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명문구단이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8년 동안 활약했던 박지성은 한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꼽기에 손색이 없다. 하지만 '언성 히어로'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박지성은 많은 골을 넣으며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선수는 아니었다. 박지성을 시작으로 이천수, 이동국(전북현대), 박주영(FC서울), 지동원(FSV 마인츠 05) 등 많은 선수들이 유럽 빅 리그의 문을 두드렸지만 눈에 띄는 성과를 올린 선수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토트넘 홋스퍼 FC에서 주전으로 활약하고 있는 손흥민은 다르다. 2008년 독일로 축구 유학을 떠나 분데스리가 함부르크 SV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한 손흥민은 독일에서 49골 14도움,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67골 33도움을 기록하며 화려한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유럽 리그에서 통산 116골을 기록한 손흥민은 큰 이변이 없는 한 다음 시즌 차범근의 121골 기록을 넘어설 것이 확실시된다.

특히 2018-2019 시즌은 손흥민에게 더욱 특별했던 시즌으로 기억될 것이다. 현존하는 한국 최고의 축구스타를 넘어 프리미어리그, 아니 유럽 축구 전체가 주목하는 공격수로 발돋움하게 된 시즌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2일(이하 한국시각)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는 여러 차례 위협적인 슈팅을 날리고도 골을 기록하지 못하며 분루를 삼켰지만 손흥민의 2018-2019 시즌은 그의 별명(손세이셔널)처럼 세상을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아시안게임 후유증 털어버린 12월의 괴물 같은 활약
  
 토트넘의 손흥민(왼쪽)이 1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의 완다 메트로폴리타노에서 열린 리버풀과의 2018-2019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결승전에서 상대 선수와 볼을 다투고 있다.

토트넘의 손흥민(왼쪽)이 1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의 완다 메트로폴리타노에서 열린 리버풀과의 2018-2019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결승전에서 상대 선수와 볼을 다투고 있다. ⓒ AFP/연합뉴스

 
2018 러시아 월드컵을 소화한 손흥민은 2018-2019 시즌을 앞두고 체력적인 부담이 매우 컸다. 물론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하는 많은 선수들이 월드컵 기간에는 힘든 일정을 소화하지만 한국 대표팀 내에서 손흥민이 차지하는 비중은 포르투갈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유벤투스FC) 못지 않았다. 시즌 개막을 앞두고 토트넘과 5년 계약을 체결한 손흥민은 뉴캐슬 유나이티드와의 1라운드를 치른 후 곧바로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참가했다.

손흥민의 병역 혜택 여부로 국내 팬들뿐 아니라 영국 현지에서도 큰 화제가 된 아시안게임에서 손흥민은 6경기에서 1골 5도움을 기록하는 맹활약으로 한국의 금메달을 이끌었다.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을 상대한 팀들은 당연히 월드컵 3경기에서 2골을 넣은 '프리미어리거' 손흥민을 집중 견제했다. 하지만 손흥민은 골 욕심을 부리기 보다는 영리하게 동료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며 금메달과 병역혜택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부담을 털어버리고 홀가분하게 토트넘으로 돌아왔지만 손흥민은 시즌 개막 후 3개월이 지나도록 리그 첫 득점을 신고하지 못했다. 월드컵과 아시안게임에서 모든 힘을 쏟은 손흥민이 체력관리에 실패해 시즌을 망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손흥민은 작년 11월 25일 첼시 FC와의 13라운드 경기에서 멋지게 부활했다. 하프라인부터 첼시 수비수 3명을 제치고 멋진 골을 성공시킨 손흥민의 득점은 프리미어리그 '이달의 골'로 선정됐다.

그리고 손흥민에게는 찬란한 12월이 기다리고 있었다. 손흥민은 리그와 챔피언스리그,카라바오컵을 포함해 작년 12월에 열린 9경기에서 세 번의 멀티골 경기를 포함해 7골3도움을 기록하며 그야말로 펄펄 날았다. 12월 6일 사우샘프턴 FC와의 경기에서는 차범근에 이어 한국 선수로는 역대 2번째로 유럽무대에서 100번째 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달의 선수로 선정됐다 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는 대활약이었다.

새해 시작과 함께 카디프시티FC와의 21라운드 경기와 트란메어 로버스 FC와의 FA컵 64강에서 5개의 공격 포인트를 추가한 손흥민은 1월 중순 아시안컵 출전을 위해 다시 자리를 비웠다. 대표팀에 합류한 손흥민은 중국과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페널티킥을 유도하고 김민재(베이징 궈안)의 추가골을 어시스트하며 맹활약했다. 하지만 토너먼트에서는 기대만큼 활약하지 못했고 한국은 8강에서 우승팀 카타르에게 0-1로 패하며 탈락했다.

토트넘은 물론 런던 최고의 선수로 선정된 손흥민의 2018-2019 시즌

주전 스트라이커 해리 케인이 부상으로 빠져 있던 토트넘은 손흥민의 복귀를 애타게 기다렸고 1월 31일 왓포드 FC와의 24라운드 경기에서 복귀한 손흥민은 곧바로 골을 터트리며 팬들을 열광시켰다. 손흥민은 아시안컵에서 돌아온 후 보름동안 4경기 연속 득점을 기록하며 무시무시한 득점 본능을 뽐냈던 12월의 활약을 재현했다. 하지만 손흥민의 득점 행진은 2월 14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을 끝으로 멈추고 말았다.

손흥민은 도르트문트전을 끝으로 6경기 연속 무득점에 그쳤고 토트넘 역시 같은 기간 동안 1승 1무 4패로 부진했다. 2~3위권을 유지하며 꾸준히 선두를 추격하던 토트넘도 손흥민이 침묵한 5경기에서 1무 4패를 기록하며 사실상 우승 경쟁에서 멀어졌다. 그러던 4월, 토트넘은 6만2000석 규모의 새 홈구장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을 개장했고 손흥민은 크리스탈 팰리스FC와의 개장 첫 경기에서 역사적인 첫 골을 터트렸다.  

리그와 챔피언스리그, FA컵, 카라바오컵까지 4관왕을 노리던 맨체스터 시티FC와의 챔피언스리그 8강은 이번 시즌 손흥민 활약의 백미였다. 홈에서 열린 1차전에서 결승골을 기록하며 맨시티를 울린 손흥민은 4월 18일 적지에서 열린 2차전에서도 3분 동안 두 골을 폭발시키는 대활약으로 맨시티를 8강에서 탈락시켰다. 챔피언스리그를 제외한 나머지 3개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맨시티는 손흥민을 제어하지 못해 4관왕의 기회를 놓쳤다 해도 과장이 아니었다.

하지만 손흥민은 시즌 막판 '유종의 미'를 거두진 못했다. 맨시티와의 8강2차전에서 엘로우 카드를 받은 손흥민은 경고누적으로 AFC 아약스와의 4강 1차전에 출전하지 못했고 이어진 4강 2차전과 리버풀 FC와의 결승에서도 공격포인트를 추가하지 못했다. 지난 4일 AFC 본머스와의 37라운드 경기에서는 토트넘 입단 후 처음으로 퇴장을 당하며 리그 최종전에 출전하지 못했다(손흥민은 다음 시즌에도 2라운드까지 출전할 수 없다).

하지만 손흥민은 지난 3월에 열린 런던 풋볼 어워드에서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비아시아 선수 최초)했고 토트넘 올해의 선수와 올해의 골에도 선정되며 토트넘의 핵심 선수임을 인정 받았다. 세계 최정상의 프리미어리그에서 최근 세 시즌 동안 평균 19.7골을 넣은 손흥민은 이 기간 동안 토트넘을 모두 빅4로 이끌며 '꿈의 무대'인 챔피언스리그 결승을 풀타임으로 소화했다. 손흥민에 대한 '월드클래스 논쟁'이 더 이상 의미가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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