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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무씨와 상추씨. 열무씨(왼쪽)는 며칠 전에 구입했고, 상추씨(오른쪽)는 몇년 전에 구입했다. 몇년 전에 구입해 보관하며 탈색되어 상추씨 일부만 붉은 색을 띠고 있다. 자연 상태의 열무 씨는 갈색 계열이다. 씨앗들을 물들인 것은 살충제라고 한다.
 열무씨와 상추씨. 열무씨(왼쪽)는 며칠 전에 구입했고, 상추씨(오른쪽)는 몇년 전에 구입했다. 몇년 전에 구입해 보관하며 탈색되어 상추씨 일부만 붉은 색을 띠고 있다. 자연 상태의 열무 씨는 갈색 계열이다. 씨앗들을 물들인 것은 살충제라고 한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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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시중에서 사서 뿌리는 열무나 상추 같은 채소 씨앗들은 붉은색이나 푸른색, 혹은 형광색 등 여러 가지 색깔로 코팅되어 있다. 종묘회사들이 씨앗들이 불량으로 변질되지 않게 하고자, 그리고 벌레에게 먹히지 않게 하고자 살충제로 코팅했기 때문이다.

흔히 채소는 건강에 좋은 먹거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처럼 살충제로 코팅된 씨앗들을 키워 얻은 채소들이 과연 몸에 좋기만 할까? 생각해 볼 일이다.

게다가 씁쓸한 것은 한번 수확으로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사실이다. 종묘회사들이 해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팔아먹고자 유전자를 조작해 만든 씨앗(씨앗을 받을 수 없도록 만든 F1종자나 불임 종자)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씨앗 값이 갈수록 오르고 있다고 한다. '금값보다 비싼 씨앗'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로 이미 비싼데도 말이다. 그럼에도 농부들은 해마다 사서 심고 있다. 받아 뿌릴 토종씨앗들이 이제는 거의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는 오늘날 우리 농부(촌)들이 처한 현실이자, 우리 모두가 알고 있어야 하는 우리 먹거리의 현실이다.

이에 사람들이 뜻을 모았다. '예전 농부들처럼 우리도 씨앗을 받아 심는 농사를 짓자. 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농사를 짓게 하자. 예전 농부들처럼 씨앗을 받아 농사를 짓고, 그런 씨앗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 우리 토종 씨앗들을 모아보자. 그리하여 씨앗을 늘려 필요한 사람들과 나눠 심자라고.

도서관에선 일정기간 책을 빌려준 후 되돌려 받는다. 이에 착안, 일정의 씨앗을 빌려 준 후 그 씨앗으로 농사 지은 것 일부를 돌려받는 씨앗 도서관들이 최근 생겨나고 있다.
 
<우리 동네 씨앗 도서관> 책표지.
 <우리 동네 씨앗 도서관> 책표지.
ⓒ 들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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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씨앗 도서관>(들녘 펴냄)은 그중 한 곳인 '홍성 씨앗 도서관'이 저자다. 씨앗 도서관 건립과 그를 위한 씨앗 채집과 채종(씨앗 받기) 과정 등을 기록했다.
 
아주머니께 맛의 차이가 뭐냐고 물었더니 "유월태가 더 고소하고, 수량도 많다"고 하셨다. 어디서 나셨냐고 여쭈었더니, 시집올 때 친정어머니가 챙겨주신 것이라 하셨다. "그럼 친정어머니는 언제부터 키우셨을까요?"하고 여쭈었더니 "울 어머니도 아마 친정어머니한테 받으셨겠지. 아니면 친정어머니도 나처럼 시집오실 때 가져오지 않았을까"라고 대답하셨다.

그렇다면 지금 아주머니가 가지고 계신 씨앗의 역사는 도대체 얼마나 되는 걸까? 짐작을 거듭하다보니, 우리가 건네받은 이 씨앗이 어쩌면 몇 백 년의 역사를 가진 것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아니, 몇 천 년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 그럴 수밖에 없다. 어머니의 어머니가, 그리고 그 어머니의 어머니 손을 통해 지금 우리들 손에까지 대물림된 것이다.

"아주머니, 어떻게 시집올 때 씨앗을 가져오실 생각을 하셨어요?"하고 물었더니 대답을 들려주셨다. "친정어머니가 챙겨주니까 가져왔지! 지금이야 딸 시집보내면 혼수로 텔레비전이나 냉장고 장만해주지만 옛날에는 두 짝짜리 장농에 한복 한 벌, 씨앗 보따리가 전부였어. 그걸 지게에 지고 가야 하니까 농도 크면 안 되고 문이 두 짝인 작은 농으로 충분했던 거지. 그리고 60년 전만 해도 주변이 다 농사를 지었잖아. 그러니 시집가서도 농사지으려니 하고 씨앗을 혼수로 준거여. 지금 사람들은 이런 말 하면 잘 알아먹기나 하나? 그저 다 옛날 말이지"- 122~123쪽
 
가장 흥미롭게 읽은 '씨앗 마실 인터뷰(2부 5~6장)' 일부분이다. 홍성 씨앗 도서관은 2015년 2월에 개관했다. 앞선 2014년부터 도서관 건립의 기초가 되는 씨앗들을 찾아 오랫동안 농사를 짓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 씨앗을 얻는 한편 이처럼 씨앗에 얽힌 사연을 들었다.

어떻게 갖게 된 씨앗인지부터 언제 심어야 하는지, 그리고 보관은 어떻게 해야 하고, 어떤 음식들을 해먹으면 좋은지 등 수십 년째 함께 해온 씨앗에 얽힌 저마다의 사연들을 말이다. 그런데 위 인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시집 올 때 친정어머니가 챙겨주신 씨앗 보따리", 즉 혼수로 가져온 것들이 대부분이다.

지난날 농부들에게 씨앗의 존재가 어땠는지를 극명하게 들려주고 있어서 되풀이되는 뭉클함으로 읽었다. '씨앗 한 알이 없어지는 것은 그 씨앗을 심고 가꿨던 사람들의 존재를, 그리고 문화나 풍습, 역사까지 사라지게 하는 것이구나. 토종씨앗이 대물림되어야 하는 진짜 이유는 우리의 삶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가뭄과 더위가 유난했던 지난해(2018년) 몇알을 뿌려 얻은 토종 콩 3종이다. 점박이 콩이 '선비잡이'. 과거를 보러 가던 한 선비가 주막에 잠시 머물렀는데 콩밥이 너무 맛있어서 더 머무르게 되고, 그래서 선비잡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우리와 오래 함께 해온 종자 하나가 사라지는 것은 그 종자와 함께 해온 사람들의 존재 자체와 역사, 문화, 풍습 등이 함께 사라지는 것이다. 종자 보존이 중요한 이유, 그 하나다.
 가뭄과 더위가 유난했던 지난해(2018년) 몇알을 뿌려 얻은 토종 콩 3종이다. 점박이 콩이 "선비잡이". 과거를 보러 가던 한 선비가 주막에 잠시 머물렀는데 콩밥이 너무 맛있어서 더 머무르게 되고, 그래서 선비잡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우리와 오래 함께 해온 종자 하나가 사라지는 것은 그 종자와 함께 해온 사람들의 존재 자체와 역사, 문화, 풍습 등이 함께 사라지는 것이다. 종자 보존이 중요한 이유, 그 하나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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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GMO가 상용화되고 있지 않다고 하지만, 매년 100여 종 이상이 넘는 GMO를 수입하여 공장에서 대량생산하는 가공식품의 형태로 유통되고 있고, 제대로 된 안전성 검사를 거치지 않은 채로 정부의 산하기관인 농촌진흥청은 세계 최초로 주식인 쌀을 GMO로 만들어 상용화 시키려고 하고 있다. - 224~225쪽
 
책은 모두 3부로 되어 있다. 1·2부에서 씨앗도서관의 존재 이유와 하는 일 등을 들려주는 것으로 씨앗의 중요함을 이야기한 책은 3부에서 다른 나라들의 씨앗 관련 다양한 활동을 소개한다. 우리보다 먼저 토종씨앗의 중요함을 인식하고 관련 활동을 안정적으로 해오고 있는 외국의 사례들은 우리의 씨앗 지킴이들에게 좋은 힌트가 될 것이다.

홍성 씨앗 도서관 팀이 관련 기록들을 이처럼 책으로 엮은 또 다른 이유는 씨앗 혹은 종자 사정은 더 이상 농사를 짓는 사람들만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한 살충제로 코팅된 씨앗들은 씨앗들이 뿌려진 땅까지 오염시킨다. 물의 근원이기도 한 땅들을 말이다. 농사와 상관없는 사람들도 홍성 씨앗 도서관의 이러한 기록에 관심 둬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홍성 씨앗 도서관에 박수를 보낸다.

우리 동네 씨앗 도서관

홍성 씨앗 도서관 (지은이), 들녘(2019)


태그:#홍성 씨앗 도서관, #토종 씨앗(토종 종자), #GMO, #종자주권, #우리 동네 씨앗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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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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