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이집트 홍해의 도시 후르가다
 이집트 홍해의 도시 후르가다
ⓒ 최늘샘

관련사진보기


알라 알라, 이집트!

세계 여행 일 년만에 처음으로 혼자 택시를 탔다. 세상에 만상에. 한 친구는 "택시도 대중교통이야"라고 했지만 나는 경비를 아끼려고 되도록 버스를 탄다. 터키 이스탄불에서 비행기로 세 시간, 이집트 홍해의 후르가다 공항에 도착해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숙소로 가려던 계획은 어이없이 무너졌다.

첸나이, 뉴욕, 우수아이아, 부다페스트, 수많은 공항에서 노숙을 했고 문제가 생겼던 적이 없는데 이집트 공항 경찰들은 막무가내로 나를 쫓아냈다. 공항 밖 벤치에 머무는 것도 안 된다며, 억지로 택시에 나를 밀어넣었다. 택시비를 대신 내줄 것도 아니면서. 무슨 이런 억압적인 나라, 불친절한 공항이 다 있는지.

오자마자 경찰들과 실랑이를 하다니 이집트와의 만남이 긴장되고 걱정스러웠다. 경찰 대장은 자기가 호텔에 전화했으니 하룻밤 무료로 숙박할 수 있다며 큰소리를 쳤다. 설마 설마 역시나, 호텔 사장은 당연스레 제일 먼저 돈을 요구했다. 카이로 공항에서 노숙했다는 여행자들을 이후에 여럿 만났으니, 이집트는 공항마다 여행자 관리 방침이 다 다른가 보다.

떠도는 정보들에 의하면, 이집트는 외국인 여행자를 대상으로 한 바가지와 사기로 유명한 나라다. '특히, 돈을 요구하며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는 문장이 신선해서 기억에 남는다.

공항에서 탄 택시기사는 처음에 80이집트 파운드(한화 5600원)를 불렀으나, 공항 톨게이트를 나가기 직전 통과비로 10달러를 더 요구했다. 택시비가 80파운드인데 갑자기 무슨 10달러냐고 묻자, 눈을 부라리며 크게 화를 내는 무서운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언뜻 10파운드(700원)라고 적힌 톨게이트 안내판이 보였다. 700원이 순식간에 12000원이 되는 마술의 나라, 이집트. 택시 창밖 풍경이 무섭고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숙소에 도착해 100파운드를 냈지만 기사는 결코 20파운드를 거슬러 줄 마음이 없었다. 이슬람 국가 모로코와 터키에서 배운 대로, 최대한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한 마디를 남겨 주었다.

"알라, 알라! 이집트!"

풀이하자면 이런 뜻이다.

"오 마이 갓! 신이 당신을 지켜보고 있소! 이집트 첫인상 진짜 힘들어요!"

고작 택시비 7000원 때문에 알라신까지 들먹이다니, 지나고보니 나도 참 어지간한 것보다 더 찌질하다 싶다. 하지만 그 순간 예정에 없던 택시비와 호텔비를 써야 했으니, 소심한 마음이 얼마나 놀랐을꼬. 가난한 여행자들에게 의자 하나 배려하지 않고 몰아내는 후르가다 공항을, 알라신이 조금은 굽어살펴 주시기를.

붉은 바다 홍해

터키에서 이집트로 가는 저가 항공은 수도 카이로가 아닌 홍해의 휴양지 후르가다와 샤름엘셰이크로 연결되었다. 샤름엘셰이크 옆 '다합'이라는 곳이 태국의 카오산로드, 파키스탄의 훈자와 함께 '배낭여행자들의 3대 블랙홀'이라는 소문을 들었다. 하지만 다합이 있는 시나이 반도가 '여행 위험' 지역이고 비자 받기가 까다로울 수도 있다는 정보를 보고 후르가다를 선택했다.
 
 하늘에서 본 후르가다 야경.
 하늘에서 본 후르가다 야경.
ⓒ 최늘샘

관련사진보기


밤에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후르가다는 파란 수영장과 알록달록한 불빛으로 신천지처럼 보였는데 그건 리조트들의 모습일 뿐, 낡은 호텔에 머물며 내가 만난 후르가다는 모래 먼지 날리는 황량한 소도시였다. 무엇보다 이 바다 마을에서는 돈을 들이지 않고는 바다를 보기가 어려웠다.

터키의 흑해가 까맣지 않듯, 이집트의 붉은 바다 홍해 역시 이름이 무색하게 새파랗게 빛났다. 붉은 산호가 많아서 홍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명도 있는데, 내가 본 산호 지역은 붉은색뿐 아니라 온갖 빛깔을 다 띠었다.

이름이야 무엇이든 그 아름다운 산호와 다양한 수중생물을 볼 수 있는 홍해는 세계적인 다이빙 장소다. 폐호흡을 하는 육상생물 인간이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생명의 안전과 직결된 일이다. 다이빙은 축구나 수영 같이 일반적인 스포츠가 아니며 비용이 들고, 무섭기도 해서 이런 저런 정보를 검색했다.

다이빙에는 공기통을 메고 호흡하는 스쿠버 다이빙과 제주도 해녀처럼 숨을 참고 물 속을 잠수하는 프리 다이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스쿠버 다이빙을 스스로 즐기려면 국제 공인 기관의 교육을 수료하고 자격증을 받아야 한다.

초급 단계 '오픈 워터'와 20미터 이상 잠수하기 위한 '어드밴스드(상급)' 과정까지, 다이빙 센터들의 교육 과정에 따라 250에서 450달러 정도의 비용이 든다. 이집트 홍해가 세계에서 가장 저렴하고, 한국이나 동남아에서는 두 배가 넘는 비용이 든다고 한다.

평생 세계 어느 바다에서나 다이빙이 가능한 자격증이기에 오래 고민했지만, 역시 저예산 여행자인 나에게는 부담되는 금액이라 아쉬움을 접고 깨끗히 포기했다.

바다 없는 바다 마을 후르가다

불과 열흘 전 눈 쌓인 터키 동부를 여행했는데, 이집트의 5월 기온은 영상 40도. 여행 1년 동안 몇 번의 겨울과 여름을 넘나드는 건지, 대충 열여섯 번의 계절을 지나온 기분이다.

페루 쿠스코 벼룩시장에서 산, 아끼던 코트를 눈 질끈 감고 버렸다. 소유물을 줄여 배낭과 몸을 가볍게 해야 하는 뚜벅이 장기 여행자의 삶.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집착과 애착을 버리는 것은 여행의 한 가지 과정이고 배움이 되기도 한다.

다이빙은 안 배워도 수영을 하고 싶어서 숙소를 나와 바다로 향했다. 핸드폰 지도를 따라 해변으로 이어진 언덕 하나를 힘들게 넘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경비원이 길을 막아섰다. 그 길은 리조트 이용객만 다닐 수 있는 길이라며 언덕을 다시 돌아 내려가라고 했다.

총을 든 권력, 사유재산의 권리 앞에 나는 씁쓸하게 왔던 길을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저기 바로 앞에 너른 바다가 보이는데 갈 수가 없다니. 바닷가 마을에서 바다를 볼 수 없다니. 세상에는 왜 그리도, 총과 벽으로 막혀서 갈 수 없는 길과 땅과 바다가 많은 것일까.
 
 리조트와 호텔들에 막혀 해변을 찾기 어려운 사막의 도시 후르가다 도심.
 리조트와 호텔들에 막혀 해변을 찾기 어려운 사막의 도시 후르가다 도심.
ⓒ 최늘샘

관련사진보기

  
그렇게 두 시간 동안 바닷가 주변을 걸었는데 모든 해변은 호텔과 리조트, 군대와 레스토랑이 점거하고 있었고 무료로 개방된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공항에서 나를 쫓아낸, 새하얀 제복을 입은 경찰들이 호텔과 리조트 입구마다 서서 고객과 비고객을 가려내고 있었다. 먼발치로 보이는 홍해에 발바닥 한 번 담그지 못하고 터벅터벅 숙소로 돌아왔다.

지구의 70퍼센트가 바다라는데, 바다를 전부 다 막고 장사를 하다니. 돈 없으면 바다도 보지 말라는 거냐. 더위와 먼지 속을 걷느라 피곤하고 서러웠는데, 내 이야기를 들은 한국의 친구가 던진 말에 헛헛한 웃음이 났다.

"세상 어딜 가나, 대동강 물을 판 봉이 김선달 같은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죠. 힘내세요."

생애 첫 체험 스쿠버 다이빙

그토록 꽁꽁 닫혀 있던 바다는, 돈을 내자 바로 열렸다. '열려라 참깨, 열려라 21달러.' 후르가다에서 돈은 마법의 주문과도 같았다. 스쿠버 다이빙 자격증이 없는 사람은 전문 다이버의 손에 이끌려 '체험 다이빙'을 할 수 있다. 과연 홍해의 물 속은 어떤지 궁금해서 태어나 처음으로 스쿠버 다이빙에 도전했다.

숙소에서 리조트 다이빙 센터까지의 이동, 보트를 타고 다이빙 포인트로 가서 오전 오후 다이빙 두 번에 점심식사까지 포함해 21달러니, 체험 다이빙 또한 세계 최저가라고 한다.

스쿠버 센터가 있는 리조트의 이름은 '파라다이스 비치', 천국의 해변이었다. 커다란 대문 하나를 지났을 뿐인데 리조트 안은 바다가 없는 도심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상쾌한 야자수와 카페, 새파란 인공 수영장과 그들만의 해변 수영장, 한산한 프라이빗 비치. 도심에 가득한 먼지와 쓰레기 더미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파라다이스 비치 리조트. 먼지 많고 혼잡한 도심과 비교되는 모습이다.
 파라다이스 비치 리조트. 먼지 많고 혼잡한 도심과 비교되는 모습이다.
ⓒ 최늘샘

관련사진보기

  
처음 다이빙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안전 교육과 장비 교육은 러시아어와 프랑스어, 영어로 진행됐다. 한 다이버는 수경에 이상이 있었는지 눈알과 눈 주변이 새빨갛게 충혈되었다. 아시아인은 나 혼자였고, 영어도 제대로 알아 듣지 못해 두려운 마음으로 공기통을 메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공기통과 부력조절 장비 조작은 다이빙 가이드가 다 해주었고, 내가 할 일은 코 호흡을 멈추고 입으로 호흡하는 것, 그리고 수압이 강해질 때 코를 막고 귀의 이퀄라이징(압력 평형)을 하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입에 호스를 물고 물 속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호흡 곤란이 왔다. "Wait, wait! 기다려주세요!" 분명 호스로 공기가 들어오는데, 물이 무서워서 긴장하니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다행히 일 분 정도 물 밖에서 숨을 고르니 곧 안정이 되었고, 나 말고도 수많은 체험 다이버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기에 서둘러 입으로 숨쉬기에 집중했다.

바닷속은 과연 아름다웠다. 고막에 압력이 꽉꽉 찼고 머리 위로 바다 표면이 보일동 말동했으니 아마 10미터쯤은 내려간 것 같다. 형형색색의 산호와 눈 옆을 스쳐지나가는 처음 보는 물고기들. 하지만 그 찬란한 광경을 넋놓고 바라볼 여유는 조금도 없었다.

다이빙 가이드는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체험 다이버들을 담당하기 위해 빠르게 오리발 젓기를 재촉했다. 스쿠버 다이빙의 공기 소모량은 보통 1회에 40에서 50분 정도지만, 체험 다이빙은 고작 10분 만에 끝나 버렸다.

박리다매. 고작 21달러를 내고 홍해의 물고기들과 신비로운 대화를 나누기 바랐던 것은 나만의 욕심이었나보다. 시간이 짧아서 무척 아쉬웠지만 생애 첫 스쿠버 다이빙을 무사히 마쳤다는 사실에 뿌듯해 하기로 했다. 보트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돌고래떼를 만난 것은 모두가 환호성을 지를 만큼 큰 행운이었다.

홍해에서 바라본 후르가다는 호텔과 리조트의 성으로 둘러싸인 슬픈 사막의 도시처럼 보였다. 아름답고 깨끗한 해변에는 값비싼 리조트가 있고, 리조트 담벼락 너머에는 먼지 날리는 도시가 있으며, 도시 너머에는 끝없이 펼쳐진 사막이 있다. 21달러어치의 바다를 다 즐기고 새하얀 보트에서 내려 리조트 대문 밖 도심으로 돌아간 나는 다시 후르가다 바다를 볼 수 없었다.

후르가다에서 카이로로 가는 홍해안 고속도로. 황량한 사막과 푸르른 바다 사이를 가르는 500킬로미터의 길. 아름다운 해변 곳곳의 리조트들은 특이하게도, 또는 너무나 익숙하게도, 올랜도, 칸쿤, 마이애미 같은 먼 나라의 이름표들을 달고 있었다.
 
 후르가다에서 카이로로 가는 고속도로.
 후르가다에서 카이로로 가는 고속도로.
ⓒ 최늘샘

관련사진보기

  
#세계여행 #세계일주 #아프리카여행 #이집트 #후르가다 #홍해 #스쿠버다이빙 #여행기 #여행사진 #탈식민주의 #worldtraveler #worldtravel #africa #egypt #hurghada #redsea #scubadiving #photography #postcolonism #humanity

▶ 해당 기사는 모바일 앱 모이(moi) 에서 작성되었습니다.
모이(moi)란? 일상의 이야기를 쉽게 기사화 할 수 있는 SNS 입니다.
더 많은 모이 보러가기

댓글4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지구별 달동네 생활영화인 늘샘. 남쪽 바다 미륵섬에서 자라, 지리산 골짜기 간디학교에서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인디스페이스, 늘장, 로드스꼴라, 청년활동지원센터에서 활동. 영화를 만들고, 글을 쓰고, 노래합니다. 인디언식(式) 이름은 '땅을 치고 춤춰'.

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