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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에서 친구들과 식사를 마치고, 톨레도로 가는 버스를 탔다. 어제의 환희는 여전히 거리에 남아있었고, 붉은 유니폼을 벗을 생각이 없는 리버풀 팬들은 당당하게 마드리드를 즐기고 있었다. 스페인 문화의 보고인 마드리드를 이렇게 떠나는 게 아쉽기는 했지만, 6월 9일까지는 반드시 포르투갈의 포르투에 도착해야 하는 일정이라 여유는 없었다.
 
리버풀이여 영원하라! 리버풀 팬들이 이번을 위해 제작해 놓은 걸개를 식당 앞에 걸어두고, 흐믓한 표정으로 식사를 즐기고 있었습ㄴ다. 역시, 이들은 충성도 높은 서포터 집단인거 맞습니다.
▲ 리버풀이여 영원하라! 리버풀 팬들이 이번을 위해 제작해 놓은 걸개를 식당 앞에 걸어두고, 흐믓한 표정으로 식사를 즐기고 있었습ㄴ다. 역시, 이들은 충성도 높은 서포터 집단인거 맞습니다.
ⓒ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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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팀 앞에서 사진을 찍어요! 시내에 풍선으로 만들어놓은 커다란 우승컵 조형물이 있었는데, 꼬마들이 모두 리버풀 앞에 모여들어 사진을 찍고 있네요. 역시, 우승팀의 인기란!
▲ 우승팀 앞에서 사진을 찍어요! 시내에 풍선으로 만들어놓은 커다란 우승컵 조형물이 있었는데, 꼬마들이 모두 리버풀 앞에 모여들어 사진을 찍고 있네요. 역시, 우승팀의 인기란!
ⓒ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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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해외여행은 무척이나 수월해졌다. 그 동네가 안전하다는 확신만 있다면, 구글맵이 가르쳐주는 대로 대중교통으로도 충분히 다닐 수 있다. 여행자의 꿈이라는 '현지인처럼 살기'가 가능해지는 마법이기도 하다.

구글맵이 알려주는 지하철역에 내려서 톨레도로 가는 버스 표를 샀다. 버스 안에서 1시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스쳐가는 평원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평화가 이것이구나 싶었다. 스페인의 중부인 마드리드와 톨레도 근처에는 끝도 없는 평원이 펼쳐져 있었다.

버스터미널에 내려서 짐을 끌고 밖으로 나왔더니, 한낮의 뜨거운 열기가 환영의 인사를 보낸다. 모자와 선글라스를 급하게 챙겨 쓰고 고개를 들었더니, 높은 성벽 위로 단단하게 보이는 성채들이 도시를 에워싼 풍경이 시야에 들어온다.

와! 당장이라도 기사가 말을 타고 내려올 것만 같은 기세에 도시의 압도되었다. 도시의 정보를 찾아보니 기독교와 유대교, 이슬람교의 문화가 다채롭게 섞여있는 도시이며, 1986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된 곳이라고 한다. 서둘러 길을 잡아 숙소로 향했다.
 
중세의 기사가 다녔을 것만 같은 길. 길의 곳곳에 말을 매어 놓았던 고리가 붙어 있기도 하구요, 하늘을 덮은 천과 집에서 내려걸린 휘장들이, 지금이 2019년인지를 잊게 하더군요. 당장이라도 기사가 나타날 것만 같은 풍경이었어요.
▲ 중세의 기사가 다녔을 것만 같은 길. 길의 곳곳에 말을 매어 놓았던 고리가 붙어 있기도 하구요, 하늘을 덮은 천과 집에서 내려걸린 휘장들이, 지금이 2019년인지를 잊게 하더군요. 당장이라도 기사가 나타날 것만 같은 풍경이었어요.
ⓒ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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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성채가 있다는 것은, 성벽 안의 숙소로 가기 위해서는 길을 올라가야 한다는 말인데, 구글맵은 자꾸 '숙소까지 가는 길은 무척이나 평탄'하다며 거짓말을 한다.

힘들게 무거운 짐가방을 끌고 숙소에 도착하여 자그마한 '내 방'에 짐을 풀었다. 마드리드에서 머무는 동안은 줄곧 12인승 호스텔에 머물렀기에, 드디어 만나게 된 내 방이라는 게 무척이나 반가웠다. 혼자 여행을 하는 중에는 가능하면 저렴한 숙소를 구하는 편인데, 이번의 선택은 만족스럽다.
 
톨레도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탑 위에 올라섰습니다.  저 멀리로 보이는 건물은 톨레도의 상징인 알카사르입니다.
▲ 톨레도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탑 위에 올라섰습니다.  저 멀리로 보이는 건물은 톨레도의 상징인 알카사르입니다.
ⓒ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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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도시의 이곳저곳을 발품을 팔아 걸었다. 좁고 오래된 골목에는 중세의 기사가 말을 매어 놓았던 고리가 보이고, 이곳 어딘가에서 여정을 준비한 '라 만 차의 돈키호테'가 떠올랐다. 실제로 톨레도는 카스티야라만차 (Castilla-La Mancha) 자치지역에 포함되어 있어서, 여기저기에서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로마의 전차가 지나갔던 길을 밟고, 오래된 거리를 걷고, 불편한 집에서 자려고 유럽에 오는 거잖아!"

2006년이었나? 독일 월드컵을 즈음하여 생애 첫 유럽 여행에 나섰을 때, 울퉁불퉁한 돌들이 깔린 길에서 여행 가방을 끌고 있는 손이 아파질 무렵 내뱉은 탄식인데, 여전히 유효하다.

유럽을 찾을 때면, 그들의 오래된 도시에서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의 흔적들이 너무나 부럽다. 오랜 역사를 거쳐 '스페인'이라는 나라로 통치되기 전까지, 이들은 수많은 내전을 겪었을 것이고, 다른 문화로부터의 도전을 받아냈을 것이며, 스스로 다른 문화에 대한 침략을 주저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그대로 남겨져 있다.

거리에 깔린 돌 하나 집을 만든 벽돌 하나하나를 조금씩 다듬어가며 보존하는 그들의 문화 인식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도시를 있는 그대로 보존하는 이익이 개발의 논리를 넘어선다는 뜻이니 말이다. 이들에게도 부동산 가치라는 것이 있을 텐데... 그들의 정책 결정 과정이 궁금하긴 하다.

"포항은 11.15 지진 이후, 도시 재생에 대한 논쟁이 한창입니다. 하지만, 지역사회는 개발업자와 지역재생의 두 가지 주제로 양분되어 갈등하는 지경입니다. 이를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까요?"
"도시 재생은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우리처럼 부동산이 소유 재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나라에서 개발 논리를 넘어서기란 쉽지 않아요. 하지만, 공공 건축을 이용하여 지역의 공공성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사용한다면, 무분별한 개발을 일정 부분 제어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난 봄, 우연히 인문학 강의를 들었다. 승효상 건축가의 강연이었는데, 어느 학생이 한 질문에 대한 선생의 답이었다. 선생은 '공공 건축을 이용한 침술 처방'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설명하셨다. 어쩌면 우리나라는 사유재산의 가치가 갖는 힘을 제어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답변으로도 들려서, 안타까웠다.

지역의 주민들이, 그 지역의 문화와 역사성을 보존하는 것에 그만한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다면 이를 뒤집기는 쉽지 않으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톨레도의 도시 곳곳에서 스스로 정성껏 보존해 왔고, 앞으로도 우리의 가치를 영원히 후대에 전달하겠다는 시민들의 다짐이 읽혀 부러웠다.
 
가만히 있어! 어깨에 비둘기를 얹고 잔뜩 겁을 집어먹은 표정입니다. 같이 버스를 기다리던 아줌마가 한 장 찍어주셨네요.
▲ 가만히 있어! 어깨에 비둘기를 얹고 잔뜩 겁을 집어먹은 표정입니다. 같이 버스를 기다리던 아줌마가 한 장 찍어주셨네요.
ⓒ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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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 기다려! 사진 찍어야 해. 카메라 줘봐!"

일몰과 야경을 보기 위해 '전망 좋은 곳 (Mirador del Valle)'으로 이동하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뭔가가 '쿵' 하는 소리를 내더니 어깨에 묵직한 느낌이 들었는데, 같은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할머니들 중 한 분이 갑자기 달려오신다. 드문드문 들리는 단어를 연결하자니 '네 어깨에 비둘기가 앉았다. 그대로 가만히 있어라' 정도였는데, 나중에 사진을 보니 꽤나 겁먹은 표정의 내가 보인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톨레도의 일몰입니다.  멀리로 해가 집니다. 하루 종일 구름 한 점 없이 맑다가, 해가 지는 서쪽 하늘에만 구름이 몰려있는 것이 안타깝긴 하지만, 아름다운 일몰이네요.
▲ 전망대에서 바라본 톨레도의 일몰입니다.  멀리로 해가 집니다. 하루 종일 구름 한 점 없이 맑다가, 해가 지는 서쪽 하늘에만 구름이 몰려있는 것이 안타깝긴 하지만, 아름다운 일몰이네요.
ⓒ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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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로 톨레도의 야경을 진두지휘하는 쌍두마차가 보이네요! 오른쪽의 건물이 알카사르이고 왼쪽은 톨레도 대성당입니다. 자연이 만들어 놓은 천혜의 해자인 강의 안쪽으로 공고하게 지어진 도시에서 위엄이 느껴집니다.
▲ 멀리로 톨레도의 야경을 진두지휘하는 쌍두마차가 보이네요! 오른쪽의 건물이 알카사르이고 왼쪽은 톨레도 대성당입니다. 자연이 만들어 놓은 천혜의 해자인 강의 안쪽으로 공고하게 지어진 도시에서 위엄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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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을 기다리며 자리를 잡고 앉아서, 어디 하나 침범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성채를 바라보고 있자니 공간이 견뎌내었을 시간과 추억까지 함께 나에게로 온다. 아차차! 행복감에 취해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다가 숙소로 가야 하는 마지막 버스를 놓쳤다.

신발까지 불편한데 밤길을 정처 없이 30분 정도 걸어서 숙소에 도착했다. 이로써, 오늘은 2만 7천보, 18킬로미터 가까운 거리를 걸었다. 점심 식사 이후로 아무것도 못 먹은 게 걸리긴 하지만, 오늘은 일단 자야겠다. 안녕 (Buenas noch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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