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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북 옥천의 시인 정지용 문학관입니다.
 충북 옥천의 시인 정지용 문학관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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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인간에겐 늘 화둡니다. 가끔, 이런 말 한 적 있습니다. "저 인간은 늙어 죽어 관 속에 들어가도 철 안 들 거다!"라고. 당시, 왜 이런 악담을 했는지 몰랐습니다. 지금은 알듯합니다. 윤회 속에서 이제 갓 인간으로 태어난지라 그렇다. 철이 더 들려면 인간으로 몇 번이 더 태어나야 제대로 된, 성숙된 인간이 될 거라는. 근기가 그렇다는 말입니다.

모든 방면에서 빼어난 사람 앞에 천재, 수재, 영재 등의 수식어가 붙습니다. 천재 화가, 천재 음악가, 천재 과학자, 천재 작가… 등. 이들은 각 방면에서 성숙된 존재기에 빛나는 겁니다. 철없던 인간으로 태어나 무수한 윤회 속 진화를 거쳐 완성된 인간 형상을 갖춘 겁니다. 허나, 이들마저도 성숙된 인간이 될 마지막은 도(道)에 있음을…

대학시절, 천재 시인으로 꼽았던 이가 '이상'과 '김수영'입니다. 월북 작가까지를 포함하면 '정지용'이란 이름이 꼭 끼었습니다. 허나, 반공이 판치는 서슬 퍼런 시기였으니 <정지용> 이름 석 자 부르기가 늘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랬는데, 충북 옥천에서 그 정지용을 만났습니다. 이때 알았습니다. 판금 등으로 금기시 되던 그가 1988년 해금되어 '정지용 문학관'과 '정지용 생가'로 당당히 우리 앞에 섰다는 걸!

죽어 한 도시 먹여 살리는 정지용, 홍익인간의 화신
 
 정지용 생가 앞에 설치돼 향수를 자극하고 있습니다.
 정지용 생가 앞에 설치돼 향수를 자극하고 있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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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 ♪♬"

눈을 감습니다. 노래 소리가 들립니다. 너무나 달콤합니다. 벌써 눈치 채셨을 겁니다. 가수 이동원과 테너 박인수가 노래로 불러 더 유명해진 <향수>입니다. 이게 바로 정지용의 시입니다. 정지용 생가 앞 간판엔 "향수... 꿈엔들 잊힐리야", 정지용 캐릭터가 붙었습니다. 이를 보고 동행한 경북 상주 포도시인 정의선 님께서 한 마디 합디다.

"충북 옥천을 먹여 살리는 원톱이 바로 정지용이다!"

'아!' 했습니다. 왜냐하면 순간적으로 '제갈공명'을 떠올렸기 때문입니다. '량'이 그랬다지요. 천하 패권을 두고 다툼을 벌이던 시기. 살아생전 뿐 아니라 죽어서까지 사마천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장본인. 이렇듯 죽어서 한 도시를 먹여 살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공덕입니다. 이 정도면 제갈량이 아니라 더 뛰어난 사람보다 뒤질 게 없습니다.

정지용. 그는 전생에 나라를 살린 게 아니라 죽어서 후생에 나라를 살리고 있습니다. 살아서는 북한에 끌려갔다는 것만으로 판금 등의 불이익을 당하더니, 죽어서야 빛을 본 경웁니다. 이로 보면 그는 기독교에서 그토록 바라는 재림 예수요, 불교의 미륵보살이라 해도 무방하지요.

이게 바로 환인, 환웅, 단군, 그리고 요임금과 순임금으로 이어지는 동이족(東夷族), 예(濊) ·맥족(貊族)이 부르짖었던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弘益人間)' 화신이지요. 이 즈음에서 정지용의 대표 시 <향수> 읊는 게 예의겠지요. '향수'는 정지용이 일본 유학 갈 때 쓴 시입니다. 1927년 『조선지광』에 발표한 작품입니다.
 
 옥천의 정지용 생가입니다.
 옥천의 정지용 생가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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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고향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향  수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빈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 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던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 그 곳이 참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펜의 힘이 칼보다 강함을 알 수 있는 '정지용 생가'
 
 정지용 문학관 전시실 입구에 설치된 정지용 밀랍인형입니다. 이곳은 포토 존입니다.
 정지용 문학관 전시실 입구에 설치된 정지용 밀랍인형입니다. 이곳은 포토 존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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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휴~. 저기 저 입구에 서 있는 정지용 밀랍인형에 깜짝깜짝 놀라네."

포도시인 정의선 님의 말에 동의합니다. 전시실 입구에서 관람객을 맞이하는 정지용 밀랍인형이 어쩜 그리 진짜 살아 있는 사람 같은지. 여기는 정지용과 기념 촬영이 가능한 포토존입니다. 정지용 문학관은 정지용을 보고, 느끼고, 감상하고, 체함 할 공간으로 문학 전시실과 영상실, 문학교실 등이 있데요

전시실은 정지용이 살던 시대적 상황과 문학사 속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도록 시대, 연도별로 정리했더군요. 이 밖에도 그의 시와 산문집 초간본 등 원본이 전시되었습니다. 전시실 중앙은 멀티미디어 기반의 문학체험이 가능하도록 설치되었는데, 흥미로운 공간이었습니다.

정지용 생가. 사실 생가 복원은 교조적인 의미가 강합니다. 그런 의미가 아니라 인간미를 느끼는 공간으로의 생가는 환영입니다. 시인 정지용 생가는 후자입니다. 그의 생가 앞에는 '향수'를 새긴 시비와 생가 안내판 등이 있습니다. 초가지붕과 흙벽으로 옛날 정취가 그대로 녹아납니다. 생가 앞 청석교 아래는 <향수>에 나오는 실개천이 흐릅니다. 펜의 힘이 칼보다 강함을 알 수 있는 역사의 현장입니다. 한 번 둘러보시길.
 
 시인 정지용 생가입니다.
 시인 정지용 생가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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