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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옥 요양보호사 은영씨네서 재활을 돕고 있는 순옥 씨
▲ 이순옥 요양보호사 은영씨네서 재활을 돕고 있는 순옥 씨
ⓒ 배길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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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옥씨의 하루는 오전 4시 반에 남편과 이른 아침을 챙겨 먹으면서 시작한다. 6시가 되면 치매를 앓고 계신 어르신 댁으로 이른 출근을 해 아침을 챙겨드린다. 9시가 되면 또 다른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 댁으로 옮겨 집안 곳곳을 살펴드리고 오후 1시부터 5시까지는 뇌경색으로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의 집을 방문해 재활운동을 돕는다. 

경북 예천이 고향인 이순옥(63)씨는 18년 전 남편의 고향인 당진으로 와 2004년부터 15년째 요양보호사로 일을 해오고 있다. 이씨가 처음 일을 시작하게 된 건 한 신부님의 말 때문이었다. 인천에서 살던 시절 그녀는 교회에서 진행하는 봉사활동으로 보육원을 자주 찾았다고 했다. 

"신부님이 저를 보고 '사람 돌보는 일을 하셔야겠다' 그러셨어요. 아기들을 깨끗이 씻기고 먹이는 모습을 보니까 잘하겠다고요. 그래서 정말 그런가 하면서 병원에서 처음 병간호 일을 시작했어요. 그리고 신부님 말처럼 누군가를 돌보고 도와주는 일이 행복했어요." 

'누군가의 어려움을 도울 수 있다는 일이 행복했다'는 이씨는 지금까지 함께해 온 어르신 중 기억에 오래 남는 두 분이 계신다고 했다.

"누워서 생활하는 할아버지가 계셨어요. 말씀도 못 하시고 윙크로만 대답을 하셨어요. 당신이 필요한 게 있으시면 침상을 긁으시고. 매일 할아버지를 몸 굳지 않게 운동시켜드리고 가끔 노래도 불러드렸죠.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해드리면 할아버지께서 고맙다고 윙크를 두 번 하면서 웃으셨죠." 

이씨는 할아버지를 돌보다가 집에 있던 돈을 훔쳤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기도 했다. 할머니로부터 심한 말을 들으면서도 꾹 참고 근무했던 이씨는 돈을 찾았다는 할머니의 전화에 처음으로 그만두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번 대상자를 만나면 끝까지 함께하기로 마음을 먹어요. 그게 제가 이 일을 하면서 가진 책임감 같은 거였는데 그런 오해를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더라고요. 이러한 마음을 꾹 참고 매일 할머니께 돈은 찾으셨냐고 묻고 또 물었죠. 할머니께서 돈을 찾았다는 연락을 받고 가슴이 확 무너져 내렸어요. 그때 처음으로 그만두겠다고 얘기했어요." 

하지만 이순옥씨는 그 일이 있고 난 뒤에도 계속해달라는 할머니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할아버지 댁에서 근무를 이어나갔다. 그런 일이 마치 없었던 것처럼 할머니는 같은 이유로 순옥 씨를 또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씨는 그럴 때마다 할머니의 편에 서서 맞춰주었다. 그녀가 계속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할머니의 치매 증상을 문득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이 일을 하다 보면 몸 불편한 장애인분들이나 치매를 앓고 계신 어르신을 계속 만나게 돼요. 그래서 할머니께서 놀라지 않게 설명해드리고 병원을 모시고 갔어요. 지금은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대신해 할머니를 돌봐드리고 있어요." 

이씨의 기억 속에 있는 또 다른 어르신은 정치인이었다. 방문할 때마다 정치와 역사에 관해 얘기하며 잘 모르겠다고 답하면 구박을 해 여러 명의 요양보호사가 두 손 두 발을 들었다는 어르신이었다. 

"제가 요양보호사로 하는 일은 같이 운동을 해드리는 일이에요. 매번 운동하고 나면 책 읽기를 좋아하셔서 책을 읽으세요. 몸이 불편하셔서 제가 항상 책장을 넘겨드렸어요. 어르신은 책 이야기를 할 때마다 정말 눈을 반짝이면서 신나게 설명하시다가 제가 못 알아들으면 구박을 하셨어요. 정말 마음이 많이 상해서 울었던 적도 많아요. 그만두자, 그만두자 하면서 그렇게 5년을 매일 뵀어요.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부인이랑은 아직도 서로 안부 묻고 잘 지내요." 

간병인과 요양보호사로 지내면서 숱하게 죽음을 마주했다는 이순오옥씨는 자신의 기억 속에 살아계셨던 어르신들을 떠올리면 무섭기보다 마지막을 지켜드릴 수 있어 다행인 기분이라고 했다. 

"매일 오전 1시 반까지 같이 레슬링을 봤던 할머니도 계셨고요. 파킨슨병을 앓고 계신 분도 계셨죠. 치매로 매일 달력에 동그라미를 그려가면서 오전 약에는 해를, 오후 약에는 달을 그려놓고 자신 이름 쓰고, 자식 이름 써가면서 지낸 할머니도 계셨고요. 좀 더 사셨으면 하는 마음도 들고, 또 아프시다가 편안한 얼굴로 가시면 참 다행이다 싶기도 해요."

일을 마치고 저녁에 들어가는 길에는 몸이 천근만근 힘들기도 하다는 이씨를 남편은 이해할 수 없다며 못마땅해한다. 일부러 본인이 힘든 일을 나서 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며 그만두라는 남편의 으름장에도 도리어 더 큰소리로 '내 자유'라며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똑 부러지게 답해 남편의 입을 다물게 했다는 순옥 씨. 

"몸이 힘들 때가 많아요. 나이가 들어 그런지 예전만큼 힘도 달리고요. 하지만 아침에 일하러 나올 때는 날개가 달린 듯 날아가는 기분이거든요.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고 제 행복이니까 사무실에서 거절하는 분들이 있으면 그냥 제가 하겠다고 해요. 제 부모라 생각하고 저를 필요로 하면 힘닿는 데까지는 요양보호사로서 열심히 해야죠. 다행히 요양보호사는 정년이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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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당진신문 기자 배길령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