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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이희호 여사의 크리스마스카드 속지
 2010년 이희호 여사의 크리스마스카드 속지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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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시대 '여성운동가' '민주주의자' 이희호 여사께서 97세의 일기로 소천하셨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영부인이 보내준 크리스마스카드

나는 1971년부터 2004년까지 교사생활을 했다. 특히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는 연말이면 크리스마스카드와 연하장을 숱하게 받았다. 주로 제자들이나 동료 선후배 선생님들이었다. 또한 나 역시 그 숫자만큼 답신했다.

그런 연말 풍습이 2000년 이후로는 점차 줄어들더니 이즈음에는 거의 사라졌다. 그렇게 된 까닭은 내가 현직에서 물러난 탓도 있을 테지만, 이즈음에는 대부분 소셜미디어를 통해 성탄인사나 새해인사를 주고받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수십 년 동안 한결같이 내게 꼭 크리스마스카드를 보내주신 분은 세 분 있었다. 그러다가 지난해에는 딱 한 분만 보내주셨다.

바로 김대중 대통령의 반려자 이희호 여사님이시다. 지난해 연말에도 빠트리지 않고 내게 카드를 보내주셨다. 

그분이 내게 카드를 보내신 까닭은 내가 당신의 아들 김홍걸 민화협 상임의장을 가르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아들 재학시절부터 보낸 게 아니라 1998년 청와대에 들어간 뒤부터 보내셨다. 아마도 그때부터는 다소 주변을 둘러보실 여유가 생기신 탓이었나 보다. 

이희호 여사는 그해(1998년) 연말부터 지난해(2018년) 연말까지 꼭 21년 동안 해마다 연말이면 단 한 해도 빠트리지 않으시고 크리스마스카드를 보내주셨다. 그런데 나를 감동케 하는 것은 그냥 카드만 보낸 게 아니라, 겉봉에 손수 주소를 적거나 카드 안 속지에 친필로 다정한 사연을 적어 보내셨다는 점이다.

영부인이라면 연말에 크리스마스카드 하나라도 챙겨야 할 곳이 많았을 법하다. 부속실 비서관을 시켜 일괄적으로 인쇄해 보내실 만한데도 내가 받은 카드에는 친필로 겉봉을 쓰고, 속지에 서명을 하신다든지, 짤막한 사연을 적어 보내시기도 했다.
 
 2008년, 11월 자서전 <동행> 초대장
 2008년, 11월 자서전 <동행> 초대장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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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어머니의 깊은 뜻

2008년 11월, 당신의 자서전 <동행>을 펴낸 뒤 우송할 때도 속지에다가 내 이름을 쓴 뒤 친필로 서명해 보내셨다. 왜 그분은 해마다 잊지 않고 내게 크리스마스카드를 정성스럽게 보내셨을까? 곰곰 생각해 보니 그것은 한 어머니의 마음으로 헤아려졌다.

당신은 늦은 결혼으로 뒤늦게 얻은 아들(김홍걸)을 다른 어머니들처럼 극성스럽게 키우지 못했다. 아이가 어려서부터 아버지는 정치인으로 탄압에, 가택연금에, 교도소에, 나중에는 사형수로 명재경각으로 지냈기에 미처 아들에게 제대로 신경쓰지 못하셨을 듯하다. 이후에도 유명 정치인 부부로서 바빴기에 한 어머니로 그 점이 늘 마음에 걸렸을 것이다.

그래서 내게 당신 아들을 멀찍이 바라보면서 격려해 주거나 회초리와 같은 훈수를 아끼지 말라는 뜻이 담긴 크리스마스카스를 손수 챙겨 보내주셨을 것이다. 그런 뜻을 읽은 나는 김홍걸 민화협 상임의장에게 알게 모르게 여러 차례 격려와 훈수의 말을 전한 바, 본인도 그 깊은 뜻을 달게 받아들였다. 이희호 여사의 뜻은 지금까지 이어져 나와 김홍걸 상임의장은 사제지간의 정을 돈독히 하고 있다.

어머니의 뜻 이어받은 스승
 
 2008. 11. 11. <동행> 출판기념회 날.
 2008. 11. 11. <동행> 출판기념회 날.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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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금강산에서 열린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남북민화협모임'에 사제가 동행해 나는 시민기자 자격으로 그 행사를 취재보도하기도 했다. 

올해 3월 1일 서울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있었던 제1차 조선인 유골봉환 추모식에도 초대받아 가는데, 그날따라 집 앞에서 탄 시내버스가 예삿날과는 달리 마냥 늑장을 부리더니, 도중에 접촉사고까지 냈다. 우여곡절 끝에 원주역에 도착했는데, 열차는 이미 플랫폼에 도착해 있었다. 열차표는 예매해뒀기에 곧장 구름다리 계단을 뛰어올랐다. 마음은 급한데 발걸음이 따르지 않아서였을까. 넘어졌다. 다시 일어나 다시 발자국을 옮기는데 또 쓰러졌다.

그 바람에 소지한 카메라도 렌즈 부분이 파손됐고, 카메라를 든 왼손도 다쳤다. 하차한 승객들의 도움으로 일어났지만 그 순간 열차는 떠나고 있었다. 나는 구름다리 위에서 떠난 열차를 향해 손을 들었지만, 그야말로 '기차 떠난 뒤 손들기'였다. 그 순간 불연듯 이희호 여사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면서도 그날 행사장에 꼭 가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

그 길로 원주역 앞 주차장으로 가서 택시로 원주시외버스터미널에 갔다. 곧장 서울 행 시외버스를 타고 가쁘게 백범기념관으로 달려 갔다. 다행히 크게 늦지 않아 그날 행사 기사는 쓸 수 있었다(관련 기사 : 일본에서 세상 떠난 74명, 조국에 돌아와 위로 받다).

올 연말에는 크리스마스카드를 받을 수 없게 됐습니다
 
 1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이희호 여사의 빈소를 찾은 조문객이 조문하고 있다.
 1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이희호 여사의 빈소를 찾은 조문객이 조문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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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호 여사님께서 2019년 6월 10일 소천하셨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인생의 종착 역으로 가는 길을 붙잡을 수 있으랴. 영면의 길로 향하는 이희호 여사님을 배웅하며 기도드린다.

"이희호 여사님! 당신의 정성된 뜻 잊지 않고, 저의 남은 날도 아드님에게 훈수와 채찍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 2019년 6월 10일 원주 치악산 밑에서 옛 훈장 박도 올림

하늘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셨을 이희호 여사님. 올 연말에는 이희호 여사님의 크리스마스카드를 받을 수 없게 됨에 가슴이 아프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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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교사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용서>,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등.

오마이뉴스 정치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