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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이조벨 17년 전, 건장한 사내에게 목덜미를 잡혀 으슥한 골목으로 끌려간 소녀 이조벨은 처참히 살해된다. 아무도 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 이유는 유령이기 때문이다.
▲ 주인공 이조벨 17년 전, 건장한 사내에게 목덜미를 잡혀 으슥한 골목으로 끌려간 소녀 이조벨은 처참히 살해된다. 아무도 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 이유는 유령이기 때문이다.
ⓒ 공상집단 뚱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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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머리를 감싼 채 웅크리고 앉아 있다. 겁에 질려 길을 잃었는지 이내 집을 찾아 나선다. 주위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소리쳐 보지만 사람들은 본채 만채 한다. 17년 전, 건장한 사내에게 목덜미를 잡혀 으슥한 골목으로 끌려간 소녀는 처참히 살해된다.  아무도 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 이유는 유령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죽은 줄 모르고 집으로 데려다줄 구세주를 찾기 위해 동네를 떠돌아다닌다. 그 과정에서 평범하게 사는 줄 알았던 마을 사람들의 속내엔 저마다 고통과 아픔이 숨겨 있었다. 

평범한 두 아이의 엄마는 대놓고 바람을 피우는 남편 때문에 속상해한다. 상대 여성은 대놓고 남자의 육체를 사랑했노라 고백한다. 여자는 남자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자존심도 철저히 내려놓은 채. 그래도 돌아오지 않은 남자때문에 괴로워하는 그녀에게 사람들은 손가락질한다. 이뿐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설탕을 먹였다는 이유로 학부모로부터 구박과 질타를 당하는 선생, 동성을 사랑하게 된 성수수자, 그리고 암으로 살날이 며칠 남지 않아 좌절에 휩싸인 여자, 17년 전 소녀를 처참히 목 졸려 죽인 살인마까지. 

"비극의 종합세트"
 
 여자는 남자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자존심도 철저히 내려놓은 채. 그래도 돌아오지 않은 남자때문에 괴로워하는 그녀에게 사람들은 손가락질한다.
 여자는 남자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자존심도 철저히 내려놓은 채. 그래도 돌아오지 않은 남자때문에 괴로워하는 그녀에게 사람들은 손가락질한다.
ⓒ 공상집단 뚱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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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다양한 종류의 불행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지난 7일에 막올라 오는 22일까지 마포아트센터 3층 플레이맥에서 공연하는 <거리의 사자>(문삼화 연출)는 앞선 인물들처럼 온갖 종류의 괴로움을 떠안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작품을 이끈 문 연출자는 이를 '비극의 종합세트'라 불렀다. 연극은 캐나다의 대표적인 소설가 '쥬디스 톰슨(Judith Thompson
)'의 대표작을 토대로 완성됐다. 당초 다양한 문화가 뒤섞여 사는 캐나다의 현실을 반영한 '거리의 사자'는 번역자 문삼화의 손길로 한국적 정서가 가미됐다. 17년 전에 살해당한 채 마을을 떠돌아다니는 주인공 '이조벨'의 여정을 큰 줄기로 공간이 변할 때마다 앞선 불행자들의 다양한 에피소드가 이어진다. 

"삶의 이면에 숨겨진 아픔과 고통, 불편한 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인물들의 '오디세이아'라고 볼 수 있다."

작품은 '거리의 사자'라는 제목에 맞게 굶주린 사자의 모습을 포스터에 담았다. 이는 우리의 슬픈 단상을 낱낱이 공개하려는 의도다. 등장인물이 사는 도시엔 유색인종, 이민자, 장애인, 동성애자, 범죄자 등 소외된 자들이 무대를 가득 채운다. 여기엔 소통이 단절된 채 다양성을 포용하지 못하는 현실을 꼬집고 있다. 캐나다의 소설을 바탕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한국 사회를 이야기하는 연극이 전혀 이질적이지 않은 이유는 같은 문제를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리의 사자>는 연극의 아이콘인 대학로를 벗어나 마포구의 지역 공연장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는 마포문화재단의 상주예술단체로 활동하고 있는 '공상집단 뚱딴지'의 작품이다. 단체의 대표인 문삼화 연출은 지금부터 10년 전쯤, 자신의 스승이었던 유인촌 전 문화체육부 장관의 극단 유에서 독립했다. 당시 무대에 올렸던 초연이 10년 만에 마포에서 재공연을 확정한 것이다. 여기엔 극단의 이름에 걸맞은 특징을 보여준다. 일상과는 다른 '뚱딴지다움'이라고 할까. 배우들의 딕션(발음)은 마치 대사를 내뱉는 것이 아니라 객석을 메운 곽객을 무대 안으로 빨리게 하려는 것처럼 정교해 보인다. 여기엔 문 연출만의 뚱딴지같은 비법이 숨겨있다. 

'연극의 꽃은 배우입니다."

문 연출은 그 비법을 공개해달라 부탁하자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거리의 사자>를 연습하면서 배우들에게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개막 전날까지 대본을 자기 것으로 만들라!"고 주문했단다. 자기 몸에서 자연스럽게 내뱉는 대사만이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뜻이다. 초연과 지금 작품이 어떻게 다르냐 물으니, "테이블에 앉아 대본을 보며 진행하는 평론가적 분석을 지양했다."고 대답했다. 실제와 다르게 책상 앞에서 펼쳐지는 평론가적 분석은 무대 위에서 관객과 접하는 배우들의 해석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에서. 이처럼 문 연출은 배우의 역할을 재차 강조했다. 이처럼 일반적인 연극의 제작과정에서 벗어난 엉뚱함은 그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보인다.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온갖 종류의 소외된 자들은 저마다의 죽음으로 귀결된다. 원작가 쥬디스 톰슨은 "사회가 부정하고 있는 음울한 것들, 보이지 않는 것들. 덮여 있는 모든 것들을 들춰내고 싶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앞서 비극의 종합선물세트라 불렀던 연극을 두고 누군가는 불편하다고 말할 것이다. 지금 연일 매진 행진을 가속하고 있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보면서 일부 관객들이 호소하는 불편함과 비슷하다고 할까.  

필자는 지난 5월 10일 대학로에 있는 서울연극센터에서 한 언론사에 게재될 기사를 위해 문삼화 연출자를 인터뷰했다. 연극을 전공으로 하지 않고 일반 직장 생활을 하다가 무작정 떠난 유학길, 여기서 부딪힌 번역의 중요성 등을 통해 '공상집단 뚱딴지'의 엉뚱함이 무엇이며, 이것을 어떻게 작품 속에 녹여냈는지 엿볼 수 있었다. 다음은 해당 기사에서 담지 못했던 뒷 이야기를 덧붙여 본다.  

"그래도 우리는 살아야 한다"
 
 아이들에게 설탕이 든 과자를 줬다는 이유로 학부모(오른쪽)로부터 구박과 질타를 당하는 선생(왼쪽)
 아이들에게 설탕이 든 과자를 줬다는 이유로 학부모(오른쪽)로부터 구박과 질타를 당하는 선생(왼쪽)
ⓒ 공상집단 뚱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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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작품을 직접 번역했다. 유학 생활에서 터득한 '자연스러운 번역'이란 무엇인가?
"주인공 소녀가 포르투갈 사투리를 쓰는 것을 과감하게 버렸다. 있어 봤자 도움이 안 될 것들이다. 다인종이나 다문화는 가능한데 말도 안 되는 직역이 그렇다. 가령 문화적으로 낯설게 하는 것은 다 걷어내자는 생각이었다. 나의 번역은 연극을 알고 무대를 아는 번역이다. 영문학자의 그것이 의미 전달에는 적합하겠지만 공연을 하는데는 다소 어려움이 있다. 당초 번역에 뜻을 품고 시작한게 아니라 답답해서 그랬다. 다소 은어가 많은 것이 실생활에 가깝다고 할까." 

- 어떤 연극을 제작하고 싶은가?
"예전에는 어려운 연극을 좋아했다. 단순히 어려워야 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내가 '예술'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10년 전에 최고로 그랬었는데 이제는 많이 변했다. 지금은 쉬운 연극을 추구한다. 단 관객에게 무조건 맞추겠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똑같은 작품을 어떻게 풀어낼지가 관건이다."

- 작품과 단체에 대해서 설명해달라.
"연극 <거리의 사자>는 극단 공상집단 뚱딴지의 재연작이다. 2009년 초연된 '거리의 사자'가 2019년에는 공연장상주단체육성지원사업에 선정되어 '공상집단 뚱딴지가 연극이 있는 마포를 만들어간다'라는 모토로 제작됐다. 이는 연극 저변을 확대하고 시민에게 양질의 공연을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다. 지역주민에게 가까이 접근하기 위해 마포아트센터와 공상집단 뚱딴지의 합작품이다.

초연엔 소외된 자들의 삶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섬세하게 그렸다면, 이번엔 인간의 본질적 문제와 소통의 단절에 접근했다. 그것이 짧으면서도 강렬한, 깊은 여운이 남는 공연이라는 평을 받았다. 진실과 거짓, 삶과 죽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작품, 관객의 감성을 더욱 깊게 만들어 줄 작품이라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 폭력의 파국으로 끝나는 비극인가? 이런 실험작을 시도하는 이유는?
"이미 벌어지거나 벌어지고 있는 비극을 모아놓은 것이다. 종합세트처럼. 연극의 마지막에 던지는 대사가 주제다. 최근 시상식에서 했던 어느 배우의 대사가 떠오른다. '좋은 날도 있었고 나쁜 날도 있었고, 당신의 삶을 사세요.' 온갖 비극적인 사건들의 종합세트. 이 연극이 약간 판타지,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위태롭게 걷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래도 우리는 살아야하지 않겠나?"
 
연출가 문삼화는?
문삼화는 극단 유(1999~2009)에서 연극을 시작했으며, 현재는 '공상집단 뚱딴지'의 대표이며 서울연극협회 부회장과, 연극 연출가로 활동 중이다. 한국 연극 베스트7(2013), 제16회 김상열연극상(2014)과 올해의 연출가상(2017)을 받았다. 주요 작품으로는 <사마귀> <일곱집매> <라이방>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 <지상 최후의 농담> <바람직한 청소년> <안녕, 아라발!> <애니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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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전문 시사 월간지 <문화+서울>의 편집장으로 매주마다 한겨레 신문에 '주간추천 전시와 공연', '사람in예술' 코너에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https://bit.ly/2M2J5y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