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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산도의 관문 도청항. 잔잔한 물결과 줄지어 선 배를 보노라면 절로 마음이 차분해진다.
 청산도의 관문 도청항. 잔잔한 물결과 줄지어 선 배를 보노라면 절로 마음이 차분해진다.
ⓒ 김광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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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록이 짙어가는 계절. 여름으로 가는 길목에서 우거진 나무 사이로 파고드는 투명한 햇살이 눈부시다. 여행을 충동질하는 마음의 소리가 들린다. 어디로 떠나면 좋을까.

일상의 분주함에서 벗어나 온전한 해방감을 느낄 수 있는, 삶의 쉼표 같은 여행이 간절하다.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저 멀리 남도 끝자락에서 보내오는 손짓을 느낀다.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절로 발걸음이 느려진다는 그곳, 이름마저 싱그러운 청산도로부터.

수려한 경관, 휴식 같은 삶

서울에서 완도행 버스에 올랐다. 완도공용버스터미널에 도착하기까지 다섯 시간이 걸린다. 배를 타기 위해 완도항 여객선터미널로 향한다. 완도항에 크고 작은 배들이 줄줄이 정박해 있다. 너울대는 물결 위로 배의 행렬이 출렁거린다. 뱃전에 부딪히는 잔물결 소리가 고요를 실감케 한다.

완도 선착장에서 50분쯤 배를 타고 가야 청산도에 닿는다. 하늘과 바다, 산이 사시사철 푸르다는 의미로 청산도란 이름을 얻었다. 수려한 자연경관으로 예로부터 청산여수(靑山麗水)라 불렸다. 신선들이 머물 만큼 아름다워 선산(仙山), 선원(仙源)으로 불리기도 했다. 1981년 12월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데 이어 2007년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로 선정됐다.

청산도의 시간은 더디 간다.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 이름도 슬로길이다. 슬로길에는 자연경관과 마을 풍경, 그곳에 사는 주민들의 삶과 문화가 오롯이 녹아 있다. 느리게 살아가는 삶의 미덕을 엿볼 수 있는 곳. 청산도의 슬로건 역시 '삶의 쉼표가 되는 섬, 청산도'다.
   
 청산도 곳곳에서 느림의 미덕을 형상화한 조형물을 볼 수 있다.
 청산도 곳곳에서 느림의 미덕을 형상화한 조형물을 볼 수 있다.
ⓒ 김광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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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의 미덕을 형상화한 조형물도 곳곳에 보인다. 2010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이야기가 있는 생태탐방로'라는 타이틀이 무색하지 않다. 제주올레, 지리산둘레길 등과 더불어 대표적인 걷기 코스로 자리잡은 청산도 슬로길은 2011년 국제슬로시티연맹으로부터 세계 슬로길 1호로 공식 인증됐다.

청산도의 진수를 맛보고자 한다면 천천히 걸어야 한다. 청산도 슬로길은 총 11코스 17개의 길로 구성된다. 전체 구간이 마라톤 풀코스와 같은 42km에 이르기 때문에 하루 일정으로 청산도를 훑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1박2일 일정으로 여행 일정을 잡으면 한결 여유롭다. 
   
 슬로길 1코스을 걷다 보면 나타나는 서편제길과 드라마 <봄의 왈츠> 세트장.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포토존이다.
 슬로길 1코스을 걷다 보면 나타나는 서편제길과 드라마 <봄의 왈츠> 세트장.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포토존이다.
ⓒ 김광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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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에서 내리면 사람들은 자연스레 1코스로 향한다. 슬로길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구간이기도 하다. 부둣가를 벗어나 미항길을 걷다 보면 청산면 복지회관 앞에서 1코스 안내판을 확인할 수 있다.

봄이면 유채꽃과 청보리가 물결치는 당리 언덕길을 오르면 영화 <서편제> 촬영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내려오던 영화 속 인물들의 모습이 길 위에 겹쳐진다.

길 한편에 KBS 2TV 드라마 <봄의 왈츠> 세트장도 눈에 띈다. 동화 속 한 장면을 옮겨 놓은 듯 이층집의 외관이 이채롭다. 아기자기하게 지어진 세트장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자 하는 여행자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청산도 주민들의 생활상을 엿보다
   
 슬로길 6코스에서 볼 수 있는 구들장논. 척박한 땅을 논으로 일군 이곳 주민들의 지혜가 스며 있다.
 슬로길 6코스에서 볼 수 있는 구들장논. 척박한 땅을 논으로 일군 이곳 주민들의 지혜가 스며 있다.
ⓒ 김광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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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들장길에서 돌담길로 이어지는 6코스는 청산도 주민들의 생활상을 만날 수 있어 반갑다. 청산도에서는 독특한 방식의 다랑논(계단식 논)을 볼 수 있다. 청산도는 경사가 급하고 물빠짐이 심해 농사에 적합하지 않다. 그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고안한 것이 구들장논이다.

돌을 겹겹이 쌓고 그 위에 구들장을 놓은 후 흙을 덮어 만든다. 구들장 위에 토양층을 얹으면 물이 잘 빠지지 않아 논으로 쓸 수 있다. 척박한 땅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고자 한 주민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4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것으로 추정되는 청산도 구들장논은 문화·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중요농업유산 제1호로 지정됐으며,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도 등재됐다.
 
 구불구불한 돌담길은 예스러운 정취를 물씬 풍긴다.
 구불구불한 돌담길은 예스러운 정취를 물씬 풍긴다.
ⓒ 김광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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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들장논지대를 지나면 돌담장과 대나무 싸리문으로 둘러싸인 상서리와 동촌리로 접어든다. 예스럽고 소박한 정취가 물씬 풍긴다. 온통 돌담을 두른 마을을 지나는 동안 발걸음은 더욱 느려진다.

2006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상서마을 돌담장은 흙을 사용하지 않고 돌로만 축조했다. 바람이 많은 도서 지방의 환경에 적합한 방식이다. 상서마을은 자연생태우수마을, 국립공원 명품마을로도 지정됐다.
 
 고운 모래사장과 맑은 물, 잔잔한 파도가 인상적인 신흥리 풀등해변.
 고운 모래사장과 맑은 물, 잔잔한 파도가 인상적인 신흥리 풀등해변.
ⓒ 김광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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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허락한다면 목섬으로 이어지는 들국화길 걷기를 권한다. 가을이면 신흥리부터 항도까지 들국화가 활짝 피기 때문에 들국화길로 불린다. 시기가 잘 맞으면 신흥마을 풀등해변에서 썰물 때 넓게 펼쳐지는 모래섬의 진귀한 광경을 보게 된다. 그곳에서 주민들은 조개와 바지락을 캔다. 예능프로그램 <1박2일> 촬영지로 우리에게 더 익숙한 곳이기도 하다.

시간 여유가 많지 않다면 청산도 내 주요 여행지를 오가는 순환버스를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청산도 순환버스는 한 번 티켓을 끊으면 하루 종일 이용 가능하다. 중간에 내렸다가 다시 탈 수 있기 때문에 주요 구간을 편하게 둘러볼 수 있다.

출발점인 도청항에 이르는 미로길도 빼놓을 수 없다. 도청항 뒷골목의 안통길 파시문화거리에는 1930년대부터 1970년 후반까지 번성했던 청산 파시의 옛 문화와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파시는 풍어기에 열리는 생선시장으로 고등어와 삼치가 유명했다. 선술집과 음식점, 다방, 여관 등이 이곳에 머물던 어부와 상인들의 생활상을 짐작하게 한다. 옛 안통길의 번성기는 어디로 증발하고 고요와 적막만이 남았을까.

청산도의 풍경은 정적이다. 직접 보지 않고선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 인적 드문 길을 따라 터벅터벅 걷다 보면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란 무엇인지 터득하게 된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은 조금 다른 감각이 필요하다.

하인리히 뵐은 그의 저서 <아일랜드 일기>에서 "신은 시간을 만들 때 충분히 만들었다"라는 아일랜드 속담을 인용했다. 시간이란 언제나 초연하므로 사용할 시간은 충분하다는 의미다. 청산도에서, 그러한 시간적 감각을 마음껏 누려보는 것은 어떨까.

여행정보
■ 위치: 전남 완도군 청산면(완도여객선터미널에서 청산도 방면 배편 이용)
■ 청산도 순환버스
 -요금: 성인 5천원, 소인 3천원(하루 7회 운영) 
 - 코스:
  도청항(출발)-당리(서편제)-읍리(고인돌)-청계(범바위)-양지(구들논)-상서(돌담길)-신흥(풀등해변)-진산(갯돌해변)-지리(청송해변)-도청항(도착)
■ 문의: 061-552-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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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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