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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에서 주말 야간 아르바이트를 한 지 4개월. 주중에는 돈이 되든 말든 나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주말 밤과 새벽 시간을 활용, 매달 지출 필수 항목인 임대 주택 월세와 대출금 상환액을 벌려는 목적(근래 최저임금 상승으로 단시간 알바도 생활에 꽤 도움이 된다)이다.

하지만 이런 목적 외에도 편의점이 가진 독특한 매력 때문에 나는 이 일을 꽤 좋아한다. 이유는 계산대를 사이에 두고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단편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 그저 지나쳐버리기엔 꽤나 재미있고 교훈적이고 때로 뭉클하기까지. 그 단편들을 기록해 나누고자 한다. - 기자말 


 
분리수거함
 분리수거함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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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5일 

'재활용 병류' '재활용 캔류' 등 잘 보이게 큰 글씨로 인쇄한 종이를 붙여둔 분리수거함. 하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앞선 사람의 선택이 뒷사람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여러 사람이 규칙을 잘 지켜 각각의 통에 병과 캔이 모이면 다음 사람도 그러할 때가 대부분. 하지만 누구 하나 일반 쓰레기나 틀린 무엇을 버리면 금세 엉망이 된다. 자기 몫의 책임을 다하는 것, 편의점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이른 새벽, 낯이 익은 길고양이가 편의점 앞을 지나간다. 반가워서 "어!" 하고 소리를 냈더니 안쪽으로 문이 열린 걸 그제야 안 듯 놀라 황급히 뛰어갔다. 순진하게 있다가 사람에게 해코지를 당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미안했다. 폐쇄적이고 높은 빌딩이 많은 도시일수록 그곳에 사는 사람도 동물도 경계심이 높고 표정은 굳어있다. 생명이 무생물을 닮아간다.

5월 31일 

"봉투 안 필요하시죠?" 
"50원인데 봉투 드릴까요?" 


지침대로면 "봉투 하시겠어요?"라고 물어야 한다. 정부 차원에서 지난 4월부터 165㎡ 이상 규모의 대형마트, 편의점 등에서 일회용 비닐봉지 무상 제공을 금지하면서 손님들에 봉투 구매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비닐봉지가 '당연히' 공짜고 막 써도 되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매장 입장에선 이 사실을 알리면서도 가격을 말하지 않음으로써 습관적으로 그것을 사게 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그러나 '봉투 안 필요하시죠'라면서 '50원' 이야기를 꺼내면 열에 여덟은 구매를 하지 않는다. 최근에 다이빙 신기록을 세운 미국인이 무려 1만 927㎞ 심해 속에서도 플라스틱 쓰레기를 발견하지 않았던가. 사람이 쓰고 버린 플라스틱이 사람이 단 한 번 가본 적 없는 지구 구석구석까지 오염시키고 있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수익이 줄어드는 점주에겐 미안하지만, 지구의 사활이 걸린 문제. 고로 나는 언제나처럼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노력을 이어간다. 하지만 편의점을 가득 채운 온갖 플라스틱 제품들과 쓰레기통을 꽉 채운 단 한 번 쓰이고 버려진 그것들을 보면 종말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은 암울한 생각이 든다.
 
한 번 쓰고 버려지는 자원들이 넘쳐난다.
 한 번 쓰고 버려지는 자원들이 넘쳐난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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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일 

"(걱정과 조급증 섞인 목소리로) 본드 있습니까?" (안내한 자리로 가서) 여기 있네!" 

중년 남성이 황급히 접착제를 찾았다. 그 와중에 부인은 여유롭게 편의점 안을 두리번거리다 "당신 좋아하는 젤리 있다!"하고 말한다. 

"당신 신발부터 붙여놓고. (계산하며 훨씬 차분해진 말투로) 집사람 신발이 떨어져서..." 

계산을 마친 남편이 부인의 손을 잡고 시식대 앞 의자에 앉히더니 무릎을 꿇고 부인의 신발을 손봐주기 시작했다. 볼일이 끝나자 예의 바르고 상냥한 말투로 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가는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팔짱을 끼며 걸어갔다. 

'저런 사랑, 참 예쁘다' 생각했다.

[관련 기사] 
비 오는 날 편의점에 앉은 '검은 양복'의 사내들 http://omn.kr/1jpvb

태그:#편의점, #분리수거 , #최저임금인상효과, #플라스틱, #1회용비닐봉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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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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