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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남진' 장흥의 해돋이. 서울 광화문을 기점으로 정남쪽에 위치한 장흥에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다.
 "정남진" 장흥의 해돋이. 서울 광화문을 기점으로 정남쪽에 위치한 장흥에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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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장흥. 이른바 '정남진'으로 불린다. 서울의 광화문을 기점으로, 정남쪽에 자리하고 있어서다. 장흥은 많은 문인과 학자를 배출한 고장이다. 〈관서별곡〉으로 유명한 기봉 백광홍이 먼저 꼽힌다. 관서지방의 절경과 생활상, 풍물 등을 읊은 기행가사다.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보다 25년이나 앞선 작품이다. 기행가사의 효시다.
 
존재 위백규도 있다. 임금이 뜻을 바로 세워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내용을 중심으로 6개항의 사회개혁안을 담은 '만언봉사(萬言封事)'를 정조한테 건의한 인물이다. 소설가 이청준·한승원·송기숙도 장흥 출신이다. 장흥을 '문림의향'으로 부르는 이유다.
  
 국립나주박물관의 '길이길이 흥할 땅-장흥' 특별전. 공예태후 정안임씨 이야기가 전시되고 있다.
 국립나주박물관의 "길이길이 흥할 땅-장흥" 특별전. 공예태후 정안임씨 이야기가 전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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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나주박물관의 '길이길이 흥할 땅-장흥' 특별전. 장흥 보림사에서 보관하고 있는 월인석보 등 많은 유물이 전시되고 있다.
 국립나주박물관의 "길이길이 흥할 땅-장흥" 특별전. 장흥 보림사에서 보관하고 있는 월인석보 등 많은 유물이 전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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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은 역사적으로도 큰 고을이었다. 토착세력이 태조 왕건을 지지하면서 고려 때 중요한 정치세력이 됐다. 고려 인종의 비였던 공예태후(정안임씨)를 배출하면서 '장흥(長興)'이란 큰 이름을 받았다.

인종은 고려 제17대 왕으로 1122년부터 1146년까지 재위했다. 당초 이자겸의 두 딸을 왕비로 삼았지만, 이자겸의 난으로 폐비가 되면서 새로운 비를 맞는다. 그녀가 정안임씨 가문의 딸이었고, 인종의 부인(后妃)이 된다. 아들인 의종, 명종, 신종이 차례로 왕위에 오르면서 태후가 됐다.
 
'장흥'이란 지명이 여기서 유래됐다. 일반적으로 고려시대 군현(郡縣)의 승격은 규모나 행정의 필요성보다는, 나라에 공을 세운 인물에 대한 포상이나 정치적 목적에 따라 이뤄졌다. 장흥도 공예태후의 태 자리라는 이유로 정안현에서 장흥부로 승격됐다. 공예태후 정안임씨의 사적비가 장흥 천관산 아래 정안사에 세워져 있다.
  
 '길이길이 흥할 땅-장흥'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국립나주박물관. 특별전을 알리는 펼침막이 군데군데 걸려 있다.
 "길이길이 흥할 땅-장흥"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국립나주박물관. 특별전을 알리는 펼침막이 군데군데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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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나주박물관 특별전시실 입구. 바닥에 '정남진' 장흥의 지도를 그려 놓았다.
 국립나주박물관 특별전시실 입구. 바닥에 "정남진" 장흥의 지도를 그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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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길이 흥할 땅-장흥' 특별전이 국립 나주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장흥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소개하는 전시다.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는 장흥사람들의 삶과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전시는 크게 4개 부문으로 나눠져 있다. '물길과 함께 성장하다'를 테마로 한 코너에선 청동기 시대 유물을 보여준다. 대표적인 게 나뭇잎모양 찌르개, 옥으로 만든 목걸이, 청동기시대 간돌검이다. 장흥읍 평화리에서 발굴된, 중국 신나라 때(A.D 8∼23) 화폐인 대포황천(大布黃千)도 볼 수 있다. 대포황천은 장흥이 일찍부터 중국과 교역했다는 증표이다.
 
장흥에는 통일신라 때부터 보림사, 천관사 등 절집이 잇달아 세워졌다. '찬란한 불교문화'를 주제로 한 코너에서는 탑산사지에서 출토된 높이 18.5㎝의 고려 때 청동소탑과 금동여래입상을 만난다. 청자로 만든 부인들의 화장품 상자도 있다.
  
 장흥 평화리에서 발굴된 중국 신나라 때 청동으로 만들어진 화폐 대포황천. 장흥이 일찍이 중국과 교역을 했다는 증표다.
 장흥 평화리에서 발굴된 중국 신나라 때 청동으로 만들어진 화폐 대포황천. 장흥이 일찍이 중국과 교역을 했다는 증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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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흥은 통일신라 때부터 불교문화를 꽃피웠다. 장흥 탑산사지에서 출토된 높이 18.5㎝의 고려 때 청동소탑이다.
 장흥은 통일신라 때부터 불교문화를 꽃피웠다. 장흥 탑산사지에서 출토된 높이 18.5㎝의 고려 때 청동소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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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장흥은 수많은 문인과 학자를 연달아 배출했다. 기봉 백광홍, 존재 위백규가 있다. 임진왜란 때엔 일본군에 맞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의병으로, 동학농민혁명 때에도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기 위해 끝까지 싸웠던 장흥 사람들이다.
 
'사림의 고장'을 테마로 한 코너에선 위백규의 시와 글 모음집인 <존재집>, 백광홍의 동생 백광훈의 글씨가 실린 책 <한묵청완>이 전시돼 있다. 동학의 지도자 이방언이 최익현에게 보낸 친필 편지도 있다. 장흥 사람들의 품격을 짐작할 수 있는 유물들이다. 
 
 '길이길이 흥할 땅-장흥' 특별전에서 만난 청자로 만든 부녀자들의 화장품 상자. 고려 때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길이길이 흥할 땅-장흥" 특별전에서 만난 청자로 만든 부녀자들의 화장품 상자. 고려 때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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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이길이 흥할 땅-장흥' 특별전을 찾은 관람객이 안중근 의사의 유묵을 보고 있다. 지난 6월 23일이다.
 "길이길이 흥할 땅-장흥" 특별전을 찾은 관람객이 안중근 의사의 유묵을 보고 있다. 지난 6월 23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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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은 뛰어난 시인과 소설가를 많이 배출해 문림의 고장으로 명성을 드높였다. 장흥을 대표하는 문인 이청준·한승원·송기숙 작가의 주옥같은 작품은 '문예의 전통'을 주제로 한 전시코너에서 만난다. 1920년대에 천도교 장흥교당을 세운 과정을 기록한 현판인 '교구실기'도 있다.
 
안중근 의사를 모신 하나뿐인 사당 '해동사'가 장흥에 있다. '보물'로 지정돼 있는 안중근 의사의 글씨 '용공난용연포기재(庸工難用連抱奇材)'도 여기서 만난다. 서툰 목수는 아름드리 큰 재목을 쓰기 어렵다는, 나라를 잘 다스릴 인재를 기용해야 한다는 뜻을 지닌 유묵이다. 안중근 의사가 1910년 3월 옥중에서 쓴 글씨다.
  
 '길이길이 흥할 땅-장흥' 특별전에서 만난 동학의 지도자 이방언의 친필 편지. 최익현에게 보낸 것이다.
 "길이길이 흥할 땅-장흥" 특별전에서 만난 동학의 지도자 이방언의 친필 편지. 최익현에게 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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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나주박물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길이길이 흥할 땅-장흥' 특별전을 관람하고 있다. 지난 6월 23일이다.
 국립나주박물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길이길이 흥할 땅-장흥" 특별전을 관람하고 있다. 지난 6월 23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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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4일 시작된 전시는 오는 9월 1일까지 계속된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볼 수 있다. 주말과 휴일엔 오후 7시까지 한다. 매주 월요일은 쉰다. 입장료나 관람료도 따로 없다.
 
국립 나주박물관의 상설전시관도 알차게 꾸며져 있다. 영산강유역의 선사와 역사시대 문화를 전시하고 있다. 신촌리와 대안리, 덕산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독널(옹관)을 비롯 돌화살촉, 간돌검, 주먹도끼, 청동병, 청자대접 등을 볼 수 있다. 박물관의 옥상, 하늘정원에서 보는 신촌리와 대안리 고분군도 멋스럽다. 
 
 국립나주박물관 상설전시실에서 만나는 옹관. 나주박물관은 영산강유역의 선사와 역사시대 문화를 전시하고 있다.
 국립나주박물관 상설전시실에서 만나는 옹관. 나주박물관은 영산강유역의 선사와 역사시대 문화를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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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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