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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람들은 앞만 보고 걷는다.' 2년 전 은연중 머리에 깊게 박힌 인식이다. 퀭한 눈으로 한 손에 커피를 들고서 지하철에 오르는 사람들. 저들처럼 되지 말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어느새 나도 앞사람의 정수리만 쳐다보며 걷고 있었다. 2년 전의 다짐이 무색해지기까지 2달이라는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밀려오는 허무함을 떨치고자 반나절의 여행을 떠났다. 목적지는 인천이었고, 혼자였다.

존재함에 행복한 곳
 
송월동 벽화마을 1 송월동에 놀러 온 중국인 아이
▲ 송월동 벽화마을 1 송월동에 놀러 온 중국인 아이
ⓒ 김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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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여기 봐야지, 찰칵!' 동화속 주인공들이 그려진 마을 여기저기서 정성 가득한 셔터음이 울려퍼진다. 마을 한편에는 아이들이 가위바위보를 하며 술래를 정하고 있고, 작은 소란에 건너편 골목 집 할머니는 마당을 살피시는 겸 꽃에 물을 주신다.

평소라면 보이지 않았을 장면들이 지나간다. 평소 빠르다고 소문난 내 발걸음이 느릿해졌다. 1883년, 제물포항의 개항으로 송월동에 독일인을 비롯한 외국인들이 거주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 젊은이들이 마을을 떠나면서 노후화된 마을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인천시는 동화마을 형성을 계획했다.
 
송월동 벽화마을 2 아빠 손 꼭 잡고
▲ 송월동 벽화마을 2 아빠 손 꼭 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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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월동의 노후화라, 따신 햇빛이 스미고 개구진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모습이 얼핏 그려진다. 그런대로 꽤 정감가고 좋다. '동화마을'라는 뚜렷한 주제로 입체적인 벽화길이 형성된 송월동은 다른 벽화마을보다 더욱 주목받는다. 헨젤과 그레텔 속 과자집이 쉬어가라는 듯 기꺼이 도넛 의자를 내주고, 피터팬이 두 발로 서서 저를 따라오라며 손 내미는 바로 그곳이 송월동이다.
   
연서흑백사진관 혼자 흑백사진 찍기
▲ 연서흑백사진관 혼자 흑백사진 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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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히 동화마을의 안길을 걷다 보면 검은 지붕의 '연서 흑백사진관'이 눈에 띈다. 사장님은 누군가에게 보내는 특별한 편지처럼 삶의 한 조각을 담아내고자 이름을 '연서'라고 지었다며 웃었다. 연서 사진관은 성인 10명이 들어오면 꽉 찰 만큼 공간이 협소하지만 사진 한 장으로 빚어진 행복의 너비는 가늠할 수 없다. '연서'에서는 단돈 오천원이면 추억 한 장을 살 수 있다.

물류창고에서 만남의 광장으로
 
한국근대문학관 근대문학관
▲ 한국근대문학관 근대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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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것의 흔적이 묻어난 곳은 왠지 모르게 더 눈길이 가기 마련이다. 인천 개항누리길 초입에 들어선 한국 근대문학관이 그렇다. 문학관은 서구 근대문화가 유입되던 당시 항구도시인 인천의 역할을 뒷받침했던 물류창고를 개조하여 만든 곳이다.

톡 하고 건드리면 툭 하고 둔탁한 소리가 나는 제법 단단한 고동색의 벽이 기둥처럼 지붕을 받치고, 그 사이의 공간은 거울로 다닥다닥 채워져 주변 풍경이 훤히 비친다. 
 
한국근대문학관 토론의 공간
▲ 한국근대문학관 토론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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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앞에는 족히 10미터가 넘는, 아직은 푸른 잎의 은행나무가 우뚝 솟아있어 자칫 휑하다고 느낄만한 공간을 넉넉히 메꾼다. 우연히 문학관을 마주한 순간 잊고, 있었던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가슴이 뛴다.

문학관에서는 근대 계몽기부터 해방기까지 한국 근대문학의 역사적 흐름을 따라가도록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를테면 언젠가 수많은 여고생의 잠재적 남자친구 리스트에 올라있었을 '백석', '윤동주'의 작품은 물론 그로테스크한 작품으로 이름을 떨친 '이상'과 같은 문인들의 손자취를 느낄 수 있다.

다양한 문학작품이 전시된 만큼 문학관에 방문하는 손님도 가지각색이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두 손에 작은 수첩과 펜을 쥐고 있는 학생, 산책 중 호기심에 들어와 뒷짐을 쥔 채 주변을 살피는 중절모 쓴 할아버지, 영감을 얻고자 앞치마 차림으로 작업실을 뛰쳐나온 예술가. 어떤 의도로 문학관을 방문하든, 같은 주제로 말문을 틀 수 있는 공간. 언제부턴가 이 작은 공간은 만남의 광장으로 거듭났다.

배려가 깃든 자리
 
인천서점 인천서점 내부
▲ 인천서점 인천서점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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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다가왔음을 느낀 건 목덜미에 닿은 눅눅한 바람 덕이었다. 두 발이 자연스레 카페를 찾았고, 마침 카페 '인천서점'이 눈에 들어온다. 평소 카페인을 입에도 안 대면서 당당히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아마 사람이든 장소든, 처음 마주하는 상황에 낯가림이 무의식중에 드러난 것이리라. 자리에 가 앉으면 가져다주겠다는 직원의 말에 그제야 숨을 돌리고 주변을 둘러본다.
 
인천서점2 인천서점 내부
▲ 인천서점2 인천서점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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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이 통유리로 둘러싸인 이 공간은 마치 온실에 들어온 듯 햇빛을 그러쥐고 놓아주지 않는다. 그 광경이 예뻐 눈을 떼기 힘들었다. 건축가는 인천서점을 설계하며 북카페지만 단순히 책이 인테리어 요소로 쓰이지 않길 바랐다.

그는 손님들이 안락한 흙집에서 선뜻 책을 찾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고, 그렇게 흙벽 사이 목재로 된 서가가 탄생했다. 덧없음을 지양하는 마음은 사람들이 책에 부담을 느끼지 않게끔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인천서점3 인천서점 내부
▲ 인천서점3 인천서점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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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치형 흙벽 입구를 지나 서가 사이를 채워주는 낙낙한 테이블에 자리를 잡는다. 인천서점은 사람들이 책을 고를 때 흥미를 돋우려 짧은 멘트를 써 둔다. 가령, 내 눈에 들어온 책은 '아녜스 드 레스트라드'의 <그녀석이 왔다!>라는 책이었는데 그 밑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이 책을 손에 쥔 당신도 '그 녀석'이에요. 그래요, 우린 모두 '그 녀석'이죠. 난데없이 찾아온 '그 녀석' 궁금하지 않나요?" 사람의 마음을 끌어들이기에 충분히 재치있는 말. 인천서점의 전략에 꼼짝없이 걸려들었다. 어느새 두 손에 들려있는 책을 들고 다시 앉았다.

서빙 받은 아메리카노가 반쯤 줄어들었음을 느꼈을 때 고개를 들었다. 목재 서가 사이로 삐져나오는 빛이 내가 이곳에 처음 자리했을 때보다 15도가량 기울었다. 혼자이기에 오래도록 느낄 수 있는 여유로운 하루의 끝이 다가온다. 골라 온 책의 페이지도 어느새 마지막 장을 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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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