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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시청이 7월 9일 낸 <일제강점기 기록물 사적조서 발굴>이란 제목의 보도자료.
 김해시청이 7월 9일 낸 <일제강점기 기록물 사적조서 발굴>이란 제목의 보도자료.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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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김해시(허성곤 시장)가 일제강점기 '면장'과 '근농공제조합 지도위원'의 행적이 담긴 사적조서(事績調書) 발굴과 관련한 보도자료를 내면서, '업적이 뛰어난 인물'이라거나 '마을의 공적', '모범', '귀감'이라고 해서 "조선총독부의 시각"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김해시는 9일 오전 "일제강점기 김해 기록물 사적조서(事績調書) 발굴"이란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다. 김해시가 <김해시사> 편찬 기초자료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찾은 '진례면장'과 '근농공제조합 보도(지도)위원)' 문서에 대한 보도자료다. 이 문서는 일제강점기인 1932년에 작성된 '등사인쇄본 문서철'로 32면 분량이다. 

김해시는 보도자료에서 "업적이 뛰어난 인물과 마을의 공적을 기록한 문서"라거나 "공적을 나열했다", "… 학사장려 등에서 업무 능력이 뛰어났다고 서술하였다", "… 가마니 짜기 독려, 민풍교정 등의 업무 수행에 타의 모범이 되었다는 내용이다"라고 표현했다.

또 김해시는 "… 금주회, 교풍회 창립 등의 활동 사항을 기록함으로써 일제의 통치정책을 성실하게 수행한 모범 마을의 업적을 칭찬하고 있다"거나 "현재 공직자의 업무 처리에 귀감이 되는 내용도 포함돼 직무교육 자료로 참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실용적인 가치도 지니고 있다"고 했다.

이같은 보도자료는 이날 상당수 언론사에서 거의 그대로 보도되었다. 일제강점기 면장과 보도위원의 행적에 대해 김해시 보도자료와 기사에서는 '공적'이라고 표현했다. '공적'은 '공로의 업적'을 말한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의 입장에서만 '공로의 업적'인 것이다.

이와 관련 사람들은 '사적조서'를 일제 조선총독부의 시각으로 작성되었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추경화 독립운동사료연구가는 "1930년대는 일제가 만주국을 세우고 우리 민족에 대해 각종 수탈을 하던 시기다. 재산관리나 조세징수 등은 수탈을 위한 의도로 이루어졌던 것"이라고 했다.

강호광 민족문제연구소 진주지회장은 "송세윤 진례면장과 근농공제조합 보도위원들은 <친일인명사전>에 들어 있지는 않지만, 1932년이면 일제가 만주 침략을 하면서 조선 반도를 최전선 후방기지로 삼았던 시기이고, 면장이나 보도위원들이 수탈을 독려하거나 담당하는 역할도 했다"고 했다.

그는 "그런데 '업적이 뛰어난 인물'이라든지 '마을의 공적'이라는 표현은 조선총독부 입장에서 쓴 것"이라며 "우리 입장에서는 오히려 반대로 해석해야 한다"고 했다.

이광희 김해시의원(더불어민주당)은 "보도자료가 좀 이상이다"며 "역사 자료를 보고 제대로 된 시각을 갖고 분석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왜곡된 역사의식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특히 시사 편찬하는 과정에서는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김해시는 지적은 받은 뒤 "현재 공직자의 업무 처리에 귀감이 되는 내용도 포함돼 직무교육 자료로 참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실용적인 가치도 지니고 있다"는 문장을 삭제한 자료를 다시 냈지만 다른 표현들은 그대로 두었다.

아래는 김해시가 낸 보도자료의 전문이다.
 
김해시사편찬 기초자료 조사 중 업적이 뛰어난 인물과 마을의 공적을 기록한 문서 <사적조서>가 발굴되었다.

이 문서는 김해군이 일제강점기인 1932년에 작성한 등사인쇄본 문서철로 32면 분량으로 되어 있다. 진례면장 송세윤(宋世允 : 1882~1956)과 녹산면 녹산리, 진례면 신안근농공제조합 김재한, 가락면 식만근농공제조합 이송희의 사적(事績:공적)을 상세하게 기록했다.

문서 32면 중 20면에 걸쳐 진례면장 송세윤의 공적을 나열했다. 면민 복리 증진과 발달에 전력을 다하고, 사무 개선과 법규 연구에 매진. 출납, 호적, 재산관리, 미풍양속 장려, 농업 개선, 산림 보전, 토목사업, 조세징수, 학사장려 등에서 업무 능력이 뛰어났다고 서술하였다.

근농(勤農)공제조합 보도(輔導)위원 2인(김재한, 이송희)에 대한 공적도 기록했다. 악습 개선, 생업자금 대부 알선, 이자 납부, 저축 장려, 가마니 짜기 독려, 민풍교정 등의 업무 수행에 타의 모범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개인이 아닌 녹산면 녹산리의 '마을 공적'이 첨부되어 있는 점이 특이하다. 마을의 시설 사항과 연혁, 교육회, 청년회, 경로회, 금주회, 교풍회 창립 등의 활동 사항을 기록함으로써 일제의 통치정책을 성실하게 수행한 모범 마을의 업적을 칭찬하고 있다.

이 문서는 당시 지역 정치, 경제, 행정, 교육 등 통치정책과 실상, 김해 사람들의 식민지 일상사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기록물로 희귀성이 높다. 일제강점기 김해지역 실상을 전해주는 사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은 현실에 비추어 볼 때, 김해 지방사 연구 기초자료로서 그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현재 공직자의 업무 처리에 귀감이 되는 내용도 포함돼 직무교육 자료로 참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실용적인 가치도 지니고 있다.
 
경남 김해시가 발굴했다고 공개한 "일제강점기인 1932년 작성된 등사인쇄물 문서철"의 일부.
 경남 김해시가 발굴했다고 공개한 "일제강점기인 1932년 작성된 등사인쇄물 문서철"의 일부.
ⓒ 김해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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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김해시, #일제강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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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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