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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00년만에 드러난 알렌 公使의 '대한제국 X파일'이라는 제목의 <조선일보> 기사 일부
 [단독] 100년만에 드러난 알렌 公使의 "대한제국 X파일"이라는 제목의 <조선일보> 기사 일부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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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2019.5.20.)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언론에 '100년만에 드러난 알렌 공사의 대한제국 X파일' 또는 '고종은 끔찍할 정도로 나약한 사람' 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조선일보> 등은 건양대 충남지역문화연구소 알렌연구단이 뉴욕 공립도서관이 보관한 이른바 '알렌 문서'를 정리한 내용을 인용 보도했다. 알렌 문서에는 구한말 선교사 겸 의료인이며 후에 주한미국공사를 지낸 미국인 알렌이 기록한 대한제국 시기 고위 관료들과 고종에 관한 인물평이 쓰여있다. 

문제는 알렌의 아전인수격 인물 평가와 이를 보도하는 언론의 서술, 편집 행태다.

"강직하고 명예롭다"는 박제순은 을사오적, 경술국치의 국적 
첫 번째 인물은 군부·내부대신을 지낸 민영환. '예전엔 훌륭한 관료로 알려졌지만 최근엔 좀 실망스럽다. 나약하고 우유부단하다. 표면적으로 민씨 일족의 우두머리다.' 
(중략)
고종 측근 이용익은 '용감하지만 매우 잔인하고 억압적이다. 지난 20년 동안 고위 관료 중 가장 무식하다'고 썼다
(중략)
이완용을 '판단력이 뛰어나고 용기도 있다. (1897년) 러시아 교관 158명 초빙 건을 반대했고, 러시아 압력으로 사임했다'고 썼다. 박제순은 '강직하고 명예롭고 좋은 사람이다. 아이디어가 많다. 의지가 강하고 용기가 있다. 뛰어난 주청(駐淸) 공사였고, 중국어를 할 줄 안다. 다소 보수적이다'라고 평했다. 
(중략)
알렌은 '한국인들은 약속을 곧잘 하지만 약속을 지키는 데는 취약하며, 고종은 끔찍할 만큼 나약한 사람이기 때문에 일본인들이 그를 손쉽게 협박할 수 있다'(1905년 12월 14일 알렌이 전 육군 소장 윌슨에게 보낸 편지)고 썼다. 

- <조선일보> '[단독] 100년만에 드러난 알렌 公使의 대한제국 X파일' 에서
<조선일보>는 위와 같이 알렌의 인물평을 당시 시대상황에 대한 설명없이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알렌이 강직하고 명예롭고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한 박제순은 훗날 을사오적, 경술국치의 국적이 되었으며 그 친일매국행위의 대가로 일본으로부터 은사금이라는 뇌물과 자작이라는 작위를 받았다. 또 판단력이 뛰어나고 용기있다고 평가한 이완용은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상기 박제순의 부일매국행위를 능가해 지탄받는 인물이다. 

반면 알렌이 억압적이고 무식하다고 평가한 이용익은 1904년 굴욕적인 한일의정서체결에 끝까지 저항하다 일본으로 납치되었으며 을사늑약 후 프랑스, 러시아 등지에서 항일활동을 했다. 또 알렌이 나약하고 우유부단하다고 평가한 민영환은 망국적 을사늑약에 울분을 참지못하고 자결했다.

알렌이 이런 평가를 한 데에는 의도가 숨어있다고 본다. 그에 앞서 우선 알렌이 어떤 인물인가 살펴보겠다. 

초기 의료에 공헌... 이후 미국과 자신의 이권 챙기기에 집중  

알렌은 선교, 의료 활동으로 그 당시 동양의 약소국 조선에 시혜를 베푼 서양의 은인으로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 있다. 초기의 알렌은 근대식 의료기관인 제중원의 초대 원장을 역임하며 당시 의료 분야에 공헌했다.

하지만 선교, 의료 후 외교관으로 변신한 알렌은 조선에서 미국과 알렌 자신의 이권을 챙기는 데 철저히 집중한다. 그는 광산채굴권, 철도부설권, 전기전차설치권 등의 이권에 개입한다. 대표적인 예로 동양 최대 매장량을 갖고있는 평북운산금광채굴권을 1895년에, 경인철도부설권을 1896년 얻어  미국인 사업가 모스에게 넘긴다.운산금광에서 국부가 유출됐으며 경인철도부설권은 얼마 후 일본에 되팔아 미국과 알렌은 이득을 취하게 된다. 이외에도 한성전기주식회사는 알렌의 주선으로 미국인 사업가 콜브란이 그 운영을 맡게 된다.

알렌은 이권 침탈에 안내자 역할을 한 정치적 인물로 조선 관료에 맞서 미국 회사들의 무리한 요구와 폭리를 관철하는데 앞장섰다. 미국의 이권에 호의적이던 친일파 세력을 간접 후원했고, 일본에 친미파 인사들의 명단을 넘겨주며 이들에게 일본에 협력할 것을 권하기도 했다.

미국 본국에 전보를 보내면서 '러일전쟁에서 만약 일본이 승리하면 그것은 미국의 국익에 더욱 적합할 것이다' 라면서 일본의 한국 지배를 인정해야 한다고 할 정도였다.

자기이익에 합치되고 순응하는 인물은 우호적으로 평가

<조선일보>에 따르면 알렌 문서를 연구중인 건양대 김현숙 교수는 "본 문서는 스티븐스에게 전달되었으며 스티븐스는 알렌의 비밀 파일을 바탕으로 조선의 관료들을 파악하고 보호국화를 실현하는 데 활용한 것 같다"면서 "알렌과 이 인물들과의 관계는 물론 당시 각 인물의 역할을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파일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고 했다.

김 교수의 말처럼 무릇 어떤 인물을 평가하는 경우 평가자(알렌)와 피평가자(대한제국관료들)의 상호관계, 평가 동기, 평가의 사실합치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객관성, 합리성, 정확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즉, 조선의 이권을 획득하는데 도움이 되고 미국의 이권에 우호적인 박제순, 이완용 등의 친미, 친일세력은 알렌에게는 협력자였다.

반면 대한제국 근대화의 전반적 프로젝트인 광무개혁의 일환으로 외국인들의 광산무단채굴을 금지하고, 광산의 미납세금을 징수했으며, 열악한 자본과 기술력에도 외국자본에 예속되지 않는 자주적인 민족철도를 부설하려는 정책을 시행한 이용익과 이를 승인한 고종은 알렌에게는 껄끄러운 인물들이다.

(알렌의 이권 개입 과정과 이에 대립되는 자주적인 이용익의 정책은 이배용 교수의 <한국근대광업침탈사연구>(일조각)와 정재정 교수의 <일제침략과 한국철도>(서울대학교출판부) 참조)

자기이익에 합치되고 순응하는 인물은 우호적으로 평가하고, 자기이익에 비협력적이고 반하는 인물은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지상정이다.

일부 언론, 알렌의 인물평 무비판적으로 보도

이런 점을 고려하면 알렌의 인물평에 관한 일부 언론의 보도 행태는 문제가 있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배경 설명이나 검증 없이 박제순은 '강직하고 명예롭다', 이완용은 '판단력이 뛰어나고 용기있다', 이용익은 '잔인하고 억압적이고 무식하다', 민영환은 '나약하고 우유부단하다', 고종은 '끔직할 정도로 나약하다' 등 일개 외국인인 알렌의 사견에 불과한 평가를 그대로 보도했다.

특히 <조선일보>의 경우 알렌의 상기 평가 내용 옆에 주목도가 높은 캡션형식의 인물 사진까지 첨부해 보도했다. 바쁜 일상을 사는 현대인들이 제목과 사진설명에서 주로 정보를 습득하는 실정을 감안하면 오해를 살 수 있는 편집이다. 

더욱이 김현숙 교수는 알렌의 문서가 스티븐스에게 전달돼 "조선의 관료들을 파악하고 보호국화를 실현하는데 활용한 것 같다"고 했다. 스티븐스는 일본의 조선침탈과 지배를 적극 옹호하다 장인환, 전명운 의사에게 저격받은 일본의 하수인 노릇을 한 자다. 그렇다면 엄밀한 의미에서 이 알렌 문서는 이적 문서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언론으로서는 알렌의 인물평가를 단순히 인용보도했을 뿐이라고 항변할 수 있다. 그러나 언론은 사회의 공기(公器)이다. 기사의 목적과 가치판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알렌 문서를 다룬 기사에서 독자에게 알리고 싶은 주안점이 무엇인가.

알렌이 평가한 것처럼 박제순과 이완용이 강직하고 용기있고, 이용익과 민영환은 무식하고 나약하다는 것인가. 아니면 알렌이 강직하고 용기있다고 호의적으로 평가한 박제순과 이완용은 친일 매국노로 변신하고, 알렌이 무식하고 나약하다고 부정적으로 표현한 이용익과 민영환은 항일애국지사가 되었다는 것인가.

기사에서 더욱 가관인 것은 아래 대목이다.
친한파로 알려진 알렌이지만 인물 평가는 냉정하다. "나약하다" "잔인하다" "부패했다"는 평가가 많다. 알렌의 평가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순 없지만 엘리트 집단의 부패와 나약이 망국(亡國)으로 가는 요인이 됐음을 보여준다.
- <조선일보> '[단독] 100년만에 드러난 알렌 公使의 대한제국 X파일' 에서
유추하자면 알렌이 '나약하다'라고 평가한 민영환, '잔인하다'고 평가한 이용익 등 엘리트 집단의 부패와 나약이 망국으로 가는 요인이 됐다는 것인데 이 무슨 해괴한 주장인가?

조선의 멸망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그 중 을사·경술국적으로 지탄받는 박제순, 이완용 등 친일매국행위자들의 반민족행위가 가장 큰 망국의 요인인 것은 국사 교과서에도 실린 명약관화한 역사적 사실이다.

그 뿐 아니다. 이들이 친일매국행위의 대가로 일본으로부터 은사금과 토지와 작위를 받고 부와 지위를 누린 것도 역사적 사실이다. 또 이들이 망국적 을사늑약 후 만족감에 도취해 있을 때 알렌에게서 억압적이고 무식하다고 평가받은 이용익이 항일 활동을 위해 기약없는 해외망명을 했고, 나약하고 우유부단하다고 평가받은 민영환이 울분에 자결한 것 또한 역사적 사실이다.

<조선일보>의 기사는 이 친일세력의 매국행위는 언급하지 않고 민영환과 이용익에게 망국의 요인을 제공했다고 누명을 씌우는 격이다. 알렌의 평가를 빙자한 본말이 전도된 적반하장격 책임전가가 아닐 수 없다.

알렌의 평가는 금과옥조도 아니고 전가의 보도도 아니며 되어서도 안 된다. 우리는 알렌에게 냉정한 심판관의 역할을 맡긴 적이 없다.

동서고금 대부분 국가에서는 충신과 애국지사를 숭모·추앙하고 간신·매국 모리배를 징치·처벌해 그 국가의 정체성과 민족정기를 확립한다. 이를 바탕으로 구성원이 일체감을 이루고 자존감을 세워 외세의 침략에 대비하고 국가의 존립을 유지하며 후대의 교훈으로 삼는다.

반대로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간신·매국모리배가 찬양·미화되고 충신과 애국지사는 비하되는 가치관이 전도되고 역사의식이 결여된 국가에서는 국난이 닥친다면 매국 행위자와 간신배가 출현할 것이며 충신과 애국지사는 정의감과 의욕을 상실하여 종적을 감출 것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는 없다.

태그:#역사왜곡, #알렌문서, #언론의 보도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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