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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복역한 최장기수는 한국에 있다. 2000년 북으로 송환된 비전향 장기수 김선명 선생이다. 그는 국가보안법으로 무려 45년이나 감옥에서 지냈다. 세계적인 평화와 인권의 상징인 넬슨 만델라의 복역 기간은 27년이다. 다소 폭력적인 비교이지만 한국에서 국가보안법은 그만큼 강하고 위협적이다.

국가보안법과 관련된 자랑스럽지 않은 기록은 이뿐만이 아니다. 1994년 9명의 공동교수가 집필한 <한국사회의 이해>는 1만여 명이 수강을 마친 대학 강의교재였음에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인해 저자들이 구속되었다.

1995년에는 한 비전향 장기수의 장례식을 주도했던 이들이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었다. 당시 수사기관은 이 비전향 장기수의 무덤을 유족들의 허락도 없이 파헤쳐 주검을 이장하기도 했다. 국가보안법의 수사대상은 산 자와 죽은 자를 가리지 않는다.
 
 국가보안법 피해자는 문재인 정권에 들어서서 줄어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가보안법을 이유로 입건, 기소, 구속된 사람들이 존재한다.
 국가보안법 피해자는 문재인 정권에 들어서서 줄어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가보안법을 이유로 입건, 기소, 구속된 사람들이 존재한다.
ⓒ 대검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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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옛날이야기 아니냐'며 반문할 수도 있다. 2019년 한국 사회에서 국가보안법은 더 이상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도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문재인 시대의 국가보안법으로 입건된 이들은 40여 명이 넘는다. 이 중 7명 이상이 구속되었다. 대표적으론 2018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던 대북사업가 김호씨의 사건이다. 김씨는 북한 개발자가 개발한 '얼굴인식 프로그램'을 자신이 개발한 것처럼 속이고 수억 원의 개발비와 군사기밀을 북한에 건넨 혐의로 지난해 8월 구속기소 됐다. 당시 공안기관은 김씨를 북의 지령을 받아 활동하는 간첩으로 취급했다. 

김씨는 공안기관이 자신을 간첩으로 조작하려 한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아니나 다를까 조사과정에서 경찰의 증거조작 의혹이 일었다. 오히려 국정원이 북에 대한 정보를 얻는데 김씨가 도움을 준 조력자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러한 정황들이 참작되어 지난 2월 김씨는 보석으로 풀려났다. 그러나 그동안 김씨와 그의 가족들이 입은 피해와 상처는 그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다. 

김씨가 경험한 수사와 재판 과정은 한국 사회에서 특수하거나 유별난 사건이 아니다. 단순히 국가기관의 오판으로 인해 한 개인이 억울하게 피해를 본 것을 넘어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동안 언제나 반복되어온 국가폭력 역사의 일부이다. 국가보안법은 사문화된 법이 아니다. 국가보안법이 법전에서 지워지지 않는 한 이로 인한 피해자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국가보안법의 위험성은 단순히 국가보안법 피해자에게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국가보안법은 복역 기간을 마친 피해자들을 지속해서 감시하는 보안관찰법, 사상전향을 강요하는 조치 등과 연장선에 있다. 국가보안법 피해자들의 가족이나 친지 등 주변 인물들 또한 감시대상에 포괄적으로 포함되며, 더 나아가 한국 사회 전체를 감시사회로 기능하게 한다. 우리는 초중고 공교육을 거치면서 한국 사회가 자유로운 공간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사상의 자유만큼은 철저히 그 자유에서 배제당해 온 것이다.

이렇듯 오랫동안 한국 사회를 괴롭혀 온 '국가보안법'의 시초는 바로 일제강점기의 '치안유지법(1925)'이다. '치안유지법'은 일제 통치하에 조선인 항일운동가들을 탄압하기 위한 핵심적인 법령이었다. 일제는 치안유지법 이외에도 '집회 취재에 관한 건(1910)', '경찰범처벌규칙(1910)', '조선사상범 보호관찰령(1936)' '조선사상범 예방 구금령(1941)' '조선 임시보안령(1941)' 등으로 조선반도 전체에 대한 억압적 정책을 펴왔다. 이 모든 법령은 오늘날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보안관찰법' '반국가행위자 처벌 특별조치법' 그리고 '국가보안법'으로 변모하였다.
 
 국가보안법과 치안유지법의 비교
 국가보안법과 치안유지법의 비교
ⓒ 김창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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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의 내용이 이토록 치안유지법과 닮아있는 이유는 '급조한 법령'이기 때문이다. 해방 직후 이승만 세력은 4·3 제주항쟁과 여순항쟁 등 남한 단독선거를 반대하는 움직임에 위협을 느꼈다. 이에 1948년 이승만 정부는 내란상태를 명분으로 내세워 치안유지법을 근간으로 한 국가보안법을 제정했다. 이러한 국가보안법 제정은 대한민국 형법 제정(1953년 9월 18일)보다 몇 년이나 앞서 이루어졌는데, 이승만 정부가 단정 반대 세력을 탄압하는 것에 얼마나 큰 의욕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당시 법무부 장관은 국가보안법을 "비상시기의 비상조치"라고 규정했고, 영구 존속이 아니라 형법으로 흡수할 예정이라고 공표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발표에도 국가보안법은 남한 사회 전반에 큰 불안을 일으켰다. 오죽하면 <조선일보>조차 "국가보안법을 배격함"이라는 사설을 발표했다.
 
"오늘의 정치적 혼란, 난마적인 사상의 불통일의 이 현상에서, 더구나 정부는 국회의 내각개조론에까지 불순을 꾸짖는 이러한 이 현상에서 이러한 법의 제정은 대한민국의 전도를 위하여서나 우리 국민의 정치적, 사상적 교양과 그 자주적 훈련을 위하여 크게 우려할 악법이 될 것을 국회에 경고코자 한다.
국제정세가 미묘한 가운데 민족과 국가의 운명을 염려하는 정치론도 다기할 수 있는 이 정세에서 국가보안법의 내용은 무서운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더구나 사법부의 처벌에서보다도 행정부의 경찰권 발동이 무한히 강대해질 것을 생각할 때다." - 조선일보 사설 <국가보안법을 배격함> 중에서

국가보안법의 파괴력은 대단했다. 국가보안법 출범과 동시에 132개의 정당 및 사회단체를 해체시켰다. 또한 시행 첫해 동안 11만 명을 구속시켰는데 이는 당시 20세 이상 남한 인구의 1.5%에 달하는 수치였으며, 전국 18개 형무소 수감자의 80%가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이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이 형법으로 흡수되어 폐지될 것이라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허정 과도정부는 오히려 국가보안법을 개악하였다. 국가변란을 목적으로 하는 결사나 집단구성죄, 살인·방화·운수·통신 기관 등 기타 중요시설 파괴목적의 결사나 집단구성죄 두 가지 명목만 존재했던 초기의 국가보안법에 반국가단체 구성죄와 불고지죄를 추가 신설했다. 박정희 정부는 1961년 7월 반공법을 추가로 신설했고, 전두환 정부는 1980년 12월 반공법과 국가보안법을 통합하여 국가보안법으로 단일화하였다. 노태우 정부는 1991년 5월 이를 부분 개정하여 현재의 25개 조문으로 이루어진 국가보안법이 탄생하게 되었다.

흔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대한민국은 새로운 변화의 물결에 휩싸였다고 평가한다. 민주주의에 대한 의식이 더 성숙해졌으며, 북과의 대화를 통해 평화의 활로를 열었다. 그리고 미투 등 기존의 가부장적 질서에 저항하는 페미니즘이 대두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촛불의 바람을 타고 집권했다. 그런데 왜 국가보안법에 대한 폐지 논의는 진행조차 되지 못하는 것일까? 이쯤 되면 한번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2017년 대선 당시 KBS 토론회 장면.
 2017년 대선 당시 KBS 토론회 장면.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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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도대체 왜 국가보안법이 아직도 폐지되지 못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하여 국가보안법을 살펴보기로 했다. 항상 국가보안법이 악법이라고 생각하고 말하는 이들조차, 국가보안법의 조항이 무엇인지 제대로 읽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그래서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해 고민하는 이들에게 국가보안법이 어떻게 탄생했고 어떤 역사 속에서 피해자들을 어떻게 다루었지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와 동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국가보안법 피해자들의 경험과 기억을 심층 인터뷰를 통해 취재하면서, 그들의 아픔을 공유하고자 한다. 가장 최근의 피해자인 김호씨, 예술가로서 국가보안법과 싸워온 이시우 작가, 국정원 간첩 조작사건의 피해자인 유우성씨, 학자의 신분으로 국가보안법에 따라 2차례나 재판을 받았던 강정구 교수가 그들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작업은 한국 사회 전반에서 국가권력이 기능하고 있는 방식을 고찰하는데 큰 의미가 있다. 앞으로의 연재를 통해 국가권력이 내부의 적을 어떻게 만들고, 이를 통해 한국사회의 구성원들을 어떻게 억압하는지 낱낱이 밝혀보려 한다.

덧붙이는 글 | '청년지식공동체 청년담론'에서 함께 기획하고 인터뷰한 내용을 토대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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