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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수정 : 7월 4일 오전 10시 12분]
 
"감정적으로 싫은 것을 넘어서 어떤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의 고유한 정체성을 부정하거나 차별하고 배제하려는 태도."

<말이 칼이 될 때> 저자 홍성수는 '혐오'를 이렇게 정의한다. 혐오표현에도 높낮이의 수위가 있다. 수위가 낮은 언사라고 가볍게 생각할 문제는 아니다. 이 책에서는 한 대학 교수가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여대생들은 매일 스마트폰으로 예쁜 옷이나 구경한다. 그래서 불행한 거다"라고 발언한 것을 예로 든다. 저자는 이러한 낮은 수위의 언사도 차별을 낳는다고 말한다.
 
"여대생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고착화시키고 여성을 무시하거나 열등한 존재로 보고 차별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런 말들이 자꾸 발화될수록 그런 이미지가 더욱 강화되어 사실로 둔갑하고, 이것이 다시 차별을 낳게 되는 것이다."
 
『말이 칼이 될 때』 표지, 저자 홍성수 출판사 <어크로스>
▲ 『말이 칼이 될 때』 표지, 저자 홍성수 출판사 <어크로스>
ⓒ NAVER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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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혐오표현의 대상은 '소수자(또는 사회적 약자)'다. 사전적으로는 '적은 수의 사람'으로만 정의되지만, 사회에서 소수자란 '여성', '동성애자', '장애인' 등이 해당된다. 대표적인 여성에 대한 혐오표현으로 '김치녀', '된장녀', '맘충', '여혐', '노키즈존' 등이 있다.

여성을 비하하는 이러한 용어를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남성들은 "별 걸 다 혐오표현이라고 한다"며 여성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의견에 반론을 제기한다.
 
"여성을 차별해온 과거가 있고, 그 차별이 현존하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 자명한 상황에서, 여성들은 그 어떠한 사소한 차별 발언도 가볍게 넘길 수 없는 것이다."

어떠한 단어가 혐오표현인지 아닌지는 누가 판단해야 할까? '듣는' 사람이 판단해야 할 것이다. 범죄자는 스스로 자신의 형을 구형하고 선고할 수 없다. 말하는 사람들 역시 자신들의 말에 차별과 혐오의 의미가 있는지 아닌지 스스로 판단 내릴 수 없다.

'여성 경찰관'이라서 비난받는 현실

대표적인 여성혐오 관련 사례가 있다. 지난 '대림동 경찰관 폭행 사건' 영상으로 불거진 '여경'에 대한 논란이다. 여경은 취객을 제압했고 체포했다.

하지만 취객에게 밀렸다는 이유로, 취객 한 명을 혼자 제압하지 못하고 다른 경찰관의 도움을 받았다는 이유로 '여경 폐지'와 '여경 무용론'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주장이 나왔다. 과거 남성 경찰관들의 실수는 없었을까?

올 초에 서울 암사동 흉기 난동 사건에서 경찰이 쏜 테이저 건이 빗나갔다. 흉기를 든 범인이 시민들 사이로 도망가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 경찰도 남성이다. 그런데 '남경 폐지', '남경 무용론' 주장은 나오지 않았다. 이래도 '여성 혐오'가 아니라 오롯하게 '여경의 능력'을 문제 삼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여성이 사회적으로 많이 진출한 것에 곱지 않은 시선이 여전히 남아 있다. 여성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흐름 속에 각계각층에서 여성에 대한 반감이 내재해있던 것도 원인 중의 하나"라고 설명했다.

'엄마'라서 들어야 하는 비극적인 혐오표현도 있다. 바로 '맘충'이다. 엄마를 뜻하는 영어 '맘'과 벌레 '충'자를 합쳐서 '맘충'이라는 단어가 생겨났다. 고귀하고 숭고하다 표현해도 부족할 '엄마'의 의미를 '벌레'라는 뜻으로 덮어버렸다. 그렇게 엄마들은 벌레가 됐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아이를 둔 엄마들을 모두 '맘충'이라고 비하하는가. 공공장소에서 소리를 지르고 뛰어다녀도 신경 쓰지 않는 엄마들, 식당에서 아이 기저귀를 갈고 그대로 놓고 가는 엄마들, 아이가 먹을 음식을 따로 주문하지 않고 공짜로 달라고 하는 엄마들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엄마들의 잘못이 아니라 개인의 잘못이다.

지난 2016년 5월에 벌어졌던 강남역 살인사건을 기억하는가? 한 노래방 건물의 공용 화장실에서 한 여성이 알지도 못하는 남성에게 무참히 살해당한 사건이다. 여성들이 이 사건을 '여성 혐오에 의한 범죄'라고 말하자 "모든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하지 말라"는 댓글이 쏟아졌다. 모든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하는 것과 모든 엄마를 맘충이라고 비난하는 것 둘 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다.

표현의 자유를 논하기 전에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이 우선

저자는 혐오표현이 고착화되는 것을 경계한다. '맘충'을 계속해서 사용한다면 여성의 이미지도 단어 뜻 그대로 고착화될지도 모른다. 우리의 '어머니'가, 앞으로 엄마가 될 '여성'들이 벌레 취급을 받는 세상이 오길 바라는가?

혐오표현은 싸구려 건축 자재와 같다. 싸구려 자재로 지은 건물은 예고없이 누군가의 생명을 앗아갈지도 모른다.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폭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나비효과 이론처럼 말도 칼이 돼 누군가를 찌를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실제로 재료를 손질할 때 '칼'을 어떻게 다루는가? 당연히 조심히 다룰 것이다. 자신들은 다칠까 봐 조심하면서 왜 다른 사람들의 상처에는 무신경한지. 표현의 자유를 논하기 전에 칼이 되는 말을 들어야 하는 소수자들의 입장을 먼저 존중하는 태도를 취하는 게 순서가 아닐까. 무심코 내뱉는 말이 상대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저자는 J.레이의 말을 인용해 "말은 마음의 초상"이라고 말한다. 말에는 그 사람의 인격이 드러난다. 익명의 울타리 안에서 혐오표현을 쓰는 당신, 당신이 곧 혐오스러운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말이 칼이 될 때 - 혐오표현은 무엇이고 왜 문제인가?

홍성수 지음, 어크로스(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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