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류현진이 선보인 기록은 경이롭다. 그는 지금 방어율에서 1.26을 기록하며 1968년 밥 깁슨이 기록한 1.123이란 라이브볼 시대 최고 성적과 경합하고 있다.

조정방어율을 보면 더 심하다. 현재 류현진의 조정방어율은 335인데, 이는 역대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고 평가받는 페드로 마르티네즈의 2000년 291의 성적을 크게 앞선다. '놀랍다'는 표현으로도 설명하기 부족한 성적이다. 

데드볼 시대와 라이브볼 시대

메이저리그는 몇 차례 극심한 투고타저를 겪었다. 가장 심각한 투고타저는 메이저리그 초창기, 흔히 '데드볼 시대'라 불리는 시기다. 1876년에 내셔널리그로 시작한 당시 메이저리그의 야구 규칙은 지금과 크게 달랐다. 구단주는 돈을 아끼기 위해 야구공을 교체하는 걸 원치 않았고, 공이 완전히 망가지지 않는 한 계속 사용하는 게 규칙이었다. 공의 표면에 진흙을 바르거나, 사포로 흠집을 내서 변화구의 효과를 만들어내는 현대 기준으론 '부정투구'에 해당하는 공을 던져도 관계없었다. 타자가 타격준비를 하기 전에 기습적으로 공을 던지는 것도 전략 중 하나였다.

무엇보다 이 시기에는 홈런의 수가 적었다. 데드볼 시대를 대표하는 타자인 타이러스 레이먼드 '타이' 콥(Tyrus Raymond 'Ty' Cobb)은 통산 타율 0.367인데, 3번의 시즌 동안 4할을 기록했고 19년 연속 3할 타율의 기록을 올렸다. 타이 콥 또한 현대의 기준으로는 다시 나타나는 게 불가능한 선수다. 그는 1909년, 야구 역사상 유일무이한 8관왕에 올랐다. 그러니까 타율, 타점, 출루율, 득점, 장타율, 도루, 안타, 홈런까지 총 8개의 지표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한 것이다.

이때 흥미로운 부분은 그의 홈런 기록이다. 그는 홈런왕을 차지했지만 고작 9개의 홈런밖에 쳐내지 못했다. 이런 홈런 개수는 야구계 '데드볼 시대'에는 일반적인 풍경이었다. '베이스볼 레퍼런스'에서 제공하는 자료에 따르면, 시즌 중 홈런을 단 하나도 내어주지 않은 투수가 87명이나 존재한다. 모두가 데드볼 시대의 투수들이다.

데드볼 시대는 1911년 메이저리그에서 공인구를 통일하고 1920년 부정투구 금지와 한 번 땅에 바운드 된 공을 교체하는 규칙을 도입한 이후 마무리된다. 베이브 루스는 이때 54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축포를 화려하게 쏘아올렸다. 사람들은 1920년 이후의 야구를 데드볼과 대비되는 '라이브볼 시대'라 이름 붙였다. 메이저리그에서 라이브볼 시대의 최고 기록이라 말하는 이유는 데드볼 시대의 야구가 현대 야구와 연속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동일한 기준으로 비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1968년의 투고타저와 밥 깁슨

역대 싱글시즌 방어율 랭킹을 뽑으면, 1위에서 50위 중 단 3명을 제외한 48명의 선수가 데드볼 시대의 선수다. 라이브볼 시대의 투수가 3명이라는 건데, 그들은 누굴까? 바로 1968년 1.123의 방어율을 기록한 밥 깁슨과 1985년 1.529의 방어율을 기록한 드와이트 구든, 그리고 1994년 1.559의 방어율을 기록한 그렉 매덕스다. 류현진이 기록하고 있는 방어율 1.26은 드와이트 구든의 기록을 크게 웃돌고 있고, 밥 깁슨의 바로 아래를 따라붙는 성적이다.

밥 깁슨이 기록한 1.123의 방어율은 데드볼 시대를 포함해도 전체 4위에 해당하는 엄청난 기록이다. 류현진이 만약 지금 방어율로 시즌을 마치게 되면, 그는 라이브볼 시대에는 역대 2위감이다. 데드볼 시대를 포함하면 12위에 랭크되는 성적을 올리게 된다. 이 기록은 사이영상의 주인공인 사이 영의 커리어 하이 기록인 1.264보다 근소하게 앞서는 것이다. 그의 레이스는 라이브볼 시대에 데드볼 투수들을 호출하고 있다.

류현진의 방어율을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보면 더욱 놀라운 게 보인다. 1968년은 라이브볼 시대 최고의 투고타저 시대라 할 수 있다. 메이저리그의 마지막 4할 타자인 테드 윌리엄스는 그의 저서 <타격의 과학>에서 당시의 투고타저가 심판들의 스크라이크 존 확장 때문이었다고 분석한 적이 있다. 당시 메이저리그의 전체 방어율은 2.98이었는데, 이는 라이브볼 시대에 가장 낮은 수치다. 홈런 수가 너무 적어 리그 흥행에 실패할 정도였다. 다음 해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투수의 마운드 높이를 낮춰 의도적으로 타격 수치를 올렸다. 이런 시대에 기록된 방어율 기록을 타고투저 시대에 기록된 방어율과 액면 그대로 비교하는 건 부당하다.

방어율이란 노이즈가 많은 성적이다. 경기 내적으로는 수비와 상호작용이 포함된 수치라는 점, 경기 외적으로는 시대와 구장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한계가 있다. 이 중 수비와 상호작용하는 영역은 야구에 대한 과학적 접근이 고도로 발전한 세이버매트릭스에서도 골치 아픈 문제였다(관련 내용은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주요 내용이 아니라 설명은 생략한다). 하지만 시대의 영향과 구장의 영향은 리그의 평균을 구하고, 그 평균에 비해 해당 투수의 퍼포먼스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살피는 조정방어율(era+)라는 수치로 객관화가 가능하다.

조정방어율은 해당 시즌 투수의 평균 방어율을 100으로 두고, 그보다 좋은 성적을 거두면 점수를 더하는 방식으로 계산된다. 밥 깁슨의 1968년 조정방어율은 258인데, 이는 방어율 기준으로 당대 투수 평균 보다 2.58배 뛰어난 퍼포먼스를 펼쳤다는 것을 뜻한다. 역대 순위로 보면 4위다. 대단한 수치이긴 하지만, 그 위로 2000년의 페드로 마르티네즈와 1994년, 1995년의 그렉 매덕스가 있다. 그가 방어율에서 거둔 성적과 같이 압도적인 성적은 아니다.

조정방어율과 페드로 마르티네즈

이제 조정방어율의 기준으로 다시 메이저리그 역사를 살펴보자. 조정방어율은 당대 선수들과 비교하는 '상대적'인 수치이기 때문에, 데드볼과 라이브볼의 시대 구분의 영향이 비교적 적다. 때문에 역대 방어율 기록은 데드볼 시대의 투수들이 독차지하고 있지만, 조정방어율 기록에는 라이브볼 시대와 데드볼 시대의 투수들이 고루 보인다. 조정방어율 10위권 선수를 살펴봐도 데드볼 시대와 라이브볼 시대의 투수가 사이 좋게 다섯 명씩 차지하고 있다.
 
MLB '명예의 전당' 4명 입성 '경사'  2015년 7월 26일, 미국 뉴욕주 쿠퍼타운의 클라크 스포츠센터에서 2015년 미프로야구(MLB) '명예의 전당'에 새로 입회한 4명이 자신들의 명판을 들고 있다. 

왼쪽부터 '악바리' 타자 크레이그 비지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전성시대를 이끈 우완 존 스몰츠, 왼손 투수 '빅 유닛' 랜디 존슨과 '외계인' 오른손 투수 페드로 마르티네스. 

한꺼번에 4명의 입회자가 탄생하기는 조 디마지오, 개비 하트넷, 테드 라이언스, 데이지 밴스가 뽑힌 1955년 이후 60년 만이다.

▲ MLB '명예의 전당' 4명 입성 '경사' 2015년 7월 26일, 미국 뉴욕주 쿠퍼타운의 클라크 스포츠센터에서 2015년 미프로야구(MLB) '명예의 전당'에 새로 입회한 4명이 자신들의 명판을 들고 있다. 왼쪽부터 '악바리' 타자 크레이그 비지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전성시대를 이끈 우완 존 스몰츠, 왼손 투수 '빅 유닛' 랜디 존슨과 '외계인' 오른손 투수 페드로 마르티네스. 한꺼번에 4명의 입회자가 탄생하기는 조 디마지오, 개비 하트넷, 테드 라이언스, 데이지 밴스가 뽑힌 1955년 이후 60년 만이다. ⓒ AP/연합뉴스

 
이 중 페드로 마르티네즈는 2000년도에 291이라는 조정방어율을 기록했다. 이 기록은 달성 당시에는 데드볼과 라이브볼 시대를 포함하여 최고의 성적이었다. 압도적인 성적이었고, 야구팬들은 그를 '외계인'이라 부를 정도였다. 그가 기록을 달성했을 때만 해도 데드볼 시대와 라이브볼 시대를 합쳤을 때 1위의 조정방어율이었지만, 2011년 팀 키피(Tim Keefe)의 1880년도 기록인 295가 발견되며 2위로 밀리게 되었다.

이 시기 페드로 마르티네즈의 방어율은 1.74였다. 밥 깁슨의 1.123에 비하면 많이 낮은 수준이지만, 당시는 타자들이 역대급 성적을 올리는 타고투저의 시대였다. 2000년대 메이저리그의 리그 전체 평균자책점은 4.77로 밥 깁슨의 시대의 2.98보다 1.79나 높았다. 이 시대 타자들의 경이로운 성적은 훗날 미국 상원 의원인 조지 J. 미첼이 작성한 보고서에 의해 금지 약물 복용 때문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페드로 마르티네즈는 약물의 시대에 독보적인 성적을 올렸기 때문에, 메이저리그의 역사의 최상단에 자신의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뜬공 혁명의 시대와 류현진의 벼랑 끝 달리기

류현진이 기록하고 있는 1.26의 자책점은 라이브볼 시대 기준 2위이지만 현재 조정자책점으로 바꾸면 336으로 라이브볼 시대와 데드볼 시대를 합쳐 1위가 된다. 이는 페드로 마르티네즈의 최고 기록인 291을 넉넉하게 앞서는 기록이다.

현재 메이저리그는 이른바 '뜬공 혁명'이란 현상을 겪고 있다. 야구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활동을 엄밀하게 기록하는 스탯캐스트란 기록 기술이 도입되었고, 확률적으로 득점 가능성이 가장 높은 발사각도와 타구 속도가 객관적으로 증명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결론은 98마일 이상의 공을 26도~30도의 발사각으로 보내는 배럴 타구였다. 타자들의 성적이 전반적으로 향상되며, 2019년 6월 19일 현재 메이저리그의 평균 득점은 4.76에 이르고 있다. 이는 류현진이 처음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2013년 4.17에 비해 크게 높아진 수치다.
 
 류현진(LA 다저스)이 26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 메이저리그(MLB) 피츠버그 파이리츠와의 경기에서 2회에 힘차게 공을 뿌리고 있다.

류현진(LA 다저스) ⓒ AP/연합뉴스

 
류현진은 이 같은 타고투저의 시대 방어율에 적용해보면 밥 깁슨, 조정방어율에서는 페드로 마르티네즈와 경쟁을 하고 있다. 말 그대로 '역대급 질주'다.

방어율은 논쟁적인 지표다. 온전히 투수의 역량으로만 보기에 무리가 있으며, 이 안에서 투수만의 역할을 엄밀히 구획하는 건 현대의 야구이론으로도 아직 불가능하다. 이런 약점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류현진의 지금 페이스는 상식에서 훌쩍 벗어나 있다. 류현진은 지금 충분히 사이영 수준의 기량을 선보이고 있지만, fip나 xwoba와 같이 오직 투수가 통제 가능한 정교한 지표로 들어가면 리그 2위를 기록하고 있다. 메이저리그 전체 역사에 기록될 성적을 올리고 있는 방어율과 다소의 차이가 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류현진이 지금 성적을 시즌 끝까지 유지할 것이라 기대하진 않는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그만큼 지금 류현진의 기록이 상식을 초월하고 있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7이닝에 1실점을 기록한다면 리그 최고의 에이스로 인정받는다. 그런데 류현진이 이런 기록을 올리면 소폭이긴 하지만 방어율이 상승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 게임에 4~5점을 실점하게 된다면, 방어율은 대폭 상승할 수밖에 없다. 5월까지 방어율 1.07을 기록하며 류현진과 경쟁을 한 마이크 소로카는 최근 2경기에서 높은 실점을 하며 방어율이 2.12까지 상승했다. 류현진 또한 언제든 겪을 수 있는 일이다. '투수들의 무덤'이라 불리는 쿠어스 필드에서 류현진은 한 차례도 던지지 않았다. 무덤에서 류현진의 평균 자책점은 7.56이다. 이종범은 4할 타율 달성을 눈 앞에 둔 적이 있었지만, 가벼운 배탈로 컨디션 조절에 실패해 기록을 놓친 적이 있었다. 이동 거리가 넓은 메이저리그에서 가벼운 컨디션 난조는 변수가 아니라 상수다.

이종범과 같이 가벼운 컨디션 난조가 경기력 난조로 이어진 경험이 류현진에게도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우천으로 경기가 연기된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와의 경기에서 미리 몸을 푸는 바람에 컨디션 조절에 어려움을 겪어 대량 실점 위기를 맞기도 했다. 변덕스러운 '야구의 신'은 느닷없이 선수들에게 시련을 내린다. 수비 실책, 시프트의 실패가 언제 어디서 실점으로 이어질지는 예상하기 어렵다. '방어율' 기록은 벼랑 끝 달리기와 같이 아슬아슬한 것이다.

최근 류현진은 14경기 연속으로 2실점 1볼넷 이하라는 메이저 110년 기록을 세우며 질주를 이어가고 있다. 이제부터 류현진의 기록은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는다. 사람들은 그의 경기가 너무 안정적이라 재미 없다며 농담을 하지만, 역사적 레이스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매경기 월드시리즈 7차전을 보는 것과 같이 긴장감이 넘친다. 

당장 다음 경기에 끝나도 이상하지 않을 레이스지만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대단하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야구 팬들은 류현진이 2019년 전반기에 보낸 압도적인 시즌을 기억할 것이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류현진 밥깁슨 페드로마르티네즈 라이브볼 데드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문화와 문화를 통한 사회운동에 관심이 많습니다. 글로써 많은 교류를 하고 싶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