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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에서의 첫날이다. 오늘부터는 차를 빌려서 포르투갈 북쪽으로 이동하는 날이다. 6월 9일의 UEFA 네이션스 리그 결승전을 위해서 포르투에 도착해야 하니, 그 사이에 도중에 있는 도시들을 들러보기로 한다.

첫 번째 경유지는 수도인 리스본 근처의 '신트라'이다. 여행 블로그의 정보에 따르면, 신트라에는 그림 같은 페나 궁의 풍경이 있었고, 유럽인들이 오랫동안 '땅끝'이라고 믿었던 호까 곶까지는 30분 거리이다. 오늘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호까 곶에서 지는 태양을 바라보는 것이다.
 
후진 기어를 넣기 위해서는, 기어봉을 아래로 눌렀다가 맨 왼쪽 위로 올려야 했습니다. 이걸 찾지 못해서, 출발을 못 하는 줄 알았어요. 그래도, 최신 버전의 새차라서 편하게 사용했네요.
▲ 처음 만나는 후진 기어입니다! 후진 기어를 넣기 위해서는, 기어봉을 아래로 눌렀다가 맨 왼쪽 위로 올려야 했습니다. 이걸 찾지 못해서, 출발을 못 하는 줄 알았어요. 그래도, 최신 버전의 새차라서 편하게 사용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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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로의 호스텔에서 렌터카 사무실까지는 우버를 이용했고, 새로 받은 차는 후진 기어를 넣는 게 특이했던 검은색 차였다. 스페인에서 빌렸던 차에 비해 크기가 커서 골목길을 운전할 날이 걱정되었지만, 새 차만이 갖는 편의 기능들은 매력적이었다. 게다가, 차에 우리의 하이패스랑 동일한 장치까지 붙어있는 것을 보니, 돈을 내는 유료도로도 있는 모양이다. 우리나라 도로 시스템이랑 비슷한 것처럼 느껴져서 편안해진다.

이번에 예약한 숙소는 B&B (Bed and Breakfast)였기 때문에 집주인과 약속시간을 정해서 만나기로 했다. 크기가 크지는 않았지만, 너무나 깨끗하고 예쁜 집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해가 내리쬐는 파티오에 앉아서 잠시 쉬어도 좋겠다고 생각하던 중이었는데, 주인장이 지도를 들고 왔다.

"혹시, 어디를 가야 할지 알아? 아니면, 동네에 대해 잠시 설명해 줄까?"
"좋아. 나는 호까 곶에 해가 지는 것을 보러 가는 것만 빼고는 따로 계획이 없어."
"요즘엔 8시 반쯤 해가 지니까, 호까 곶은 8시쯤 출발하면 되겠네. 그전에는 신트라 중심부의 관광지를 몇 군데 들러보는 게 어때?"


신트라는 리스본에서 3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관광지이다. 무어인들이 지었다는 무어인의 성과 장난감처럼 예쁜 페나 궁, 신트라 궁전을 자랑하는 아름다운 도시이다. 지역이 전체적으로 높은 산과 초록의 숲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졌다.
 
신트라 궁전과 무어인의 성, 페나 궁을 한꺼번에 예매했습니다. 그런데, 매표소의 직원이, 시간에 여유가 없다면서, '이걸 다 볼 수 있겠냐'는 얼굴로 쳐다보네요.
▲ 세 곳을 한꺼번에 예매하면 할인해 준다고 해서! 신트라 궁전과 무어인의 성, 페나 궁을 한꺼번에 예매했습니다. 그런데, 매표소의 직원이, 시간에 여유가 없다면서, "이걸 다 볼 수 있겠냐"는 얼굴로 쳐다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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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오늘 몇 군데나 들러볼 수 있을까?"

입장권 여러 개 같이 구입하면 할인을 해 준다고 하길래 티켓 오피스 직원에게 물었다. 직원은 세 군데 신트라 궁전, 페나 궁, 무어인의 성을 돌아보라면서 '행운을 빌어'라고 응원한다. 부지런히 신트라 궁전의 내부를 관람한 후, 사세티(Sassetti)라는 오솔길을 따라 40분쯤 산길을 올라가니, 페나 궁이 있는 페나 공원이 눈앞에 나타났다.
 
놀이공원의 성들보다 더 비현실적인 성이었어요. 어찌나 알록달록한 원색의 향연인지! 그런데, 이 곳에서 포르투갈의 마지막 왕이 실제로 집무를 봤다고 하네요. 정말 예뻤어요!
▲ 와! 정말 장난감처럼 예쁜 페나 성이예요.  놀이공원의 성들보다 더 비현실적인 성이었어요. 어찌나 알록달록한 원색의 향연인지! 그런데, 이 곳에서 포르투갈의 마지막 왕이 실제로 집무를 봤다고 하네요. 정말 예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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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공원에서도 만나기 힘든, 정말 장난감처럼 예쁜 성이었다. 시간의 여유만 있다면 좀 더 공원 안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내려오는 길에 들렀던 무어인의 성에는 이슬람어로 '신트라'라고 쓰인 깃발이 날리고 있었고, 멀리로 대서양의 바다가 보였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호까 곶에 가야겠다.
 
아프리카의 북부에서 이베리아 반도로 건너와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곳곳에서 번성했던, 무어인의 흔적이네요. 기념품 판매점에 물어보니, 녹색으로 펄럭이는 깃발에는 아랍어로 '신트라'라고 쓰여 있다고 해요.
▲ 무어인의 성이예요.  아프리카의 북부에서 이베리아 반도로 건너와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곳곳에서 번성했던, 무어인의 흔적이네요. 기념품 판매점에 물어보니, 녹색으로 펄럭이는 깃발에는 아랍어로 "신트라"라고 쓰여 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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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까 곶은 오랫동안 유럽인이 대륙의 끝이라고 믿었던 곳이다. 그들에게 대륙이란 유럽이었고, 그 대륙의 끝을 벗어나기 위한 위대한 항해는 이 바다에서 시작되었다. 그들에게 열린 바다가 가져다준 기회는 세계를 확장시켰고, 세계의 역사를 또 다른 장으로 옮겨 놓았다. 오늘 이 바다에서 지는 태양을 바라보는 마음이, 복잡하고 안타깝다.
 
유럽인이 땅끝이라고 믿었던 그 땅에, 하루를 마감하는 햇살이 내리쬐며 황금색으로 물들이고 있습니다. 멀리로 보이는 것이 '곰의 해변'인데요, 주인장이 직접 가보라고 했는데, 이렇게밖에 못 보았네요.
▲ 호까 곶에 해가 지고 있어요.  유럽인이 땅끝이라고 믿었던 그 땅에, 하루를 마감하는 햇살이 내리쬐며 황금색으로 물들이고 있습니다. 멀리로 보이는 것이 "곰의 해변"인데요, 주인장이 직접 가보라고 했는데, 이렇게밖에 못 보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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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끝이 보여주던 광활한 바다는 그들의 새로운 도전의 대상이었어요. 그 바다를 통해 연결된 우리가 보였고, 우리에게까지 전달되었던 그들의 감자가 떠올랐어요.
▲ 호까 곶에 해가 졌고, 초승달이 떠올랐어요.  땅 끝이 보여주던 광활한 바다는 그들의 새로운 도전의 대상이었어요. 그 바다를 통해 연결된 우리가 보였고, 우리에게까지 전달되었던 그들의 감자가 떠올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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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까 곶에 바람이 몰아쳤다. 해가 지는 것을 지켜보는 동안 기온도 많이 떨어졌다. 문득, 지난번 엄마를 모시고 들렀던 오키나와의 코끼리 바위 '만좌모'가 떠올랐다. 그 먼바다를 건너 조선에 도착했던 포르투갈의 선원들은 우리에게 감자를 건넸을 것이고, 경쟁적으로 벌이던 그들의 탐험으로 우리의 역사도 크게 요동쳤다. 우리는 결국 고립된 조선의 반도가 아니라, 전 세계의 일부이다. 지금의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출국하면서 인천공항에 억류되어 있는 루렌도 가족을 지나쳤다. 그들은 7개월째 공항에서 '살고' 있다. 우리가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의자를 몇 개 붙여놓은 피난처 뿐이라는 것이 슬펐다. 국가 간의 문제는 단순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바다를 통해 연결된 우리는 서로에게 어떻게든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존재 아닌가? 해가 졌다. 호까 곶의 십자가 위로 초승달이 떠올랐다. 슬프도록 아름다운 색이었다.
 
노을이 신비한 분홍 빛으로 하늘을 덮자, 등대의 빛이 밝게 비추기 시작했어요. 땅 끝의 등대가 거친 바다와 싸우고 있던 선원에게 전한 것은, 희망이었겠죠?
▲ 해가 진 바다를 밝히는 것은 등대입니다.  노을이 신비한 분홍 빛으로 하늘을 덮자, 등대의 빛이 밝게 비추기 시작했어요. 땅 끝의 등대가 거친 바다와 싸우고 있던 선원에게 전한 것은, 희망이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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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이베리아반도 방랑기, #포르투갈, #호까 곶, #신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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