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의 아쉬운 마음, 무거운 발걸음은 시상대에 가장 늦게 올라가도록 만들었다. 축구가 그렇듯이 팀에서 가장 빛나는 활약을 펼치고도 활짝 웃지 못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반면에 리버풀 FC는 점유율, 유효 슛, 패스 성공률 등 주요 기록에서 대부분 토트넘에게 밀렸지만 골로 말하는 축구 게임에서 실리를 챙긴 덕분에 그토록 바라던 우승 트로피 '빅 이어'를 높이 치켜들 수 있었다.

위르겐 클롭 감독이 이끌고 있는 리버풀 FC(잉글랜드)가 한국 시각으로 2일 오전 4시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에스타디오 메트로폴리타노에서 벌어진 2018-2019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토트넘 홋스퍼 FC(잉글랜드)를 2-0으로 물리치고 14년만에 다시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영광을 누렸다.

 
 2일 새벽(한국 시각) 2018-19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나선 토트넘 홋스퍼의 손흥민.

2일 새벽(한국 시각) 2018-19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나선 토트넘 홋스퍼의 손흥민. ⓒ 연합뉴스

 
22초, 숨이 멎는 듯

모두가 기다렸던 킥 오프 시간이 다가왔고 다미르 스코미나(슬로베니아) 주심의 휘슬이 그라운드를 울렸다. 그런데, 단 22초만에 숨이 멎을 듯한 순간이 찾아왔다. 핸드 볼 페널티킥이었다. 

리버풀의 첫 공격이 토트넘 페널티 지역 왼쪽 모서리 부근에서 전개될 때 사디오 마네의 크로스가 오른발을 떠났고 곧바로 공이 앞에 떨어졌다. 바로 앞 페널티 지역 안에 있던 토트넘 미드필더 무사 시소코의 오른팔에 맞은 것이었다. 팔을 길게 뻗는 의도적인 행동은 아니었지만 벌린 상태에서 크로스를 막았기에 묵과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뜻밖의 득점 기회가 모하메드 살라에게 찾아온 것이다. 11미터 지점에 공을 내려놓은 모하메드 살라는 자신감 있게 왼발로 공을 시원하게 차 넣었다. 지난 시즌 바로 이 대회 결승전(레알 마드리드 3-1 리버풀, 키에프)에서 전반전도 마치지 못하고 부상을 당해 눈물을 흘리며 그라운드를 빠져나와야 했던 순간이 떠오를 정도로 떨리면서도 감격적인 순간이었을 것이다.

너무나 이른 시간에 터진 결승전 첫 골은 리버풀 선수들에게 촘촘한 수비망을 펼치도록 만들었다. 10명의 필드 플레이어가 두 줄, 세 줄로 만든 수비 그물은 이 대회 첫 결승을 경험하는 토트넘 선수들이 풀어내기 힘든 숙제였다.

'손흥민'의 슛을 두 개나 쳐낸 '알리송'의 슈퍼 세이브

후반전까지 토트넘 홋스퍼의 일방적인 공세와 리버풀의 밀집 수비 양상을 그대로 둘 수 없다는 듯 위르겐 클롭 감독이 먼저 결단을 내렸다. 58분에 호베르투 피르미누 대신 디보크 오리기를 들여보낸 것이다. 

토트넘의 포체티노 감독도 66분에 수비형 미드필더 해리 윙크스를 빼고 발 빠른 날개 공격수 루카스 모우라를 들여보냈다.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AFC 아약스(네덜란드)와의 준결승 2차전에서 기적의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챔피언스리그 결승 무대를 밟게 해 주었던 바로 그 주인공이 들어간 것이다. 

하지만 리버풀의 철벽 수비를 흔들 수 있는 선수로 손흥민이 유일하게 돋보일 뿐이었다. 75분에 손흥민 특유의 치고 달리기가 시작됐고 왼발 슛 각도를 열기 위해서 더 속도를 냈다. 하지만 리버풀이 자랑하는 최고의 센터백 판 다이크는 간발의 차로 손흥민의 드리블을 걷어냈다.

리버풀은 이처럼 필드 플레이어들의 수비력도 돋보였지만 무엇보다도 골키퍼 알리송 베케르의 슈퍼 세이브 덕분에 묵었던 소원이 풀린 셈이었다. 80분에 손흥민의 오른발 중거리슛이 골문 구석으로 날아들었을 때 골키퍼 알리송 베케르는 자기 오른쪽으로 날아올라 그 공을 쳐냈다. 토트넘이 이 결승전에서 만든 가장 위협적인 공격 장면이었다.

지난 해 이 결승전에서 골키퍼 카리우스의 뼈아픈 실수로 레알 마드리드에게 허무하게 우승 트로피를 내준 리버풀이었기에 거액을 들여 데려온 알리송 베케르의 슈퍼 세이브는 더 든든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84분에도 토트넘 홋스퍼는 상대 페널티 지역 왼쪽 모서리 바로 옆에서 직접 프리킥 기회를 얻었고 오른발 킥이 정확하기로 이름난 크리스티안 에릭센이 날카로운 감아차기를 날렸다. 하지만 알리송 베케르는 자기 왼쪽으로 날아올라 톱 코너로 빨려들어가는 그 공을 기막히게 쳐냈다. 

리버풀이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준우승을 차지하고, 챔피언스리그에서도 결승전까지 올라온 놀라운 조직력을 감안하면 이 결승전은 토트넘을 상대로 그들이 원하는 공격력을 맘껏 펼치지 못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단지 그들은 실리를 챙겼을 뿐이었다.

87분에 리버풀의 실리 축구가 귀중한 추가골로 입증됐다. 위르겐 클롭 감독의 첫 번째 교체 카드 선택을 받은 디보크 오리기가 코너킥 세트 피스 기회에서 옆으로 흐른 공을 정확한 왼발 슛으로 성공시킨 것이다. 리버풀의 14년 된 숙원을 복덩이 '디보크 오리기'가 확실하게 이루어주는 순간이었다.

토트넘 홋스퍼의 손흥민은 패색이 짙은 후반전 추가 시간 3분에도 가장 위협적인 공격 능력을 자랑하며 날카로운 왼발 대각선 슛을 날렸지만 그것마저도 리버풀 골키퍼 알리송 베케르가 자기 왼쪽으로 몸을 날리며 걷어내고 말았다. 부상을 딛고 돌아온 골잡이 해리 케인이 리버풀 수비수들을 끌고 다녔지만 최상의 컨디션이 아닌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런 면에서 80분에 알리송 베케르에게 막힌 손흥민의 오른발 중거리슛은 토트넘에게 너무나 아쉬운 순간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토트넘 홋스퍼의 챔피언스리그 첫 결승전은 마드리드에 안타까운 발자취만 남겼고, 리버풀 FC는 2004-2005 시즌 이스탄불의 기적 이후 14년만에 감격을 누린 것이다.

2018-2019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결과
(2일 오전 4시, 에스타디오 메트로폴리타노-마드리드)

리버풀 FC 2-0 토트넘 홋스퍼 FC [득점 : 모하메드 살라(2분,PK), 디보크 오리기(87분,도움-요엘 마티프)]

리버풀 선수들
FW : 사디오 마네(90분↔조 고메스), 호베르투 피르미누(58분↔디보크 오리기), 모하메드 살라
MF : 조르지뉴 베이날둠(62분↔제임스 밀너), 파비뉴, 조단 헨더슨
DF : 앤디 로버트슨, 페어질 판 다이크, 요엘 마티프, 알렉산더-아놀드
GK : 알리송 베케르

토트넘 홋스퍼 선수들
FW : 해리 케인
AMF : 손흥민, 크리스티안 에릭센, 델리 알리(82분↔페르난도 요렌테)
DMF : 해리 윙크스(66분↔루카스 모우라), 무사 시소코(74분↔에릭 다이어)
DF : 대니 로즈, 얀 베르통언, 토비 알더베이럴트, 키어런 트리피어
GK : 위고 요리스

주요 기록 비교
점유율 : 토트넘 홋스퍼 61%, 리버풀 39%
유효 슛 : 토트넘 홋스퍼 8개, 리버풀 3개
슛 : 토트넘 홋스퍼 16개, 리버풀 14개
패스 성공률 : 토트넘 홋스퍼 78%, 리버풀 62%
패스(성공/시도) : 토트넘 홋스퍼 387/497개, 리버풀 167/271개
코너킥 : 토트넘 홋스퍼 8개, 리버풀 9개
오프 사이드 : 토트넘 홋스퍼 3개, 리버풀 2개
뛴 거리 : 토트넘 홋스퍼 103.4km, 리버풀 105.1km

챔피언스리그 최근 우승 팀
2018-2019 리버풀 FC(잉글랜드)
2017-2018 레알 마드리드 CF(스페인)
2016-2017 레알 마드리드 CF(스페인)
2015-2016 레알 마드리드 CF(스페인)
2014-2015 FC 바르셀로나(스페인)
2013-2014 레알 마드리드 CF(스페인)
2012-2013 바이에른 뮌헨(독일)
2011-2012 첼시 FC(잉글랜드)
2010-2011 FC 바르셀로나(스페인)
2009-2010 인테르 밀란(이탈리아)
2008-2009 FC 바르셀로나(스페인)
2007-2008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잉글랜드)
2006-2007 AC 밀란(이탈리아)
2005-2006 FC 바르셀로나(스페인)
2004-2005 리버풀 FC(잉글랜드)
2003-2004 FC 포르투(포르투갈)
2002-2003 AC 밀란(이탈리아)
2001-2002 레알 마드리드 CF(스페인)
2000-2001 바이에른 뮌헨(독일)
1999-2000 레알 마드리드 CF(스페인)
1998-1999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잉글랜드)
1997-1998 레알 마드리드 CF(스페인)
1996-1997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독일)
1995-1996 유벤투스(이탈리아)
1994-1995 AFC 아약스(네덜란드)
1993-1994 AC 밀란(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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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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