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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5년 전, 방송작가로 지역사에서 근무하던 때의 이야기다. 당시 작가 선배들 사이에는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었다.

"OO 지역 작가들이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노조를 만들려고 하다가 전원 해고됐대."

같이 술잔을 나누던 선배는 이 지역이 전라도 쪽이라고 했고, 회사에서 이야기 나누던 다른 선배는 강원도 쪽이라고 했다. 선배들도 건너 들었던 이야기인지라 해당 지역과 시기에 대한 기억들이 제각각이었다. 그런데 이야기의 결말은 모두 다 똑같았다. '전원 해고'였다.

사실 이 '전설'은 선배들이 나를 부드럽게 달래기 위해 들려준 일화였다. 그 당시 나는 늘 '분기탱천'한 상태였는데, 맡은 업무를 성실하게 수행했지만 늘 푼돈에 가까운 급여를 받았기 때문이다.
 
 안주는 사치였던 시절
 안주는 사치였던 시절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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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말 일을 열심히 하는데 왜 돈이 없나.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다. 퇴근길에 먹태도 마음껏 먹을 수 없는,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급여에 머무를 순 없었다. 작가 선배들과 함께 '임금 협상'을 요구하자! 까지 생각이 뻗쳤다. 그래서 작가 선배에게 슬쩍 마음을 떠봤는데, 선배는 차분하게 'OO지역 작가 전원 해고' 스토리를 들려주었다. 완곡한 거절이었다.

사실 정말로 할 마음이 있었다면 어떻게라도, 1인 시위라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들으니 나도 겁이 났다. 서른 넘어 찾은 '내 일'인데... 혼자 나서다 업을 놓치기 싫었다. (비겁한 변명이다.) 그렇게 '작가 단체 임금 협상' 건은 고이 물 건너갔다. 나는 가끔 같이 일하는 피디 선배에게나 "그래서 임금 협상은 언제 하나요?" 같은 농담을 가장한 진담만 툭툭 던졌다. 그때부터였을까, 선배는 줄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작가로 몇 년 살다가 최근 '타의적 백수'가 되었다. 그것도 갑작스럽게. 인간은 경험에 지배당하는 동물이라고 하던데, 내가 그랬다. 부끄럽게도 큰 일을 겪은 이후에야 관련 기사를 찾아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중 반가운 소식이 있었다. 방송작가들이 방송작가 유니온이라는 노동조합을 만들었단다. 그 누구보다 기다린 일이었다. 그런데 참 얄궂게도 나는 계약 만료 통보를 받은 몸. 아쉬움에 사이트만 꼼꼼하게 구경했다. '만약 다시 작가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면 꼭 가입하리라' 다짐하며 창을 닫았다.

그리고 나서 며칠 뒤, 내가 글을 쓰는 개인 사이트에 댓글이 하나 달렸다. 한 팟캐스트 링크와 함께 "의미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공유합니다."라는 문장이 적혀있었다. 그 팟캐스트는 마니아 사이에서는 아주 유명한, '그것은 알기 싫다'라는 방송이었다. 부제가 눈에 띄었다. '좋게 된 방송작가 : 작가를 위한 구명조끼는 없다.'

해당 회차는 방송작가 유니온 구성원들이 나온 편이었다. 당시 나는 혼자 제주도 여행을 하고 있었는데, 링크를 보자마자 당장 클릭하고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그리고 이후 서너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제주의 어떤 풍경을 마주쳤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오롯이 온 귀와 신경이 이 팟캐스트에 쏠렸다. 많이 웃고, 뜨문뜨문 가슴이 시렸다.
 
 선배들은 얼마나 많은 진흙탕을 거쳤을 것인가
 선배들은 얼마나 많은 진흙탕을 거쳤을 것인가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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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팟캐스트를 들으며 알게 된 사실관계가 하나 있다. 내가 있던 지역에서 전설처럼 떠돌던 'OO지역 작가 전원 해고' 이야기는 대구, 마산 지역 작가들의 실화였다.

2000년대 초, 대구 마산의 작가들이 노동조합을 만들려다 모두 해고되었던 것이다. 항소까지 했지만 기각됐다. 마지막 대법원에는 고민하다 가지 않았다. '지금은 지자'고 결정한 것이다. 대법원까지 가서 패소하면 '전례'가 만들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때 끝까지 갔더라면 방송작가 노조는 수십 년이 지나도 나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목울대가 울컥거렸다. 내가 아직 고등학생이던 시절에도, 작가 선배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구나. 치열했구나.

방송작가 유니온은 2017년에 출범했다. 전원해고 일화 이후로 십년도 훌쩍 더 지나서다. 출범할 수 있기까지는 헤아리기 힘든 선배 작가들의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해고를 당하고, 법원에 가는 지난한 과정이 있었을 것이다. 투쟁하는 작가들을 도왔던, 지지했던 다른 지역의 작가들이 있었을 것이다. 해고 이후의 막막한 삶이 있었을 것이다. 

이런 사실을 몰랐던 것이 안타깝다. 알았더라면 마음만이라도 편했을 것 같다. 나는 방송작가 일을 시작한 2014년부터 '인지 부조화'에 시달렸다. 일을 정말 좋아하지만, 매번 다음달 카드값을 걱정해야 하는 생활이 지겨웠다. 출근을 할 생각을 하면 기쁘면서도 화가 났다.

그래서 늘 거대한 부조리함을 혼자 응시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동안 나 혼자 버둥댄 것이 아니었다. 험한 길이라고 생각했는데 선배들이 어렵게 닦아놓은 길이었다. 그들은 길도 아닌 진흙탕을 온몸으로 걸었던 셈이다. 그래서 나도 부당함에는 도리질하며 걸어보려 한다. 구직 준비도 더 부지런하게 해 봐야겠다. 일단 노조에 들기 위해서는 현직에 있어야 하니까.  이거야말로 진짜 신선한 유형의 구직 동기부여 아니겠는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브런치(@relaxed)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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