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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통영에 들렀다가 우연히 옛 제자를 만났다. 실로 이십여 년 만이다. 우리는 반가움에 잠시 말을 잊었다. 세월이 많이 흘러 나는 명예퇴직을 하고 학교를 떠났지만 현이는 내 기억속에 아직도 선연히 남아있다.

현이는 내가 교직에 발을 들이고 처음 담임을 맡은 아이였다. 집안 형편은 어려웠지만 밝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학교생활도 공부도 열심히 하는 게 예뻤다. 아픈 친구의 가방을 대신 들어주기도 하고 학급일에도 늘 먼저 나섰다.

그러던 녀석이 어느 날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주소를 들고 찾아간 현이의 집에서 만난 부모는 퉁명스럽고 무관심했다. 나는 일손이 잡히지 않았다. 더구나 한창 대학 입시 준비로 바쁜 고등학교 3학년이다. 녀석의 밝은 얼굴 뒤에 가려져있던 그늘을 알아채지 못한 나의 안일함에 자책감이 밀려오며 가슴이 몹시 아팠다. 

현이는 일주일만에 초췌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나는 눈물을 흘리는 녀석을 한참 말없이 바라보다가 등을 토닥여주며 책을 챙겨 교실에 들여보냈다. 다행히도 현이는  예전 모습을 되찾고 열심히 공부했고 대학교에 진학했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에 내려와 직장에 다닌다는 소식까지 들었었다.

현이과 나는 근처 찻집에 마주 앉았다. 말쑥한 양복 차림의 현이에게 그 옛날 밝게 웃으며 늘 열심이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현이는 근처 작은 면소재지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으며 결혼해 예쁜 아들도 있다고 즐겁게 이야기했다. 전화기에 저장해둔 아들 사진도 보여줬다. 나도 따라 흐뭇하고 즐거웠다. 문득 현이가 옛날 얘기를 끄집어냈다.

"그때 선생님 아니었으면..."

현이의 눈가가 촉촉이 젖어오는 게 보였다. 나도 가슴이 뭉클해졌다.
 
 거제 학동해수욕장에서
 거제 학동해수욕장에서
ⓒ 김숙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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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명깊게 읽었던 법정 스님의 글 '설해목(雪害木)'이 생각났다. 이제는 가고 안 계신
스승께 들은 얘기부터 쓰셨다.
 
"토굴에 사는 노승에게 속세의 친구가, 자신은 힘에 부치니 사람을 좀 만들어 달라는 편지를 쥐어 아들을 보냈다. 노승은 아무 말없이 손수 저녁을 지어 먹이고 세숫물을 떠왔다. 따끔한 훈계를 걱정했던 아들은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 이야기 뒤에 법정 스님께서 하신 말씀이 늘 기억하고 싶은 부분이다.
 
"한겨울 깊은 산에 있으면 여기저기 나무들이 꺾이는 소리를 듣게 된다. 한여름 사나운 태풍과 모진 비바람에도 끄떡없던 아름드리 나무들이 부드러운 눈앞에서 꺾이는 그 의미에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바닷가의 조약돌을 그토록 둥글고 예쁘게 만드는 것은 무쇠로 된 정이 아니라 부드럽게 쓰다듬는 물결이다."

엄격함과 질책보다는 너그러움과 따뜻함이 훨씬 강하고 힘있음을 말씀하신 것이리라.

현이는 '아내가 선생님을 뵙고 싶어 하니 꼭 한 번 오시라' 집 약도를 그려 손에 쥐여줬다. 현이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음이 따뜻해지며 그 시절, 정이 많았던 아이들이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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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나를 살아있게 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풍광과 객창감을 글로 풀어낼 때 나는 행복하다. 꽃잎에 매달린 이슬 한 방울, 삽상한 가을바람 한 자락, 허리를 굽혀야 보이는 한 송이 들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날마다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