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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만났지만 그곳을 떠난 뒤에도 십 년이 넘도록 이어지고 있는 소중한 인연이 있다. 나는 그녀를 많이 좋아하고 신뢰한다. 그녀 역시 내게 진심어린 애정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녀가 퍽 조심스러워 하면서도 이 이야기를 건넨 것은.

"나는 아이 없는 삶을 생각해 본 적 없지만, 너의 선택이니까 그냥 지지하면 된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문득 생각이 들더라. 내 딸이 만일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해도 나는 쿨할 수 있을까. 결국 내가 어쩔 수는 없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 한 번은 설득할 거 같아. 이 말을 너한테 해야 할 것 같았어."

나는 고맙다고 말했고, 진심이었다. 그녀의 마음이 오롯이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살다 보니, 타인의 거친 말 속에 숨은 사랑을 엿보기도 하고, 지지의 외피를 두른 무관심을 마주하기도 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무관심할 수 없는 마음을 나 역시 알고 있기에, 그녀의 진심만을 받았다.

집에 돌아오는 길, 내 심정은 복잡해졌다. 그녀가 아니더라도, 나를 걱정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서 나는 불길한 기운을 감지한다. 지금은 괜찮을지 몰라도 나중에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조심스러운 경고. 나를 불안하게 하는 건 그들의 눈빛이다. 그것이 사랑에서 비롯된 것임을 앎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내 행복이나 미래를 점칠 수는 없다. 자격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아이를 키우거나 키우지 않거나, 그들은 반대의 삶을 살아본 적이 없다. 무엇보다 그들은 나와 내 남편, 우리가 되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개인의 행복에 집중하는 것이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국력을 위해 아이를 낳아야만 한다는 말 앞에서는 할 말을 잃는다. 누구도 오직 국가의 부강을 위하여 출산을 결심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각자의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이 다를 뿐이다. 그런데도 나는 왜 다수의 질문들 앞에서 작아지는가. 
 
 <집 짓는 사람> 책표지
 <집 짓는 사람> 책표지
ⓒ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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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35세 이하의 신진 작가들이 쓴 소설집 <집 짓는 사람>을 읽었다. 작지만 무거운 책이다. 별 생각없이 펼쳤다가 수시로 내 고민과 조우했다. 첫 번째 실린 작품은 안준원의 '염소'다.

추석을 맞이해 이국의 한적한 시골 마을로 여행 온 젊은 부부가 있다. 특별한 것을 찾아 왔다기보다 뻔히 예상되는 명절의 장면을 피하고자 했던 이들이다. 가족들로부터 쏟아질 질문들로부터 도피한 것이다.

"아이는, 아이는 언제 낳을 거니."(p19)

부부는 아이를 낳을 계획이 없지만 그대로 말했다가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기에 조금 뒤에 낳겠다는 거짓말을 둘러대 왔다. 이제는 그 뒤에 숨기도 벅차 여행을 떠나온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 와서까지 그 질문은 이들을 놓아주지 않는다.

숙소 주인의 호의에 마음이 녹아버린 탓에, 부부는 별 생각없이 진심을 말하게 된다. 아이를 낳을 계획이 없다고. 그게 문제였을까. 숙소 주인은 수확을 앞두고 치러지는 마을의 전통 의식에 이들도 참여해야만 한다고 강요한다. 그것은 속죄의 의식이다.

주인과 마을 사람들의 태도는 강경하다. 부부는 특별한 죄나 잘못을 저지른 바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주인이 속죄의 제물로 잡은 염소를 먹고, 해돋이를 함께 보는 것으로 적당히 타협하려 한다. 그러나 의식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마을의 샤먼 역할을 하는 남자는 부부에게 직접 염소를 잡을 것을 명한다.

예상치 못했던 상황 전개. 한시빨리 이곳을 떠나자던 아내는 남편에게 뜻밖의 고백을 한다. 아내의 말에 남편은 여태껏 자신이 문제에서 한걸음 뒤에 서 있었음을 깨닫는다. 다시 찾아온 마을의 샤먼은 부부가 아닌 남편 혼자 염소를 잡을 것을 명한다. 그리고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남편에게 말한다.

"너는 아무것도 몰랐잖아. 지금도 무엇도 책임지려고 하지 않잖아."(p41)

낯선 이방인에게 자신들의 의식을 따르라고 강요하는 마을 사람들, 개인의 삶은 고려하지 않은 채 출산을 강요하는 한국의 가족들. 이들은 퍽 닮아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 피할 수 있을까. 피하는 것이 정답일까. 소설 속 부부는 결국 피하지 못했다.

남자는 홀로 염소를 잡는 의식을 치르기 위해 바위산으로 향한다. 낯선 자들의 강요를 이기지 못한 것이 아니라, 더이상 뒤로 물러서 방관하지 않기 위해서일 것이다.
 
 소설 속 제물인 염소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1년에 여러 번 임신할 수 있고 적게는 두 마리에서 많게는 다섯 마리의 새끼를 낳을 수 있다고 한다.
 소설 속 제물인 염소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1년에 여러 번 임신할 수 있고 적게는 두 마리에서 많게는 다섯 마리의 새끼를 낳을 수 있다고 한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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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설명하는 작가의 말을 대개 좋아하지 않지만, 이 소설에 따라 온 '소설가의 말'은 특별히 좋았다. 소설의 제목이며 소설 속 제물인 염소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1년에 여러 번 임신할 수 있고 적게는 두 마리에서 많게는 다섯 마리의 새끼를 낳을 수 있다고 한다.

저자는 젊은 세대에게 강요되는 출산이 그들로 하여금 염소가 되라는 주문은 아닐까 상상해 보았다고 한다. 물론 진짜로 염소가 되라는 것은 아니지만 상상만으로도 섬뜩해졌다고. 반면 저자의 부부가 아이를 갖자, 이 험한 세상에 어찌 아이를 낳을 생각을 했냐는 질문과도 맞닥뜨렸다고 한다. 저자는 말한다. 이 역시 섬뜩했다고.
 
"출산을 장려한다는 정책이 분기별로 쏟아져 나오고 저출산이 불러올 암울한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한편 그러한 정책과 걱정을 그 자체로 압박과 참견으로 느끼는 이들도 점점 늘어간다. 이 가운데 아이는 대체 어디에 놓여 있는 걸까? '잘 모른다'거나 '관심 없다'는 말이 때로는 '책임지지 않겠다'는 말과 같은 뜻일 수 있다는 걸 알아가는 중이다. 염소에서 출발한 화살이 결국엔 내게로 와 꽂혔다."(p52, 소설가의 말)

태평한 소리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출산을 장려하든 하지 않든 아이는 계속 태어날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할 일은 태어난 아이들이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다함께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요즘 부쩍 환경에 마음이 쓰이는데, 과장 없이 말하건대 나보다는 미래 세대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타인의 삶을 속박하거나 강요를 담은 질문을 던지기보다, 더 나은 세상이 되도록 각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하는 것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것이 가장 적극적이고 정의로운 행동일지도 모른다고.

집 짓는 사람

안준원, 이민진, 최영건, 최유안 (지은이), 은행나무(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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