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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지방경찰청(청장 황운하)이 11일 오전 10시 30분 대전경찰청 별관에서 '임시정부 경무국장 김용원 애국지사 추모식'에 앞서 '김용원 홀' 현판 제막식을 개처ㅣ하고 있다. 청 내 별관인 대강당 이름을 기존 '무궁화 홀'에서 '김용원 홀'로 교체한 것이다.
 대전지방경찰청(청장 황운하)이 11일 오전 10시 30분 대전경찰청 별관에서 "임시정부 경무국장 김용원 애국지사 추모식"에 앞서 "김용원 홀" 현판 제막식을 개처ㅣ하고 있다. 청 내 별관인 대강당 이름을 기존 "무궁화 홀"에서 "김용원 홀"로 교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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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지방경찰청(청장 황운하)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대전경찰청 내 별관 강당 이름을 '무궁화 홀'에서 '김용원 홀'로 바꿨다. 지역 경찰의 귀감의 될 대전의 임시정부 경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름을 붙인 것으로, 적은 예산으로 독립운동가의 얼을 기리는 뜻깊은 사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대전지방경찰청(아래 대전청)은 11일 오전 10시 30분 대전경찰청 별관에서 '임시정부 경무국장 김용원 애국지사 추모식'을 개최했다. 김용원 지사의 순국일에 맞춰 연 행사다.

추모식에 앞서 '김용원 홀' 현판 제막식이 열렸다. 청 내 대강당 이름을 기존 '무궁화 홀'에서 '김용원 홀'로 교체한 것이다.

애국지사 강산 김용원(1892-1934) 지사는 대전 서구 원정동 출신으로 43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독립운동에 몸 바쳤다. 그는 휘문의숙에 다닐 때부터 나라 잃은 울분을 토하며 독립을 위해 일하겠다고 다짐했다. 이 때문에 일찍부터 일경의 감시 대상이 됐다.

김용원 선생 "국권을 회복하고 백성을 구제하겠다"
 
 대전지방경찰청이 11일 오전 10시 30분 대전경찰청 별관에서 '임시정부 경무국장 김용원 애국지사 추모식'을 개최하고 있다. 애국지사 김용원은 김구 선생 후임으로 임시정부 경무국장을 지냈다.
 대전지방경찰청이 11일 오전 10시 30분 대전경찰청 별관에서 "임시정부 경무국장 김용원 애국지사 추모식"을 개최하고 있다. 애국지사 김용원은 김구 선생 후임으로 임시정부 경무국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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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학생 때 쓴 여러 글에 "애통하고 애통하다", "아프고 통탄스럽다"며 나라 잃은 아픔을 나타냈다. 그가 1915년 쓴 글에서는 "청년의 뇌수에 국혼을 쏟아붓고 심신에 국성을 새겨 넣어 협력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 국권을 회복하고 백성을 구제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휘문의숙을 졸업하자마자 독립운동에 나섰고 1918년에는 일본으로 들어가 일왕 암살 계획을 세웠다. 이듬해 독립운동 단체인 대동단에 가입해 의친왕을 상해로 망명시키는 일에 참여했다. 이어 상해로 망명하기 전까지 임시정부의 지시를 받아 군자금 모금 운동에 나섰다. 그는 1921년 상해로 건너가 김구 선생의 후임으로 임시정부 경무국장(지금의 경찰청장)에 임명됐다. 또 임시의정원 상임의원을 맡았다. 그는 상임의원을 사임한 이후에는 중국의 무관학교(운남군관학교)에 입학해 무장활동을 통한 독립의 길을 모색했다.

독립운동 중 병을 얻은 그는 고향인 대전으로 내려와 군자금 모금운동을 하다 체포됐다. 이후 병이 악화해 병보석으로 출소하자 중국 망명 계획을 세웠다. 그러다 다시 체포돼 추가형을 선고받았다. 김용원은 처음 갇힌 때로부터 5년 2개월여 만인 1934년 2월 병보석으로 출감했으나 그해 6월 옥고의 여독으로 순국했다.

황운하 대전경찰청장은 이날 추모식에서 "김용원 지사는 대한민국 경찰의 뿌리인 임시정부 경무국장을 맡는 등 삶이 다하는 날까지 흔들림 없이 조국의 광복을 위해 노력했다"며 "선생을 대전 경찰의 표상으로 삼아 얼을 기리고 숭고한 삶을 기억하겠다"고 밝혔다.

김용원 선생 유가족 "지역 경찰의 표상으로... 감개무량"
 
 황운하 대전청장이 11일 오전 임시정부 경무국장을 지낸 '강산 김용원' 선생의 후손들을 만나 대전경찰청에서 선생이 추모식을 개치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있다.
 황운하 대전청장이 11일 오전 임시정부 경무국장을 지낸 "강산 김용원" 선생의 후손들을 만나 대전경찰청에서 선생이 추모식을 개치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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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후손을 대표해 감사 인사를 한 김용원 선생의 손자(고 김옥경) 며느리인 박준희씨는 "김용원 선생은 일제강점기를 오로지 항일 구국의 정신으로 살다간 분이었다"며 "대전지방경찰청이 나서 건물 강당의 이름을 '김용원 홀'로 바꾸고 지역 경찰의 표상으로 삼은 이번 일이 가장 감개무량하다"고 밝혔다. 이어 "유족을 대신해 대전지방경찰청에 감사드린다"며 "선생의 고결한 삶이 훼손되지 않도록 더욱 힘쓰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대전경찰청은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경찰 역사 관리와 실무지원팀을 구성해 대전현충원 내 애국지사 중 36위의 경찰을 확인했다. 이를 토대로 '내 고장 경찰 역사 순례길'을 마련, 현충일과 경찰의 날에 묘역을 찾았다. 대강당 이름을 '김용원 홀'로 바꾼 것도 경찰 역사와 정신 재정립 작업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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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