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이번 여행의 두 번째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이다. 포르투갈의 포르투에서 열리는 UEFA 네이션스 리그 결승전을 보기 위해 포르투로 이동했다. 결승전에는 잉글랜드가 올라갈 것이라고 예상했기에 '세 마리 사자(Three Lions,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별칭)'를 챙겨 왔는데, 잉글랜드는 준결승에서 네덜란드에 일격을 당했다. 오늘의 결승은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와 호날두의 홈팀인 포르투갈이다. 어디에선가 호날두 유니폼이라도 살까 했지만, 좋아하는 선수는 아니라 참았다. 
 
포르투 시내의 중앙 광장입니다.  중앙 광장 곳곳에는 오늘의 팬미팅을 위한 스크린이 놓여 있었어요. 오전이라 아직은 사람들이 많지 않았는데, 오후부터는 몰려든 팬들과 교통 통제로 혼란이었어요.

▲ 포르투 시내의 중앙 광장입니다. 중앙 광장 곳곳에는 오늘의 팬미팅을 위한 스크린이 놓여 있었어요. 오전이라 아직은 사람들이 많지 않았는데, 오후부터는 몰려든 팬들과 교통 통제로 혼란이었어요. ⓒ 이창희

   
포트와인 투어에 나섰어요.  강변의 와인창고에서 포트와인 투어에 나섰어요. 창고 투어를 마치고 시음을 위한 와인을 두 종류 시음했어요. 일반 와인보다 달콤한 포트와인은, 달콤함에 솎으면 안되요. 알코올 도수가 일반 와인보다 세 배는 되거든요!

▲ 포트와인 투어에 나섰어요. 강변의 와인창고에서 포트와인 투어에 나섰어요. 창고 투어를 마치고 시음을 위한 와인을 두 종류 시음했어요. 일반 와인보다 달콤한 포트와인은, 달콤함에 솎으면 안되요. 알코올 도수가 일반 와인보다 세 배는 되거든요! ⓒ 이창희

 
결승전 킥오프는 오후 7시 45분이라 여유가 있었기에, 12시부터 진행되는 시티 투어에 참여하기로 했다. 포르투라면 설탕을 추가하여 알코올 도수를 강화한 방식의 포트와인이 유명한 도시이니, 와인 창고에는 들러보고 싶었다. 서둘러서 강변의 와인 창고에 갔더니, 시내의 교통 통제로 돌아갈 차편이 계속 늦어진다. 아직 숙소 체크인도 못했기에 마음이 급하다. 구글맵이 알려주는 대로 시내를 뛰고 또 뛰어야 했다.

간신히 숙소에 짐을 넣어두고 경기장으로 출발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여기저기에서 잉글랜드 유니폼을 챙겨 입은 영국인들을 계속 마주친다. 프리미어리그 팀들끼리 맞붙었던 챔피언스 리그 결승이 열렸던 마드리드에 영국 팬들이 넘친 것은 이해가 되지만, 포르투 시내 중심에서 '우승컵이 우리에게 오고 있어 (It's coming home)'를 부르는 이들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들은 신나게 노래를 불렀고, 언제나처럼 맥주를 마셔댔다. 이들은 무슨 마음일까? 의문은 해결되지 않은 채 경기장으로 향했고, 경기장에서도 의문은 증폭되었다.
 
잉글랜드 청년들이 신나게 응원전을 벌이고 있었어요.  그들이 소리높여 부르는 노래는 '우승컵이 집으로 오고 있어 (It's coming home)'라는 곡이었어요. 오늘 이 곳의 주인공은 절대 잉글랜드가 아닌데, 왜 여기서 이러고 있을까요? 신기했어요.

▲ 잉글랜드 청년들이 신나게 응원전을 벌이고 있었어요. 그들이 소리높여 부르는 노래는 '우승컵이 집으로 오고 있어 (It's coming home)'라는 곡이었어요. 오늘 이 곳의 주인공은 절대 잉글랜드가 아닌데, 왜 여기서 이러고 있을까요? 신기했어요. ⓒ 이창희

 
결승전은 FC 포르투의 홈구장인 '이스타디우 두 드라강 (Estádio do Dragão)'에서 열린다. 경기장은 포르투 중심부의 도루 강변에서 지하철로 15분 정도 걸리는 곳에 있었고, 지하철이 편리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경기 시작 시간에 간신히 맞출 수 있었다. 역시나, 마지막에 뛰어 들어갈 때도 영국인 청년들과 함께였다.

국가대항전의 열광은 클럽대항전과는 전혀 다르다. 클럽팀은 스스로의 선택으로 결정하는 '나의 팀'이지만, 국가라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스스로의 선택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렇기에 같은 나라의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동일 집단'으로써의 응집력을 갖는다. 이번 여행 내내 폴란드에서 열리는 FIFA U-20 남자 월드컵 소식에 몸이 들썩거린 것도, 내가 대한민국 국민이기 때문이지 않겠는가? 
   
호날두의 선축으로 경기는 시작되었어요.  간신히 경기 시작시간에 맞춰서 들어갔어요. 호날두는 아무리 멀리에서 보아도 당당하더라구요. 게다가, 오랜만에 홈으로 돌아온 그에 대한 환호는 엄청났어요. 그런데, 아무리봐도 오렌지색이 아닌 네덜란드는 어색했어요.

▲ 호날두의 선축으로 경기는 시작되었어요. 간신히 경기 시작시간에 맞춰서 들어갔어요. 호날두는 아무리 멀리에서 보아도 당당하더라구요. 게다가, 오랜만에 홈으로 돌아온 그에 대한 환호는 엄청났어요. 그런데, 아무리봐도 오렌지색이 아닌 네덜란드는 어색했어요. ⓒ 이창희

   
홈팀 포르투갈의 응원은 예상보다 적은 응원단과 함께한 네덜란드를 내내 압도했다. 네덜란드의 오렌지 군단이 힘을 써주길 바랐지만, 하늘색의 어색한 유니폼의 네덜란드는 90분 내내 무기력했다. 결국, 결승전은 포르투갈의 승리로 경기는 싱겁게 끝났다. 이날 경기 결과에 따라, 포르투갈의 영웅인 호날두는 개인 통한 29번째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이 경기장 안에는 이들 두 나라만 있지 않았다.
 
원정팀 응원석에 집중해 주세요.  렌지색 유니폼을 입은 네덜란드 응원단 옆으로, 거의 다 포르투갈 응원단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여기저기 붙어있는 잉글랜드 깃발, 찾으셨나요? 한두 개가 아니었어요. 원정팀 응원석을 뒤덮다시피 했더라고요.

▲ 원정팀 응원석에 집중해 주세요. 렌지색 유니폼을 입은 네덜란드 응원단 옆으로, 거의 다 포르투갈 응원단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여기저기 붙어있는 잉글랜드 깃발, 찾으셨나요? 한두 개가 아니었어요. 원정팀 응원석을 뒤덮다시피 했더라고요. ⓒ 이창희

 
경기장 곳곳에는 잉글랜드의 깃발이 부착되어 있었고, 특히, 원정팀의 관중석은 경기의 상대인 네덜란드가 아니라 잉글랜드의 깃발과 응원 플래그로 가득했다. 자국이 참여하지 않는 관중석에 그들의 깃발을 붙이는 잉글랜드 서포터들은 과연 무슨 마음일까, 궁금하다. 자기 팀이 결승에 진출하지 못했음에도 그들은 결승의 경기장을 자국의 응원 도구들로 장식했다. 낮에 시내에서 노래하던 그들만큼이나 이해할 수 없었다.

가끔 외국을 여행할 때, 태권도 도장을 만날 때가 있다. 한글과 그 나라의 언어로 쓰인 간판을 내건 도장에서, 가끔 한국어 구호라도 들리면 어딘가 뿌듯한 마음이 든다. 몇 년 전에 도미니카 공화국에서는, 동네 학교의 학예회에서 현지 사범의 지도하에 태권도 시범이 있었는데, '여기, 한국인 있어요!' 손을 들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들이 우리의 것을 우리의 규칙에 따라 배우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혹시, 그들도 이런 마음일까?
 
결승전의 주인공은 포르투갈입니다! 역시, 국가 대항전의 열광은 상상을 초월해요. 우리가 국가를 선택하지는 않았더라도, 국가가 주는 소속감을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요. 축하합니다, 포르투갈.

▲ 결승전의 주인공은 포르투갈입니다! 역시, 국가 대항전의 열광은 상상을 초월해요. 우리가 국가를 선택하지는 않았더라도, 국가가 주는 소속감을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요. 축하합니다, 포르투갈. ⓒ 이창희

 
잉글랜드는 축구를 만들어낸 나라이다. 물론 잉글랜드에서 만든 스포츠가 축구뿐만은 아니지만, 잉글랜드 사람에게 축구는 '우리의 것'이라는 자부심의 대상인 모양이다. 내가 외국에서 '태권도'를 반기는 이유처럼 말이다. 이것이 아니라면 그들이 자신들의 잔치도 아닌 이곳에서, 이렇게 열광을 보이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

잉글랜드 사람들에게 축구란, 그것이 어디에서 벌어지는 어떤 대회이든 '우리 것'인가 보다. 그렇기에 그들은, 세계의 어디에서 벌어지는 대회이든 곧잘 무리를 지어 등장해서는, 그곳을 그들의 '집(Home, 축구에서 홈은 매우 중요하다)'인 듯 즐긴다. 축구팬으로서, 그들의 자부심이 부럽다. 오늘의 승리는 홈팀인 포르투갈이었지만, 나에겐 잉글랜드의 축구팬들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포르투의 야경입니다.  포르투는 도루강 주변으로 여섯개의 다리가 보여주는 야경이 무척이나 유명해요. 숙소에 돌아가는 도중, '루이스 1세 다리' 근처의 눈부신 야경 아래에서 잠시 오늘의 실수를 돌아았습니다. 이제 여행도 막바지를 향하고 있어요.

▲ 포르투의 야경입니다. 포르투는 도루강 주변으로 여섯개의 다리가 보여주는 야경이 무척이나 유명해요. 숙소에 돌아가는 도중, '루이스 1세 다리' 근처의 눈부신 야경 아래에서 잠시 오늘의 실수를 돌아았습니다. 이제 여행도 막바지를 향하고 있어요. ⓒ 이창희

 
경기장에서 돌아오는 길, 도루 강가의 유명한 야경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포르투를 여유롭게 돌아보려는 계획이 모두 망가져버려 속상한 하루였지만, 여행 중이니 너그러워져야겠지? 이제 이런 여유로움도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 아쉬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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