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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문방구에 대한 추억은 하나쯤 있을 것이다. 알록달록한 펜을 고심 끝에 골라 담으며 마음이 뿌듯해지던 느낌은 어른이 된 지금도 여전하다. 이 작고 예쁜 것들을 한푼 두푼 아낀 용돈으로 사 모으는 게 감질났던 이들은 남몰래 문방구 주인을 꿈꾸기도 했다. 

정푸른씨는 그렇게 문방구 주인이 됐다. 대구 도심 한복판에 있는 협소한 공간에 자신의 이름을 따 '문방구 푸르니'라는 간판을 걸었다. 문방구 덕후의 섬세한 안목과 환경, 평화에 대한 본인의 관심을 접목해 독특하면서도 친환경적인 문구류와 핸드메이드 제품 등을 판매했다. 

문방구 푸르니는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1년여 만에 문을 닫았다. 그러나 정씨는 대안학교 교사가 돼 여전히 문구와 가까이 지내고 있다. 학교처럼 문구류를 많이 쓰는 곳이 또 어디 있겠는가? 

지난 16일 여성환경연대는 정푸른 교사와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문구를 사랑하고 아이들을 사랑하고 환경과 평화를 사랑하는 선생님. 정푸른 교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대안적인 노력으로 더욱 다양해진 문방구 푸르니 
 
문방구 푸르니의 재사용 봉투가 전시 되어있다
 문방구 푸르니의 재사용 봉투가 전시 되어있다
ⓒ 여성환경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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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방구 푸르니에서 일회용품을 덜 쓰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궁금해요. 
"사실 좀 부끄러워요. 문방구를 운영할 때 비닐 같은 일회용 플라스틱을 덜 쓰는 것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진 않았거든요. 평소에 환경을 해치는 건 최대한 덜 쓰자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문방구에서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어요. 문방구를 좀 더 오래 운영했다면 분명히 환경적으로 더 많은 대안적인 아이디어를 실천해 봤을 거예요.

저는 포장을 할 때 재활용 종이가방을 사용했어요. 그렇게 한 게 불편하기는커녕 여러 모로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포장재를 사는 비용도 안 들었어요. 심지어 종이가방을 모아오는 만큼 손님들에게 할인도 해드렸어요. 기존 종이가방에 있는 브랜드 로고 위에 문방구 스티커를 붙였더니 오히려 더 예뻤어요. 디자인도 훨씬 더 다양해지잖아요. 문방구 푸르니는 아주 작은 가게였고 그런 방식이 딱 맞았어요. 그렇게 안 할 이유가 없었죠."

- 친환경적인 문방구를 운영하기 위한 문구류를 고르는 기준이 있었나요?
"저한테 '책상'은 신성한 공간이에요. 책상에서 하는 대부분 작업은 기계가 아닌 손으로 이루어지잖아요. 메모를 끄적이거나 글을 쓰거나 무언가를 만드는 일들이 소중하게 느껴졌어요. 책상을 '배우는 자리'라고 생각도 했어요. '신성한 책상에서 다루는 도구들인데 아무렇게나 만든 걸 쓸 순 없지' 같은 생각이 웃길 수도 있는데, 문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자세라고 봤죠.

가게 이름은 문방구지만 문구류와 핸드메이드 제품을 함께 판매했어요. 환경·사랑·평화의 가치나 메시지가 담긴 것을 고르려고 노력했고요. 이를테면 재생지 사용, 콩기름 인쇄, 수작업으로 실제본한 코팅되지 않은 노트를 만드는 곳, 수익금 일부를 나무 심기나 환경보호단체에 기부하는 곳, 최소한의 디자인을 추구하는 곳, 폐기과정까지 세심하게 살피며 제품을 만드는 곳에서 구매했죠. 문구의 기본에 충실하며 대충 쓰다 버리지 않고 잘 쓰이는 문구를 만들기만 해도 좋겠어요."
 
문방구 푸르니 한쪽에 비치된 책상, 손님들이 쉬어갈 수 있다.
 문방구 푸르니 한쪽에 비치된 책상, 손님들이 쉬어갈 수 있다.
ⓒ 여성환경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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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방구를 경영할 때 쓰레기 문제로 어려운 적은 없었나요? 
"딱 한 번 포장이 과하다 싶은 제품을 판매한 적이 있어요. 참 예쁜 제품이었는데 포장을 열기도 불편하고 훨씬 더 포장이 간소화되어도 제품의 느낌을 더욱 살릴 수 있었을 텐데 하며 아쉬워했던 기억이 나요. 그 외에는 없어요." 

- 문방구 푸르니를 찾았던 손님들의 반응이 궁금해요. 
"제 착각일지는 모르겠지만 재미있어 한 것 같아요. 대부분 문방구는 학교 앞 1층에 있는데 저희는 4층에 있었어요. 아마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계단으로 힘들게 올라왔는데 생각보다 작은 크기에 놀라고, 그 작은 곳에서 이것저것 시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애쓴다'는 느낌도 받았을 것 같아요. 오셨던 분들이 어떻게 느끼셨을지는 저도 궁금해요."

- 문구류는 조금 쓰다 버리는 게 많잖아요. 잃어버리는 경우도 많고요. 문구를 오래 쓸 수 있는 팁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화려한 디자인의 문구를 사는 것보다 단순한 디자인의 문구를 사서 내 취향대로 조금씩 꾸미고 채우면 더 애정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수첩이나 공책 같은 경우는 용도가 분명할 때만 사고, 쓰다 만 공책이나 수첩은 다시 엮어서 아이들 연습장이나 사무용 메모지 등으로 마저 써요. 아껴 쓰는 습관 때문에 양면으로 다 쓰고 버려야 직성이 풀리기도 하고요. 연필이나 지우개처럼 잘 잃어버리는 건 조금 비싸더라도 마음에 꼭 드는 거로 사요. 그럼 잘 안 잃어버리게 되는 것 같아요. 

제가 있는 학교에서 쓰는 방법은 연필이나 지우개는 공용으로 사용하는 거예요. 수업할 때 가져다 쓰고 끝나고 나면 보관함에 모아요. 정리하는 것까지가 수업의 일환이에요. 같이 쓰는 걸 함부로 다루거나 잃어버리면 친구들에게 잔소리도 듣게 되니까 아이들이 좀 더 신경 써서 챙기는 것도 같아요. 그래도 없어지면 '연필 공개수배' 이벤트를 열어요. '돌아다니는 연필 10자루를 모아오는 사람에게 사탕 하나 준다'고 하면 집 나갔던 연필들, 서랍 밑에 숨어 있던 연필들이 마법처럼 돌아와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내 물건에 이름을 쓰고 소중하게 아껴 쓰는 거 아닐까요? 어딘가 두었어도 누구라도 주인에게 찾아줄 수 있는 관계와 환경도 필요하겠지요."

필요한만큼 소비하고 느낀만큼 실천하다
 
학교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는 연필
 학교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는 연필
ⓒ 여성환경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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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일하고 있는 학교에서 일회용 쓰레기나 환경에 대한 수업이나 활동을 진행하고 있나요?
"제가 있는 학교는 시간표가 없어요. 시간에 쫓기지 않고 자연스럽게 삶을 이해하고 배워나가죠. 정해진 교과목도 없어요. 우리 생활 곳곳에서 다양한 주제를 마주할 때마다 그에 관해서 공부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게 수업이에요. 아이들과 장 볼 때는 포장재가 적고 재활용이 가능한 제품을 사요. 고맙게도 아이들이 제 생각이나 지향을 이해해주고 함께해주고 있어요. 아이들이 갖고 싶어 하는 장난감이 있을 때 제가 '이게 꼭 필요할까? 이걸 사면 우리가 오래도록 가지고 놀 수 있을까? 사지 않고 있던 거로 만들어서 쓸 순 없을까'와 같은 질문을 던져요. 그럼 금세 설득 당해요. (웃음) 그래도 '플라스틱 장난감은 절대 못 사줘'라고 하진 않아요.

우리 학교가 있는 산청 지역은 지역 네트워크가 활발해요. 영화 상영, 정책 제안을 위한 토론을 하기도 하고 '이달의 실천사항'으로 플라스틱 사용 줄이기를 약속하기도 해요. 목요일마다 쓰레기 줍는 모임도 있어요. 시골이라 깨끗할 거로 생각하면 그건 착각이에요. 플라스틱 농약통이나 농사용 비닐이 제일 많고 주변 래프팅장이나 펜션에서 나온 쓰레기도 많아요. 

학교에서는 또 주방세제 없이 따뜻한 물로만 설거지를 해요. 세수할 때는 베이킹소다, 대나무 칫솔과 죽염을 사용해요. 하지만 이 모든 게 학교 구성원에게 강제되는 규칙은 아니에요. 더 많은 실천을 해보고 싶지만 저희는 그런 실천이 강요되는 것을 원하지는 않아요. 스스로 느낀 만큼 하고,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지속할 수 있는 깨달음과 실천이 일어나도록 서로 돕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나, 사회, 환경 등 무엇을 위한 실천이든 제도나 규칙으로 이어가기보다는 실천적인 대화를 이어가는 학교, 지역 공동체를 만들고 싶어요. 아이들을 만나는 교사로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내면에 생태 가치가 소중하게 자리 잡도록 돕고 싶어요."
 
어린이들이 거리의 쓰레기를 줍고 있다.
 어린이들이 거리의 쓰레기를 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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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사용하는 대나무 칫솔과 죽염
 함께 사용하는 대나무 칫솔과 죽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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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때부터 자연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고 지키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맞아요. 어린이들은 기본적으로 몸에 좋은 것과 환경에 좋은 것, 생명에게 더 나은 선택에 관심이 많아요. 그래서 그런지 대부분 새로운 실천들을 반가워하고 재미있어해요. 고양이를 좋아하니까 어떤 때는 사람보다 고양이나 다른 동물에게 해로운 점을 설명해주면 더 관심 있어 하고요. 지금까지는 무엇이든 긍정적으로 함께해준 것 같아요. 

어린이들에게는 길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쓰레기를 보고 분노할 수 있는 마음이 기본적으로 있는 것 같아요. 어른들은 무뎌져서 그냥 지나칠지라도요. '어린이들에게는 옳은 것, 더 나은 것이 지켜지리'라는 믿음이 어른보다 더 크고 단단하니까 그 믿음을 함께 지켜내고 싶어요. 지금 어른들이 해야 할 몫이 크지 않을까요?"

모든 것이 넘쳐나 귀한 것이 없어져 버린 세상에서 연필 한 자루, 지우개 하나를 나눠 쓰며 아옹다옹할 꼬맹이들을 상상해 본다. 초등학교 시절, 새 학기가 되면 아버지가 두껍고 빳빳한 달력 종이로 교과서를 싸주던 일, 엄마가 연필을 한 자루 한 자루 깎아서 필통에 넣어주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뭉툭해진 연필 끝처럼 무뎌져 버린 마음을 칼로 잘 벼려서 작은 것들을 소중히 다뤘던 그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다.

정푸른 교사와 함께 재잘재잘 떠들며 동네 쓰레기를 줍고 길고양이를 가만가만 쓰다듬을 아이들에게도 그 마음이 오래오래 남기를 바란다.

[기획 / 나는 플라스틱 없이 산다]
① 냅킨 대신 손수건... '테이크 아웃'을 없앤 카페가 등장했다 http://omn.kr/1jm1o

태그:#여성환경연대, #문방구푸르니, #플라스틱제로, #플라스틱없다방, #나는플라스틱없이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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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창립한 여성환경연대는 에코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모든 생명이 더불어 평화롭게 사는 녹색 사회를 만들기 위해 생태적 대안을 찾아 실천하는 환경단체 입니다. 환경 파괴가 여성의 몸과 삶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하여 여성건강운동, 대안생활운동, 교육운동, 풀뿌리운동 등을 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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