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로지> 포스터

영화 <로지> 포스터 ⓒ BoXoo 엔터테인먼트


아일랜드 더블린에 거주하는 로지(사라 그린 분)와 남편 존(모 던포드 분), 어린 네 아이는 집주인이 집을 팔겠다고 통보하면서 7년 동안 살았던 보금자리를 잃고 거리로 쫓겨난다. 더블린의 부동산 가격이 폭등한 탓에 집을 구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로지 가족이 머물 공간이라곤 짐을 잔뜩 실은 작은 자동차밖에 없다.

로지는 가족들이 잘 수 있는 방을 마련하기 위해 종일 여러 호텔로 전화를 돌리지만, 당장 하룻밤을 보낼 방조차 구하기가 막막하다. 오늘만 넘기면 내일은 다를 거란 생각으로 버티던 로지 가족은 주위 이웃들, 아이들의 학교 선생님과 친구들까지 상황을 눈치를 채면서 점점 벼랑 끝으로 몰린다.

영화 <로지>는 집을 잃고 거리에 내몰린 한 가족을 그린다. 영화는 첫 장면에서 "물량 부족과 임대료 급상승으로 민간 임대 주택에서 내몰리는 저소득층 가정이 늘고 있습니다", "노숙자 구호 단체에 따르면 아일랜드의 집 없는 가족 증가율이 유럽 최고로...", "수백 가정이 긴급 거처를 찾고 있는데 이들을 받아주는 호텔은 부족합니다" 등 라디오뉴스를 빌려 아일랜드의 주거 문제를 들려준다.

도입부가 들려주는 상황은 영화 속 상상이 아닌, 지금 아일랜드의 현실이다. <로지>의 이야기는 더블린에 있는 집에서 라디오에서 들었던 한 사연에서 출발한다. 라디오에서 집이 없었던 한 젊은 여성이 가족과 함께 하룻밤 묵을 곳을 찾으러 고군분투한다는 사연을 들은 로디 도일 작가는 여성의 남편이 안정된 직업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숙소를 찾아 헤매야 하는 현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그는 "희망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하며 <로지>의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갔다고 설명한다.
 
 영화 <로지>의 한 장면

영화 <로지>의 한 장면 ⓒ BoXoo 엔터테인먼트


영화는 로지 가족의 36시간 남짓한 일상을 따라간다. 존은 식당에 일하러 가고 로지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후에 빈 호텔을 찾고자 계속 전화를 돌린다. 오후가 되면 로지는 아이들을 데리러 가고 간신히 구한 호텔에서 가족은 하루를 보낸다. 다음날에도 이것은 반복된다.

영화는 로지 가족이 맞닥뜨린 상황 속에서 고장 나버린 아일랜드의 복지 시스템과 차가운 현실에서도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려 몸부림치는 인물들의 감정 변화를 목격한다. 그리고 로지 가족이 짊어진 삶의 무게를 관객에게 생생히 전달한다. 로지는 묻는다. "직장은 있는데 집은 없어. 정말 어이없지 않아?"

<로지>에서 '자동차'는 여러 의미로 기능한다. 자동차는 로지 가족이 의존할 수 있는 유일한 집과 다름이 없다. 그 안에서 현실에 지쳐 다투기도 하고 절망스러운 상황에 짜증도 내지만, 웃음꽃이 피어나는 찰나도 있고 서로를 의지하며 마음을 여는 순간도 있다. 온 가족이 감자튀김을 먹거나 던지면서 보내는 즐거운 한 때는 잔혹한 현실을 지워버릴 정도로 온기가 넘친다.

자동차는 로지 가족의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을 비추는 수단도 된다. 마치 폐소공포증을 느끼게 할 정도로 비좁기만한 차 안은 핸드헬드 촬영과 맞물려 인물의 불안감을 한층 더한다. 자동차는 넓고 비어있는 바깥 풍경과 연결되어 인물의 심리를 드러내기도 한다. 텅 빈 주차장에 홀로 서 있는 자동차 장면에선 화면에 불안감과 절망감이 가득하다.
 
 영화 <로지>의 한 장면

영화 <로지>의 한 장면 ⓒ BoXoo 엔터테인먼트


로지 역을 맡은 사라 그린 배우는 <로지>를 "한 젊은 가족이 자신들의 잘못 없이 집을 잃은 이야기"라고 소개한다. 그녀는 "우리는 집을 잃고 난 2주 후의 그들을 보여준다. 이것은 상실과 회복력에 대한 이야기다. 어떻게 체제와 정부가 사회적 문제에 실패했는지, 이런 문제는 아일랜드뿐 아니라 세계 모든 곳의 가족들에게 일어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로지>는 흔한 방법으로 현실을 비판하길 거부한다. 진부한 표현으로 동정심을 유발할 생각도 없다. 손쉬운 해결책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려 발버둥치는 로지를 통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다. 누구에게나 로지 가족의 일은 일어날 수 있다. 우리가 처한 사회 문제이기 때문이다. <로지>는 <로제타>(1999)의 다르덴 형제,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의 켄 로치의 사회주의 영화의 계보를 잇는, 낮은 위치에서 쓴 따뜻하면서 날카로운 현실 비판이다.

극 중에서 로지는 동생이 '노숙자'라는 표현을 쓰자 외친다. "우리 노숙자 아니야. 집을 잃은 거야. 열쇠를 잃어버려서 못 들어가는 거라고" 마지막 장면에서 로지는 딸의 손을 맞잡는다. 서로를 향해 내민 손. 영화는 함께 사는 것이 열쇠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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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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