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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당 윤소하 국회의원이 지난 5일 <윤소하의 새벽편지>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정의당 윤소하 국회의원이 지난 5일 <윤소하의 새벽편지>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 이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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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샘 고민 끝에 써내려간 한 장의 편지. 새벽편지에는 하얗게 밤을 지새운 고뇌와 사색이 담겨 있다. 정의당 윤소하 국회의원이 지난 5일 <윤소하의 새벽편지>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윤소하의 새벽편지>는 윤 의원이 초선의원으로 국회에 들어온 이후 지금까지의 활동과 성찰, 미래에 대한 고백이다. 35년의 학생운동과 시민사회운동을 거쳐 국회로 활동무대를 옮긴 윤 의원의 삶의 기록이기도 하다. 33편의 편지와 그가 살아온 삶의 이력이 한권의 책으로 묶여 있다.

원룸에서 서울살이를 하는 그가 한강 너머 국회를 바라보며, 매주 찾는 목포앞바다를 바라보며 쓴 치열한 고민의 흔적들을 모았다. 고공 철탑 농성장의 노동자, 들판의 농부들, 시장의 상인들, 비정규직 노동자, 목포의 시민들에 대한 애정과 상생하는 정책적 대안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목포 에메랄드 웨딩홀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는 박민서 목포대학교 총장 등 1000여 명의 시민들과, 이정미 대표와 심상정 의원 등 정의당 지도부가 대거 참석했다. 공교롭게도 출판 기념회 하루 전날 의원실로 협박소포가 배달돼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어머니의 마음과 시선으로 정치를 하겠다"

<윤소하의 새벽편지>는 국회에 첫 발을 내디딘 2016년 5월 30일 '나에게 그리고 모든 이에게' 쓴 첫 편지로 시작한다. 그는 정의당 비례대표 4번으로 당선되었다. 당시 정의당은 7.2%의 지지를 얻었다.

첫 편지는 '왜 정치를 하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사색을 실었다. 그는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어머니' '고향집' '소나무' '백일홍' 같은 서정성 짙은 단어를 꺼내든다.

윤 의원은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을 묻는 질문에 '어머니'라고 대답했다. "밥은 먹었냐?"로 대표되는 가족공동체를 이끄는 참 정치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어머니의 마음과 시선으로 정치를 하겠다"는 말을 늘 입고 달고 산다.

그는 <윤소하의 새벽편지>에서 정치를 하는 이유에 대해 "사람들 속에 있겠다는 것이며, 사람을 향한 노동을 하겠다는 것이다. 노동의 가치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의원의 어머니는 국회의원이 되기 1년 전 고인이 되었다. 

윤 의원은 또 고향집의 꿋꿋한 소나무처럼, 무더운 여름날 백일동안 지지않고 붉은 꽃을 피워내는 백일홍처럼 곁을 지키는 정치인이 되겠다고 했다.

그는 <윤소하의 새벽편지>에서 "'어머니의 마음' 같은 따뜻한 정치, '소나무'와 '백일홍' 같은 꿋꿋한 정치를 나의 정치철학이라도 좋다"고 고백했다.
 
 정의당 윤소하 국회의원이 지난 5일 <윤소하의 새벽편지>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정의당 윤소하 국회의원이 지난 5일 <윤소하의 새벽편지>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 이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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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전사 제대 후 35년동안 학생운동, 시민사회운동에 투신

<윤소하의 새벽편지>에는 그가 국회의원이 되기 전까지 걸어온 길이 기록되어 있다.

윤 의원은 광주민중항쟁이 일어난 1980년 대학에 입학했다. 입학하자마자 매일 시위가 벌어지던 어수선한 상황이었다. 당시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윤 의원에게 당장 고향 해남으로 내려오라고 불호령을 내린다. 

윤 의원은 고향 해남으로 가던 길에 무장군인의 검문을 당해 연행당할 뻔 했지만, 같은 버스에 있던 마을주민들의 도움으로 풀려났다. 그는 책에서 "연일 시위를 벌이던 동료들을 두고 목포에서 도망친 기억이 두고두고 부끄러웠다"고 회고한다.

반강제적인 귀향을 한 윤 의원은 입대를 하게 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특전사 출신이라는 게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윤 의원도 자신을 검문하고 광주학살 현장에 투입되었던 특전사로 차출되었다. 특전사 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그는 곧바로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도망치듯 나온 과거'에 대한 죄책감으로 평생을 헌신하겠다는 각오였다.

복학하자마자 그는 학내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총장실 점거농성으로 제적을 당했다. 1985년 졸업 후에는 목포사회운동청년연합 상근 활동가로 청년운동을 했다. 그러나 곧바로 전두환 정권의 학원안정법 반대시위를 주동했다는 혐의로 구속되었다. 그 이듬해인 1986년에는 수배자를 숨겨주었다는 이유로 다시 투옥되었다. 이후에도 줄곧 목포지역 사회운동에 몸담았다.

사회운동을 하면서 생수배달과 용접공, 서점 점원 등을 하며 생계를 이어나갔다. 이후에는 생활정보지 <한겨레리빙>, 지역신문인 <목포21> 창간 등으로 새로운 영역에서 지역운동을 시도했다.

<윤소하의 새벽편지>에는 그의 이력과 관련, 에피소드도 실려 있다. 윤 의원이 오랜만에 만난 후배에게서 "형님, 아직도 그라고 사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그만큼 사회운동 했으면 배지 단 정치인이 되거나 먹고 살일 찾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뜻이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내 사는 것이 정치네."  윤 의원이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을 때 "국회의원도 살아온 삶의 연장"이라고 말했던 것도 그의 이력과 무관치 않다.

"호남정치의 대표주자 될 것"... 진보정치의 원대한 꿈 밝혀

<윤소하의 새벽편지> 마지막은 밤새 이어진 고민과 성찰 끝에 나온 결심과 각오가 실려 있다. 

"나는 목포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에 두 번 출마했고 두 번 낙선했다. 2008년 18대 국회의원 선거에 이어 두 번째 출마했던 2012년 19대 국회의원선거에서 16.3%를 얻었고 2위였다." 

"목포의 정치가 바뀌어야 대한민국의 정치가 바뀐다. 이곳은 대한민국 정치의 축약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진보정치가 주류가 될 잠재적 가능성도 높은 곳이다."


목포에서 두 번의 도전을 시도해 좌절도 겪었지만, 다시 도전을 통해 진보정치의 길을 열겠다는 뜻이다.

이번 출판기념회를 두고 "내년 총선 출마 공식화" 또는 "진보정당과 박지원 의원과의 정면 대결 선언"으로 해석하는 이유다. 실제 그는 <윤소하의 새벽편지>에서 "나는 정말 목포를 사랑한다. 나는 목포시민의 영원한 비서실장을 자임하고 있다"라고 썼다. 

목포지역 현역 국회의원인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이 연상되는 부분이다. 박지원 의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원한 비서실장으로 불린다. 의미가 다른 '영원한 비서실장'들의 대결을 암시하는 대목으로 읽힌다.

그러나 윤 의원이 단순히 특정 정치인과의 대결에 초점을 두는 것은 아니다. 진보정치를 향한 꿈과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공식선언한 것이다.

"나아가 호남정치의 대표주자가 되고 싶다. 구질서에서는 정치적으로 소외되는 시민들이 있다. 진보정당은 다양한 시민들의 의견을 정치 안에 반영하기 위해 존재한다. 거기에 내 역할과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밤샘 고민 끝 꺼내든 결심. 그 결심을 두고 벌써부터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정의당 윤소하 의원이 지난 5일 <윤소하의 새벽편지>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정의당 윤소하 의원이 지난 5일 <윤소하의 새벽편지>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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