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범 세이브 19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구장에서 열린 2019 신한은행 마이카 KBO리그 NC 다이노스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 두산 마무리 이형범이 힘차게 공을 던지고 있다

▲ 이형범 세이브 19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구장에서 열린 2019 신한은행 마이카 KBO리그 NC 다이노스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 두산 마무리 이형범이 힘차게 공을 던지고 있다 ⓒ 연합뉴스

 
한 시즌 동안 144경기를 치러야 하는 KBO리그는 '변수와의 전쟁'이다. 각 구단들은 시즌을 앞두고 스토브리그와 스프링캠프를 통해 최상의 전력을 구축하지만 정작 시즌을 치르다 보면 부상이나 슬럼프, 적응실패 등 뜻하지 않은 변수들로 위기를 맞곤 한다. 이럴 때를 대비한 '플랜B'의 준비 여부와 이를 시행할 시기를 결정하는 빠르고 정확한 판단 등이 한 해 농사를 결정 짓게 된다.

올 시즌 KBO리그의 특징 중 하나는 바로 마무리 투수들의 집단 이탈이다. 각 구단들은 시즌이 개막하기 전에 올해 뒷문을 책임질 마무리 투수들을 낙점했지만 많은 투수들이 부상과 컨디션 난조로로 중도 이탈했다. 실제로 개막 3개월이 지난 현 시점까지 개막전 마무리 투수가 그 팀의 뒷문을 지키고 있는 구단은 정우람의 한화 이글스와 원종현의 NC 다이노스, 그리고 장필준의 삼성 라이온즈 정도 뿐이다. 

야구에서 마무리 투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지만 마무리가 이탈한 팀들의 성적이 모두 하위권으로 곤두박질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올 시즌에는 많은 구단들이 기존 마무리 투수를 대체한 새 마무리 투수가 기대 이상의 활약으로 뒷문을 든든하게 지키는 경우가 유난히 많다. 특히 상위 4개 팀의 대체 마무리들은 기대를 훌쩍 뛰어 넘는 활약으로 주전 마무리의 공백이 전혀 느껴지지 않게 하고 있다.

두 달 동안 17세이브 올린 하재훈과 보상 선수 신화 쓴 이형범
 
역투하는 SK 마무리 하재훈 23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2019 KBO 리그 두산 대 SK 경기. SK 마무리 투수 하재훈이 9회초 역투하고 있다.

▲ 역투하는 SK 마무리 하재훈 23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2019 KBO 리그 두산 대 SK 경기. SK 마무리 투수 하재훈이 9회초 역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작년 한국시리즈 우승팀 SK 와이번스는 올해로 39세가 되는 노장 신재웅 대신 작년 시즌 전천후 불펜투수로 활약하며 9승을 올렸던 좌완 김태훈을 새 마무리 투수로 낙점했다. 김태훈은 시즌 개막 후 8경기에서 1승 5세이브 평균자책점 1.00을 기록하며 마무리에 순조롭게 적응하는 듯했다. 하지만 마무리 경험이 없는 김태훈에게 9회 마지막 아웃카운트 3개를 책임지게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김태훈은 4월 중순 이후 약 2주 동안 3개의 블론세이브를 저지르며 무너졌고 염경엽 감독은 재빨리 마무리를 '해외파' 하재훈으로 교체했다. 하재훈은 시속 150km를 넘나드는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지만 투수 전향이 1년도 채 되지 않을 정도로 마운드 경험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선수였다. 그만큼 하재훈의 마무리 기용은 SK 입장에서 대단한 모험이었지만 마무리를 맡은 지 두 달이 지난 현재 하재훈의 보직 변경은 '신의 한 수'가 됐다.

하재훈은 마무리 변신 후 두 달 동안 23경기에 등판해 무려 17개의 세이브를 수확했다. 마무리 변신 후 하재훈이 23이닝 동안 허용한 점수는 단 1점. 시즌 평균자책점도 1.29로 매우 뛰어나지만 '마무리 하재훈'의 평균자책점은 무려 0.39에 달한다. 다른 마무리 투수들보다 출발이 늦었음에도 어느덧 세이브 부문 단독 3위까지 치고 올라온 하재훈은 올해 유력한 세이브왕 후보 중 한 명으로 떠오르고 있다.

두산 베어스가 FA 양의지의 보상선수로 이형범을 지명했을 때만 해도 이형범은 그저 군복무를 마친 20대 후반의 '나이 든 유망주'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형범은 시즌 개막 한 달 만에 5승을 따내며 두산의 '승리 요정'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5월 중순 마무리 함덕주가 부진 끝에 2군에 내려가면서 이형범은 두산 마운드에서 절대 없어서는 안될 핵심투수로 자리 잡았다. 

6월부터 본격적으로 마무리로 변신한 이형범은 10경기에 등판해 10이닝 동안 단 한 점도 내주지 않고 7개의 세이브를 따냈다.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는 아니지만 좀처럼 볼넷을 허용하지 않는 정확한 제구력과 투심을 앞세운 땅볼 유도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두산은 현재 기존 마무리 함덕주가 1군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이형범에게 뒷문을 맡기고 있다. 그만큼 이형범이 김태형 감독에게 큰 신뢰를 받고 있다는 뜻이다.

시속 155km짜리 강속구 영건과 프로 16년 차 베테랑 좌완

LG에는 작년 시즌 27세이브를 기록하며 세이브 부문 공동 3위에 올랐던 정찬헌이라는 좋은 마무리 투수가 있다. 정찬헌은 올 시즌에도 LG의 마무리 투수로 낙점됐고 시즌 첫 10경기에서 1승 6세이브 0.96으로 호투하며 작년보다 더욱 성숙한 투구를 선보였다. 하지만 정찬헌은 평균자책점 0의 행진이 깨진 다음날 허리 통증으로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됐고 류중일 감독은 3년 차 우완 고우석을 임시 마무리로 결정했다.

2017년 신인 드래프트 1차 지명 출신의 고우석은 시속 150km를 넘나드는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로 LG가 공을 들여 키우고 있는 유망주다. 하지만 풀타임 첫 시즌이었던 작년 3승 5패 3홀드 5.91로 가능성과 함께 약점도 많이 보였던 미완의 투수라 마무리 기용은 다소 위험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고우석은 마무리를 맡은 후 '물 만난 고기'처럼 마운드에서 상대 타자들을 폭격하고 있다.

4월 중순부터 마무리로 변신한 고우석은 23경기에 등판해 5승 13세이브 1.13(24이닝3실점)이라는 뛰어난 성적을 올리고 있다. 무엇보다 고우석의 매력은 시속 155km까지 찍히는 위력적인 패스트볼로 제구가 되는 날에는 빠른 공 하나만으로 타자들을 압도할 수 있다. 물론 아직 경험이 적어 구종이 단순하다는 단점이 있지만 이 엄청난 강속구를 던지는 유망주의 등장은 LG는 물론 KBO리그 전체에도 큰 발견이 아닐 수 없다.

키움 히어로즈는 올 시즌 시속 158km의 빠른 공을 던진 '광속 마무리' 조상우를 앞세워 상대팀을 공포에 빠지게 했다. 하지만 시즌 개막 후 14경기에서 1승 13세이브를 기록하며 무실점 행진을 이어가던 조상우는 5월 들어 단순한 투구패턴이 상대에게 간파 당하며 5월 한 달 동안 3패를 당했다. 설상가상으로 조상우는 지난 8일 두산전을 끝으로 어깨 근육이 찢어지는 부상을 당하며 사실상 전반기에 나서기 힘들어졌다.

키움에는 지난 2년 동안 33세이브를 기록했던 김상수라는 좋은 대안이 있었지만 장정석 감독의 선택은 의외로 통산 세이브가 6개에 불과한 16년 차 좌완 오주원이었다. 그리고 오주원은 우려를 딛고 마무리 변신 후 7경기에서 1승 6세이브를 기록하는 완벽한 투구로 키움의 뒷문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다. 우완 파이어볼러 조상우를 상대하던 타자들은 좌완 기교파 오주원의 공에 좀처럼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고 있다. 그야말로 '만점 짜리 대타'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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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하재훈 이형범 고우석 오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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