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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막례 할머니 Korea Grandma'의 인기가 대단하다. 유튜브를 거의 보지 않는 나에게도 익숙한 이름이다. 73세 유튜버. 손녀가 영상을 찍어서 유튜브에 올린다고 들었다. 영상을 보기 전에 나는 그들에 대해 다소 비뚤어진 시각을 갖고 있었다.

괜히 할머니를 웃음거리로 만들어서 돈 버는 사람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 부류의 사람이라면 질색이다. 예쁘장한 아이를 내세워 돈 버는 부모들과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영상을 보고 내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그야말로 '박막례 편(팬)'이 되어버린 것이다.

내가 박막례 할머니의 영상을 처음 본 건, 할머니의 메이크업 영상이었다. 박막례 할머니가 치과에 갔다가 시장에 가려고 화장을 고치는 영상. 아니, 세상에 어떤 할머니가 시장에 간다고 화장을 고친단 말인가. 적어도 내가 아는 할머니 중에 그런 할머니는 없었다. 영상을 보고 혼자 방구석을 데굴데굴 구르며 그야말로 자지러지게 웃었다. '아! 이 할머니 너무 웃겨, 너무 좋아!'

영상을 보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손녀는 왜 할머니 영상을 이렇게 찍게 되었을까? 나는 친할머니, 외할머니 두 분 모두 돌아가시고 없다. 할머니들이 살아 계실 때에도 나는 할머니랑 친하게 지내지 못했다. 어렸을 때, 할머니가 나를 예뻐해 주셨다는 기억만 어렴풋하게 갖고 있다.

외할머니의 마늘종장아찌가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는 것, 할머니 옷장에서 할머니의 옷을 꺼내 입고 거울을 보며 즐거웠던 기억들만 영화의 스틸컷처럼 몇 장 마음에 남아 있다. 그래서 박막례 할머니 영상에서 손녀가 할머니랑 친구처럼 즐겁게 세계 곳곳을 다니며 웃고 장난치는 모습을 보면서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영상에 담긴 두 사람의 모습이 좋아 보였다. 눈물이 찔끔 날 만큼.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 박막례, 김유라 지음, 위즈덤하우스(2019)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 박막례, 김유라 지음, 위즈덤하우스(2019)
ⓒ 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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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는 박막례 할머니와 그의 손녀 김유라가 영상에 담지 못한 그들의 속 깊은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박막례 할머니는 1947년 전라남도 영광에서 2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나 이름도 '박막례'다. 70년간 총 6가지 직업을 가졌으며, 현재 직업은 유튜브 크리에이터다.

연극영화를 전공한 김유라는 할머니가 치매 위험이라는 진단을 받고 온 직후, 퇴사를 하고 할머니와 단둘이 호주로 떠났다. 두고두고 보시라고 찍어서 올린 영상이 100만 뷰를 넘겼다. 그 계기로 유튜브 채널 < Korea Grandma >를 시작했고, 2019년 6월 현재 구독자 수 89만 명을 넘겼다. '할머니가 즐거울 것'이라는 원칙을 지키며 진심을 다해 유튜브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책의 초반에는 박막례 할머니가 살아온 날들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있다. 그야말로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인생을 살아오셨다. 할머니 스타일로 말하자면, '염병할 놈들을 만나 염병할 인생'을 살았다. 끝도 없는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 인간들이 있는 반면, 그때마다 번번이 그 구렁텅이에서 나를 꺼내준 고마운 사람들도 있었다.

그 사람들 덕에 지금껏 살아왔다. 시골에서 막내딸로 태어나 글도 못 배우고 어려서부터 온갖 집안일을 도맡아 했다. 그러다가 지지리도 가난한 집안의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는데, 남편은 돈 한 번 벌어다 주지 못하고 허구한 날 밖으로만 나돌았다. 어떻게든 혼자 자식들 먹여 살리려고 파출부에서부터 식당 일까지 죽어라 일만 하고 살았다.  
 
그러니까 내 말은 우리 할머니처럼 살기 싫었다는 거다. 70평생을 아버지 때문에, 남편 때문에, 자식들 때문에 허리가 굽어라 일만 하며 살다가 "박막례 씨, 치매 올 가능성이 높네요."라는 말을 들어야 하는 불쌍한 인생. 할머니가 병원에서 치매 위험 진단을 받은 날, 내 나이 스물일곱이었고 인생은 진짜 불공평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할머니와 둘이 호주로 떠났다. 다니던 회사는 그만뒀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나는 어떤 생각에 단단히 미쳐 있었다. 우리 불쌍한 할머니, 이대로 죽게 내버려 둘 순 없었다. (56~57쪽)

그렇게 할머니와 처음 단둘이 호주로 여행 가서 찍은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게 된 것이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가족끼리 보고 웃으면 됐지 뭐'라고 생각했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그 이후 할머니와 함께 이것저것 새로운 것들을 해보고 찍은 영상들도 반응이 뜨거웠다. 여행 협찬도 들어오고, 광고도 찍었다. 얼떨결에 백수가 된 손녀와 70세 박막례 할머니는 그렇게 유튜버가 되었다.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는 박막례 할머니의 입말을 그대로 살려서 적었다. 덕분에 책을 읽으면서도 할머니의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했다. 할머니의 천진난만하고 시원시원한 말투에 깔깔 웃다가도 70년 내공이 담긴 한마디 한마디에 감탄하기도 했다.

유튜브 영상도 한 번 보면 멈출 수 없을 정도로 재미있었는데, 책도 한 번 읽기 시작하니 한달음에 뚝딱 읽어버렸다. 다 읽고 나서는 아쉬움 마음을 달래려 책장을 이리저리 들춰보며 낄낄 웃기도 했다.
 
생전 처음 탱고리인지 캥고리인지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동물을 쿠란다 마을에서 봤다. 근디 가서 보니까 앞다리는 짧고 뒷다리는 길어가꼬 다친 것 같아서 마음이 엄청 아프더라. 불쌍해가꼬 그것을 자꾸만 쓰다듬어줬다. 옆에 한국인 남자가 있기에 말을 걸었다.
"오메, 이 친구는 다리가 아팠는가봐요…… 뼈가 쭉 빠져부렀어요."
"네? 뭐가요?"
"애가 뒷다리를 못 쓰고 막 끌고 댕기잖아요. 어째쓰까잉……"
"할머니, 원래 캥거루는 이렇게 걸어댕겨요……"
캥고리는 뒷다리가 더 길구나. 70년 만에 처음 알았다. (72쪽)

이십대에게 '청춘'이라는 이름을 붙여주는 건 아무래도 억울하다. 그때는 청춘인 줄도 모르고 불확실한 미래와 서툰 인간관계에, 아이도 어른도 아닌 어중간한 존재로 사느라 너무 혼란스러웠고 힘들었다.

그렇게 귀한 청춘을 어영부영 방황하며 흘려보냈다. 오히려 '청춘'이라는 말은 50 넘은 사람에게 제법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좋든 싫든 어느 정도 자리도 잡았고, 자식들도 이제 다 컸고, 이제 조금 한숨 돌릴 시간도 있는 때. 재미있게 즐기며 놀기 딱 좋은 나이 아닐까?
 
아침을 먹고 할머니는 창밖으로 해변을 한참이나 쳐다봤다. 해변에서 조깅하는 사람들을 보며 "저 사람들 무릎이 부럽다"고 했다. "나도 예전에는 저렇게 했는데 몇 년 전부터 내 다리가 게다리가 되었구나. 저런 것 보면 또 성질나. 옛날 생각 나."
빼앗아간 사람은 없는데 할머니 청춘은 다 어디로 가버린 걸까. 하지만 청춘이 용기라면, 할머니는 아직도 청춘이다. 모래 언덕에서 할머니는 용감하게 모래 보드를 탔다. 일상을 벗어나면 매 순간이 도전이 된다. 첫 시도에 잘되지 않을지라도 할머니는 물 한 모금 들이켜고 벌떡 일어나 다시 도전한다. 멋지게 보드를 타고 모래 언덕을 가른다.
"별거 아니구먼. 나 처음에 겁먹었는데 별거 아니구먼." (124~125쪽)
 
 박막례 할머니, 모래 보드 타기 성공! "별거 아니구먼."
 박막례 할머니, 모래 보드 타기 성공! "별거 아니구먼."
ⓒ 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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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참 좋아졌다. 유튜버들을 보면서 생각한다. 학력도, 집안도, 나이도 안 보는 직업. 이력서도, 자기소개서도 필요 없는 직업. 해고될 걱정도 없고, 정년도 없는 직업. 잘 노는 사람이 돈도 잘 버는 세상이 오고 있다. 물론 모든 유튜버들이 다 돈을 잘 버는 것은 아니지만, 팍팍한 일상에 재미난 놀이거리 하나는 생긴 셈이다.

책을 읽고 나서 우리 엄마, 그리고 시어머니 생각이 많이 났다. 가족끼리 모이면 가족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어머니와 가장 나이가 어린 우리 아이들이 함께 마주 앉아 이야기하고 장난치며 깔깔대는 모습을 볼 때 행복하다. 나이 들면 다른 것 필요 없다. 건강해야 한다. 운동도 열심히 하고 근육의 힘을 길러서 튼튼한 다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다음은 즐길 일만 남았다.

"모진 풍파를 견뎌낸 자랑스러운 그대여! 단단한 내공과 아이같이 천진한 눈을 가진 그대여! 그대의 튼튼한 두 다리로 이 넓은 세상 마음껏 즐기시라! 사랑하는 그대들이여, 부디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갓 태어난 아이에게 세상 모든 것이 신기하듯 할머니에게는 모든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어 보이는 듯하다. 나이가 많으니 세상에 무뎌졌을 거라는 내 생각은 틀렸다. 손끝은 무뎌졌을지 몰라도 할머니의 감각은 초롱초롱 빛났다. 모든 것에 반응하고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했다. 할머니보다 훨씬 적게 살았으면서 나는 뭐가 그리 익숙했을까. 뭘 다 안다는 듯이 살았을까. 할머니 덕에 나도 '처음'이 주는 설렘을 다시 느끼고 있었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세상은 언제든 초면이 된다. (74~75쪽)
    
 어머님과 나의 어린 딸. 가족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어머님과 가장 나이가 어린 내 딸이 서로 마주 앉아 웃고 장난치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어머님과 나의 어린 딸. 가족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어머님과 가장 나이가 어린 내 딸이 서로 마주 앉아 웃고 장난치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 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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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 - 독보적 유튜버 박막례와 천재 PD 손녀 김유라의 말도 안 되게 뒤집힌 신나는 인생!

박막례, 김유라 (지은이), 위즈덤하우스(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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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