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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나 이틀, 아니 사흘쯤이면 더 좋겠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온전하게 주어졌다면 무엇을 할까 생각해 본다. 대부분 우선 훌쩍 떠나볼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어디로 향할 것인가. 일상을 벗어나 나를 위한 시간을 만들어 보길 원한다면, 강릉으로 향하는 것이 어떨지.

서울-강릉 간 KTX가 개통됐다. 114분 만에 도착할 수 있는 경강선 덕분에 강릉은 당일여행도 가능하게 됐다. 서울역에서 출발하면 청량리-상봉-양평-만종-횡성-둔내-평창-진부를 거쳐 강릉 도착이다.
 
 바다부채길 초입의 전망대에 올라 탁 트인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트래킹을 시작한다.
 바다부채길 초입의 전망대에 올라 탁 트인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트래킹을 시작한다.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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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에 도착하면 먼저 얼른 달려가 푸른 동해를 보고 싶어진다.

정동진 바다부채 길은 심곡에서 정동진까지 해변을 따라 왕복 5.7㎞의 데크로 이어진 부담 없는 거리다. 반대편에서 출발해도 된다. 어느 쪽에서 출발해도 여행은 이어진다. 이곳은 천연기념물 제437호로 2300년 전 지각변동을 관찰할 수 있는 유일한 해안단구다. 48년 동안 군사시설로 비공개돼다가 2017년 6월에 개방됐다. 

이 길은 지형의 모양이 바다를 향해 부채를 펼쳐 놓은 모양과 같아서 바다부채길로 불린다는 말이 있다. 바다부채길 걷기는 심곡이 시작점이다. 출발 지점의 전망대에 올라서면 바닷가 마을이 보인다. 해안가를 따라 긴 데크로드가 끝없이 이어지는 코스다. 바다와 가장 가까운 길이다.

바다를 옆에 두고 걷기 시작하면, 흐린 하늘이 내려앉은 먼 바다의 수평선이 여행자에게 행복한 설렘을 준다. 바닷바람이 시원하다. 동해를 향해 펼쳐진 바위들이 하나 둘 눈 앞에 나타난다. 이어지는 전망대에 오르면 탁 트인 시야와 청정한 바다, 높은 하늘이 가슴을 뻥 뚫리게 한다. 걸으면서 간간히 들리는 파도소리가 세상의 소음을 잊게 한다. 절벽 아래로 펼쳐진 바다는 속을 들여다볼 수도 있을 만큼 깨끗하다. 

그 길은 걷다보면 친절한 읽을거리들이 심심찮게 준비돼 있다. 
 
옛날 어떤 사람이 꿈속에서 바닷가에 나가보라는 말을 듣고 나가봤더니 여서낭 세 분이 그려진 그림이 떠내려 오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서낭당을 짓고 모시게 되었는데 아직까지 그림의 색깔이 변하지 않는다.

부채바위의 전설을 읽으며 지나다 보면 중간중간에 쉼터가 있어서 잠깐씩 먼 바다를 보며 숨을 고른다. 
 
 바위 절벽에 드문드문 피어있는 해국, 바닷 바람에 빛바랜 모습이 수줍다.
 바위 절벽에 드문드문 피어있는 해국, 바닷 바람에 빛바랜 모습이 수줍다.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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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옆 절벽의 바위틈에 피어있는 해국은 신라시대의 향가 헌화가를 떠올리게 한다. 
 
'자줏빛 바위 가에
 잡고 있는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순정공이란 이가 강릉 부임 길에 부인이 절벽의 철쭉꽃을 갖고 싶어 했는데, 그때 암소를 끌고 가던 한 노인이 꽃을 꺾어서 수로부인에게 바치면서 불렀다는 헌화가. 이 노래가 떠올려지는 풍경이다.
 
 심곡에서 출발해서 정동진 썬크루즈가 보일때 까지 걸으면 된다. 마지막 계단을 오르면 멀리 시원한 바다를 내려다 볼 수가 있다.
 심곡에서 출발해서 정동진 썬크루즈가 보일때 까지 걸으면 된다. 마지막 계단을 오르면 멀리 시원한 바다를 내려다 볼 수가 있다.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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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지나면 또 하나의 전설을 지닌 투구바위가 나타난다.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바위가 투구를 쓴 장수의 모습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렇게 듣고 보니 장수의 비장함이 느껴지는 형상이다.

이제 거의 끄트머리에 다 와 간다. 투구바위와 육발 호랑이 전설이 있는 바위를 지나니 이제 데크로드의 막바지다. 그곳에서 저 멀리 정동진의 범선이 보인다. 

그 지점에서 가파른 계단을 잠깐 오르면 정동진 썬크루즈 주차장이다. 숨가쁘게 올라서 돌아보니 푸른 동해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절경이 이어진 해안길을 따라 호젓하게 걸으며 즐겨본 한 시간이다.

탁 트인 푸른 바다와 구름, 웅장한 기암괴석의 절벽과 바람과 파도소리의 상쾌함을 한꺼번에 느낄 수 있던 바다부채길이다. 당일여행 중에 가벼운 트래킹도 경험할 수 있는 코스가 있다는 건 멋진 기회다.  

- 하절기(4∼9월) 오후 5시 30분, 동절기(10∼3월)는 오후 4시 30분까지 운영. 마감 한 시간 전까지 입장 가능.
- 정동과 심곡 양쪽 매표소 앞에 무료 주차장이 있다. 주말과 공휴일에는 유료.

 
 강릉시내 구경하고 호젓한 시간을 갖고싶거나 조용한 대화를 나누고 싶을때 이곳에 가면 더없이 좋다. 동헌을 통과하면 생각외로 넓어서 놀란다. 입구 왼쪽에 칠사당의 한옥건물이 친근하다.
 강릉시내 구경하고 호젓한 시간을 갖고싶거나 조용한 대화를 나누고 싶을때 이곳에 가면 더없이 좋다. 동헌을 통과하면 생각외로 넓어서 놀란다. 입구 왼쪽에 칠사당의 한옥건물이 친근하다.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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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을 식힌 다음에는 천천히 강릉 시내로 들어가 한적하게 유적을 한 번 돌아보면 좋겠다. 공원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둘러볼 수 있는 정갈한 유적이 도심에 있다.

강릉 대도호부 관아(사적 제388호)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중앙의 관리들이 강릉에 내려오면 머물던 건물터다. 지금은 국보 51호인 객사문만 남아있다. 이는 고려시대 건축물 중 현재까지 남아있는 몇 안 되는 건물이어서 관아 성격의 건물터 연구에 중요한 자료다. 뿐만 아니라 옛 강릉의 역사와 문화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기도 하다. 안쪽 전대청에 '임영관'이라고 쓰인 현판 글씨는 공민왕이 낙산사 가는 길에 들러서 쓴 친필이다. 

특히 강릉대도호부는 규모가 꽤 큰 편에 속했던 관아였는데 일제의 만행으로 손실되거나 철거되는 안타까운 비극을 겪으며 복원과 보수를 해오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이웃나라에 폐를 끼치는 일본임을 또 한 번 확인한다.

이처럼 가치 높은 유적이 거리를 지나다가 들를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으니 놓칠 수 없는 기회다. 게다가 누구든 원하면 강릉 시청에 언제든 신청해서 해설사의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먹거리와 간식이 즐비하다. 그리고 강릉중앙시장만의 먹거리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먹거리와 간식이 즐비하다. 그리고 강릉중앙시장만의 먹거리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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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한 강릉 시내를 한나절에 돌아보는 건 어렵지 않다. 도시가 넓지 않기 때문에 장소에 따라서는 버스나 택시를 이용하거나 거리에 따라 걸어서 이동해도 될 만하다. 

강릉중앙시장. 매스컴을 통해 유명해진 아이스크림 호떡과 치즈 호떡을 먹기 위해 이미 줄이 길게 서 있다. 마늘빵과 닭강정 역시 인기여서 사람들이 찾아들고 있다. 인정 넘치는 상인들이 맛보기를 건넨다. 시장통\을 구경하며 그분들과 호흡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 또한 강릉 여행의 재미다. 
 
 강릉 월화정의 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져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관광명소 월화거리는 걸으면서 즐길거리가 주욱 이어지고 있다.
 강릉 월화정의 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져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관광명소 월화거리는 걸으면서 즐길거리가 주욱 이어지고 있다.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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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중앙시장을 나오면 곧이어 월화풍물시장과 강릉 월화정 설화를 바탕으로 만든 '월화 거리'가 이어진다. 강릉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고 있는 월화 거리는 강릉 도심을 지나던 폐철도 부지에 조성된 공원시설이다. KTX 강릉선 개통으로 강릉 도심 철도가 지하화 되면서 옛 지상 철길은 유휴지로 남게 됐다. 강릉시는 더 이상 기차가 달리지 않게 된 이 공간을 공원화했다.

컨테이너로 이루어진 월화풍물시장은 기존에 있던 시장을 리모델링해서 만들어졌다. 강원도의 메밀전병이나 감자떡 등의 토속음식들은 물론이고 다양한 간식거리로 옛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렇게 월화 거리를 쭈욱 걸어 나와 20분쯤 걸으면 KTX 강릉역이 나온다. 

덧붙이는 글 | 여행에세이 <잠깐이어도 괜찮아>의 저자입니다. 이 기사는 개인 커뮤니티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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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세이 - 잠깐이어도 괜찮아 -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