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민족·국제

포토뉴스

 
5월 31일(현지시각) 헝가리 부다페스트 한국 대사관 앞에서 열린 다뉴브강 유람선 추모 촛불집회에서 추모를 마친 아나(카키색 후드 입은 사람)와 친구들이 슬픔에 포옹하고 있다. ⓒ 함상희
   
5월 31일(현지시각) 헝가리 부다페스트 한국 대사관 앞에서 열린 다뉴브강 유람선 추모 촛불집회에서 아나(맨 왼쪽)가 친구들과 함께 고개를 숙이는 한국식 추모를 하고 있다. ⓒ 함상희
 
"우리는 케이팝 댄스와 전통춤 같은 한국 문화를 사랑한다. 이번 사고 소식을 듣고 너무 충격적이었다."

5월 31일(현지시각) 금요일 저녁 헝가리 부다페스트 한국대사관 앞에서 아나(19)는 울먹였다. 지금까지 사망 7명, 실종 19명을 낸 다뉴브강 유람선 사고 추모 촛불집회자리에서였다. 이틀 전 사고 당시 폭우가 퍼붓던 날씨는 언제 그랬냐는 쾌청했다. 저녁 7시였는데도 하늘은 환하기만 했다.

친구 두 명과 함께 한 십대 소녀 아나는 "피해자와 가족분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고 말하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케이팝으로 한국문화를 접했냐는 질문에 아나는 "한국문화는 케이팝과 영화가 전부는 아니다"라며 "한국어도 참 독특하고 아름다운 언어다. 언젠가 한국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대사관 앞 추모 촛불 "도와주지 못해 미안"
 
5월 31일(현지시각) 헝가리 부다페스트 한국 대사관 앞에서 열린 다뉴브강 유람선 추모 촛불집회에서 아나(맨 왼쪽)가 친구들과 함께 촛불에 불을 붙이고 있다. ⓒ 함상희
 
아나와 친구들은 촛불을 켠 후 고개를 숙이는 한국식 방법으로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 못한 이들 셋은 서로 껴안고 포옹했다. 카메라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가 무심히도 쏟아졌다.

이날 촛불 집회에는 수십 명의 헝가리 현지인들과 한국 교민들이 참석해 촛불과 꽃을 바치며 희생자들을 기렸다. 남녀노소 다양한 사람들이 추모의 마음으로 모였다.

이 자리는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리는 한국의 문화제와는 사뭇 달랐다. 특별한 추모 공연도 없었고, 주최자나 참여자의 발언을 듣는 시간은 따로 없었다. 한 현지인 참가자는 "이렇게 경건히 촛불을 밝히고 고인의 명복을 비는 것이 이곳의 추모 문화"라고 설명했다.
 
5월 31일(현지시각) 헝가리 부다페스트 한국 대사관 앞에서 열린 다뉴브강 유람선 추모 촛불집회에서 사람들이 헌화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오른편에 흰 한복을 입은 중년 헝가리 여성이 보인다. ⓒ 함상희
 
 
5월 31일(현지시각) 헝가리 부다페스트 한국 대사관 앞에서 열린 다뉴브강 유람선 추모 촛불집회를 제안한 헝가리인 크리스티나(왼쪽)와 에르다씨. ⓒ 함상희
 
집회가 예고됐던 저녁 7시가 되자 대사관 앞에 옹기종기 모여있던 참가자들은 차례로 대사관 담벼락에 꽃을 놓고 애도를 표했다. 한 중년 헝가리 여성도 흰 한복을 입고 와 담벼락에 꽃을 놓았다. 추모를 마친 이 여성은 구석 자리로 가 흐느꼈다.
 
이날 행사는 헝가리 여성 크리스티나 여컵과 에르다 미라처씨의 제안으로 열렸다. 두 사람 모두 헝가리 한국문화원에서 강좌를 수강하고 현지 한국영화제에도 참여하는 등 한국 문화에 큰 애정을 지니고 있다. 특히, 에르다 미라처씨는 최근 <오마이뉴스>에 "한국의 아들 딸 구하지 못한 부다페스트에 용서를 구한다"며 희생자를 기리는 진심어린 애도의 글을 보내기도 했다.

"내가 사랑하는 이 도시, 한국인에겐 이제 슬픔으로만"

에르다씨는 "이번 사고는 우리에게 너무나 예상치 못한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수도 부다페스트를 구경하러 온 죄 없는 관광객들에게 이런 비극이 일어났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다"며 안타까워했다. 또 그는 "우리는 헝가리와 접점이 많은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사랑한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프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크리스티나씨도 "사고 당시 희생자들을 도와주지 못해 너무 미안했다"며 "많은 헝가리인들도 비슷한 심정이라는 걸 알고 나서는 다함께 추모하면 서로 위안이 되리라 믿었다"며 집회를 제안한 배경을 설명했다.

 
5월 31일(현지시각) 헝가리 부다페스트 한국 대사관 앞에서 다뉴브강 유람선 추모 촛불집회가 열렸다. ⓒ 함상희
  
유람선 침몰 사고가 발생한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 마가렛트 다리에 놓인 촛불과 꽃들. ⓒ 함상희
 

부다페스트에 거주하는 은퇴한 미국인인 나탈리씨도 "내가 너무 사랑하는 이 도시를, 한국인들은 앞으로 슬픈 기억으로 함께 한다는 것이 아쉽다"며 슬퍼했다. 그는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에 희생자들에게 애도의 마음을 표하기 위해 들렀다"고 밝혔다. 또 "이틀 후에 배를 인양한다고 들었는데 모든 이들의 유해가 수습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국 교민 정아무개씨도 "이런 사고가 나서 너무 안타깝고 슬프다"며 "한국 교민들도 다 같은 심정이다. 사고가 난 후, 모두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추모 메시지를 올렸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부다페스트에는 한국인 5백여 명이 거주중이며 대부분 유학생으로 알려졌다.

한 가지 인상적인 면은 이날 행사에 참석한 대다수 현지 시민들은 연령이나 직업과 무관하게 헝가리 정부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반드시 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는 점이다. 크리스티나씨도 "가해 선박이 왜 아무런 구호 조치를 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나도 이해가 안 간다" 면서도 "헝가리 정부가 사고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철처히 할 것"이라고 믿음을 보였다.

진상 규명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익명을 요구한 한 현지 기자는 "당연한 걸 왜 묻냐"고 되물었다. "헝가리 정부는 구조 노력을 다 하고 있다"고 밝힌 이 기자는 "문제는 정부가 아니라 물의 상태다"라고 단도직입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물의 온도도 너무 낮고, 투명하지 않아 잘 보이지도 않는다. 며칠 동안 내린 폭우 때문에 물살도 세졌다. 이런 상황에서 잠수부는 물 속에 2분 이상만 있어도 위험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가렛트 다리 못 떠나는 사람들 "가장 깊은 위로를"
 
다뉴브강 유람선 침몰 사고가 발생한 마가렛트 다리에 지난 31일 사람들이 모여 있다. ⓒ 함상희
 
유람선 침몰 사고가 발생한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 마가렛트 다리에 내걸린 추모 글귀. ⓒ 함상희
 
유람선 사고가 일어난 마가렛트 다리에도 수많은 시민들이 운집해 있었다.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던 사람들은 다리에 추모의 꽃과 메시지를 남기고 사라졌다. 한 헝가리인은 침몰한 선박의 이름을 딴 '하블에아니 (hableany)'라는 시를 꽃과 함께 매달았다. 다리 위 사람들의 마음은 이름 모를 누군가가 남긴 한국어 추모 메시지와 똑같았다.

"오늘 제 가슴에서 우러나온 가장 깊은 위로의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유람선 침몰 사고가 발생한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 마가렛트 다리에 내걸린 추모 꽃들. ⓒ 함상희
  
유람선 침몰 사고가 발생한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 마가렛트 다리에 내걸린 추모시. ⓒ 함상희
 
 
태그:#헝가리 유람선 사고, #헝가리, #부다페스트
댓글7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