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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사이트 '클리앙' 모두의 공원 게시판에 '명징과 직조'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네티즌
 인터넷 사이트 "클리앙" 모두의 공원 게시판에 "명징과 직조"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네티즌
ⓒ 클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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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징과 직조' 이 낱말들로 인터넷 공간이 뜨겁다. 지난 1일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영화 <기생충>을 관람하고 개인 블로그에 남긴 한줄 평 때문이다.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신랄하면서 처연한 계급 우화."

이 평에 대해 "명징, 직조와 같은 낯선 한자어를 써서 이해가 어렵다"라는 비판적인 시각과 그와는 반대로 "평론가가 자신의 느낌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언어의 선택은 문제가 없으며, 오히려 명징과 직조라는 낱말도 제대로 모르는 무지가 더 문제"라는 지적이 대립하고 있다.

이 논란에 대해 이코노믹리뷰 박정훈 기자는 6월 6일 '기자 수첩'을 통해 "구구절절하게 설명하기에는 조금 긴 의미를 가지고 있는 내용을 짧은 한자어를 사용해 간결하게 표현한 것은 한자어 우리말 활용에 대한 글쓴이의 깊은 이해도를 짐작할 수 있다.....중간 생략..... 단어의 뜻을 몰랐다면 알고 나서 그만큼 지적 수준이 늘어났음을 기뻐하면 그만일 일이다"라고 의견을 밝혔다.

이러한 논란에 대해 우리말연구소를 만들어 글쓰기 교육운동과 우리말 연구에 힘썼던 이오덕 선생님이 살아 계셨다면 뭐라 하셨을까?
       
 우리 말과 글을 살리기 위해 노력해온 이오덕 선생님은 잡스런 말을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는 중국글자말, 둘째는 일본말, 셋째는 서양말이라고 말한다.
 우리 말과 글을 살리기 위해 노력해온 이오덕 선생님은 잡스런 말을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는 중국글자말, 둘째는 일본말, 셋째는 서양말이라고 말한다.
ⓒ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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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선생님은 '우리글 바로쓰기'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지식인도 사실은 민중이 쓰는 말을 쓸 줄 알아야 이 시대를 밝히는 진짜 지식인이 될 것이다."

명징과 직조를 일반 시민들이 흔히 쓰는 말이 아니라면 민중이 쓰는 말로 바꿔썼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명징하다'는 '사실이나 증거에 의거하여 분명하게 하다'라는 뜻이다. 또한 '직조'는 '피륙 따위를 기계나 베틀 따위로 짜는 일'을 일컫는다.

그렇다면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신랄하면서 처연한 계급 우화"를 "상승과 하강으로 분명하게 엮어낸, 신랄하면서 처연한 계급 우화"로 바꿔 쓸 수 있지 않을까? 또는 '신랄'과 '처연'까지도 쉬운 우리말로 바꾸어 다음처럼 쓰면 어떨까?

"상승과 하강으로 분명하게 엮어낸, 매섭게 날카로워서 애달픈 계급 우화."

이렇게 바꿔 쓰면 느낌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을까? 이오덕 선생님은 같은 책에서 다음처럼 주장했다.
 
"쉬운 우리 말이 철학을 담기에 모자라거나 불편하다고 하면 그것은 분명히 우리 말을 모독하는 말이라 할밖에 없다."

 "누구든지 잘 알고 있는 중국글자말이라도 순수한 우리 말이 있으면 중국글자말을 피하고 순수한 우리 말을 써야 한다. 그 까닭은, 우리 말이 더욱 부드럽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리고 귀로 들었을 때나 글자로 썼을 때 더 알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예를 몇 가지 들었다.
 
모 신문사 → 어느 신문사
전달이 불가능하다 → 전달할 수 없다
이 시점에 → 이 때에
나라의 미래는 → 나라의 앞날은
기만성을 갈파하고 → 속임수를 큰 소리로 밝히고
 
또 이런 말로 따끔한 지적을 했다.
 
"공연히 어려운 한자말을 쓰는 것은 될 수 있는 대로 민중들이 잘 안 쓰는 말을 써서 자기 유식함을 자랑하려하거나, 적어도 너무 쉬운 말을 써서는 자기가 무식하게 보이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이 부끄러운 버릇을 고치지 않고는 우리말과 글을 살릴 수 없다."
 
물론 이동진 영화 평론가가 유식함을 자랑하기 위해 썼거나, 자신이 무식하게 보이지 않기 위해 썼다고 생각할 수 없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이동진 영화 평론가는 "영화에 관한 촉이나 미학적 이해도가 그리 깊지 않은 일반인의 입장에서도 충분히 수긍 가능한 표현들을 사용하여, 정리된 짧은 글로 영화를 평가한다"라는 평을 그동안 받아왔기 때문이다.

이번 논란이 쉬운 우리말이 있다면 굳이 '한자어'를 쓰지 않고 우리말로 표현하자는 운동으로 발전하길 기대한다. 또한 이번 일로 '우리말 바로쓰기'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이오덕 선생님은 기대하실 것이다.
      
* 이오덕 선생님은 43년간 초등학교 교사와 교감·교장을 지냈으나 전두환 군사정권의 교육행정에 대한 반감으로 스스로 퇴직하였다. 1983년 교사들을 모아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를 만들었고, 지식인은 물론 일반인 사이에도 널리 퍼져 있던 번역 말투와 일본 말투의 잔재를 지적하고, 이를 걸러내기 위해 〈우리문장 쓰기/한길사〉와 〈우리글 바로쓰기/한길사〉(전5권) 등 여러 책을 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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