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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인사이드'는 청와대, 통일부, 외교부, 국방부, 총리실 등을 출입하는 정치부 기자들이 쓰는 정보가 있는 칼럼입니다.[편집자말]
국어사전은 표적수사를 '특정한 대상을 미리 정해놓고 그 대상만을 지나치게 집중적으로 수사하는 일'이라고 풀어놓고 있다. 현실에서는 흔히 정치적인 목적에 따라 특정한 대상이나 인물을 정해놓고 수사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 '정치적인 목적' 때문에 편파성의 문제가 생기고 '권력의 하명수사'라는 오명을 받아왔다.

검찰의 특수부나 과거 대검 중앙수사부(중수부)가 대표적인 표적수사 조직이었다.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가 대검 중수2과장 시절 진두지휘했던 'C&그룹 비자금 의혹 수사'도 당시 그러한 표적수사 논란에 휘말렸다. 그런 만큼 C&그룹 수사경력이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다시 떠오를 가능성이 있다.

C&그룹, 대검 중수부 부활의 첫 번째 표적

지난 1963년 12월 대검 중앙수사국이 설치됐고, 약 20년 뒤인 지난 1982년 4월 중앙수사국은 중앙수사부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렇게 출범한 대검 중수부는 검찰총장의 하명을 받아 전·현직 대통령과 친인척, 재벌총수, 전·현직 국회의원 등이 포함된 권력형 비리나 대형 경제범죄를 주로 수사해왔다.

그런데 대검 중수부가 지난 2009년 중대한 위기를 맞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뇌물수수 혐의로 대검 중수부의 수사를 받은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 전인 4월 30일 검찰에 출석해 조사받은 곳이 '대검 중수부 1120호 특별조사실'이었다.

노 전 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대검 중수부를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대검 중수부는 지난 2013년 '반부패부'로 이름을 바꾸며 결국 폐지됐다). 이러한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대검 중수부는 1년 4개월 동안 '칼'을 잡지 못하는 개점휴업 상태였다. 그러다 지난 2010년 9월 C&그룹 비자금 수사에 나서면서 다시 부활했다.

당시 검찰 주변에서는 대검 중수부가 10대 그룹이 포함된 대기업 몇 곳을 표적 삼아 내사를 벌이고 있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그런데 대검 중수부 부활을 위한 첫 번째 표적이 C&그룹으로 확인되자 검찰 안팎에서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왔다.

C&그룹은 1990년 임병석 회장이 자본금 5000만 원으로 설립한 칠산해운(영문명 '쎄븐마운틴해운')을 모태로 하고 있다. 세양선박과 우방건설, 아남건설, 한리버랜드(구 세모유람선), 진도, 필그림해운, 황해훼리 등을 인수하는 공격적인 기업인수·합병에 힘입어 C&해운과 C&상선, C&우방 등 계열사만 40여 곳을 거느렸다. 2008년 그룹 총 매출이 1조 8000억 원에 이르며 재계 순위는 71위(자산 기준)에까지 올랐다. 하지만 대검 중수부의 수사가 시작되기 1~2년 전부터 조선업 시황이 악화되고 금융권마저 추가 대출을 중단하면서 주요 계열사들이 청산되거나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등 부실화된 상태였다. 그런 점에서 대검 중수부가 적극 수사에 나서기에는 '급'이 떨어지는 기업이었다.

검찰 '22년 6개월'과 대법원 '5년'의 차이
 
 지난 24일 작성된 임병석 C&그룹 회장의 9쪽짜리 옥중메모.
 지난 2011년 6월 24일 작성된 임병석 C&그룹 회장의 9쪽짜리 옥중메모.
ⓒ 구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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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 중수부가 이렇게 죽어가던 C&그룹을 표적으로 삼자 '수사의 진짜 이유'에 관심이 쏠렸다. 호남기업이었던 C&그룹이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를 거치면서 기업인수·합병을 통해 몸집을 키웠다는 점을 들어 이명박 정부가 이전 정부 인사들이나 야당 정치인들을 겨냥했다는 관측이 흘러나왔다.

당시 대검 중수부는 임병석 회장 등 C&그룹 경영진이 상장 폐지된 회사들을 이용해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했고, 우방 등 여러 기업들을 인수·합병하는 과정에서 정치권에 로비를 벌였다고 판단했다. 수사의 초점이 '비자금 조성을 통한 정·관계 로비'에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에서도 "C&그룹이 권력을 등에 업고"(김무성 원내대표), "비자금 혐의"(이재오 특임장관) 등의 발언들이 나왔다.

그 과정에서 정치인들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거론됐다. 임병석 회장은 지난 2011년 7월 기자가 입수한 '옥중메모'에서 "대검 중수부의 C&그룹 수사는 박지원(민주당)·정두언·이성헌(한나라당) 의원 등을 겨냥했다"라고 주장했다. 다음은 임 회장의 '7월 24일자 옥중메모'에 나오는 내용이다.
 
"중수부는 박지원 장관과 민주당, 친이계 소장파(정두언 의원), 친박계 의원(이성헌 의원) 등을 겨냥한 것으로 느꼈음. 이것은 확실함."

임 회장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대검 중수부의 C&그룹 수사는 '정치인 표적수사'에 해당한다. 그렇게 볼 정황도 상당했다. 당시 검찰발 언론보도 등을 통해 임 회장이 지난 2008년 박지원 의원을 만나 그룹 구명을 부탁했고, 이성헌 의원이 박근혜 전 대표와 임 회장의 만남을 주선했다는 등의 의혹들이 제기된 것이다.

당시 수사상황을 잘 아는 전직 C&그룹의 한 인사는 19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당시 검찰은 임 회장에게 '로비한 정치인들을 불어라'고 압박했다"라며 "당시 검찰의 주요 타깃은 박지원 의원이었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대검 중수부에서 의도한 '비자금 조성을 통한 정·관계 로비 의혹' 수사는 결국 실패했다. 임 회장이 정·관계 로비 수사에 협조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애초 그것의 실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박지원 의원은 "야당 탄압을 위한 사정"이라고 반발했다.

결국 검찰은 정·관계 로비가 아닌 횡령과 배임, 분식회계와 대출사기 등의 혐의로 임 회장을 기소했고, 징역 22년 6개월을 구형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지난 2013년 6월 징역 5년과 벌금 20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22년 6개월이라는 검찰의 구형량에 비하면 초라한 결과였다.

대검 중수2과장 때 수사 지휘
 
검찰총장 지명된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17일 오전 서초동 청사에서 나와 승용차로 향하고 있다.
▲ 검찰총장 지명된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17일 오전 서초동 청사에서 나와 승용차로 향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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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말이 많았던 C&그룹 비자금 의혹 사건을 맡아 수사를 지휘한 이가 윤석열 후보자였다. 당시 윤 후보자는 대검 중수2과장(2010년 7월~2011년 8월)을 맡고 있었다. 앞서 언급한 전직 C&그룹의 인사는 "당시 윤 후보자가 임병석 회장을 직접 조사한 것으로 안다"라고 전했다.

윤 후보자와 임 회장의 '악연'은 지난 2006년에도 있었다. 당시 의정부지검 고양지청 검사로 근무하던 윤 후보자는 대검 중수부로 파견나가 현대차 비자금 의혹과 금융브로커 김재록씨 사건 수사에 참여했다. 그때 김재록씨를 통해 금융권 등에 로비를 벌였다는 혐의로 임 회장을 참고인으로 조사한 바 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윤 후보자가 C&그룹 비자금 의혹을 수사하고 있을 당시 그의 윗선들의 면면이다. 당시 대검 중수부장은 김홍일 전 부산고검장, 대검 범죄정보기획관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다.

김홍일 당시 대검 중수부장(2009년 8월~2011년 8월)은 지난 2007년 서울중앙지검 3차장 시절 'BBK 의혹' 수사를 지휘하며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려 두고두고 '정치검사'의 오명을 뒤집어썼다.

우병우 당시 대검 수사기획관(2010년 7월~2011년 8월)은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 민정비서관과 민정수석에 잇달아 발탁됐다. 우 기획관은 대검 중수1과장 시절(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혐의 사건을 맡아 노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 청구를 강하게 고집했던 인물이다.

윤 후보자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특수통 검사로 승승장구했던 사실도 흥미롭다. 그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직후 대전지검 논산지청장(2008년 3월~2009년 1월), 대구지검 특수부장(2009년 1월~2009년 8월), 대검 범죄정보2담당관(2009년 8월~2010년 7월)과 중수2·1과장(2010년 7월~2012년 7월)을 거쳐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2012년 7월~2013년 4월)에까지 올랐다.

공교롭게도 '예리한 칼잡이'(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평가)로서의 경력이 거의 대부분 이명박 정부 시기에 이루어진 것이다. 보통 검사의 인사에는 실력과 리더십, 자기관리뿐만 아니라 '수사경력'이 크게 영향을 미친다.

윤 후보자에게 C&그룹 사건은 무엇이었나?

기자가 지난 2011년과 2012년 검찰의 C&그룹 비자금 의혹 수사건을 취재하고 있을 당시 임 회장을 수사했던 대검 중수부의 한 검사는 "임 회장에게 '정·관계 로비를 불어라'고 얘기한 적이 없다"라고 정치인 표적수사 의혹을 부인했다. 하지만 '정·관계 로비 수사는 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내가 대답할 사안이 아니다"라며 답변을 회피했다.

2012년 7월 대검 중수부는 <오마이뉴스>에 보낸 반론자료에서 "C&그룹에 대한 수사는 1조7996억 원의 금융부실을 초래한 기업주 임병석에 대한 엄정한 책임을 묻는 전형적인 기업수사일 뿐 정치인을 겨냥한 기획·표적 수사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전직 C&그룹 인사는 "검찰은 수사할 당시 C&그룹 사건을 '중수부 부활 1호 사건'이라고 했다"라며 "대검 중수부를 다시 살리려고 한 건 터뜨리려다가 결국 실패한 수사였다"라고 주장했다. 임병석 회장도 이렇게 주장했다.
 
"DJ(김대중) 정권, 노무현 정부에서 컸다고, (대구지역 기업인) 우방을 인수했다고, 호남(기업)이라고 해서 보복성, 감정 섞인 수사(를 했다). (중략) 이런 수사를 보면서 중수부는 폐지되어야 한다(는 걸 느꼈다). (대검 중수부 소속의) A, B 같은 정치검사들을 포함 (검찰) 수뇌부는 전부 물러나야 한다." - 임병석 회장의 '옥중메모' 중에서

당시 수사에서는 광범위한 계좌추적에도 불구하고 비자금과 관련한 차명계좌나 비자금 통장은 발견되지 않았고, 횡령·배임 등 일반적인 기업비리 혐의로 C&그룹 임직원 14명을 기소하는 데 그쳤다. 그런 점에서 최소한 비자금 조성을 확인해 정·관계 로비 의혹을 수사하려고 했던 점에 한해서만은 '수사 실패'로 볼 수밖에 없다. 이는 당시 검찰이 대검 중수부를 살리기 위해 무리하게 수사했거나 정권에 충성하기 위해 표적수사를 벌였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 대상이 검찰이었든 정권이었든 '조직 충성'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었던 C&그룹 비자금 의혹 사건을 다시 떠올리면서 최근 몇 년 동안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렸던 윤석열 후보자의 발언이 생각났다. "저는 조직을 대단히 사랑하지만 사람에게는 충성하지 않는다."(2013년 10월 21일 서울고검 국정감사장). 이 발언은 이후 '검찰주의자' 윤 후보자를 '정의로운 검사'로 각인시킨 가장 강력한 메시지가 됐다.

당시 C&그룹 비자금 의혹 사건을 취재했던 기자로서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을 앞둔 윤 후보자에게 묻고 싶다. "당신에게 C&그룹 사건은 무엇이었고, 정말 정의롭고 공정하게 수사했는가?"라고. 그리고 "당신이 '사랑한다'는 조직은 어디인가?"라고.

[관련기사 : 2010년~2012년]
"박연차도 20명 불었으니 당신도 불라고 했다"
1조원 대 C&그룹 임병석 사건도 기획·표적수사였나
이귀남 "정치인 표적 수사? 개인 추측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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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검찰이 C&그룹과 나의 연루설 흘려"
C&그룹 임병석 회장, '호남의 박연차'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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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