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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번쯤 자기가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이 있다. 특히 어느 정도 삶의 원숙미가 생기는 중년의 나이가 되면 어렴풋이 자기가 하고 싶은 무언가가 떠오른다.

나는 연초에 계획을 세우던 중 그 중에 강의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간절해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갑자기 어디서 무슨 주제로 강의를 한단 말인가. 내가 생각해도 너무 뜬구름 잡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날 나에게 강의 비슷하게 시발점이 되는 기회가 왔다. 바로 직무 강의를 할 사람을 양성한다는 공문이 온 거다. 나는 조금 망설인 끝에 지원을 하여 참여하게 되었다. 그 양성 과정을 온 사람 중에는 이미 강의를 몇 년째 하는 사람도 있고, 앞에서 말할 기회를 가져본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그 양성 과정 과정을 열심히 참여하였고, 조금이라도 말할 기회가 있으면 놓치지 않고 의견을 피력하였다. 덕분에 최종 수업 후 그간 배운 것을 기반으로 발표자를 뽑았을 때 나설 수 있었다. 평소 얌전하고 나서는 것을 엄청 두려워하던 내가, 같이 수업을 듣던 조원의 추천과 내 의견이 가미되어 우리 조 대표로 발표를 하게 된 것이다.

나름 틈틈이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발표자료를 만들 때 도움이 될 것 같아 인터넷으로 파워포인트 배운 것을 기반으로 슬라이드도 만들었다. 부족하지만 퇴근 후 시간나는 대로 발표를 위해 발음 연습까지 하면서 발표 날을 위해 애를 썼다.
 
나는 연초에 계획을 세우던 중 그 중에 강의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간절해지기까지 했다.
 나는 연초에 계획을 세우던 중 그 중에 강의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간절해지기까지 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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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발표날이 되었다. 그날은 시연을 하는 날이라 최소 강의 내용을 기반으로 준비했는데 남들은 실제 강의처럼 강의 내용과 시간도 1시간 훌쩍 넘게 시연을 하였다. 그에 비해 나는 15분 가량 너무 짧은 내용과 시간이었다. 하지만 나름 내용을 다 숙지하고 외워서 칭찬 아닌 칭찬을 받았다.

그 후 한 달 뒤 상부 기관에서 전화가 왔다. 실제로 강의를 해 줄 수 있냐는 전화였다. 강의 시간은 1시간으로, 장소는 전에 내가 교육을 받았던 그곳이었다. 당연히 너무 기다렸던 소식이라 "네, 감사합니다" 하고 단숨에 얼른 대답을 한 뒤, 그날을 생각하며 더욱더 부지런을 떨었다.

회사도 평소보다 1시간 일찍 가서, 빈 공간에서 매일 매일 연습을 하였다. 또한 ppt 자료도 보완할 점이 없나 보고, 틈틈이 강의를 잘 하는 방법에 대한 인터넷강의도 신청해서 들었다.

드디어 내일 모레가 강의를 하는 날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의상도 생각해놓고 평소 신지 않던 굽이 있는 구두까지 구입을 하였다. 머리도 평소에 가던 동네 미용실이 아닌, 이름 있는 미용실에서 했다. 그날을 위해 떨리는 마음 반, 기대 반으로 하나하나 준비를 하였다.

강의 이틀 전 저녁, 퇴근을 해 온 신랑이 전화를 받았다. 시누이였다. 아버님이 위독하셔서 오늘을 못 넘긴다는 말을 병원에서 들었다고 빨리 오라는 전화였다. 퇴근해서 채 옷도 갈아입지 않는 신랑과 함께 급히 차를 몰고 아버님이 계신 요양병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거기서 밤을 새우고 다음날 새벽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빈소를 차리고 어느 정도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나니, 갑자기 강의 일정이 생각이 났다. 하지만 갈 형편은 못 되었다. 옆에서 내가 얼마나 기대를 했는지 잘 아는 신랑은 얼른 강의만 하고 오라고 하였다. 그렇지만 그것은 아버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강의 담당자에게 사정 얘기를 하고 강의를 하기가 어렵다는 말과 함께, 정히 강의를 맡아서 진행할 사람이 없으면 가겠다는 약간의 아쉬운 속내를 보였다. 

이런 나의 복잡한 마음과 달리, 교육 담당자는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 다른 분으로 섭외해서 강의를 진행한다고 대답해 주셨다. 강의 담당자한테는 미안한 마음이 들고 강의를 못하게 된 데 서운함도 있었다. 하지만 아버님을 위해 자식된 도리를 다 하면 언젠가는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나름 나를 다독였다.

그리고 한 달 뒤 갑자기 강의 담당자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6월에 다시 강의를 해줄 수 있냐는 거였다. 나도 모르게 너무도 감사하고 좋아서 연신 고맙다는 말을 하였다. 그리고 다시 강의 준비에 들어갔다.

비록 그때 준비한 옷과 신발은 봄에서 여름으로 지나 입을 수가 없었지만, 그보다 시간을 더 얻었다는 생각에 좀 더 노련하게 강의를 할 자신이 생겼다. 그리고 드디어 강의 날이 되었다. 교육생은 34~36명으로 처음 시작할 때는 떨리기도 했지만, 주변의 아시는 분들한테 기도를 부탁한 덕분인지, 강의가 흐를수록 경쾌하게 나도 모르게 술술 교육을 진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 강의를 집중해서 들어주시는 분들을 보면서 더욱더 열심을 내었다. 그리고 1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명강사는 정해진 시간보다 조금 일찍 끝내주어야 한다는데 처음 나의 생각과는 다르게 1시간 꽉 차게 교육을 진행하였다.

비록 나중에 평가가 잘 못 나온다고 해도 나름 나에게 주어진 시간에 교육생들에게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최대한 전해주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해서인지 끝나고 나서는 마음이 뿌듯했다.

교육 진행시 같이 보조를 해주었던 교육 담당도 분위기가 좋왔다고 했다. 최종평가는 교육생들이 설문조사를 통해 평가점수로 하는 거지만, 왠지 반응이 좋았으니 결과도 좋을 듯했다. 집에 와서 신랑한테 나의 강의가 어땠을 것 같냐고 하니 잘했을 것 같다고 했다. 내가 어떻게 안 보고도 알 수 있냐고 물으니, 보지는 않았지만 내가 평소에 연습을 한 모습을 봐서 잘 했을 것 같다고 했다.

강의 끝나고 1주일이 다 되어 가는 지금, 아직까지는 또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은 없다. 그래도 인생의 버킷리스트, 중 한 개를 완성했다는 기쁨으로 행복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태그:#버킷리스트, #인생의 버킷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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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중년의 잔잔한 감동이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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