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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도 내 맘대로 맞춤 주문하는 시대. 하나의 정답만을 강요하는 결혼 제도에 끼워맞춰 살아야만 할까? 좋은 것은 취하고 불편한 것은 버리면서 나에게 꼭 맞는 결혼 생활을 직접 만들어가려 한다.[편집자말]
남편이 게임을 좋아한다는 건 연애할 때부터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나는 게임을 전혀 하지 않지만 남편의 취미에 불만은 없었다. 결혼 전에 우리는 다른 연인들처럼 주로 주말을 이용해 데이트했다. 각자 집에 돌아간 뒤 아마 그는 게임을 했겠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나와 함께 있는 시간에 서로에게 충실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결혼 후 그의 취미는 우리 사이에서 해결해야 할 하나의 '문제'가 됐다. 다시 말해 그는 변한 것이 없었으나 내겐 스트레스 요인이 됐다는 뜻이었다. 한 사람이 좋아하는 일이 다른 사람을 괴롭힌다면 어디쯤에서 합의점을 찾아야 할까? 내겐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게임 사운드에 예민했다. 액션 영화도 왠지 지쳐서 보지 못하는 나로서는 게임에서 흘러나오는 총소리와 비명이 우리의 공간에 가득해지는 걸 견디기 어려웠다. 아주 간단한 해결 방법이 있었다. 남편은 헤드셋을 사서 그걸 쓰고 게임을 했고, 나는 그 뒤에서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책을 읽으면 됐다. 

그걸로 우리가 또 하나의 퍼즐 조각을 맞췄다고 생각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내가 싫어한다고 해서 그가 취미 생활을 그만두길 바라는 마음은 없었다. 요즘 대부분의 부부는 시간이나 공간을 적절히 배분해 서로의 취미가 공존하는 방법을 찾는다. 비싼 취미라고 해서 무조건 사치라 치부하기보다는, 우리의 능력 안에서 현재를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세대다. 

취미 생활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어떻게 구분하느냐, 혹은 얼마나 많은 돈을 쓸 수 있느냐 같은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다른 데서 터졌다. '얼마나 오랫동안' 취미 생활에 몰입하느냐를 두고 갈등이 싹 튼 것이다. 

'게임 좀 그만해!' 이 말 만큼은 하기 싫었는데...
 
 나는 게임을 전혀 하지 않지만 남편의 취미에 불만은 없었다.
 나는 게임을 전혀 하지 않지만 남편의 취미에 불만은 없었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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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남편이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의논해 왔다. 바로 이직하지 않고 몇 달 동안 쉬면서 재충전 기간을 갖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의 휴식에 흔쾌히 동의했다. 우리는 맞벌이로 가계를 유지해 나가고 있었지만, 그의 퇴직금과 나의 수입만으로도 몇 달 정도는 충분히 버틸 수 있으리라는 계산이 섰다. 

매일 아침 출퇴근하느라 고생했으니 푹 쉬라고 선뜻 말했고, 그는 얼마 후 퇴사했다. 그리고 한이라도 맺힌 듯 눈 떴을 때부터 잠들기 직전까지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초반 며칠은 나도 그 마음이 이해됐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머리를 비운 채 하고 싶은 것만 온종일 하고 싶은 기분을 왜 모르겠는가. 다만 그 '아무것도'에 나와 밥을 먹거나 잠들기 전에 이야기를 나누는 게 포함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서운했다.

멍하니 모니터만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 썩 보기 좋지는 않았으나 나름대로 참으려 노력했다. 그를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게임 그만 좀 해'라고 말하는 아내가 되고 싶지 않다는 이유가 가장 컸다. 우리는 각자 자기 앞가림은 스스로 할 수 있을 만한 성인이기에, 나는 그에게 무슨 이유로든 잔소리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잔소리를 한다는 건 내가 우리 집안의 '책임자'가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가정의 컨트롤타워가 되어 모든 살림이 잘 돌아가고 있는지 체크하고,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구성원을 등 떠미는 게 바로 '잔소리하는 사람'의 역할 아닌가. 

결혼 후 잔소리를 듣는 쪽이 더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지만, 사실 듣는 사람은 살던 대로 살면 그만이다. 즉, 엄마의 돌봄을 받기만 하는 '자식' 역할에 계속 머물면 그뿐이라는 뜻이다. 인상을 잔뜩 쓰고 입으로 불평하며 시키는 일만 할 수 없이 하는 건 쉽다. 내 자식도 아닌, 다 큰 배우자를 훈계하고 달래고 채찍질해서 가정의 균형이 잡히도록 만드는 역할이 훨씬 골치 아프다. 

그리고 결혼 후 그 골치 아픈 일을 도맡는 쪽은 한순간에 '어른'이 된다. 배우자가 여전히 자식의 역할에 머물고 싶어 할 때, 상대방은 반강제로 어른이 되어 그의 부모(사실상 엄마)가 하던 살림의 책임을 이어받아야 한다. 적성에 맞는 사람이 없다고 단정하지는 않겠지만, 누군들 결혼을 통해 배우자의 부모가 되고 싶을 리 있을까? 알아서 하겠지, 그가 알아서 하겠지… 나는 기다리려고 노력했다. 

게임하는 남편에게 화를 낸 이유 

내가 차라리 출근이라도 하면 나을 텐데, 하필 프리랜서라 집에 있는 시간이 길다. 남편이 매사를 미뤄두고 게임하는 모습을 아침부터 밤까지 온종일 실시간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일부러 카페에 가서 일을 하고 돌아와도 여전히 컴퓨터 앞에 붙어 있는 그를 발견하는 일이 지속되자 슬슬 속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결국 그에게 대화를 요청했다. 카페에 나와 거의 2주 만에 같이 마주 보고 앉는 것 같았다. '네가 일을 쉬는 동안 나와 함께 조금 더 많은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적어도 저녁 시간을 함께 보내고 퇴사 전만큼만 가정 내 역할을 유지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동의했(던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바로 그 카페에서 나와 집에서 같이 저녁을 먹은 뒤, 남편은 또 잠들기 전까지 3시간 넘게 게임을 이어서 했다.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바로 2차 회동에 돌입했다. 이번에는 대화가 아니라 선언이었다.

"저놈의 게임기, 갖다버려!" 

내가 결혼하고 남편의 취미 생활을 못 하게 막거나 화를 내는 아내가 될 줄은 몰랐다. 내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는 듯한 그에게 화가 치미는 한편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도 함께 밀려왔다. 그의 자유를 속박하는 아내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는 마음과, 이렇게 혼자 게임하며 살고 싶었으면 왜 결혼했느냐는 마음이 함께 밀려들었다. 

게임을 두고 한참 옥신각신했지만 좀처럼 결론이 나지 않았다. 결국 그가 "정말 버려?"라고 시무룩하게 물었으나 게임기를 버린다고 내 기분이 나아질 것 같지는 않았다.

문제는 게임 그 자체가 아니었다. 자꾸 요점에서 멀어지는 말다툼을 하면서 나는 내가 왜 화가 났는지 조금은 알게 됐다. 나는 그가 내 바람을 가뿐히 무시하고, 나와의 공동생활 역시 내팽개쳐둔 채 혼자만의 세계에 틀어박힌 상태가 고통스러웠던 것이다. 

그가 우리의 결혼생활에서 자신의 자리를 무책임하게 비워놓을 때, 그래서 관계의 균형이 위태로워질 때, 그리고 그가 우리의 공동생활에 소홀해질 때, 즉 나와 결혼하며 맺은 수많은 (실질적, 감정적) 약속이 그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때, 나는 게임하는 남편을 미워하게 됐다. 그가 게임에 몰입해 나와의 일상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리지는 않았다는 걸 확인하고 싶었다.

결혼에도 섬세한 배려가 필요하다
 
 나는 남편에게 '나와 우리 생활을 위한 시간과 게임을 하는 시간을 명확하게 분리해 달라'고 다시 요청했다.
 나는 남편에게 "나와 우리 생활을 위한 시간과 게임을 하는 시간을 명확하게 분리해 달라"고 다시 요청했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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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편에게 '우리의 생활을 위한 시간과 게임을 하는 시간을 명확하게 분리해 달라'고 다시 요청했다. 어쨌거나 그도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해줬다. 차라리 따로 PC방에서 몇 시간이든 충분히 게임을 하고 돌아와 집에서는 그 외의 일상을 보내는 게 도움이 되기도 했다. 지금은 또 다른 것들을 하느라 게임하는 시간도 이전 수준 정도로 안정화(?)됐다. 

결혼과 취미 생활 그 자체가 병행 불가능한 요소일 리 없다. 다만 결혼 후 개인의 분리된 시간과 함께 있는 시간이 공간적 경계로 또렷이 나뉘지 않기 때문에, 조금 더 섬세한 배려가 필요한 게 사실이다. 한 사람의 취미 생활이 가계의 금전적인 무리를 요구한다면, 혹은 집안일에서 역할의 불균형이 발생하거나 감정적인 고립을 불러온다면 우리의 가정을 유지하는 데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 부부싸움 과정에서 우리가 정확히 어떤 지점에 불만이 생긴 것인지 깨닫는 과정도 중요하다. 단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문제를 막기 위해 금기를 두거나 불만을 토로하는 것보다는, 그 마음이 왜 발생했는지 들여다보면 해결책은 의외로 엉뚱한 곳에서 나올 수도 있다. 

우리도 서로 다른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두 사람 모두 불편하지 않은 곳에서 합의점을 찾기 위해 여전히 노력하고 있다. 흔히들 말하는 '결혼에 필요한 노력'의 핵심은 사실 각자의 부모님에게 어떤 며느리와 사위가 되느냐가 아니라, 이처럼 두 사람의 다름을 한 가정 내에서 얼마나 세심하게 조율해 가느냐에 있는 것이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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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부 에디터. "쓰는 일에, 그렇게 해서 당신을 만나는 일에 나는 어느 때보다 욕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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