸을 담갔다.

나는 그 옆에 있는 38도 탕에 들어갔는데, 그마저도 뜨거워 처음에는 발만 넣어 걸터앉아 있다가, 시간이 좀 지나면 허리까지만 겨우 몸을 담갔다가, 엄마가 옆에서 '목까지 푹 담가야 때가 잘 나온다'라고 핀잔을 주면, '뜨겁단 말이야!' 하며 겨우 탕 속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그렇게 나는 38도 온탕에, 엄마는 43도 열탕에 몸을 담근 채로 서로를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나중에 엄마 나이가 되면 뜨거운 열탕도 저렇게 한 번에 바로 들어갈 수 있을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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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지근한 게 좋은데 엄마는 항상 뜨거운 걸 좋아했다. 국도 항상 팔팔 끓여야 맛이 더 좋다고 했고, 갓 쪄낸 고구마도 입천장이 다 데일 정도로 뜨거운 상태에서 먹어야 한다고 했다. 살이 델 정도로 뜨끈한 아랫목 바닥에 앉는 것도 좋아했고, 목욕탕에서도 무조건 제일 뜨거운 탕에 들어가야 좋다고 했다.

엄마는 한참 열탕에 앉아 있다 나와서는 곧바로 냉탕으로 향했다. 흰 바가지에 찬물을 퍼서 머리 위에 붓고는 '아이고 차가워라!' 하면서도 또 바로 목까지 몸을 담갔다. 열탕에서는 가만히 앉아 있었지만 냉탕에서는 방방거리며 탕 안에서 제자리 뛰기를 했다. 그래야 혈액순환에 좋다며 부지런히 손을 휘젓고 다리를 움직였다.

그러다 한 번씩 냉탕에 달린 손잡이를 잡아당겼고, 천장에서 거센 물줄기가 쏟아지면 어깨를 대고 마사지를 했다. 나에게도 해보라며 손잡이를 당겨주었는데, 어린 나는 그 물줄기가 닿으면 너무 아파서 도저히 서 있을 수 없었다. 어른이란 엄마처럼 뜨거운 것도, 차가운 것도, 아픈 것도 잘 참아야 하는 사람 같았다.

엄마는 어떤 마음으로 때를 밀었을까

엄마는 나에게 열쇠를 맡기고 먹고 싶은 음료수를 사 오라고 했다. 나는 돈 대신 열쇠를 내밀고 무언가를 받아오는 그 일이 너무 부끄러워 싫다고 했다. 그러면 엄마는 나를 보고 '애가 왜 저렇게 부끄러움이 많냐, 으이구!' 하고는 탕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항상 엄마는 얼음이 가득 담긴 매실음료에 빨대 두 개를 꽂아 다시 탕 안으로 들어왔다. 엄마가 탕을 나갔다 들어오면 팔에 차고 있던 열쇠가 없어져 있었다. 목욕탕 안에서는 열쇠가 돈 같은 거구나 생각했다.

탕에서 한참 몸을 불리고 나오면 엄마는 나를 하얀 의자에 뒤돌아 앉혀놓고 때를 밀어줬다. 내가 아무리 살살 밀어 달라 애원해도 엄마는 최선을 다해 내 등을 싹싹 밀었다.

"엄마, 아파!"
"아이고, 때 봐라, 때!"
"엄마, 살살!"
"아이고, 때 좀 봐, 때!"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엄마의 말은 모두 '때'로 끝났다. 그렇게 나의 온 살을 다 밀어주고 나면 엄마는 자신의 때가 다 밀린 것처럼 개운하다 말했다.

그렇게 일주일에 한 번씩 엄마는 딸을 데리고 목욕탕에서 몸을 불리고 때를 밀어주고 음료수를 사 먹이고 집으로 돌아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밀어줘야 할 딸의 살 면적은 넓거나 길어졌을 것이다. 그러다 그 딸이 많이 넓고 길어진 후에는 함께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 자라버렸고, 독립을 했고, 결혼을 했기에, 이제 일주일에 한 번씩 목욕탕에서 엄마가 했던 그 일은 끝나버렸다.

가끔 친정집에 갈 때면 엄마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에게 목욕탕에 가자고 한다. 그럼 나는 집에 가야 한다고 말한다. 엄마의 집도 내가 살았던 집인데 이상하게 시간이 좀 지나면 내 집에 가고 싶어진다. 목욕도 내 집에서 하고 싶다. 엄마의 밥을 먹고 엄마랑 함께 있는 것도 좋은데, 내 집에 오는 것도 좋다. 다 커버린 딸의 '스위트 홈'은 이제 엄마가 없어도 완성된다. '집이 최고야.' 이 말은 어느새 내 집에 돌아와야 내뱉는 말이 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엄마는 가끔씩 목욕탕에 가겠지만, 혼자 온탕과 냉탕을 오가고 혼자 때를 밀고 혼자 빨대를 하나만 꽂은 음료수를 마시고 돌아올 것이다. 가끔 전화로 혼자 목욕탕에 다녀왔다는 얘길 들을 때마다 나는 엄마와 마주했던 온탕과 냉탕이 생각난다. 그곳에서 엄마는 여전히 '아이고 뜨거워라!', '아이고 차가워라!' 하겠지만, '아이고 때 봐라!'라는 말은 하지 못할 것이다. 

목욕탕에 가야겠다

딸의 살갗을 자주 만지거나 밀어주거나 볼 수 없는 시간이 오면 엄마의 마음은 어떨까. 어릴 때의 자식은 온몸을 만져주고 토닥여주어야 커질 수 있었는데, 어느덧 자신의 몸보다 더 넓어지고 길어진 딸의 몸을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 엄마의 손길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어린 날의 나는 다 커버린 후 엄마의 쓰다듬는 손 없이도 잘 지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나의 살갗은 엄마의 손길을 기억하고 있는지 가끔 엄마가 내 손을 잡고 안아주고 등을 쓰다듬어 줄 때면 발가벗은 목욕탕 안에서처럼 부끄러우면서도 개운해지는 느낌이 든다. 엄마가 내 살을 만져주면 마음이 싹 씻기는 것 같다.

어릴 적 엄마가 나에게 해 주었던 것처럼, 내가 엄마의 살을 만져주고 보듬어 주었던 적이 언제였던가. 왠지 그 일은 목욕탕에서 핑계 삼아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 엄마를 모시고 꼭 목욕탕에 다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와 함께 43도의 열탕에 몸을 푹 담그고 나란히 앉아 도란도란 한참 동안 얘기를 나누고 싶다. 엄마의 등도 최선을 다해 밀어주고, 열쇠를 맡기고 빨대 두 개를 꽂은 음료수도 내가 사 오고, 냉탕에서 물줄기로 어깨 마사지도 해보며, 엄마의 마음까지 깨끗하게 닦아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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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부 에디터. "쓰는 일에, 그렇게 해서 당신을 만나는 일에 나는 어느 때보다 욕심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