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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건강정보를 결합해 맞춤형 식품을 기업이 제공하겠다는 시도 자체는 매우 작은 쟁점이지만 이 작은 시범사업을 통해 보건의료체계의 중요한 부문이 기업의 먹잇감으로 전락하는 물꼬가 될 수 있다."
 "개인건강정보를 결합해 맞춤형 식품을 기업이 제공하겠다는 시도 자체는 매우 작은 쟁점이지만 이 작은 시범사업을 통해 보건의료체계의 중요한 부문이 기업의 먹잇감으로 전락하는 물꼬가 될 수 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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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5월 16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 주도로 기존의 개인정보법안을 무시할 수 있는 실증특례 시범사업으로 '본인정보 활용 실증서비스'(마이데이터 사업)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 사업에 선정된 분야는 크게 의료, 금융, 에너지, 유통, 기타로 나뉘어 있는데, 이 사업들 모두 개인의 민감하고 지극히 사적인 정보인 의료, 신용, 개인결제 정보를 기업에 넘겨서 돈벌이 수단으로 삼게 한다. 

과기부는 이 사업의 8개 과제를 선정했다고 밝혔는데 이 중 3가지가 의료 부분이다. 해외의 경우 개인정보 규제완화를 통한 시범사업은 대체로 금융 부분(핀테크)에만 한정해 시행한다. 금융 부분에만 시행하는 개인정보 규제완화조차 사생활 침해 및 정보유출 우려로 논란이 되는 해외의 경우를 볼 때 한국에서 현재 진행하려는 마이데이터 사업은 나가도 너무 나간 것이다.

특히 이번 의료 부분 마이데이터 사업은 과기부가 보건복지부와 어떤 협의도 하지 않은 걸로 나타났다(정의당 윤소하 의원실 5월16일 보도). 개인정보 중에도 가장 민감한 건강정보를 이용해 영리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을 과기부가 독단으로 추진할 정도로 현재 개인정보와 관련된 한국의 공적 통제는 무너져 있다.

절차의 문제 외에 실제 마이데이터 사업에 포함된 의료 분야의 건강 및 의료 서비스 관련 시범사업은 그 내용을 보면 경악할 만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정보교류를 통해 시행되는 시범사업으로 비쳐 직접적인 의료 민영화 시도로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환자와 병원 고객들의 의료 데이터를 매개로 기업이 병원에서 이윤 극대화를 추구할 수 있도록 허용해 주려는 시도다.

우선 이들 사업에는 한국 굴지의 재벌이 참여한다. '실증특례'라는 황당한 포괄적 규제 완화책을 이용해 과기부가 임의로 시도하는 이번 사업은 과기부의 행정독재라 부를 만하다.

문제는 건강정보를 관리해야 할 주관부처인 복지부조차 마이데이터 사업 발표 다음날 사업수행을 용이하게 해줄 '의료행위와 건강관리서비스 구분 기준'을 마련해 공표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복지부는 의료 면허를 가진 자가 행할 수 있는 1차 의료 내용의 일부를 건강관리서비스로 분리하여 민간 기업의 사업 분야로 허용해줬다. 이에 과기부는 발빠르게 6월 5일 해당 기업과 기관이 참여한 가운데 마이데이터 착수 보고회를 열었다. 의료 부분 3개 과제에는 삼성, CJ 등 대재벌이 서울대병원, 아산병원, 강남세브란스병원을 대상으로 벌일 사업이 포함되어 있다.  
  
언뜻 보면 편리, 따지고 보면 이걸 왜 하지?

여기서는 의료 분야 3개 과제 중 첫번째인 '의료 마이데이터 플랫폼 및 검진 데이터를 활용한 건강관리 서비스'를 주로 다루겠다.

이 사업은 급식 및 식자재 제공 서비스에서 국내 1위인 재벌 CJ프레시웨이와 협력업체 에쓰푸드㈜, 정보처리 업체 ㈜아롬정보기술이 강남세브란스병원과 연계해 벌인다.

사업의 요지는 환자들의 건강 검진 및 처방전 같은 데이터를 이용해 영양 건강식단을 추천하고 제공하는 것이다. 강남세브란스병원이 환자와 고객의 의료 데이터를 스마트폰으로 유통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 환자나 고객의 동의로 급식 및 식품 업체에 데이터를 제공하거나 환자나 고객이 스마트폰으로 직접 자료를 다운 받아 업체에 제공해 영양 건강식을 추천 및 제공 받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언뜻 보면 좋은 취지의 사업처럼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한번 더 생각해 보면 우선 영양 건강식을 위해 굳이 환자의 민감하고 비밀스러운 의료 정보를 기업에 넘겨, 이윤 추구의 도구로 쓰게 할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 의료 정보를 기업에 넘기지 않고도 영양 건강식 제공은 충분히 가능한데 왜 CJ와 같은 거대식품 기업에 내 건강 정보를 넘겨야 하나?

식품기업이 제공하는 영양건강식이 더 낫다는 보장도 없다. 예를 들어 당뇨환자의 식단을 짤 때 이미 의사와 전문가들이 치료에 도움이 되도록 환자들에게 지겨울 정도로 조언을 하고 있다. 이 조언에 따른 식단을 완제품으로 먹는 것보다는 신선식품을 직접 조리해 섭취하는 것이 낫다. 유일한 장점은 편의성뿐이다.

하지만 편의성이 높은 패스트푸드류 때문에 당뇨 및 만성질환이 유발된다는 점에서 볼 때 의료진이 식품기업의 건강식을 추천한다는 것은 난센스다. 거기다 애초에 삼시세끼 모두 건강식을 가지고 다니면서 먹기도 쉽지 않다. 식품자체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완결된 제조식을 제공하는 것보다 나은 이유다.

대부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는 환자 식단과 관련해 주치의 제도와 같은 1차 보건의료제도의 도움을 받고 있다. 국민이 상시적으로 자신의 건강을 점검하고 의료 전문인에게 조언을 받는 것이 우선 과제가 아닐까? 1차 보건의료를 늘려 공공의료체계를 강화하는 것이 기업이 건강식단을 보급하는 것보다 더 시급한 일이다.

의료정보를 이용한 영양 건강식 추천 제공 서비스는 맞춤형 식단이란 명목으로 식비만 높일 공산도 크다. 그리고 활성화 된다면 가정배달 서비스 같은 여러 형태의 품목을 만들어서 급식 및 식자재 제공업체들이 국민들의 식생활에 더욱 깊이 파고들게 될 것이다.

특히 개인의 의료 정보와 식이습관 및 운동량 등을 분석한 것은 정확성이나 과학성과 전혀 상관없이 기업에 전문가로서 높은 위상을 부여해 줄 수도 있다. 이는 국민 일상 생활에 대한 기업 지배력을 높여 일상 식품까지 기업에 종속되게 할 것이다.

즉, 식품가격 인상을 통한 이윤 확대, 새로운 식품 출시와 고객 확대를 통한 이윤 창출, 국민 식생활에 대한 지배력 확대를 통한 시장 확대가 이 사업의 '성과'이다. 그와 동시에 보건의료 분야에서는 의료서비스에서 식이 관련 부분을 기업에 떼어준다는 점에서 의료영리화와 민영화로 가는 길을 열어주게 된다.  
 
마이데이터 실증서비스 선정 과제 목록
 마이데이터 실증서비스 선정 과제 목록
ⓒ 과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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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영리병원이었던 녹지국제병원의 허가를 취소하게 한 여론은 작은 영리병원 하나가 향후 의료민영화의 물꼬가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일어났다. 개인건강정보를 결합해 맞춤형 식품을 기업이 제공하겠다는 시도 자체는 매우 작은 쟁점이지만 이 작은 시범사업을 통해 보건의료체계의 중요한 부문이 기업의 먹잇감으로 전락하는 물꼬가 될 수 있다.

업계 1위 CJ가 선봉에 섰을 뿐 그 뒤에는 삼성 웰푸드, 엘지 아워홈, 현대 그린푸드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거대 식품기업들이 국민의 건강을 위해 있다는 착각을 하지 않는다면, 개인건강정보와 식품회사가 불법적인 정보통합을 할 수 있는 마이데이터 사업은 즉각 중단되어야 마땅하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유철수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팀장입니다.


태그:#환자식, #빅데이터, #개인건강정보, #C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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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농민,보건의료 시민사회단체를 총 망라하는 연대체로써 의료민영화 저지와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대국민홍보와 정책대안 마련을 위해 결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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