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여정문 가운데 한자를 중심으로 좌우로 만주어, 몽골어, 티베트어, 위구르어 다섯 민족의 언어가 같이 새겨져 있다.
▲ 여정문 가운데 한자를 중심으로 좌우로 만주어, 몽골어, 티베트어, 위구르어 다섯 민족의 언어가 같이 새겨져 있다.
ⓒ 민영인

관련사진보기

 
피서산장의 입구는 여정문(麗正門)이다. 가운데 한자를 중심으로 좌우로 만주어, 몽골어, 티베트어, 위구르어 다섯 민족의 언어가 같이 새겨져 있다. 이 여정문 앞에 이르면 황제, 황후, 반선(班禅, 판첸)을 제외한 사람들은 모두 말에서 내려 걸어 들어가야 한다.

 
근정전 어좌(御座) 위에 ‘담박경성(澹泊敬誠)’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 근정전 어좌(御座) 위에 ‘담박경성(澹泊敬誠)’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 민영인

관련사진보기

 
황제가 외국 사신들을 접견하고 정무를 보던 공간인 근정전(勤政殿) 안을 살펴보면 황제가 앉았던 어좌(御座) 위에 '담박경성(澹泊敬誠)'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어원은 제갈공명이 여덟 살 아들에게 써준 글귀로 "담박하지 않으면 뜻을 밝힐 수 없고, 편안하고 고요하지 않으면 원대한 이상을 실현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즉 "군왕은 평정심을 갖기 위해 수신해야 하고, 검소하기 위해 덕을 길러야 한다".

정전 뒤편은 '사지서옥(四知書屋)'이다. 정면 5칸 건물로 건축주인 강희제는 처음 '의청광(依清旷)'이라 했는데, 건륭51년(1786년)에 '사지서옥(四知書屋)'으로 이름을 바꿨다. 사지(四知)는 《주역》의 <계사>에 나오는 구절로 "君子知微 知彰 知柔 知剛, 萬夫之望(군자지미 지창 지유 지강 만부지망)", 즉 '군자는 드러나지 않는 기미를 알고, 드러난 것을 알며, 부드러운 것을 알고, 강한 것을 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우러러 보는 것이다'는 뜻이다. 

장 선생의 설명에 의하면 여기는 황제가 정전에서 정무를 보거나 사신을 맞이한 뒤 옷을 갈아입거나 잠시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지서옥보다는 오히려 원래의 '의청광'이 더 용도에 맞는 이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호수구로 가는 길 흡사 창덕궁 후원과 같은 분위기다.
▲ 호수구로 가는 길 흡사 창덕궁 후원과 같은 분위기다.
ⓒ 민영인

관련사진보기

 
호젓한 산길을 따라 호수구역으로 걸어간다. 마치 창덕궁 후원을 걷는 분위기다. 호수에서 배를 타면 건너편 금산도(金山島)까지 뱃사공들이 대나무 장대로 배를 밀어가며 천천히 호수를 건넌다. 3층 누각은 '상제각(上帝閣)'으로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천의식으로 사용되었다.

 
연우루 축축 늘어진 수양버들과 호수, 누각이 어우러져 피서산장에서 본 최고의 경관이었다.
▲ 연우루 축축 늘어진 수양버들과 호수, 누각이 어우러져 피서산장에서 본 최고의 경관이었다.
ⓒ 민영인

관련사진보기

 
 
호수 피서산장내 호수구역은 건너편 금산으로 가기 위해 배를 타기도 하지만 또한 뱃놀이를 즐기는 유원지이기도 하다.
▲ 호수 피서산장내 호수구역은 건너편 금산으로 가기 위해 배를 타기도 하지만 또한 뱃놀이를 즐기는 유원지이기도 하다.
ⓒ 민영인

관련사진보기

 
한 바퀴 돌아 내려와서는 다시 배를 타고 여의호(如意湖) 가운데 인공적으로 만든 청련도(靑蓮島)로 간다. 여기에 있는 누각은 '연우루(烟雨樓)'로 건륭15년(1780년) 절강성 쟈싱(嘉興)의 원앙호(鴛鴦湖)에 있는 연우루를 모방하여 만들었다. 이름에서도 풍기듯이 축축 늘어진 수양버들과 호수, 누각이 어우러져 이곳에서 본 최고의 경관이었다.

 
문진각 사고전서의 하나인 문진각
▲ 문진각 사고전서의 하나인 문진각
ⓒ 민영인

관련사진보기

 
연우루를 나와서 이번에는 전동차를 타고 사고전서가 있었던 문진각(文津閣)으로 이동했다. 문진각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강희 제35경에 꼽히는 '곡수하향(曲水荷香)' 정자가 있다. 또 다른 이름으로 '동도서왜(东倒西歪)' 라고도 한다. 정자 가운데 서서 정면 상단 벽면의 그림을 보면 똑 바르게 서있다. 그러나 왼쪽으로 이동하여 그림을 보면 그림 속의 정자가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고, 오른쪽에서 보면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이것은 그림을 그린 벽면이 평면이 아니라 약간 볼록하기 때문이라 한다.

건륭제는 남쪽순방을 좋아해 자주 갔었고, 남방에서 본 좋았던 곳은 어김없이 화공으로 하여금 그리게 하여 피서산장 곳곳에 만들었다. 문진각 또한 건륭39년(1774년) 닝보(宁波) 범흥의 천일각(天一閣)을 모방하여 만들었다. 내부에는 독특한 정원을 꾸며놓았다. 문진각 입구인 문전(门殿), 본관인 문진각장서루(文津阁藏书楼), 북동쪽으로 열하천과 연결되는 인공연못 일원동휘지(日月同辉池), 반달형의 인공산, 달을 감상하는 원대(月台), 취정(趣亭), 어비정(御碑亭)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전(门殿) 우측은 강희제 독서상과 강희제 친필 《사고수정요四库收精要》 오언시이며。왼쪽은 청강희제 때 대학자인 지샤오란(纪晓岚)의 초상화와 건륭제 어제(御題) 칠언율시 《山中》이 붙어 있다.
 
일월동휘지 고개를 숙여 달을 보고 고개를 들면 하늘에는 해가 있다.
▲ 일월동휘지 고개를 숙여 달을 보고 고개를 들면 하늘에는 해가 있다.
ⓒ 민영인

관련사진보기

 장서루 앞에서 연못을 자세히 내려다보면 초승달을 볼 수 있다. 고개를 숙여 달을 보고 고개를 들면 하늘에는 해가 있다. 그래서 이 연못의 이름을 '해와 달이 함께 빛난다'하여 일월동휘지라 붙였다. 이것은 인공산에 반원형으로 상현달 같은 틈을 내어 이곳을 통과한 빛이 물속에 하현달의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사고전서(四庫全書)는 1772년 건륭제의 명으로 시작된 중국 문헌의 총서다. 360여 명의 고관, 학자와 3,800여 명의 필사가들이 13년에 걸쳐 경(經), 사(史), 자(子), 집(集) 4부로 편성하여 만들었다. 3,462종, 79,338권, 약 230만 페이지에 글자 수가 8억자의 방대한 규모다.

이것을 다시 7부로 만들어 각지에 보관하였다. 먼저 만든 4부는 자금성 문연각(文淵閣), 심양 문소각(文溯閣), 원명원의 문원각(文源閣) 그리고 이곳 청더의 문진각에 보관하였다. 이것을 북사각(北四閣)이라 하고, 후에 다시 3부를 더 만들어 양주 문회각(文滙閣), 진강 문종각(文宗閣), 항주 문란각(文瀾閣)에 보관하였는데 이를 남삼각(南三閣)이라 한다.

청더 문진각에 있던 사고전서는 청의 멸망과 함께 베이징 국가도서관으로 옮겨져 보관하고 있다. 사고전서 편찬의 총책은 건륭제의 아들인 영용(永瑢)인데 열하일기에 이 영용에 대한 묘사가 있다.

"8월 10일, 정사와 부사가 궐내에 들어갈 때 나도 따라 들어갔다. 전각은 모두 단청을 입히지 않았고, 피서산장이라는 편액을 붙였는데, 오른쪽 곁채에 예부 조방(대기실)이 있어 통관이 그곳으로 안내한다. <중략> 어떤 이가 황자(皇子)께서 오십니다 하여 바라보니 한 사람은 말을 타고 대궐 안으로 들어가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말에서 내려 따라가고 있었다. 이 사람이 바로 황육자 영용이다. 흰 얼굴이 심하게 얽었으며 콧날은 낮고 작은데 볼이 몹시 넓고 흰 눈자위에는 눈꺼풀이 세 겹이나 지고, 어깨는 넓고 가슴은 떡 벌어져서 체격이 건장하긴 하나 귀인다운 모습은 전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는 글을 잘했고 글씨와 그림에도 통달하였으므로 《사고전서》 총재관이며, 백성들의 촉망을 받고 있다 한다."

덧붙이는 글 | 제 개인블로그 '길 위에서는 구도자가 된다'에도 실립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2008년 10월 지리산 자락 경남 산청, 대한민국 힐링1번지 동의보감촌 특리마을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여전히 어슬픈 농부입니다. 자연과 건강 그 속에서 역사와 문화 인문정신을 배우고 알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