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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 혼술... 더이상 1인 가구 이야기가 아닙니다. 혼술하는 중년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편집자말]
나는 혼술을 좋아한다. 그냥 좋아만 하는 정도가 아니다. 이른바 프로 혼술러(혼술+er)다. 10년 가까이 됐으니 경력은 충분하다. 그 정도 퍼마셨으면 몸 어디가 망가졌거나, 사회 생활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야 할 텐데, 다행히도 아직까진 그런 일도 없다.

50대 중반이지만 간수치도 정상이고 당뇨, 혈압 같은 성인병도 없다. 술 때문에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든지 일을 나가지 못한 경우도 없다. 나는 지금까지 그런대로 적정선을 잘 지켜 왔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스스로 설정한 금도를 지키려 애써왔다. 그래서 감히 프로를 자처하는 거다.

프로혼술러의 시작
 
 혼술과 음악과 눈물. 그 절묘한 삼위일체가 나를 구원했다.
 혼술과 음악과 눈물. 그 절묘한 삼위일체가 나를 구원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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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혼술의 시작은 전혀 자의적인 게 아니었다. 그때의 상황과 환경이 나를 그리 만들었다. 잘 다니던 회사가 느닷없이 M&A를 당했을 때였다. 점령군들은 나를 적폐 1호로 찍고 동원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쫓아내려 했다. 하지만 난 그렇게 쫓겨날 수는 없었다. 

그 회사는 내 분신과도 같았다. 게다가 나는 정년이 보장되는 정규직이었다. 잘릴 이유가 없었다. 오기와 깡으로 버텼다. 매일매일 치열한 전투였다.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밥맛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런데 식전에 소주를 한 잔 마시면 그나마 몇 숟갈 뜰 수 있었다. 2홉들이 한 병 정도면 겨우 잠은 들었다. 매일 저녁을 그렇게 했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이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아무 생각 없이 TV를 켜 놓고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소리를 잔뜩 죽여 놨는데, 화면에 좋아하는 가수가 나왔다. 반가운 마음에 볼륨을 높였다. 그런데 그는 제 노래가 아닌 다른 사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원곡을 정교하게 편곡해 전혀 다른 노래처럼 들렸다.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이었다.

화면 아래쪽엔 부르는 노래의 가사가 떴다. 평소엔 그냥 흘려들었던, 그래서 그 의미를 잘 몰랐던 노래 가사가 한 자, 한 자 눈으로 들어와 뇌리에 박혔다. 찬찬히 노래를 들으며 가사를 음미했다.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노래도 노래려니와 가사가 그냥 내 얘기였다. 노래가 절정으로 갈수록, 가사를 읽으면 읽을수록 눈물은 걷잡을 수 없었다. 처음엔 그냥 눈물만 흐르던 것이 점차 오열로 바뀌었다. 그러다 종국엔 통곡이 됐다. 가슴을 쥐어뜯으며 엉엉 소리 내 울었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서도 눈물은 쉬 그치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더 울었다. 눈물이 말라갈 즈음 갑자기 머릿속이 환해졌다. 마치 일순에 안개가 걷히는 것 같았다. 말 그대로 명징(明澄)해졌다. 눈동자를 덮고 있던 반투명 껍데기도 사라졌다. 시야가 밝아졌다. 더 없이 상쾌했다. 일찍이 느껴 보지 못한 궁극의 쾌감이었다. 사지가 찌릿찌릿 저려왔다.

그러니까 그건 일종의 카타르시스였다. 비극의 주인공을 보며 강한 연민의 감정과 함께 느끼게 되는 정신적 순화작용이라는 그것 말이다. 연극은 아니었지만 술로 감정을 고조시키고 음악으로 그것을 폭발시켜 눈물과 함께 몸 안의 나쁜 기운을 몽땅 토해 낸 것이다.

그것은 마치 4단계로 움직이는 자동차의 엔진과도 같았다. 감정의 찌꺼기들이 빠져나간 자리엔 용기, 투지, 희망과 같은 새로운 에너지로 충만했다. 나는 그렇게 중무장하고 다시 전장으로 나가 맹렬하게 싸웠다.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위축되지도 않고 정면 승부했다. 한층 강력해진 전투력에 오히려 적들이 당황해 했다. 그렇게 끝까지 버텼다.

충분히 명분과 실리를 챙겼다는 생각이 들 즈음 나는 스스로 사의를 표명했다. 나는 그렇게 내 발로 당당하게 걸어 나왔다. 혼술과 음악과 눈물. 그 절묘한 삼위일체가 나를 구원했고 끝내 승리하게 만들었다. 

혼술이 필요할 때, 잠깐 울어도 된다
 
 사람들과 멀찍이 떨어져 아무도 아는 이 없는 곳에서 혼자 술을 마셔보라. 당신이 좋아하는 음악과 함께라면 더 좋다.
 사람들과 멀찍이 떨어져 아무도 아는 이 없는 곳에서 혼자 술을 마셔보라. 당신이 좋아하는 음악과 함께라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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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쉽게 울지 않는다. 아니 그러지 못한다. 그래선 안 된다. 모양 빠진다. 약해 보인다. 중년의 남자는 더 그렇다. 체면도 있고 사회적 위신과 지위까지 지켜야 한다. 세월의 더께만큼 적들도 많아졌다.

그들은 곳곳에 잠복해 내가 약한 모습을 보이기만 기다린다. 그럴 기미라도 보일라치면 내 목덜미를 물어뜯을 태세다. 그래서 강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그런 척 허세라도 부려야 한다. 적들이 얕보지 않도록, 함부로 다가오지 못하도록.

그래서 눈물은 절대 금기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그렇게 안으로 삼키고 속으로 삭일수록 우리는 시나브로 죽어간다는 걸 아시는가. 밖으로 뱉어 내야 할 감정의 찌꺼기들이 쌓이고 썩어 암 따위의 치명적인 질병으로 자랄 수도 있다는 걸 아시는가 말이다. 그러니 잘 소화하고 적절히 배출해야 할 일이다. 혼술은, 그럴 때 특효다.

사람들과 멀찍이 떨어져 아무도 아는 이 없는 곳에서 혼자 술을 마셔보라. 당신이 좋아하는 음악과 함께라면 더 좋다. 다른 건 아무 생각 말고 오롯이 당신에게 집중해 보시라. 낯익은 듯, 낯선 한 남자가 보일 터다. 나이 들고 지친 중년의 사내가 당신과 마주앉아 당신처럼 쓸쓸히 웃고 있을 것이다.

그와 함께 그냥 가볍게 그동안 살아왔던 이야기를 나눠 보시라. 술에 취하고 음악에 젖고 이야기에 빠져 들게 되면 어느 결에 눈물이 흐를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냥 참지 말고 우시라. 그래도 된다. 소리 내 울어도 된다. 제 풀에 그칠 때까지 우시라.

당신 안의 온갖 더러운 기운들이 그 눈물과 함께 밖으로 빠져나올 것이다. 혼술은 그런 거다. 감성의 각성제다. 눈물의 촉진제다. 영혼의 정화제다. 혼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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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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