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6일 V리그 여자부 KGC인삼공사의 이재은 세터가 결혼과 출산 계획을 이유로 은퇴를 선언했다. 1980년생 이효희 세터(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가 아직 현역으로 활약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1987년생 이재은 세터의 은퇴는 다소 이르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은퇴는 전적으로 선수 개인의 선택으로 이는 제3자가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다.

이재은이 코트를 떠나면서 주전세터를 잃은 인삼공사는 그야말로 비상이 걸렸다. 현재 인삼공사 선수단에 남아있는 세터는 프로에서 세 시즌을 보낸 하효림 세터와 2년 차 이솔아 세터 뿐이다. 이솔아 세터는 지난 시즌 정규리그에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고 그나마 꾸준히 기회를 얻었던 하효림 세터도 아직 한 시즌 동안 팀을 이끌어 갈 만한 경험을 갖추지 못했다.

이에 인삼공사는 지난 30일 GS칼텍스 KIXX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국가대표 출신의 염혜선 세터를 영입했다. 하지만 상황이 급했던 인삼공사는 염혜선을 영입하기 위해 팀 내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받았던 중앙 공격수 한수지를 내줄 수 밖에 없었다. GS칼텍스 입장에서는 FA 표승주(IBK기업은행 알토스)의 보상선수로 얻은 염혜선 세터를 통해 팀의 약점으로 지적되던 중앙을 보강한 셈이다.
 
 두 번의 보상 선수 지명으로 현대건설,인삼공사 유니폼을 입었던 한수지는 12년 만에 GS칼텍스로 복귀했다.

두 번의 보상 선수 지명으로 현대건설,인삼공사 유니폼을 입었던 한수지는 12년 만에 GS칼텍스로 복귀했다. ⓒ GS칼텍스 KIXX

 
프로입단 10년 만에 센터로 변신

182cm의 장신세터 한수지는 김사니(SBS SPORTS 해설위원) 이후 오랜만에 등장한 장신 세터 유망주로 근영여고 시절부터 성인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200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GS칼텍스에 입단한 한수지는 데뷔 시즌 정지윤 세터의 백업으로 활약하며 신인왕을 차지했다. 하지만 그 시절 GS칼텍스는 미완의 한수지가 성장하길 기다리기엔 당장의 성적이 급한 팀이었다.

GS칼텍스는 2007년 FA 이숙자(은퇴)와 정대영(도로공사)을 동시에 영입했고 한수지는 보상선수로 현대건설 힐스테이트로 이적했다. 한수지는 현대건설에서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고 한수지의 더딘 성장은 현대건설의 염혜선 세터 지명으로 이어졌다. 결국 한수지는 2010년 또 한 번의 보상선수 이적으로 인삼공사의 유니폼을 입었다. 여자배구 전체가 기대하던 유망주가 프로 입단 5년 만에 세 번째 팀으로 이적한 것이다.

하지만 인삼공사는 충분한 경기 출전이 필요했던 한수지에게 '기회의 땅'이었다. 당장 성적에 대한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어 스스로 경기를 풀어 갈 시간이 충분했기 때문이다. 인삼공사는 2011-2012 시즌 최고의 외국인 선수 마델레이네 몬타뇨를 앞세워 통합 우승을 차지했고 한수지는 통합우승 당시 인삼공사의 주전세터로 활약했다. 한수지는 FA 자격을 얻은 후에도 인삼공사와 재계약하며 팀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하지만 한수지는 2012-2013 시즌을 앞두고 받은 건강검진에서 감상선 암이 발견돼 수술을 받았고 이로 인해 전반기를 모두 날려 버렸다. 인삼공사는 2013-2014시즌 정규리그 3위로 플레이오프에 턱걸이했을 뿐 이후 두 시즌에서 모두 최하위를 기록하며 체면을 구겼다. 한수지 역시 전성기 시절의 높고 빠른 토스워크를 보여주지 못하며 평범한 세터로 전락했다.

인삼공사에게 더욱 안타까운 사건은 2015-2016 시즌이 끝난 후에 터졌다. 팀의 주축이었던 백목화(기업은행), 이연주와의 FA계약협상이 결렬되면서 순식간에 주전 선수 2명을 잃은 것이다. 2016년 인삼공사의 사령탑으로 부임한 서남원 감독 입장에서는 난감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이에 서남원 감독은 '포지션 파괴'라는 파격을 단행했고 한수지는 공을 배급하는 세터에서 공격수로 변신을 시도했다.

높이 아쉬웠던 GS칼텍스에 '맞춤형 선수' 될까

한수지는 2016-2017 시즌부터 세터가 아닌 중앙공격수로 변신했다. 아무리 한수지가 182cm의 좋은 신체조건을 가지고 있다지만 세터가 공격수로 변신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배구에 대한 남다른 센스를 가진 한수지는 센터 전향 첫 시즌부터 블로킹 부문 3위(세트당 0.71개)에 오르는 놀라운 적응력을 보이며 인삼공사를 봄 배구로 이끌었다.

2017-2018 시즌 블로킹 4위(세트당 0.64개), 속공 7위(37.27%)에 오른 한수지는 2018-2019 시즌에도 블로킹 4위(세트당 0.66개)와 속공7위(39.8%)를 기록하며 V리그를 대표하는 센터 중 한 명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작년 FA시장에서는 인삼공사와 연봉 3억 원에 계약하면서 V리그 고액 연봉자로 등극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재은 세터의 은퇴로 인삼공사 전력에 구멍이 생기면서 한수지는 FA 계약 1년 만에 팀을 떠나게 됐다.

비록 단 한 시즌을 뛰었을 뿐이지만 한수지에게 GS칼텍스는 프로에 데뷔해 신인상까지 받았던 '친정'이다. 1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 세터가 아닌 센터로 친정에 돌아오게 된 셈이다. GS칼텍스는 '멀티 플레이어' 표승주가 기업은행으로 떠났지만 강소휘,이소영에 박민지,박혜민, 그리고 새로 뽑은 외국인 선수 메레타 러츠까지 날개 공격수 자원이 풍부한 편이다. 하지만 정대영, 배유나(도로공사)의 잇따른 이적으로 센터진은 약점으로 꼽힌다.

실제로 GS칼텍스는 도로공사와의 플레이오프에서 세트당 1.80개의 블로킹에 그치면서 세트당 2.53개의 블로킹을 기록한 도로공사와의 높이대결에서 완패한 바 있다. 따라서 지난 세 시즌 연속 블로킹 부문에서 4위 안에 들었던 한수지와 역대 최장신(204cm) 외국인 선수 러츠의 가세는 GS칼텍스 전력에 큰 힘이 될 것이다. 물론 김유리,김현정,문명화 등 기존 센터들과 한수지의 장점을 극대화시키는 것은 차상현 감독의 몫이다.

프로에서 13 시즌을 보낸 한수지는 인삼공사 시절까지만 해도 한송이와 이재은 세터 같은 '언니'들이 있었다. 하지만 선수단 전원이 1990년대생으로 구성된 GS칼텍스에서는 1989년생 한수지가 졸지에 '맏언니'가 됐다. 단순히 높이를 보강하는 역할뿐 아니라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후배들을 이끄는 역할까지 수행해야 한다는 뜻이다. 과연 12년 만에 GS칼텍스로 돌아온 한수지는 GS칼텍스 리빌딩의 마지막 톱니바퀴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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