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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학교는 꽤 조용한 편이다. 학급수가 적어서인지, 선생님, 학부모, 아이 모두 가족처럼 화기애애하게 지낸다. 그런데 최근 이 학교에서 거의 10년 만에 학교폭력위원회가 열릴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들렸다.

자초지종은 이랬다. 6학년의 한 남자아이가 어떤 여자아이를 좋아하는데 그게 소문이 났더란다. 사춘기 초입의 아이들은 이를 가지고 온갖 말들을 지어냈다. 둘이 사귄다는 둥, 옥상에서 무엇을 했다는 둥 제법 성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소문들이 퍼져 나갔고, 결국 견디다 못한 당사자 학부모들이 학교폭력위원회를 신청했다는 거였다.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는 게 폭력의 이유라니. 속이 상하면서 동시에 옛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아들 나이였던 시절, 남자아이들은 '아이스께끼'를 재미난 놀이인 양 외치고, "누구는 누구를 좋아한대요"라고 노래를 만들어 부르고 다녔었다. 선생님에게 이런 일을 일러바치면, 당시 선생님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걔들이 너 좋아해서 그러는 거야. 남자애들은 원래 좋아하면 저렇게 표현하는 거야."

성인이 돼서도 마찬가지였다.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많은 폭력들은 '좋아한다'는 이유로 발생했고, 같은 이유로 정당화됐다.

생각이 이쯤에 미치자, 요즘 "누가 누구를 사귄대"라는 말을 자주 전하는 아들 녀석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5학년. 부쩍 이성 친구에게 관심이 커진 아들에겐 무엇보다 제대로 된 성교육이 절실했다. 책장에 간직해 두었던 <페미니스트 엄마와 초딩 아들의 성적대화>(김서화 지음, 미디어 일다, 2018)를 꺼내 들었다.
 
 김서화 <페미니스트 엄마와 초딩 아들의 성적 대화>, 미디어 일다, 2018
 김서화 <페미니스트 엄마와 초딩 아들의 성적 대화>, 미디어 일다, 2018
ⓒ 미디어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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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이 가해자라면

내가 아이 학교의 소식에 놀랐던 건, 우리나라의 성교육이 많이 강화됐다고 알고 있어서였다. 아이들은 이제 유치원에서부터 매년 정기적으로 성교육을 받는다. 누군가 자신의 몸을 만지려할 때 "소중하니까 안 돼요"라고 말해야 하는 것을 알고 있으며, 남녀 생식기의 생물학적 의미와 기능등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은 다를 줄 알았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소중하니까 안 돼요'와 '생물학적 의미'에만 집중하는 성교육이 바로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런 성교육은 삶을 제한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남학생들은 스스로를 더욱더 동물적 본능에 종속된 인간으로 알도록 세뇌당하고, 여학생들은 늘 스스로를 잘 단속하도록 강요당한다. (221쪽)"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다. 딸을 둔 엄마들은 "늘 조심해라"라고 딸을 단속하고, 아들 엄마들은 종종 "우리 아들은 아직 어려. 아직 잘 몰라"라며 애써 아들의 성적인 면을 부인한다. 딸은 당연히 조심해야 하고, 아들은 성적본능을 늦게 추구하면 된다는 편견.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제대로 뜨끔했다.

이어 저자는 제대로 된 성교육을 하려면 "누구든 가해자가 될 수 있다"(57쪽)는 생각에서 아들을 예외로 두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어떻게 아들을 성폭력의 잠재적 가해자로 상상할 수 있냐'며 펄쩍 뛰는 친구에게 이렇게 이야기
한다.  
 
"그래, 내 아들 착한 거 나도 알아. 근데 그게 뭐? 착해도 친구 때리지 마라, 거짓말하지 말라는 말은 하잖아. 때리는 건 옳지 않은 일이고 사람이건 동물이건 때리지 말라고 알려주는 것이 옳은 일이니까. 그런데 왜 성폭력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면 안 되는 거지? 일찍부터 가르치면 더 좋은 거 아닌가? 성폭력 하지 말라는 게 그토록 해서는 안 될 말이야?" (58쪽)

성교육의 핵심은 '시각'

저자에 따르면 성교육의 핵심은 젠더에 대해 올바른 시각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양육자가 먼저 '호기심'과 '폭력'의 경계를 잘 구분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양육자들은 아이가 '엄마 고추와 아빠 고추가 어떻게 만나?'라고 아이가 물으면, '어디 가서 그런 질문 하면 안 된다'고 윽박지른다. 반면 아이가 "화장실에서 네 성기를 보여줘"라고 말했다고 하면, '호기심'에서 그랬다고 얼버무리곤 한다. 즉, 호기심과 폭력을 헷갈리는 것이다.

이렇게 성에 쉬쉬하면서 폭력적인 행동을 호기심으로 치부해버리면 아이들은 다른 이의 성을 타자화하는 것을 배운다. 아들의 학교에서도 '좋아한다'는 감정은 놀림감이었고 소문에 연루된 학생은 호기심으로 포장된 폭력의 대상이 됐다. 즉, 아이들은 누군가의 좋아하는 감정을 타자화했던 것이다. 이런 일들은 지금까지 실시된 생물학적인 성의 의미를 안다거나, 내 몸을 잘 단속하라는 성교육을 받는다고 예방된 일이 아니었다. 

현실을 비춰보자, 권력과 힘의 문제를 간과하고서는 제대로 성교육을 할 수 없다는 저자의 주장에 수긍이 갔다. 성별을 이분화하고, 젠더를 위계화하는 것에서 벗어나는 것. 즉, 아들이 '사내가 돼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다양한 젠더 스펙트럼을 받아들이며, 다른 성을 타자화하지 않도록 교육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아들 성교육의 핵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만 된다면, 성이 폭력이 되는 일은 없어질 테니 말이다.

평등한 관계를 경험하는 것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아이에게 "내가 그저 나로 존재해도 괜찮은 경험(124쪽)"을 하게 해 줄 수 있을까. 저자는 우선 평등한 관계를 경험할 수 있도록 '아이에게도 권력을 허하라'라고 말한다.
 
"아이에게 권력을 주지 않는 우리 사회가 흔히 내세우는 것은 '예의'이다. 예의를 가르친다고 하면서 사실은 복종이나 순종을 요구한다. (중략) '그래도 내가 엄마인데', '어디 어른 앞에서', '네가 뭘 안다고'와 같은 관습적 표현들에 얼마나 기대는지 모른다." (216쪽)

부모와 평등한 관계에서 대화하고, 자기주장을 온전히 할 수 있는 아이가 성적인 문제 앞에서도 자신의 뜻을 명확히 밝힐 수 있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나아가 이렇게 존중받은 경험을 가진 아이라면 타인의 주장이나 생각도 존중해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양육자가 젠더 감수성을 키우고, 가정에서부터 평등한 관계를 실천할 것을 제안한다. 가정에서부터 평등하며 지켜야 할 의무와 배려들을 실천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고 자란 아들이라야 성과 관련된 문제들에 직면했을 때 젠더 감수성을 가지고 스스로 성찰해 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설사 포르노그라피를 본다 해도 그 아이는 자기 나름의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헐벗은 몸들이 주는 충격을 덜어낼 힘은, 결국 그 몸들에 투영된 시선을 읽어내는 능력에서 나올 테니까." (159쪽)

이 책에서 아들 성교육에 대한 구체적인 매뉴얼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젠더 감수성을 키워주는 것이 성교육에서 가장 중요하며, 때문에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성교육이 이뤄줘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매우 설득력 있었다. 저자와 초등학생 아들과의 실제 대화 예시를 통해 아이들과 나눌 수 있는 성적 대화의 수위를 가늠해볼 수 있었던 점도 좋았다.

이제 나도 아들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쉬쉬하는 것을 멈추고 아들과 평등하게 대화를 나누어 봐야겠다. 이게 바로 지금 우리의 아들들에게 꼭 필요한 성교육이니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에도 실립니다.


페미니스트 엄마와 초딩 아들의 성적 대화 - 양육자를 위한 초등 남아 성교육서

김서화 (지은이), 일다(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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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사람은 물론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하며 평등과 생명존중을 담은 글을 쓰고 소통합니다.

라이프+ 여행·문화 담당 기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기 위해선 이야기의 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