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배구 대표팀 선수들... 2019 VNL 5주 차 대회 (충남 보령종합체육관, 2019.6.20)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 선수들... 2019 VNL 5주 차 대회 (충남 보령종합체육관, 2019.6.20) ⓒ 박진철

 
10승보다 가치 있는 2연승이었다. 이길 수 없다는 전망이 압도적이었기에 더욱 빛난 '반전 드라마'였다.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은 지난 18일~20일 충남 보령시 보령종합체육관에서 열린 '2019 발리볼 네이션스 리그(VNL)' 5주 차 대회에서 일본과 폴란드를 꺾고 2연승을 거두었다.

한국은 이번 VNL에서 3승 12패(승점 9점)로 16개 참가국 중 15위를 기록했다. 객관적인 성적은 분명 좋지 못했다. 그러나 한국 대표팀이 처한 여러 악조건과 처음 목표로 삼았던 부분을 감안하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는 평가도 많다. 특히 오는 8월 초 러시아에서 열리는 '도쿄 올림픽 세계예선전'을 앞두고 희망의 근거를 발견했다는 점은 큰 소득이다.

사실 VNL 개막 전까지만 해도 한국 대표팀은 '전패' 우려도 적지 않았다. 라바리니 감독과 코칭스태프가 VNL을 앞두고 대표팀 선수들과 함께 훈련한 기간이 고작 일주일 정도에 불과했다. 설상가상으로 양효진, 박정아, 이재영, 이소영, 김해란 등 주전급 선수들이 대거 부상 재활 때문에 대표팀에서 빠졌다.

애초부터 좋은 성적을 거둘 조건이 되지 못했다. 때문에 라바리니 감독은 VNL 대회를 성적보다 올림픽 세계예선전을 준비하는 과정으로 삼기로 했다. 스피드 배구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중점을 둔 것이다.

스피드 배구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충분한 전략과 훈련 기간이 필요하다. 매 순간 공격수 전원이 공격 준비를 하고, 세터의 빠르고 정확한 토스를 바탕으로 모든 포지션의 공격수를 다양하게 활용하는 전술이기 때문이다.

시행착오 날려버린 '해피엔딩'

한국 대표팀이 이번 VNL에서 긍정적인 대목도 시간이 갈수록 스피드 배구의 완성도가 올라갔다는 점이다.

한국은 VNL 후반까지도 9연패를 당하는 등 스피드 배구 초기에 발생하는 시행착오가 그대로 나타났다. 잘하다가 갑작스럽게 흔들리며 '연속 대량 실점'을 내주고 역전패를 당하는 패턴이 자주 발생했다. 특히 주 공격수 김연경이 후위 자리로 갈 때, 전위에 있는 레프트, 라이트 공격수가 득점을 내주지 못하면서 연속 실점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세터의 경기 운영도 아쉬운 대목이 많았다.

그러나 경기를 거듭할수록 그런 문제점들이 조금씩 개선됐다. 결국 마지막 5주 차 보령 대회에서 가장 완성도 높은 경기력이 나왔다.

19일 한일전에서는 예상 밖의 완승으로 배구 팬들을 놀라게 했다. 20일 폴란드전에서는 첫 연승을 거두고 꼴찌마저 탈출했다.

그러면서 올림픽 세계예선전에서 한국과 본선 티켓을 놓고 경쟁할 러시아와 3승 12패로 똑같은 성적을 만들어냈다. 러시아는 승점 1점이 앞서 한국 바로 위인 14위를 차지했다.

세계랭킹 5위인 러시아도 주전 선수들이 대거 빠지면서 VNL 성적이 저조했다. 심지어 여자배구 세계랭킹 1위이자 지난해 2018 세계선수권 우승 팀인 세르비아도 주전들이 대거 빠지면서 5승 10패를 기록하며 13위에 그쳤다. 단순히 승패와 순위만으로 이번 VNL 대표팀을 평가해서는 안 되는 대목이다.

VNL 최대 소득... '감독과 선수, 하나가 되다'
 
 라바리니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 감독... 2019 VNL 5주 차 대회 (충남 보령종합체육관, 2019.6.20)

라바리니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 감독... 2019 VNL 5주 차 대회 (충남 보령종합체육관, 2019.6.20) ⓒ 박진철

 
한국 대표팀은 라바리니 감독이 추구하는 스피드 배구를 선수들이 잘 흡수하고,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 이번 VNL 대회의 핵심 목표였다.

그런 점에서 감독과 선수 모두 VNL 대회를 마치면서 이구동성으로 한 말이 있다. 아직은 더 보완해야 할 점은 있지만, 경기를 거듭하면서 좋아졌다고 말했다.

라바리니 감독과 주장 김연경은 20일 폴란드전 직후 기자회견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을 했다.

김연경은 "선수들이 경기를 하면서 달라진 부분이 목표가 하나이고, 각자 무엇을 해야 될지 모두가 알게 된 점"이라고 밝혔다. 이어 "블로킹을 어떻게 해야 되고, 수비를 어떻게 해야 되고, 공격을 어떻게 해야 되고, 이 선수가 있을 때는 이렇게 해야 되고 등등 감독님의 작전대로 거기에 맞게 선수들이 다 같이 움직이는 게 많이 달라졌다"고 덧붙였다.

라바리니 감독도 "서브 리시브가 이전보다 계속 상승을 해서 이번 주가 최고를 많이 찍었다"고 말했다. 이어 "공격 부분도 VNL 5주 차 이전에는 서브 리시브가 좋으면 공격 효율이 올라가야 하는데 반대로 공격 효율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며 "그러나 이번 5주 차 경기를 전체적으로 보면 계속 공격 효율이 올라갔다. 그런 부분들이 전체적으로 많이 나아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감독으로서 2연승보다 더 기뻤던 부분은 선수들과 감독이 같은 배구를 얘기하는 것 같다고 느꼈기 때문"이라며 "사실 그 이전에는 그런 부분들이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돼서 힘들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선수들도 얘기하고 있듯이 이제 선수들이 감독이 어떤 플레이를 원하는지 이해하기 시작했고, 감독과 코칭스태프도 그런 걸 느꼈기 때문에 더 기뻤다"고 강조했다.

숙명의 한일전에서 '대반전 드라마' 시작

보령 대회 2연승이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에 가져온 긍정적인 효과는 가히 '보령 대첩'이라고 할 만하다. 이는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사실 한국 대표팀의 4주 차까지 경기력을 돌아보면, 마지막 5주 차 보령 대회에서도 1승도 거두지 못할 가능성이 더 컸다. 한국이 상대할 일본, 폴란드, 도미니카는 1군 주전 멤버가 전원 출전했고, '6강 결선 라운드' 진출을 놓고 서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반면 한국은 주전 선수가 대거 빠진 데다, 첫 날 도미니카전 패배까지 9연패 중이었다. 16개 참가국 중 최하위였다. 한국이 3팀에 '승점 자판기'로 인식되며 샌드백 신세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 대표팀은 19일 숙명의 한일전에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대반전 드라마'를 썼다. 평일 오후 5시 경기임에도 보령종합체육관은 만원 관중을 훨씬 초과한 4000여 명의 배구팬들이 몰려들었다. 결과는 한국의 세트 스코어 3-0 완승이었다. 수준 높은 경기 내용까지 완벽한 승리였다.

반면 일본은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최근 몇 년 동안 일본 대표팀의 1군 주전 멤버가 풀로 출전한 경기에서 한국에 0-3 완패를 당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한국은 주전 멤버 상당수가 빠진 상태였다. 설상가상으로 한국의 이날 승리로 일본의 6강 결선 라운드 탈락이 확정되고 말았다.

일본 여자배구 대표팀의 나카다 쿠미 감독은 경기 직후 기자회견에서 "최근에 몇 번 한국과 시합을 했는데, 오늘이 가장 한국 팀의 경기력이 좋았고 강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오늘은 한국 팀의 서브가 굉장히 좋았다. 그리고 한국 팀의 플레이 스피드가 이전보다 빨라졌다"며 "이전에는 김연경 선수에게 볼이 집중되는 경향이 있었는데, 오늘 경기에서는 라이트 김희진 등 다른 선수들과 균형이 맞는 배구를 한다는 점이 달라졌다"고 높은 평가를 했다.

희망 발견한 2연승... 교체 멤버까지 날았다

20일 폴란드전은 올림픽 세계예선전과 관련해 또 다른 의미가 있는 경기였다. 폴란드 대표팀의 포지션별 장신화와 플레이 스타일이 러시아와 비슷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폴란드는 라이트 주 공격수 스마제크(23세·191cm)가 빠졌지만, 다른 포지션은 대부분 1군 주전 멤버들이 출전했다.

한국은 유럽의 장신 블로킹을 상대로 레프트, 라이트 공격수들이 고른 득점 분포를 보이며 3-1 승리를 거두었다. 레프트에서 김연경이 19득점과 공격성공률 42.4%, 표승주가 17득점과 공격성공률 58.3%, 라이트 김희진이 13득점과 공격성공률 46.4%를 각각 기록했다. 김연경은 서브 리시브와 디그 등 수비에서도 맹활약을 펼쳤다. 센터진에서도 이주아 7득점, 박은진 5득점을 올렸다.

특히 이날 선발 출전한 세터 이다영과 레프트 강소휘 대신 교체 멤버로 들어간 세터 안혜진과 레프트 표승주도 자기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그러면서 팀 승리의 주역이 됐다. 백업 멤버가 탄탄한 모습을 보여준 점도 보령 대회가 얻은 고무적인 소득이다.

한국 대표팀은 보령 대첩 2연승 과정에서 4주 차까지 나타났던 아쉬운 부분들도 상당히 개선됐다.

잘하다가 갑작스럽게 흔들리는 상황도 나왔지만, 역전패를 당하지 않고 끝까지 승리를 지켜냈다. 김연경이 후위 자리로 갈 때 전위에 있는 레프트, 라이트 공격수가 어려운 볼을 처리해주면서 연속 실점 위기를 극복했다. 세터의 토스와 경기 운영, 그리고 공격수와 호흡도 경기를 거듭할수록 발전된 모습을 보였다.

기대 커진 배구협회 "라바리니 감독 총력 지원"

보령 대첩의 승리는 오는 30일부터 다시 시작되는 대표팀 소집훈련에도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아무리 성적에 연연하지 않는 대회라고 하지만, 연패와 최하위를 하고 소집훈련에 들어가는 경우와 2연승과 발전된 모습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고 소집훈련에 들어가는 건 차이가 크다.

VNL에서 11연패와 최하위로 끝마쳤을 경우 쏟아질 비난 여론도 큰 부담이었다. 이는 새로 대표팀에 합류한 선수들이 소집훈련에 임하는 태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반전의 2연승을 거두면서 상황은 정반대가 됐다. 우선 대표팀의 소집훈련 분위기부터 달라졌다. 잘 준비하면 올림픽 세계예선전에서 러시아를 돌파하고 본선 티켓을 획득할 수 있다는 희망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대표팀 선수들이 라바리니 감독의 스피드 배구 스타일에 전폭적인 신뢰을 보내고 있고, 열심히 배우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이는 앞으로 훈련 효과가 더 커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대한민국배구협회도 '해볼 만하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배구협회 핵심 관계자는 24일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8월 올림픽 세계예선전에서 본선 티켓을 딸 수 있도록 라바리니 감독이 원하는 사항에 대해 총력 지원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여자배구 대표팀은 30일 다시 진천선수촌에 모여 올림픽 세계예선전을 대비한 소집훈련을 시작한다. VNL 대표팀에 부상으로 빠졌던 선수들도 대거 들어온다. 라바리니 감독, 기술 코치 세사르 에르난데스 곤살레스, 체력 트레이너 마시모 메라치, 전력분석원 안드레아 비아시올리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외국인 코칭스태프도 전원 합류한다.

숙명의 올림픽 세계예선전을 앞두고 진천선수촌을 향하는 관심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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