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이 글에는 영화 <기생충>의 결말을 알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기생충 포스터

기생충 포스터 ⓒ (주)바른손이앤에이

  
제72회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기생충>이 지난달 30일에 개봉해 국내 박스 1위자리를 내려 놓지 않으며 순항중이다.

<기생충>은 봉준호 감독 특유의 예술성과 대중성의 뛰어난 균형과 출연 배우들의 놀라운 연기 앙상블이 녹아든 작품으로 관객과 평단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봉준호라는 장르적 쾌감

칸 프리미어 상영회 이후 미국 영화매체 <인디와이어>의 데이비드 엘리치는 <기생충>을 두고 "어지러울 정도로 뛰어나며 전혀 분류할 수 없는 영화로 봉준호가 하나의 장르가 되었음을 증명하는 작품이다"라고 극찬했다. 

이 평가에 봉준호 감독은 자신에 대한 최고의 찬사라고 반응했다. 봉 감독은 '장르를 구분할 수 없다는 말', 그 말이 자신이 듣고 싶었던 말이라고 했다. 데이비드 엘리치의 말처럼 <기생충>은 어느 장르에 끼워 넣어야 할지 선듯 판단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그만큼 장르의 혼재가 두드러진 작품이다.

극 중반까지만 봤을 땐 <기생충>은 가족영화에 기반을 둔 블랙 코미디 성격의 케이퍼 무비 같다. <오션스일레븐> <도둑들> 같은 색깔을 띠고 있지만, 이 영화 속 기택 가족의 타깃은 거액의 돈도 아니고 값비싼 보석도 아니다. 그들의 목표는 다름 아닌 '일자리'다.

그들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범죄영화에서 봄직한 주도면밀하게 설계된 계획과 재치 넘치는 행동으로 자신들의 자리를 하나 둘씩 꿰찬다. 그 속에는 봉준호 감독 특유의 재치있는 유머와 배우들의 위트 있는 연기가 만들어내는 웃음이 담겨있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일자리는 현재 한국사회가 그토록 해결하고 싶은 문제로, 기우 가족의 모습은 영화는 본 많은 사람들에게 서글픈 공감을 안겨준다. 이 과정은 서글픈 공감을 넘어 쓰기까지 한데, 기택과 충숙이 일자리를 얻는 과정에선 다른 누군가가 밀려나기 때문이다. 가진 자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다른 누군가를 교활하게 끌어내리는 모습은 아련함과 분노를 안겨주기까지 한다.

케이퍼 무비의 흐름을 띠던 이 영화는 기택 가족이 박사장 집 지하실 속 존재와 조우하게 되면서 걷잡을 수 없이 서스펜스의 세계로 전환된다. 코미디와 서스펜스 그리고 박사장 부부의 에로틱한 장면이 버무려진 약 15분의 시간은 실로 설명하기 힘든 오묘한 기운을 발산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다양한 감정을 쏟아내게 만든다. 그리고 후반부에는 조금 과장해 대낮에 벌어지는 핏빛 호러 무비의 분위기까지 발산한다. 

<기생충>에는 다양한 장르가 혼재되어 있지만 그 색깔이 선명하다. 또한 장르의 혼합은 뛰어난 시너지를 보이며 다양한 재미를 선사한다. 이러한 장르의 혼재가 주는 재미뿐 아니라 주제의식이 담겨있는 복선과 암시 그리고 상징들을 해석하는 재미도 크다.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주제 의식은 선명하다. 선(계층)을 넘지 말라는 박사장의 대사, 끊임없이 등장하는 계단. 누군가에겐 자신의 집을 집어삼킨 악마같은 폭우지만 누군가에겐 맑은 하늘을 선사한 고마운 비까지... 한국사회 또는 전세계가 가지고 있는 소득의 양극화로 인한 계층문제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계층문제보다 뚜렷하게 남는 '징악'의 메시지

하지만 영화가 끝난 뒤 내게 선명하게 남는 것은 바로 '징악(懲惡)이다. 나는 영화에 등장하는 '그릇된 계획'과 '무계획'이 불러온 '징악'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 싶다. 

영화는 가난한 전원 백수 기택(송강호) 집안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 들어오면서 시작된다. 그 물건은 바로 수석이다. 

기우의 친구 민혁(박서준)이 그것을 가져다 주는데, 그 수석은 집안의 재물운을 준다며 민혁의 할아버지가 전해 주라는 것이었다. 집안의 장남 기우(최우식)는 그날 바로 민혁의 소개로 박사장(이선균)집에 고액 과외선생으로 취직할 수 있는 면접기회를 얻는다. 면접에 앞서 기우는 '계획'을 세우는데 바로 동생 기정(박소담)의 힘을 빌려 학력을 위조하는 것이다. 

기우는 순진한 얼굴과 어울리지 않게 그 행위가 엄연히 범죄인데도 본인은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첫 범죄가 성공하자 다른 가족들의 일자리를 위한 계획을 계속 펼치기 시작한다. 그것이 누군가에 일자리를 빼앗는 것임에도 큰 죄의식이 전혀없다. 그것이 다른 누군가의 생존을 위협하는 행위임에 말이다.

기우의 계획은 그릇된 계획이다. 하지만 기우는 그 그릇된 계획을 놓을 수가 없다. 기우가 홍수 속에서도 그 계획의 시발점 된 '수석'을 품에 안고 내려 놓지 못하는 이유이다. 기우의 그릇된 계획의 끝은 좋지가 않다. 영화에서 기우는 자신의 그릇 된 계획을 상징하는 수석으로 인해 죽음의 문턱에 서게 된다.

영화 속에서 '그릇된 계획'보다 더 큰 죄악은 '무계획'으로 보여진다. 홍수가 생긴날 기우의 그릇된 계획에 동참하던 아버지 기택에게 기우가 계획이 뭐냐고 묻는다. 기택은 아들 기우에게 답한다. "무계획이다.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실패 할 일도 없다." 하지만 기택의 계획 없는 삶의 종말은 그릇된 계획의 종말보다 더 참혹하다.

다송의 생일파티에서 그는 무계획으로 인해, 계획에 없던, 쓰디 쓴 아픔을 겪게 된다. 무계획이 삶이었던 그는 결국 반지하 만큼도 못한 신세가 되고 만다.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을 통해 양극화와 일자리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지만,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해답을 결코 옳지 않은 방법에서 찾지 말아야 할 것을 경고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구건우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zig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기생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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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의 아빠이자 영화 좋아하는 네이버 파워지식iN이며, 2018년에 중소기업 혁신대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보안쟁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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